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브로시우스의 직무론

나눔지기~♡님의 글

2010-03-01 23:28:06 조회(71)

 

암브로시우스의 직무론

최창무 대주교님

* 교회는 이미 초기부터 교직자를 두었고 그들의 중요성 때문에 선발과정이나 교회 내에서의 그들의 위치와 임무 및 생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러한 모든 것이 교회사 안에서 보면 성직자의 윤리를 형성하는 데 작용했다고 본다.

본 장을 비롯해 계속해서 이어지는 제3장, 제4장에서 교직자의 윤리를 암브로시우스(Ambrosius)[+. Ambrosius, De officiis ministrorum]와 아우구스띠누스(Augustinus)[+. Augustinus, Sermo 46: De Pastoribus] 그리고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세[+. Gregorius I, Liber Regulae Pastoralis]의 특정한 저술에서 검토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 시대의 훌륭한 학자들이었으며 처음으로 교직자들의 윤리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다룬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사회 안에서 공직자들의 윤리와 생활 규범을 알고 그를 전제로 하면서 교직자들이 윤리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한 문화권(文化圈)에 접하면서 그를 어떻게 수용했고 발전시켰으며 변화를 가져왔는지도 간접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이 오랜 전통 문화를 가진 사회 안에서도 사회 공직자들의 윤리와 윤리 규범이 있으니까 그러한 규범들과의 상관 관계를 검토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안에서 본 논문은 가능한 한 본문을 각주에 많이 인용하고자 했다. *

I. 교직자(敎職者)들의 직무론(職務論)

이는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책이므로 여기서 암브로시우스의 생애와 그의 작품에 대하여 간단히 소개하고 직무론(職務論)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1. 생애와 작품

암브로시우스는 서기 339년경 현재 독일 지방인 트리에르(Trier)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그는 어머니와 3남매가 다시 로마로 돌아왔으며 그곳에서 수사학과 법학을 수학하고 370년경 밀라노의 집정관 직책을 맡게 되었다.

그가 집정관으로 있으면서 도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교회 분쟁에 개입했던 것이 기회가 되어 그의 생애는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밀라노의 주교 선출에 있어 아리우스파 이교도들과 가톨릭 신자와의 충돌이 생겼고 이를 평화적 방법으로 훌륭하게 조정해 줌으로써 신도들로부터 교회의 지도자인 주교로 추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세례를 받은 신자도 아니었고 예비자에 불과했다.

그는 곧 세례를 받고 주교에 서품되었다.

주교가 된 그는 주교직을 수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공부를 하였으며 자신의 생활도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엄격한 고행과 수도를 했으며 자기의 재산을 처분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사하였고 성서의 가르침대로 생활하려 노력하였다.

그의 사목 효과 중 큰 것은 아우구스띠누스를 회개시킨 그의 훌륭한 강론이었다. [+. 참조: 아우구스띠누스, 『고백록』6,4,6]

그의 확고한 신앙생활과 훌륭한 지도 능력은 아직 제도로서나 사회적으로 확고한 기틀을 잡지 못했던 교회에 큰 힘이 되었고 사회적 권위와 안정을 얻고 특히 종교의 자유를 확립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용감히 그리스도교 진리를 선포했고 위정자들의 비윤리적 행위를 비판하고 고발했으며 바른 정치를 하도록 종용했고 실제로 효과도 보았다.

그는 정치적 수완이나 협상을 통해 활동치 않고 자신의 엄격한 생활과 강직한 교직자로서의 태도와 설교 및 저술 활동으로 당시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사회와 교회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는 397년에 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저술 중에는 성서 주석서가 많으나 자기 고유의 방법론이 아니고 희랍 교부들의 비유적 해석에 의존하고 있다 교의신학 문제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깊이 있는 연구는 별로 없다.

당시의 이단을 거슬러 정통교리를 수호하였고 전달한 공헌은 크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교회 생활을 위한 실제적이고 구체적 윤리 교육이다.

