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 인간의 삶과 고난의 극복>
(로마 8: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 서
a. 지구 상에서의 인간의 삶은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중에서 온갖 불행, 고통, 공포, 고난, 환난, 곤경, 자연재해, 병고 등을 떠나서는 인간의 삶을 생각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이들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고난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인간은 누구나 고난을 싫어하지만, 고난은 인간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바로 고난 속에서의 삶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한편, 그리스도교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는 구원이 시작되기 때문에, 세례받은 신자에게는 고난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자는 고난을 겪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자도 다양한 형태의 고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에 따라, “인간의 삶은 왜 고난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가”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b. 인간이 겪는 고난의 본질과 관련하여, 종교, 철학, 자연과학 등에서는 다양한 연구들을 수행하여 왔다. 종교, 철학, 자연과학에서 고난을 보는 관점을 간략히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1) 힌두교: 업(karma)과 윤회 속에서, 고난은 참된 자아에 대한 무지(無知. avidya)의 결과로서, 영혼이 정화되는 과정이다.
2) 불교: 고통은 존재의 근본 조건이고, 삶 자체가 고통이다. 그리고, 고통의 원인은 인간의 집착, 갈망, 무지이다.
3) 유교: 고난은 도덕적·사회적 조화를 깨뜨린 결과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仁)·의(義)·예(禮)가 정립된다.
4) 도교: 고난은 자연의 흐름(道)에 벗어난 인위적인 노력과 불균형에서 생긴다.
5) 유다교: 고난은 신과의 계약을 어긴 결과일 수 있다. 또한, 고난은 시험, 징계, 시련, 또는 이해할 수 없는 신의 계획이다. 여하튼, 고난은 신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된다.
6) 그리스도교: 고난은 인간이 타락한 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구원과 성숙의 통로이기도 하다. 즉, 고난은 구원의 의미를 지닐 수 있고, 신앙을 더욱 깊게 할 수 있다.
7) 이슬람교: 고난은 신에 대한 믿음을 시험하는 시련이자 인내와 신뢰를 강화하는 과정이다.
8) 조로아스터교: 고난은 선신(善)과 악신(惡)의 투쟁의 결과로 발생하고, 선신의 승리를 돕는 과정이다.
9) 스토아 철학: 고난은 인간이 통제불가능한 외부 사건에 대한 집착과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다. 고난을 관리하는 것은 덕을 실천하는 과정이다.
10) 실존주의: 고난은 무관심하거나 부조리한 세계에서 발생하고, 인간이 자유롭고 불확실한 세계에 ‘던져져 있음’을 인식하게 하는 장치이다.
11) 비관주의: 삶은 끝없는 욕망에 의해 추동되므로, 필연적인 고통이 발생한다.
12) 진화생물학: 고통은 신체의 손상(부상, 위험 또는 신체적 불균형 등)을 알려서, 생존과 적응을 하려는 강력한 위험 신호 시스템이다.
13) 심리학과 신경과학
a) 생존을 위한 적응 및 신호체계
(1) 고난, 특히 통증은 개인의 생존을 위해 개인을 위험에서 보호하고 적응적 행동을 촉진하려는 경보 시스템으로서, 뇌의 특정 부위(편도체, 전대상피질 등)에서 처리되는 전기 신호와 화학 반응의 결과이다.
(2) 심리적 고난은 사회적 연결 단절을 경고하여 관계 회복을 유도한다.
b) 학습과 변화의 동기: 고난에는 트라우마, 스트레스, 비탄, 불안, 우울 등이 포함되는데, 이로 인한 고난은 회복탄력성을 강화하거나, 개인의 가치·우선순위 재정립을 일으킨다.
c. 요약: 위의 내용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즉, 종교에서는 고난을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인간을 위로해 왔고, 철학에서는 고난을 해석의 문제로 이해하면서 인간에게 방향을 잡아주었으며, 과학에서는 고난을 기능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면서 고난을 둘러싼 메커니즘을 설명해 주었다. 이러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양한 연구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삶에서 겪는 고난은 단순한 불행이나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존재와 성장의 핵심 요소라는 것이다.
d.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고난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고, 피할 수도 없는 신비이지만, 고난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것으로서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고난 속에서의 인간의 삶과 관련한 여러 측면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2. 고난에 대한 기본적 이해
a. 고난의 의미
1) 고난의 의미에 대해 합의된 정의는 없으나, 고난이란 인생행로에서 만나는 온갖 수고와 고통과 어려움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즉, 고난이란 가난하고 궁핍한 것, 피로와 질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것, 온갖 역경과 시련을 당하는 것, 비천한 상태에 빠지는 것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면, 고난은 인간의 의지와 통제를 넘어서는 고통스러운 경험으로서, 신체적·정신적·사회적·경제적·인격적 차원의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2)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보면, 고난의 원인은 일차적으로는 인간의 죄와 타락 이후의 무너진 세계 질서에 있다.
