나눔지기~♡님의 글

2011-04-02 19:48:55 조회(488)

 

聖 손선지 베드로(1819-1866), 회장, 참수형(47세로 1866년 12월 13일 순교)


손선지 베드로는 충청도 임천 지방의 괴인돌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친에게서 직접 교리를 배우고 영세하여 어릴 때부터 신앙심이 돈독하였다. 어른이 되자 1839년에 샤스땅 정 신부가 그를 전교회장으로 임명하였다.
샤스땅 정 신부는 그의 심신과 열심하고 모범적인 태도를 보고 그를 일찍 전교 회장직에 임명하였으며, 전주 대성도 신리골로 이사하고서도 자기 집을 그 마을 교우을 위해 공소로 내놓았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전교회장 본분을 잘 지켜나갔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기쁜 얼굴로 대해, 남에게 마음 상하게 하는 언행을 하는 것을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애덕실천에 철저하여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생활을 충실하게 살았다.
그는 결혼하여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인자한 가장으로 교육에 힘쓰며 사소한 일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모범적인 신자가정을 이루었다. 그가 거처하던 집은 마을의 공소였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주의와 노력으로 언제나 신자들을 위하여 봉사하며 살았다.
1866년 추수기에 접어들자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좀 완화되는 듯 하더니 얼마 후 더욱 혹심한 박해가 변하였다. 그런던 어느 날 지나가는 나뭇꾼이 공소에 모여 있는 신자를 보고 "나라에서는 멀지 않아 천주학을 하는 사람들을 잡아 죽인다데 이 지방 신자들도 결단나겠구나"하자, 손 베드로는 "곡식이 익으며 바람결에 날리어 땅에 떨어지는 법입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가올 박해에 나같은 사람도 당신 곡간에 거두시려는 모양이군요"하며 자기는 순교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무사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피신하라고 권하였다.
12월 3일, 그 날도 주일날 공소 예절의 기도가 끝나자 누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나자 포졸들이 온 것을 알고, 신자들과 그의 가족들을 뒷문으로 피신시키고 그는 순순히 교우라는 것을 자백하고 체포되었다.
손 베드로는 체포된 뒤 정문호, 정원지와 함께 그곳 삼거리 구전퍼리에서, 성지동에서 체포되어 온 조화서 부자와 이명서, 한재권 등과 함께 만났다. 이때 손 베드로의어머니는 전부터 잘 아는 지방 관리를 찾아가 아들을 좀 구해달라고 애걸하였다.
그래서 원님이 포졸들에게 손 베드로를 이번 한 번만 좀 봐주지 않겠느냐고 하자 포졸을 그를 놓아 줄 수는 있으나 배교한다는 말을 해야 놓아 줄 수 있다고 하였다.
원님이 손 베드로에게 두 차례나 가서 설득시켜 보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헛수고였다. 오히려 손 베드로는 "결코 배교는 안 할 것이오. 나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나를 유혹하는 지금의 당신 행동 자체가 심히 나를 괴롭히는 일이니 어서 물러가시오"라고 하였다.
그가 전주 옥에 갇혀 있을 때도 19세가 되는 효성이 지극한 그의 아들이 감영에 찾아와서, 또다시 부친의 구명운동을 하기위해 돈을 마련하려고 여기저기 쫓아다녔다. 손 베드로는 일 말을 듣고 아들의 효심을 가상히 여겼지만 아들을 크게 꾸짖으며 그 일을 중단시켰다.
"나에게 큰 유혹이 되니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감영에 들어오지 말라"고 엄중하게 일렀다.
그는 또한 전교회장이란 직분이 알려져서 동료들 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형벌을 받았으며, 절대로 배교하지 않을 것이니 국법대로 속히 처단해 달라고 호소하였지만 문초는 끈질겼다. 문초관들은 "너는 천주교의 괴수이며, 서양 사람들이 너희 집에 출입하였다하니 그들의 행방을 고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기를 "서양 사람들은 상경후 후 소식이 없으며 알 길이 없고, 가르친 사람이나 고발할 사람도 없으며, 교리책이나 성물도 물론 없다"라고 답변했으므로, 형리들은 혹독한 고문과 주리형을 잔인하게 가하다가 그의 팔을 완전히 부러뜨리고 말았다.
한편 그는 관장 앞에서 보다 포졸들이 형리들의 사사로운 형벌을 더 많이 받았다. 용감한 손 베드로는 끝내 게속 마음의 평온을 잃지 않았고 모든 고통을 잘 참아 견디었다. 그는 숲정이 처형장으로 향하기 위해 감옥을 나설 때도 그것에 더 남아 기다려야 하는 교우 하나에게 자기 옷을 주면서 "난 이제 죽으러 가오, 이 옷은 더 이상 내게 소용이 없으니 이 옷을 입으시오"라고 말하였다.
사형장에 도착하자 그는 희광이한테 목을 내어 주기 전에 먼저 얼굴을 하늘을 향해 예수 마리아를 부르니 희광이가 칼로 그의 어깨를 내리치자 그는 죽은채 하기는 커녕 오히려 머리를 쳐들고 "장난하지 마시오"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희광이가 다시 칼을 들어 힘있게 내려지니 47세를 일기로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 당하였다.

<교훈>
"시련을 견리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시련을 이겨 낸 사라은 생명의 월계관을 받을 것입니다. 그 월계관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야고 1,12) 우리가 매일 당하는 온갖 시련은 생명의 월계관을 꾸미는 꽃송이가 되어야 합니다. 시련 때문에 상심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손 베드로와 같이 기쁨 마음으로 유혹을 물리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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