아우구스띠누스와 함께 중세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학자이다.

그의 이 방향의 작품 중에서도 『교직자들의 직무론』이 가장 유명하고 공헌도 제일 크다.

2. 교직자들의 직무론(De officiis ministrorum)

암브로시우스는 자기 교회 내의 교직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교적 윤리관에 의해서 직무에 관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이 책을 저술함에 있어 치체로(Cicero)가 저술한 직무론(職務論)을 참조하였으나 정신적 내용이나 이론의 근거는 전혀 다르다.

자기 고유의 사상과 신학을 가미하여 교회 교직자들의 자질과 임무와 바른 생활을 제시하고 생활 지침으로 권유한다.

가) 직무론의 구성과 내용

치체로의 직무론 형식을 따라 전체를 세 권으로 나누어 다룬다.

첫 권에서는 직무의 원천인 선(善)을 네 가지 기초덕 에서 다루고 두 번째 권은 직무를 수행하는 자들이 추구하는 유익성(有益性)을 논하고 셋째 권에서는 윤리적 선(善)과 유익성(有益性)의 상관 관계를 다룬다.

이것은 Honestum, Utile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연관성 혹은 상충성을 다룬 치체로를 모방하고 있는 것이 라고 볼 수 있다.

제1권은 50개 장으로 구성되며 윤리적 선에 대하여 논한다.

괄호 안의 숫자는 장(章)을 의미한다.

(1) 처음부터 기본 정신을 분명히 이야기한다.

성서를 기준으로하여 참된 지혜가 무엇이며 그 원천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그것은 곧 겸손이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자랑할 것도 오만할 것도 없으며 사명을 이행하는 것뿐이고 이 사명을 이행함으로써 자신이 배우게 됨을 고백하고 있다.

(2-6) 웅변이나 달변이 사람을 위대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데서 품위와 권위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접적인 도덕을 가르치기 전에 침묵의 위대함과 그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 유익함을 말한다.

(7) 침묵의 힘과 가치와 의무에 대하여 충분히 말한 다음 직무론을 쓰게 되는 동기를 말한다.

그리고 이 직무론의 구성과 양식을 암시하는 희랍 철학자 및 라틴 철학자를 말한다.

(8) '직무'에 대한 이해는 철학자들의 사상이나 지식에서만 얻을 것이 아니고 성서에서 보아야 할 것임을 말하며 직무의 어원적 내용과 함께 성직(聖職)의 성격을 강조한다.

(9-11) 스토아 학파의 유명한 윤리학자인 파나에시우스(Panaetius)는 세 가지로, 로마의 유명한 학자 치체로는 다섯 가지로 나누는 윤리적 선과 유익한 것에 대해서 말하면서 윤리적으로 유익하고 타당한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필요한 덕 네 가지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다시 한 번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것과 완전한 것을 논하면서 그리스도교적 자비를 완전한 것으로 지적해 주고 있다.

(12-16) 여기에서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고유한 점인 하느님의 섭리에 대하여 논하면서 섭리가 무엇이며 섭리에 순응하고 알아보는 것이 참된 행복과 거짓 행복,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를 구분해 놓고 있다고 지적한다.

(17) 성서의 모범을 따라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덕을 가르치고 있다.

(18-21) 단정함과 예의에 대하여 논하고 어떻게 품위를 지킬 것인지에 대하여 성서적 교훈을 들어 말해 주고 지도자로서 특히 주의해야 될 분노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자신의 분노를 억제하는 것은 도성을 점령하는 것보다 낫다"(잠언 16,32)는 격언을 이용하면서 의분은 발하여도 분노로 감정을 억제치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22-25) 말과 행동에 있어서 자제하고 지혜롭게 할 것과 쓸데없는 잡담을 피하고 성서의 훌륭한 모범을 배울 것을 이야기하며 플라톤(Platon)이 말한 네 가지 기본덕인 지식과 진리에 의해서 생활하는 지혜와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의협심과 실천에 옮기는 용기와 자기의 언행을 조절하는 절제의 덕을 논한다.