a) 창세기 3장 이후, 세상은 깨어진 상태에 놓이게 되고, 질병, 죽음, 불의, 자연의 고통 등이 발생한다.
b) 그러나, 모든 고난이 개인의 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1) 의인 욥도 고난을 겪는다.(욥기 참조)
(2) (요한 9:3):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3) 고난은 인간이 삶에서 겪는 단순한 “불행”이 아니고,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아래의 의미들도 가진다.
a) 고난은 인간의 삶의 유한성과 취약성을 드러내는 경험이다.
b) 고난은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성찰하도록 만드는 존재론적 사건이다. 고난이 닥칠 때, 인간은 일상의 관성을 깨뜨리고 삶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c) 고난은 그 의미를 강요받기보다는 의미를 발견하거나 창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4) 고난은 인간이 적극적으로 뛰어넘어야 할 대상이다.
a) 그리스도교는 고난을 무조건 미화하지도 않고, 숙명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인간이 직면하는 고난을 하느님께서 다 막아주려면, 먼저 인간의 속성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으로 창조된 인간 존재의 가치와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b) 따라서, 고난에 저항하고,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하며, 궁극적으로는 희망을 간직하도록 가르친다.
b.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보는 고난의 존재 이유: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사랑 자체이시고,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모든 것이 참 좋았던”(창세 1:31) 이 세상을 만드셨다. 그런데, 이 세상에 고난이 만연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답할 수는 없다. 이 글에서는 고난의 존재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살펴보고자 한다.
1)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 사랑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제로 하며, 인간의 자유의지는 고난의 가능성도 포함한다.
a)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죄로 타락하여 인간의 본성이 바뀐 것은 하느님을 기꺼이 따르려는 의지만 파괴된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삶과 인생의 주인이 된 것이다.
b)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진정한 사랑을 가능하게 하고, 선을 선택할 수 있지만, 동시에 악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겪는 고난의 많은 부분은 인간 스스로의 잘못된 선택, 죄, 타인의 악행에서 비롯된다. 그에 따라, 전쟁, 가난, 폭력, 돈, 재산, 권력, 탐욕, 불의, 착취, 부패, 환경파괴 등이 만연하게 되었다.
c) 한편, 사랑은 강요될 수 없고, 자유로운 선택을 필요로 한다.
d) 인간에게 자유 없는 세상이 주어지면, 인간이 겪는 많은 고난도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랑·도덕·의미도 없는 세상이 되어, 세상 사는 재미는 많이 없어지게 된다.
e) 하느님은 인간이 기계처럼 선만 행하도록 만들지 않으셨다. 자유의지 없는 선함은 진정한 선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타락한 세상: 원죄 이후 이 세상은 타락했고, 그로 인해 고통과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으며, 병고, 자연재해 등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a) 그리스도교는 고난이 창조의 본래 목적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b)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죄로 인해, 관계가 깨어지고, 자연도 파괴되며 왜곡되고, 죽음, 병, 재해 등이 들어왔다고 설명한다.
c) 즉, 고난은 창조의 이유가 아니라, 인간이 타락한 결과이다.
d) 로마 8: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3) 하느님께서도 인간의 고난을 함께 하시기 때문
a) 하느님께서는 고난을 멀리서 관찰하지 않으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직접 인간의 고난 안으로 들어오셨다고 우리는 믿는다.
b)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이 없다”는 해명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의 고난을 함께 짊어지셨다”는 선언이다.
c)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고난을 이해하실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여셨다.
d) 하느님께서는 고난받는 자들과 함께 고난을 겪으시며, 고난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또한, 인간이 고난을 당할 때, 하느님깨서는 그 고난을 십자가의 하느님과 연합하기를 원하신다.
e) 이처럼,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고난을 설명만 하는 종교가 아니라, “고난에 참여하는 하느님을 말하는” 종교이다.
