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그리스도인] 34. 교부편 (15) 암브로시오

나눔지기~♡님의 글

2010-03-02 00:25:06 조회(93)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34. 교부편 (15) 암브로시오

암브로시오는 성직자와 신자, 비신자 등 모든 이들에게서 존경을 받았다. 그는 성서주해서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이단으로 갈라진 이들 화해시켜

학덕·성덕 갖췄지만 늘 겸손
주교로 추대된후 세례받기도

374년 밀라노, 거친 표정으로 성당에 모여 있던 군중들은 두 패로 갈려 서로를 험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밀라노의 주교 아욱센시우스(Auxentius, ?~374)의 후임을 선출하기 위한 이 자리는 이미 커다란 소동과 어려움을 예고하고 있었다.

완고한 아리우스주의자였던 전임 주교를 따르던 이들에 반대해 정통 신앙을 따르는 신자들은 일전을 결사할 태세였다. 바로 이 자리에 당시 밀라노에 관저를 둔 에밀리아 지방 총독 암브로시오가 공정한 주교 선출을 감독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군중들에게 평화적인 방법과 대화로 화해를 추구하자고 권고하던 그의 목소리 사이로 한 아이가 『암브로시오를 주교로 뽑자』고 소리쳤다. 순간 성당안은 정통파나 아리우스파를 막론하고 『암브로시오 주교』를 외치는 군중들의 함성으로 가득해졌다.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암브로시오는 당혹감 속에서 주교직을 사양했지만, 결국 세례를 받고 여드레 후인 374년 12월 7일 주교품을 받았다.


성인이자 밀라노의 주교로서, 신학자이자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가운데 한 사람인 암브로시오(Ambrosius
, 339~397)는 이로써 가장 완벽한 사목자의 전형으로서 자신의 주교 직무를 시작했던 것이다.

암브로시오의 생애는 자신이 남긴 저서들, 특히 서간들을 통해서 알 수 있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밀라노의 파울리노가 쓴 전기 「성 암브로시오의 생애」(Vita S. Ambrosii)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독일 서쪽 지역인 트리어(Trier)에서 태어난 그는 대대로 신앙을 지켜온 로마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갈리아 지방의 행정관이었던 부친의 사후, 가족들은 로마로 돌아왔고 거기서 암브로시오는 고등 교육을 받았다. 가문의 전통에 따라 그는 공직자의 길을 걸었고, 좋은 가문을 배경으로, 훌륭한 실력까지 겸비한 그의 출세는 탄탄대로였다. 처음에는 변호사로 있다가 밀라노의 총독이 됐다. 암브로시오가 주교가 된 사건이 바로 이때 발생했던 것이다.

암브로시오는 주교가 된 후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과 교회에 나눠 주었다. 빼어난 학덕과 성덕을 함께 갖추고 있던 그는 주교가 된 후 겸손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했다. 『학생도 되기 전에 스승이 되었구나, 배워야 할 내가 가르치게 되었구나』하며 주교로서 자신의 모자람을 고백한 그는 이후 사제 심플리치아노로부터 지도를 받아 성서공부에 몰두했다.

선배인 치프리아노, 자신이 교회의 사람으로 이끈 저 위대한 후배 아우구스티노와 마찬가지로 암브로시오 역시 주교 직무를 수행하기에 앞서서 성서를 통해 양성된 사람이다. 특히 암브로시오의 수많은 주석 작품들은 책으로 쓰여지기 전에 이미 설교를 통해 태어난 것들이다.

그는 탁월한 강론가였다. 성서에 관한 해박한 지식, 여기에 깊은 묵상과 기도를 통해 자신의 지식을 심화시키고 더욱이 뜨거운 열정을 가미해 준비한 강론들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느님께 이끌었다.

아우구스티노 역시 그의 강론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개종하는 은혜를 입은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다. 이단으로 갈라진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성직자들과 신자, 비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사랑과 존경을 보냈다.

암브로시오가 세상을 떠난지 100년이 지난 후에 만들어진 밀라노의 한 모자이크는 그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작은 키에 여윈 몸매, 길고 갸름한 두상에 턱수염, 사색에 잠긴 표정, 권위 있는 검고 큰 눈, 절제된 열정. 그는 활동적이면서도 지적이고 명상적이면서도 타고난 연설가였다. 완벽에 가까운 사람으로, 마찬가지로 거의 완벽한 사목자, 주교로서 알려진 인물이 바로 암브로시오 주교이다. 범상한 인물이었지만 고고한 귀족에 머물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약한 사람들의 변호자가 바로 그였다.

주교가 된 당시, 밀라노는 당시의 다른 여러 지역들이 그러했듯이 가난한 민중들은 세금과 부자들의 권세에 짓눌려 있었다.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 그는 이후에는 말씀과 행동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섬겼다. 그처럼 모든 사람에게 속하는 재화의 공정한 분배와 사유 재산의 권리와 한계에 대해 강하게 가르친 인물도 흔하지 않다.

『그대는 그대의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것을 그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함께 사용하라고 준 것인데, 그대는 그대 자신만을 위해서 그것을 도둑질했다… 사람은 빵을 구하는데 그대의 말(馬)은 황금을 씹고 있다. 오 부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떨어질 단죄는 얼마나 무거운가!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는데 그대는 옥반지를 굴리고 또 굴리는구나. 그대 옥반지 하나면 모든 백성을 구하고도 남을 것인데…그대는 그대가 지니고 있는 재화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자일 뿐인데, 그대는 황금을 땅속에 파묻고 있다. 차라리 황금을 팔아서 구원을 사라』(「나봇 이스라엘인」, De Nabuthe Jezraelita 중에서).

주교로서 그는 또한 성직자들의 자질에 늘 관심을 기울였고, 이를 위해 성직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을 위한 영적 지도서를 펴내기도 했다. 그가 남긴 저술들은 많다. 성서 주해서와 윤리, 수덕에 관한 저서들, 그리고 교의신학적 저서들과 연설문, 서간, 찬미가들이 포함된다. 그리스어로 불멸, 혹은 「신적(神的)인」이라는 의미를 지닌 암브로시오는 오늘날 주교들이 따라야 할 전형이라고 할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4년 10월 17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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