(26-49) 진리를 추구하는 지혜와 사실을 알아보는 지식과 함께 정의에 대해서는 희랍이나 로마의 윤리학자들과 함께 사회적 질서와 균형을 유지하는 척도로서의 정의만이 아니고 자비와 자선과 함께 성서의 정신에 따라 형제적 사랑을 실천할 것을 권한다(26-34).

그리고 정의를 실천하고 올바른 판단 하에 실행하는 용기에 대하여 논하면서도 어떤 무력에 의지한 용기보다 신앙을 옹호하는 용기에 대하여 논하고, 가장 위대한 것은 순교의 정신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위대한 용기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신앙을 지키고 교회를 수호하기 위하여 어떤 외적 압력이나 아첨에도 용감히 대적할 것을 훈계한다(35-42).

교직자들은 임무 수행을 위해 자신을 제어하고 수신 극기하여 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도록 할 것을 가르친다(43-49).

마지막으로 구약의 레위기 예를 따라 신분에 적합한 덕행을 가져야 하고 특히 위에서 논한 덕목들에 유의하면서 모세의 축복하는 말로 끝을 맺는다(50).

제2권은 유용론(有用論)에 관한 권유로 30개 장을 내포하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1-5) 치체로가 직무론에서 철학적 논거로 그 타당성을 설파하는 데 비하여 암브로시우스는 철학보다 더 심오한 지식인 성경에 의해서 행복하고도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여야 한다고 훈계하며 이것은 인간적 의미에서의 외적 기준인 행복이나 불행 등에 직접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많은 고통 중에 이루어질 수도 있음을 성경 안에서의 예로 가르치고 있다.

(6) 제2권의 서론을 성서적이고 신학적인 의미에서 다룬 후 다시 치체로의 직무론과 같이 본의적 서론을 말한다.

즉 무엇이 정말 유익한지 말하면서 현재와 미래의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경건심을 기초로 한다.

(7)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으로부터 신용을 얻는 것이다.

민중으로부터 신뢰심을 얻는 것은 귀한 것이고 이것은 예지와 경험과 인내와 희생적 봉사 정신과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까지도 무릅쓰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지 자기 확신과 오만 불손한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8-14) 사람들에게 신망을 얻어 존경과 사랑 그리고 신뢰심을 얻게 되면 바른 의견을 줄 수 있게 되고 이는 정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생활이 그에 상응해야 하며 실제로는 하느님의 파견을 받은 자들로서 그에 대한 증인들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조건들이 바로 교직자들이 지녀야 하는 품위이며 외모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15-18) 자선 활동을 통해 진정한 신뢰심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자선을 베푸는 것은 남용이나 다름없다.

자신의 도움이 한 인격의 성장을 의미할 때 유익한 것이다.

따라서 한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 가장 큰 자선이 된다.

그렇지 못하면 이기심과 자신의 영달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고 자신과 이웃의 위험만을 초래하게 된다.

(19-23) 위선과 아첨을 피하며 정의와 관대함과 친절로 모든 이를 대하는 것이 중요하며 특히 젊은이들은 노인들에게서 지혜를 배울 것을 종용한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도와주며 특히 억울하게 고통받는 자들을 돌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거짓은 오래가지 못하는 것, 진실된 호의는 지나치게 양보하거나 엄격한 것도 아니고 중용을 지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매수되지도 않을 것이고 매수하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24-30) 여기서는 특별한 문제를 다루지 않고 교직자들이 사람들을 지도할 때 슬기롭게 하고 편파적이어서는 안 되며 동료간에 시기하거나 질투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친다.

특히 재산 문제에 있어서 청렴결백할 것을 요구하고 물욕을 경계하라고 강조한다.