4) 고난을 통해 단련, 성장, 성화를 얻을 수 있기 때문: 고난은 인간을 파괴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인간을 더 성숙하게 하고 당신께 돌아서게 하신다.
a) 자기중심성 극복: 고난은 인간의 이기심을 무너뜨릴 수 있으며, 죄인들의 죄에 대한 벌로 기능할 수도 있다.
b) 본질적인 것의 분별: 고난은 때때로 고뇌와 자기 집착, 심지어 절망과 하느님에 대한 반항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을 더욱 성숙하게 하여, 삶에서 본질적이지 않은 것을 분별하고 본질적인 것으로 향하게 도울 수 있다.
c) 하느님을 찾고 돌아옴: 고난은 매우 자주 하느님을 찾게 하고 그분께 돌아가게 한다. 고난은 우리를 정화하여 더 깊은 자아에 도달하게 하고,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도록 이끌 수 있다.
d) 사랑의 증가: 신자들은 사랑의 증가, 인류의 구원, 그리고 신적인 생명에 영원히 동참하기 위해 그들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결합한다. 그리고, 고난을 자유로이 받아들이는 것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증가시킨다.
e) 히브 12: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5)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
a) 수많은 고난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 세상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증거이다. 하느님께서 지금 당장 모든 고난을 제거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하느님의 구속사가 아직 완전히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난과 구원이 함께 존재하는 긴장 속의 시대이며, 하느님은 이 안에서도 선하신 뜻을 이루어가고 계신다. 그리스도교의 희망은 새 하늘과 새 땅, 다시 회복될 완전한 세상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이 마지막이 아니고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b) 이 세상은 잠시이고, 현재의 고난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시고, 고난은 인간 삶의 영원한 목적인 구원에 이르도록 돕는다. 이 희망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고난 속에서도 절망이 아니라 “고난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c) 묵시 21: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d) 이처럼, 그리스도교는 현세의 고난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교는 “악과 고난은 영원하지 않으며, 하느님은 최종적으로 회복과 정의를 이루신다”고 말한다.
6) 자연법칙의 일관성: 세계는 일정한 물리적 법칙으로 작동하고, 이 법칙이 없다면 삶은 예측 불가능해지고, 문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그 법칙이 있는 한, 지진도 일어나고, 세포도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7) 신비의 영역
a) 어떤 고통은 인간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것일 수 있다.
b) 따라서, 사랑이신 창조주께 대한 겸손과 신뢰가 요청되는 것이다.
8) 요약: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다양한 고난들이 있을 것을 아셨으면서도, 우주를 창조하셨다. 그 이유는, 사랑과 자유 없는 안전한 세계의 창조보다는 위험이 있어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의 창조를 하느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절대적 안락함이 아닌, 성숙과 구원을 향한 여정을 걷기를 원하신다. 즉, “이 세상은 완성된 천국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의 여정이다.”
c. 고난의 중요성
1) 고난은 하느님의 부재가 아닌, 하느님 임재의 증거이다. 즉, 고난은 하느님께서 가장 깊이 개입하시는 자리라는 의미가 된다.
a) 시편: 고난 속에서 하느님께 부르짖는다.
b) 십자가: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역사가 고난 한가운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2) 인간다움의 증거
a) 고난은 인간이 기계가 아니라, 오히려 느끼고 고민하며 성장하는 존재임을 증명한다.
b) 고난을 겪어본 인간은 타인의 고난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고난은 인간을 독선에서 벗어나 연대의 장으로 이끄는 통로가 된다. 즉, 고난이 없다면 공감, 연민, 희생과 같은 인간적 가치도 성립하기 어렵다.
3) 삶의 깊이의 형성
a) 고난은 삶을 평면적으로 만들지 않고, 깊이와 무게를 부여한다.
b) 기쁨과 성취의 가치 또한 고난을 통과할 때 더욱 선명해진다.
4) 의미 탐구의 출발점
a) 고난이 의미 탐구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많은 철학·종교·문학에서 “왜 고난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b) 인간이 죽음이나 질병, 실패 등의 큰 고난을 겪으면 사소한 욕심들이 사라지고 가족, 사랑, 건강 등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게 된다. 즉, 고난은 인간에게 삶의 목적과 가치를 진지하게 묻도록 만든다.
d. 고난의 역할
1) 믿음의 단련과 성숙 또는 성장의 촉진제: 고난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며, 인내, 책임, 자기 성찰, 가치 재정립을 가능하게 한다.
a) 고난은 믿음을 정화하고 깊게 한다.
b) 욥 23:10: “그분께서는 내 길을 알고 계시니 나를 시금해 보시면 내가 순금으로 나오련마는.”
c) 로마 5:3–4: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2) 고난은 인간의 교만을 깨뜨리고 십자가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고, 하느님께 의존하게 한다.
a)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고난을 “멀리서 관망하거나 외면하거나 허락한” 분이 아니다. 오히려 몸소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몸소 “고난, 즉 고통, 배신, 굶주림, 억울함, 죽음까지 함께 짊어지셨다.” 즉, 하느님은 우리의 고난 안에 함께 계시며, 그것을 함께 짊어지신다. 십자가는 하느님께서 고난받는 인류와 함께하신다는 표지이다.
b) 고난은 의미 없음의 증거가 아니고, 구속과 사랑의 도구가 될 수 있다.
c) 고난은 인간이 십자가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d) 고난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게 된다.
e) 그리하여 인간은 자기중심성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전환하게 된다.
