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냐 남부 코르도바(Curdoba)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데 포사다스(Franciscus de Posadas, 또는 프란체스코 데 포사다스)는 가난한 채소장수인 부모 밑에서 늘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행복하게 자랐다. 그러나 부친이 사망하고 모친이 재혼하면서 새아버지는 그가 성직을 위해 공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수도사제의 길을 포기하고 소년 노동자로서 일터로 보내졌다. 그가 처음 만나 고용주는 매우 인색했고, 그의 모든 희망은 다 무너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일하며 주인이 난폭하게 대할 때에도 늘 인내와 성실로 대해 주인마저 감동시켰다. 마침내 그 주인은 프란치스코 데 포사다스의 인품이 더욱 훌륭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 쉬는 시간에 계속해서 공부할 수 있도록 편의를 보아주었다.
그러던 중 새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19살이 된 프란치스코 데 포사다스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입회 초에 수도생활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기보다 동료들의 오해와 질투 때문에 그다지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여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설교 직무를 시작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마지막 40여 년 동안 제2의 빈첸시오 페레리우스(Vincentius Ferrerius, 4월 5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훌륭한 설교자가 되었다. 그는 에스파냐의 남서부 전역을 순회하면서 설교하고 성사를 주었으며, 뛰어난 모범을 보여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또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겸손을 실천하였고, 직무를 봉사의 기회로 활용할 줄 알았다. 또한 그는 “정결의 승리”를 비롯하여 “성 도미니코(Dominicus)의 생애”, “윤리적인 권고” 등을 저술하였다. 그는 1818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복자로 선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