재산을 지키는 데 마음을 쓴 것보다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주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형제적 사랑 안에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한다.

제3권에서는 선(善)과 유익(有益)의 상호 관련성과 조화를 22장에 나누어 다룬다.

(1-2) 덕망이 있는 사람은 비록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고 한가하여도 게으르지 않게 살 줄 안다.

그리스도교적 지혜는 유익한 것과 선한 것이 일치한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유익한 것, 옳은 것, 지혜로운 것을 판단할 줄 알기 때문이다.

(3-5) 그리스도를 닮는 사람은 자신의 위치와 임무를 잘 깨닫는다.

그는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며 이웃에게 해를 기치는 것은 자연법과 그리스도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임을 안다.

그러므로 자기 권익을 주장치 않고 그리스도와 같이 숨어 살 줄 안다.

그럼으로 해서 그리스도가 영광 중에 오시면 함께 영광스럽게 된다.

(6-8) 사회적 악이며 부정으로서 매점 매석과 타인들의 불행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고발하고 윤리적으로 선한 것만이 진정으로 유익한 것이며 윤리적으로 악한 것은 해롭고 단죄받을 일이라고 한다.

(9-12) 선행을 가장하여 유산이나 남의 재산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큰 잘못이며 계약에 있어 불평등이나 사기도 큰 죄악이다.

부당한 약속에는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

예컨대 헤로데나 입다 판관의 맹세는 [+. 마르 6,16 이하; 판관 11,30 이하] 지킬 의무가 없는 것이다.

(13-22) 3권의 후반부에 속하는 이 부분은 성서에서와 일반 고담의 예화를 인용하여 선한 것과 유익한 것의 상충되는 문제들을 풀어 가며 윤리적으로 선한 것과 유익한 것은 항상 일치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치체로나 마찬가지로 우정(友情)에 관하여 논하지만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

나) 암브로시우스의 직무론의 특성

암브로시우스는 성직자들의 직무론을 서술함에 있어 그 형식이나 용어 등은 희랍의 학자들이나 로마의 학자들을 많이 활용하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크게 다르다.

그는 성서적 해석과 신학적 기초에서 새로운 윤리관을 전개한 것이며 이를 기초로 하여 그리스도교 윤리가 큰 발전을 보았다.

그 특성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 저서는 그리스도교 윤리를 처음으로 체계적이며 조직적으로 전체를 다루었다는 것이다.

성서 안에서나 그 당시까지의 교부들의 저서에서는 단편적이거나 부분적으로 윤리관을 제시했었다.

따라서 일반적 훈계나 교훈의 양식으로 다루었고 많은 경우 호교론적(護敎論的)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암브로시우스는 당대 윤리학자들과 같이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면서 철학에 머물지 않고 신학적으로 다루었던 것이다.

비록 현대적 평가로는 부족한 점이 없지 않으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훌륭한 작품이며 큰 공헌을 한 것은 틀림없다. [+. A.F.Coyle, op.cit., p.256]

둘째, 자연과 초자연을 무리없이 연결하고 있는 점이다.

여러 가치들이 충돌하고 상충될 때 어떻게 상대적 우월성을 판별해야 하는가 하며 외교 철학자들이 고심하는 것을 그는 아주 간단한 원리로 대답하고 있다.

암브로시우스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치 충돌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고 인간의 구원을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 질서가 정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느님의 심판이 있게 된다.

즉 어떤 경우라도 최종적으로는 하느님께 귀결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셋째, 자연은 자연질서에 따라야 하지만 우주의 질서는 창조주의 뜻에 기인하고 있으므로 초자연과 양립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자연과 초자연은 조화 보완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교적 의미로 완성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토아 사상을 받아들여 발전시키며 내용을 보완하거나 보다 완전한 것으로 인도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학문의 태도에서 현대 신학도들도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자연과학의 발달과 사회 문화의 변천은 그리스도화 혹은 속화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숨겨졌던 진리들이 드러나는 것이고 본연의 질서를 찾게 해준다.