3) 고난은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구원사업에 참여하게 한다.
a)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해 구원을 이루신 것처럼, 신자는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그리스도를 따라 구원사업에 참여하게 한다.
b)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4) 인간 사이의 관계를 연결하는 매개: 고난은 개인을 고립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게 하고, 연대와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며, 공감과 윤리의 기초가 된다.
5) 선택과 태도의 시험
a)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고난에 대한 태도는 선택의 영역이다.
b) 고난은 삶에서의 변화를 이끄는 동력이 되고, 또한 인간에게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부여한다.
e. 고난의 효과: 고난은 자동적으로 유익하지 않고, 고난 그 자체가 목적도 아니다. 그러나,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인간은 붕괴될 수도 있고 성숙할 수도 있다. 이처럼, 고난을 통해 인간이 성숙할 때, 고난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1) 긍정적 효과: 고난은 아래와 같은 긍정적 효과를 인간에게 가져다준다.
a) 덕과 지혜의 형성: 인내, 자선, 감사/ 겸손의 태도 및 지혜가 형성된다.
b) 영원한 생명을 지향: 현세의 희망이 아닌 하느님 나라에 초점을 두게 만들어, 삶의 우선순위가 재정렬되게 한다.
c) 신앙의 심화: 고난이 그리스도의 성체와 결합되고 구원에 적용되어, 신앙이 심화된다.
d) 내적 강인함(즉, 회복탄력성) 강화
e) 자아 정체성 확립과 자기 효능감의 증대
2) 부정적 효과: 고난을 뛰어넘지 못하면, 고난은 아래와 같은 부정적 효과를 인간에게 초래할 수도 있다.
a) 트라우마
b) 절망과 무의미감
c) 냉소와 자기 파괴
f. 고난의 목적과 열매
1) 고난은 죄를 드러내고 회개에로 인도한다.
a) 욥기, 시편, 예언서 등은 고난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을 깨닫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b) 예: 하느님께 불순종한 요나 예언자는 고난을 통해 회개하고 순종하게 된다.
2) 고난은 믿음을 단련하고 성장시킨다.
a) 하느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다는 증거이다.
b) 예
(1) 요셉: 수많은 고난을 통해 지도자로 준비된다.
(창세 45:7-8)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시어, 여러분을 위하여 자손들을 이 땅에 일으켜 세우고, 구원받은 이들의 큰 무리가 되도록 여러분의 목숨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파라오의 아버지로, 그의 온 집안의 주인으로, 그리고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
(2) 다윗: 수많은 고난을 통해, 하느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다.
(2사무 22:17-19): “그분께서 높은 데에서 손을 뻗쳐 나를 붙잡으시고 깊은 물에서 나를 끌어내셨네. 나의 힘센 원수에게서, 나보다 강한 적들에게서 나를 구하셨네. 환난의 날에 그들이 나를 덮쳤지만 주님께서 나에게 의지가 되어 주셨네.”
c) 성경구절
(1) 로마 5:3-4: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2) 히브 12:5-6.9: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 게다가 우리에게는 우리를 훈육하시는 육신의 아버지가 계셨고 우리는 그러한 아버지를 공경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영적 아버지께는 더욱 순종하여 그 결과로 생명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고난은 희망, 부활, 구원, 영광으로 나아가는 통로이자 힘이다.
a) 고난은 일시적이지만, 하느님의 나라는 영원하다.
b) 현재의 고난을 견디면 부활한다는 믿음이 고난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이처럼, 고난은 든든한 희망을 만들고, 마지막에는 부활에 이르게 한다.
c) 로마 8: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4) 고난은 이웃을 섬기게 하고, 이웃에게 위로의 도구가 되도록 돕는다.
a) 고난 경험은 이웃에 대한 위로의 사명으로 이웃에게 나아갈 수 있다.
b) 예: 바오로는 자신의 고난 속에서도 다른 교회를 위한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썼다.
c) 2코린 1:4: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g. 고난을 대하는 자세: 고난 속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자세는 단순한 ‘버팀’이 아니라, 의미를 찾고 자신을 확장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세상이 우연히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의미 있게 창조되었다고 믿는 입장에서 보면, 고난은 단순한 불행이나 무의미한 사고가 아니라,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창조 질서 안에서 해석되어야 할 현실이 된다. 다음과 같은 태도들이 중요하게 이야기되어 왔다.
1) 창조의 선함에 대한 신뢰: 창세기 1장에서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았다,” “모든 것이 참 좋았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믿는 것은 고난 속에서도 세계의 근본은 선하다는 전제를 붙드는 태도이다. 지금 겪는 고난이 세계 전체의 본질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창조의 선함이 고난보다 더 깊고 근원적이라는 신뢰가 인간의 삶을 지탱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겪는 고난을 부정하거나 외면하거나 억지로 긍정하거나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창조의 선함을 신뢰한다면, 우리가 고난을 없앨 수는 없어도, 고난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2) 고난을 타락한 현실 속의 경험으로 이해: 창세기 3장은 인간의 불순종 이후 고통과 수고가 삶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고난은 창조 자체의 실패가 아니라, 왜곡된 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난은 하느님이 우리를 버렸다는 증거가 아니라, 완전하지 않은 세계 속에서 우리가 겪는 조건이 된다. 또한, 사람에게 왜 이런 고난이 일어났는가보다, 이 고난의 경험을 통해 사람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를 묻는 태도가 중요하다.
3)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의 동행에 대한 신뢰: 창조 신앙은 “내게 혹은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라는 질문에 모든 답을 주지는 않지만,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이 부재하지 않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준다. 고난은 사람을 고립시키지만, 동시에 관계, 특히 사람이 하느님과 맺는 관계의 소중함을 드러낸다. 또한,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대화, 공감, 연대는 고난을 절반으로 줄이고 희망을 배로 만든다. 욥도 자신이 겪는 고난의 이유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결국 하느님과의 만남 속에서 새로운 인식을 얻었다.
4) 구속과 회복의 희망 붙들기: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는 고난이 최종 결론이 아니다. 창조는 시작이고, 회복은 완성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묵시 7:17; 21:4),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미래(2베드 3:13; 묵시 21:1)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고난은 우리의 종착지가 아니라,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따라서, 작은 희망을 놓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것은 상황이 좋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상황이 삶 전체를 규정하지는 않으므로, 고난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끝까지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사람은 고난을 겪은 이후에 더 깊은 성찰, 더 단단한 가치관, 더 넓은 공감 능력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사람이 겪는 모든 고난이 자동으로 성장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어떤 방향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삶의 밀도는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성장의 가능성을 믿는 자세가 중요하다.
5) 고난 속에서의 인간의 삶의 내용: 고난 속에서의 인간의 삶의 내용은 바로 책임 있는 청지기적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믿는 것처럼, 세상이 창조되었다면, 인간은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맡겨진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은 고난 속에서도 정의를 선택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공동체를 세우고, 맡겨진 삶의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며, 창조 세계를 돌보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청지기적 사명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삶의 내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3. 고난의 유형
a. 철학, 심리학, 신경과학, 종교에서 분류하는 고난
1) 철학에서 보는 고난의 유형: 철학에서는 고난을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조건으로 본다. 그에 따라 철학에서는 고난의 의미, 즉 “왜 이 고난이 존재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고난을 존재적 고난, 도덕적/윤리적 고난, 운명적 고난 등으로 분류한다.
2) 심리학에서 보는 고난의 유형: 심리학에서는 고난을 개인이 경험하고 반응하는 고난으로 본다. 그에 따라 심리학에서는 “나는 왜 이러한 고난을 느끼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고난을 정서적 고난, 인지적 고난, 외상(트라우마), 관계적 고난 등으로 분류한다.
3) 신경과학에서 보는 고난의 유형: 신경과학에서는 고난을 뇌의 물리적 회로와 화학적 반응으로 본다. 그에 따라, 신경과학에서는 고난의 메커니즘(mechanism), 즉 “뇌는 어떻게 이러한 고난을 만들어내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고난을 신체적 고난, 사회·정서적 고난, 예측기반 고난 등으로 분류한다.