왜냐하면 자연의 주인도 하느님이시고 모든 것을 좋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II. 교직자의 윤리(倫理)

암브로시우스는 『교직자들의 직무론』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교직자 윤리(敎職者倫理)를 제시하고 있다.

1. 교직자는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지도자로서 그리고 공직자로서 남을 충고하고 의견을 주며 봉사할 수 있는 능력, 즉 지혜와 진실과 희생적 봉사 정신을 갖추어야 한다.

암브로시우스 자신도 아직 예비 신자일 때, 민중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주교가 된 것을 우리는 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조건을 다음과 같이 열거해 볼 수 있다.

가) 친절과 동정심을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자는 자기도 사랑을 받고 신뢰심도 얻게 된다.

지도자에게 이 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구약의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들인 모세, 다윗, 솔로몬 같은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설명하고 있다.

나) 청렴결백한 자여야 한다

암브로시우스는 지도자가 사람들로부터 신용을 얻으려면 물욕(物慾)이 없어야 하고 정직하게 봉사해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자기의 재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자선에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교직자가 청렴결백할 때 얼마만큼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친다.

그러므로 교직자가 덕을 닦는 데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물질에 욕심을 가지면 추해지고 [+.『직무론』Ⅲ, 9, 57-58] 신용을 잃게 된다.

사기와 위선으로 재산을 늘리거나 보존하려 들면 권위를 상실하게 되고 [+.『직무론』Ⅲ, 11, 70] 정직하고 순진하여 재산에 피해를 본다면 오히려 자격을 얻을 것이다. [+.『직무론』Ⅲ, 6, 37]

교직자로서 타인의 약점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려 든다면 죄를 면치 못한다.

특히 매점 매석을 한다든지 [+.『직무론』Ⅲ, 6, 37] 불우한 이웃을 동정치 않고 재물을 창고에 쌓아 둔다든지 [+.『직무론』Ⅱ, 15, 68] 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그 물건은 결국 남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면 결국에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게 된다. [+.『직무론』Ⅲ, 6, 43-44; Ⅲ, 4, 27-28; Ⅲ, 1, 13]

그러므로 교직자는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기대하면서도 모든 이에게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힘써야 하며 아무에게도 손해가 안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직무론』Ⅲ, 9, 58; Ⅰ, 28]

이렇게 하는 것이 교직자들이 임무이기 때문이다.

다) 교직자는 덕을 갖추고 명예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교직자는 지도자이기 때문에 남의 모범이 되고 예의바르며 언행에 있어서는 품위가 있어야 한다.

덕스럽고 칭찬받을 만한 일들을 해야 하며 이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추덕(四樞德)인 지(智)촵의(義)촵용(勇)촵절(節)을 갖추는 것이다.

이러한 덕들을 갖추고 나면 행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중용지덕(中庸之德)을 실천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있어 그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신중을 기해야 하며 후회 없는 일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교직자들은 배우며 가르치는 자들이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 없으며 모든 것을 아는 사람도 없다.

교직자들도 완전하고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직무를 맡게 된 것이 아니므로 항상 겸허한 자세로 임무를 수행할 것이며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힘써야 한다.

가) 교직자로서 봉사한다는 것은 꾸준히 가르치며 배우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통하여 배워야 하기 때문에 남을 가르치는 중에 배우고 배워 가며 가르친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을 가르칠 때에는 항상 그것을 자신도 배우고 실천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암브로시우스 자신도 이 정신을 스스로 실천하며 자기가 가르치는 것은 미리 배운 것이 아니고 가르치면서 배운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배우고 나서 가르치기에는 시간이 없다고 한다.

즉 배우며 가르치고 가르침으로 배우게 된다는 겸손한 태도를 취한다.

배울 필요는 없고 가르치기만 하실 분은 오직 한 분뿐이다.