4) 종교에서 보는 고난의 유형: 각 종교에서 보는 고난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종교에서 보는 고난의 유형은 크게 실존적 고난(existential suffering)과 영적 고난(spiritual suffering)으로 대별할 수 있다.
b. 성경에서 살펴보는 고난의 유형
1) 서: 성경에 나오는 고난들을 범주화하기에 앞서, 몇 가지 사항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a) 인간의 삶은 신학적 분류보다 훨씬 복잡하고 모호하기 때문에, 어떤 고난은 범주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 표현되는 바와 같이 모든 사람의 고난을 이 글에서 정확하게 분류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b) 한 사람이 겪는 고난은 한 가지 범주에만 속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한 사람이 겪는 고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고난의 범주에 걸쳐서 설명해야 할 경우가 많다. 또한, 한 사람이 겪는 고난의 주된 유형을 어디에 분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c) 광범위한 고난(예: 자연재해로서의 홍수, 지진 등이나, 기근)이 발생할 경우, 모든 범주는 아니더라도 여러 범주의 고난들이 동시에 작용하며, 그 고난들의 강도나 기간 등은 각 사람에게 다르게 적용된다.
d) 고난의 유형 또는 분류는 관점에 따라 크게 나눌 수도 있고, 아주 자세하게 분류할 수도 있어서 일정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크게 네 가지(인간의 구속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제외)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2) 성경에서 살펴보는 고난의 유형
a) 타락한 세상 속에서 겪는 고난(아담의 고난, Adamic suffering)
(1) 이 고난은 인간의 한계와 세상의 깨어짐으로 인해 세상의 부조리 속에서 모든 인간이 겪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고난을 말한다. 이 고난은 질병, 사고, 자연재해, 죽음 등의 원인이 된다.
(a) 질병: 아래에서 볼 수 있는 아주 다양한 질병들이 인간의 삶에 고난을 야기한다. ① 특정 감염성 및 기생충 질병, ② 암 등 신생물, ③ 혈액 및 조혈기관의 질병과 면역기전 장애, ④ 내분비, 영양 및 대사 질병, ⑤ 정신 및 행동 장애, ⑥ 신경계의 질병, ⑦ 눈 및 눈부속기의 질병, ⑧ 귀 및 유양돌기의 질병, ⑨ 순환계통의 질병, ⑩ 호흡계통의 질병, ⑪ 소화계통의 질병, ⑫ 피부 및 피하조직의 질병, ⑬ 근골격계통 및 결합조직의 질병, ⑭ 비뇨생식계통의 질병, ⑮ 임신, 출산 및 산후기의 질병, ⑯ 출생 전후기에 기원한 질병, ⑰ 선천 기형, 변형 및 염색체 이상에 의한 질병, ⑱ 증상, 징후 및 임상·검사 이상소견에 따른 질병, ⑲ 손상, 중독 및 외인에 의한 결과에 따른 질병, ⑳ 질병과 사망의 외인에 의한 질병, ㉑ 건강상태 및 보건서비스 접촉 요인에 의한 질병
(b) 사고: 아래에서 볼 수 있는 아주 다양한 사고들이 인간의 삶에 고난을 야기한다.
① 원인에 따른 분류: 인간의 실수로 발생하는 사고, 기계·설비의 결함, 노후, 파손 등으로 발생하는 사고, 자연재해(비, 눈, 태풍, 지진 등)나 작업환경 요인으로 발생하는 사고, 안전관리 미흡, 교육 부족, 감독 소홀 등으로 발생하는 사고
② 발생 형태에 따른 분류: 추락·전도 사고, 충돌 사고, 끼임·절단 사고, 감전 사고, 화재·폭발 사고, 중독·질식 사고
③ 피해 대상에 따른 분류: 인명 사고, 재산 피해 사고, 복합 사고
④ 결과(손실) 정도에 따른 분류: 중대 사고, 경미 사고, 실제 피해는 없었으나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차사고(near miss)
⑤ 발생 장소에 따른 분류: 산업(작업) 사고, 교통 사고, 가정 사고, 공공장소 사고
(c) 자연재해: 자연재해란 일반적으로 태풍·홍수·호우·폭풍·해일·폭설·가뭄·지진 등의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피해를 말하는데, 아래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자연재해들이 인간의 삶에 고난을 야기한다. 또한, 우주 재해(즉, 감마선 폭발, 항성의 접근에 의한 궤도 교란, 천체 충돌, 태양풍의 증가 등)를 포함할 수 있다.
① 기상 혹은 기후 재해(대기 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재해): 태풍, 호우(집중호우), 홍수, 폭설, 한파, 폭염, 가뭄, 낙뢰
② 지질 재해(지각의 운동이나 지형 변화로 발생하는 재해): 지진, 화산 폭발, 산사태, 지반 침하, 토석류
③ 해양 재해(바다와 관련된 자연 현상으로 발생하는 재해): 해일, 쓰나미, 폭풍해일, 해안 침식, 적조 현상
④ 생물학적 재해(생물의 이상 증식이나 전염으로 발생하는 재해): 전염병(팬데믹), 병해충 발생, 가축 전염병
⑤ 복합 재해(여러 자연재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경우): 지진 → 쓰나미; 태풍 → 홍수·산사태; 가뭄 → 산불
(2) 성경구절의 예
(a) 코헬 1:2-3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b) 로마 8: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3) 아담은 우리의 첫 조상이자 대표자이며 머리이기 때문에, 그가 죄를 지었을 때 그 후손 모두가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죄의 본성을 물려받았고(로마 5:12-21) 타락한 세상에 태어났다(로마 8:18-23). 따라서 이 고난은 단순히 아담의 후손이라는 사실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말하면, 모든 사람은 아담의 죄, 우리의 죄, 다른 사람들의 죄, 그리고 모든 피조물에 만연한 저주 때문에 다양한 정도로 다양한 방식으로 이 고난을 겪게 된다. 또한, “타락한 세상 속에서 겪는 고난”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모든 죄와 그 영향력을 제거하시고, 그리스도인들을 죽음에서 부활시키시고, 새 창조를 이루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4)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고난이 이 세상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존재나 선하심에 대해 의문을 품는 대신, 고난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오히려 그 고난을 하느님의 영광과 자신의 기쁨, 하느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갈망,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데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b) 죄로 인한 고난(Suffering due to sin): 피해자의 고난, 집단적 혹은 공동체적 고난, 대리 고난, 결과적 고난, 악마의 고난도 이 유형에 분류할 수 있다.
(1) 이것은 인간의 개인적 혹은 공동체적 죄와 불순종의 결과로 오는 고난을 말한다. 즉, 이 고난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거나 탐욕으로 인해 죄를 짓게 되거나, 하느님께 불순종하여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벗어났을 때 겪게 된다. 이 고난은 회개와 회복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
(2) 성경의 예
(a)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창세 18:16─19:24)
(b) 소금 기둥이 되어 버린 롯의 아내(창세 19:17.26)
(c) 밧세바와의 범죄 이후 다윗이 겪었던 가정 내의 비극(2사무 11:1─12:23 등)
(d) 파라오와 이집트에 대한 열 가지 재앙(탈출 7:13─12:36)
(e) 왕정시대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한 멸망과 포로생활 등(2열왕 17:7-23; 21:1-14; 24:1─25:30; 2역대 36:11-23 등)
(3) 이 고난은 다윗 임금의 경우처럼 어리석은 결정의 결과로 초래되기도 하고, 악마와 마귀의 개입으로 초래되기도 하며, 다른 사람의 죄의 피해자로서 받는 경우도 있고, 고난받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겪게 되기도 한다.
(a) 피해자의 고난: 우리는 피해자로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저지른 죄의 결과로 많은 고난을 겪고 있다. 즉, 다른 사람이 범하는 모욕, 폭행, 사기, 도둑질, 성범죄 등에 의해 우리는 많은 고난을 겪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고난의 뒤에는 악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악영향은 우리에게 국한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고난을 겪는 우리가 가해자로서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러한 고난의 파괴적인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삶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b) 집단적 혹은 공동체적 고난: 때때로 우리는 고난받는 사람들의 일부이기 때문에 고난을 겪기도 한다. 성경의 예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조상과 민족의 죄까지 자주 회개하여, 하느님께서 그들 모두의 형벌로 허락하신 고난을 애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고난받는 가족, 국가, 문화의 구성원들이다. 마찬가지로 가난, 기근, 고난, 전쟁 등의 환경 속에서 태어난 사람도 그 자신이 태어난 장소와 시간 때문에 고난을 겪는다.
(c) 대리 고난: 때때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불경건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반대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 구약의 예언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이 바로 그 예들이다. 대리 고난은 반대에서부터 박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으로 온다. 육체적 박해로 인해 일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언어적인 반대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비방과 거짓말과 거짓 고발과 조롱과 희롱을 당하면서 고난스럽게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게 한다.
(d) 결과적 고난: 때때로 우리는 잘못되거나 어리석은 결정으로 인해 “결과적인 고난”을 겪는데, 실제로 인생에서 겪는 고난의 대부분은 우리의 잘못된 결정에 따른 결과이다. 특히, 구약의 잠언 전체에서 말하는, “게으른 사람은 배고프고, 간음하는 사람은 그들이 뿌린 대로 거두고, 어리석은 사람은 피해를 입고, 가난한 재정 관리인들은 가난해진다”는 것은 결과적 고난의 예들이다.