즉 그분은 바로 우리 주님이시고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마태 23,8.10). [+.『직무론』Ⅰ, 1. 3]

나) 교직자는 성경을 통해 꾸준히 가르침을 받고 모든 일을 이해하며 판단해야 한다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남에게 진실되고 유익한 조언을 할 수 있기 위해서 교직자들은 겸손하고 순결한 마음을 지녀야 하며 사심과 물욕을 저버려야 한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만이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무론』Ⅱ, 17, 86-92]

3. 교직자는 사회 정의를 이룩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 정의란 인간의 법에 의한 정의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모든 이가 존귀하고 구원받아야 할 사람으로 인정하시고 보살피시는 하느님의 정의를 말한다. 정의는 죽음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며 현세적 응보의 관계가 아니다.

따라서 이 정의는 현세의 부귀영화나 권세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진리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의 양심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직무론』Ⅰ, 12-16장; Ⅱ, 2-5장, 22-24장

가) 교직자들은 자기 스스로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말며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고 일반적 질서 유지에 만족치 말 것이다.

즉 각자 자기의 권리를 보존하는 정도에 만족치 말고 [+.『직무론』Ⅰ, 28, 130-131; Ⅱ, 14; Ⅲ, 6]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웃을 돕고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

암브로시우스는 로마 시민들의 정의 개념보다 그리스도교적 정의가 우월한 것임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공유 재산은 공동으로, 개인 재산은 개인의 권리로 소유케 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지만 [+. 치체로의 『직무론』Ⅰ, 7, 20] 이것이 자연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연은 그 소유를(특정인만을 위해 내주지 않고) 함께 나누도록 베푸고 있기 때문이다”[+.『직무론』Ⅰ, 28, 132] 하면서 스토아적 사상에 동조한다.

여기서는 당시의 사유 재산권의 부조리를 고발하여 개인의 절대적 임의성을 제한하고 인간의 공존과 상호 협력 및 사항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의 정신과도 상통한다. [+. 참조: 「사목헌장」 69-72]

나) 교직자는 공평무법(公平無法)해야 한다

아첨하는 사람을 경계하고 자신도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의 평가를 너무 의식하여 주관 없고 강직하지 못하게 될까 조심해야 한다. [+.『직무론』Ⅱ, 25, 120-125]

그러므로 자선을 베풀 때도 혜택을 받을 만한 사람인지를 판별하여야 한다.

바르지 못한 판단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자선의 혜택을 못 받고 부당한 사람이 특혜를 받는다면 재산 관리를 잘못한 것이고 남용을 한 것이 된다. [+.『직무론』Ⅱ, 15, 68-69; Ⅱ, 25, 126-127]

다) 인권을 옹호하고 잃은 권리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 가장 보람있는 정의 실천이다

자기의 탓이 없이 재산을 잃었거나 큰 손해를 본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고 잃었을 때에 다시 찾아 주는 일, 박해받거나 위협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도와주고 위로하는 일, 감옥에 갇힌 사람을 석방시켜 주고 포로된 사람을 구해 주는 일, 고향을 잃은 사람에게 귀향을 주선하는 일 등은 지도자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다.

4. 교직자는 봉사 정신에 투철해야 한다

지도자가 가지는 권력이나 권리는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고 남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허약한 사람들을 돕고 질서를 유지하며 잘못하는 사람들을 견책하여 질서 가운데 평화 공존을 누릴 수 있도록 봉사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가) 봉사는 이웃에게 하는 것이다

교직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듯 교회도 제도나 그 재산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공동체와 사람에게 봉사하고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므로 교직자들은 신앙에 성실하고 공동체의 믿음을 수호하고 선행에 힘써야 한다. [+.『직무론』Ⅱ, 30]

교회의 재산과 성물을 잘 보존하고 보관해야 하겠으나 그것이 사람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아무리 보잘것없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어느 교회의 귀중품보다 귀하다.

그러므로 필요한 경우라면 성물을 팔아서라도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

나) 교직자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하여서만 아니라 이웃의 신앙생활을 돕기 위하여서 용기가 필요하다.

이 용기는 국민과 국가를 수호하기 위하여 군인들에게 요청되는 용기와는 다른 것이다.

전쟁에서의 용기보다 더 소중하고 더 위대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생명을 바치는 순교의 정신을 의미한다.

즉 죽음으로 봉사할 용기이다. [+.『직무론』Ⅰ, 41, 200-207]

이런 용기는 대항하되 무력으로 하지 않으며 방어하지만 정당 방위로써 이웃과 침략자를 상하게 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것은 그것이 생명일지라도 포기할 수 있는 용기이며 참고 견디는 힘이다. [+.『직무론』Ⅰ, 48, 233-239]

박해자와 모함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침묵을 지킬 수 있는 용기이다.

왜냐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변론이 보복이 될 수 있고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쳐 주시고 생활하셨듯이 겸손과 양순함으로 지위와 직분을 지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 참조: 『직무론』Ⅰ, 5, 19-20; Ⅱ, 17장]

5. 교직자의 직무는 스스로 취하는 직분이 아니고 불리운 임무다

가) 스스로 취하는 것이 아니고 불리었으므로 부르신 분의 뜻을 경청해야 임무를 옳게 수행할 수 있다

[+.『직무론』Ⅰ, 2, 6-7]

듣는 자세가 올바르게 되지 않으면 자기 꾀에 넘어가고 바른 의견을 듣지 못하게 된다(1열왕 12,3-19).

[+.『직무론』Ⅱ, 18, 93-94]

자문을 바르게 받지 못하면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반대로 겸손하게 의견을 듣고 지혜롭게 판단하게 되면 주님의 뜻을 이루게 될 것이다. [+. 참조: 『직무론』Ⅱ, 19, 97-101]

나) 순응과 인내가 요청된다

인간의 지식이나 이론적 근거를 최종적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분이 최종 심판도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진실하심을 믿고 그분에게 신뢰하기 때문에 인간적 오판과 불의에 의연히 대처할 수 있고 초조해 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

또 악인들의 유혹과 설득에 이끌리지 않는다.

현실에 희망을 두고 재물에 의지하려는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부하겠지만 그렇게 얻은 부귀영화에 교직자들은 시샘도 부러움도 느끼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소외되고 가난하게 죽어가도 실망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서에서 비유로 설명해 주듯이(루가 13,13-21; 16,19-31) 진정한 행복의 판결은 현세 생활 모습에서가 아니고 죽음을 통해 하느님 앞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직무론』Ⅰ, 15, 57-58]

다) 결단력을 가져야 한다

교직자들은 자기 것을 추구하지 않고 불러 주시는 주님의 뜻을 따르기 때문에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는 마음이 아프더라도 결단력 있게 병든 지체를 척결한다.

마치 유능한 의사는 생명을 위해 지체의 절단을 무릅쓰는 것과 같이 공동체의 안전과 유익을 위해서는 단호한 거절과 징계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라) 교직자들의 최종적인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그를 따르는 생활, 그를 닮는 생활이어야 한다

공동체와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안이한 생활이나 이익을 포기하고 모든 경우에 바르고 선한 행동을 해야 하는 교직자들은 자신의 생명을 희생으로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

자신의 재산 보호를 위해서 정당방위를 주장치 않으며 남에게 상처를 입히기보다는 -비록 정당한 경우라도-차라리 자신이 상처를 입을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자신의 상처로 이웃 전체가 안전하고 치유된다면 그는 큰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교직자는 자기 자신을 남보다 낫다고 여기지 않고 남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司牧, 제 88호(1983년 7월호), 최창무 대주교님 홈페이지에서>

카카오톡에서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댓글 쓰기

선택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PC버전 홈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마리아사랑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