(e) 악마의 고난: 신자들의 삶에서 3가지 원수 중의 하나인 만큼, 악마는 신자들을 죄로 이끈다. 악마가 살아 있고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악마의 고난은 매우 현실적인데, 여기에는 정신적인 고난, 신체적 부상, 거짓 기적에서 비롯된 속임수, 비난, 심지어 죽음까지 포함된다. 때때로 악마의 고난은 식별하기 어렵다. 또한, 우리가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결과적인 고난을 겪을 때, 그 고난을 겪는 것에 대해 악마에게 비난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악마의 고난은 실제로 존재하며, 일부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악마에게 돌리는 잘못된 비난을 한다고 해서, 악마의 고난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4) 하느님은 불신자들을 심판하시고 죄에 대해 벌하신다. 하느님께서 “죄로 인한 고난”을 인간이 겪게 하시는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a) 하느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b) 하느님께서는 끔찍한 죄악의 행위를 종식시키셔서, 악인들의 손에서 고난받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하신다.
(c) 하느님께서는 불신자들에게 영원한 형벌을 피하기 위해 죄를 회개하고 하느님을 믿어야 할 절박한 필요성을 보여주신다.
(d) 하느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하느님은 조롱받지 않으시며 그분을 향한 인간의 믿음은 헛되지 않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신다.
c) 성화를 위한 고난(Suffering for sanctification): 징계의 고난, 예방적 고난, 섭리의 고난, 신비한 고난도 이 유형에 분류할 수 있다.
(1) 이 고난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훈련, 교정, 단련을 위해 허용되는 것으로서, 이 고난은 벌이 아니라 자녀의 성품을 만들고 믿음을 견고하게 만들고 바로 세우는 훈련과정이다.
(2) 성경의 예
(a)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봉헌하는 시험
(b) 광야에서 40년간 단련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
(c) 욥이 겪었던 이해할 수 없는 고난
* 욥 23:10 “그분께서는 내 길을 알고 계시니 나를 시금해 보시면 내가 순금으로 나오련마는”
(d) 잠언: 3:11; 13:24; 15:5
(e) 로마 5:3-4: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f) 히브 12:5-7: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3) 이 고난은, 마치 금을 불순물 없이 제련하듯이, 신앙인의 믿음을 순금같이 만들기 위한 시험의 기회로서, 신앙인의 인내심을 키우고, 신앙인들이 희망을 가지고 더 성숙하고 거룩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욥이 겪은 신비로운 고난, 또한 미래의 더 큰 고난의 도래를 예방하기 위한 고난(preventative suffering)도 ‘성화를 위한 고난’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a) 징계의 고난: 하느님은 신자들을 성숙시키기 위해 신자들을 징계하신다. 그 예는 지혜문학, 예언서, 신약성경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경은 훈육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성숙하게 하고 죄가 초래하는 해악에서 우리를 구원하도록 교정해 주시는 영광스러운 아버지와 같다. 우리는 나중에 이 고난 속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일의 결과를 보고, 거룩함과 결실 속에서 우리의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일하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게 된다.
(b) 예방적 고난: 때로는 우리가 겪는 고난이, 우리가 하느님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일어날 수 있는 더 큰 고난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고난은, 예를 들어, 우리에게 더 큰 고난(예컨대, 맹장 파열)을 경고하기 위해 더 작은 고난(예컨대, 옆구리 통증)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하느님의 사랑의 본성을 나타낸다.
(c) 섭리의 고난: 다른 사람들의 하느님에 대한 숭배가 커질 수 있도록, 하느님에 관한 교훈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하느님에 의해 고난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요셉이 이집트에서 투옥된 것은 하느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요셉의 고난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으로는 굶주림으로부터, 영적으로는 죄에서의 구원을 얻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얼핏 보면 쉽게 식별할 수 없는 이유로 우리의 고난을 허락하신다.
(d) 신비한 고난: 때때로 하느님은, 우리가 왜 고난을 겪는지 밝히지 않으시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그 이유를 알기도 한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욥의 고난은 신비한 고난에 대한 가장 분명한 예이다. 왜냐하면 욥은 고난을 겪는 동안, 하느님과 사탄 사이에 일어난 일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겸손하고 정직하다면, 우리의 삶에서 겪는 고난이 위에서 제시한 범주처럼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신비한 고난”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4) 하느님께서는 신자들이 죄를 짓지 않아도 신앙인을 성화시키기 위해 징계하시기도 한다. 성경은 이러한 성화를 위한 고난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자녀를 바로잡고 성숙시키는 존경할 만한 아버지처럼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방식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5) 성화를 위한 고난은 당장에는 고통스럽지만, 나중에는 하느님께서 역사하신 결과를 우리는 보게 되고, 우리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가 거룩함과 의로움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일하시는 하느님께 감사하게 된다.
d) 의를 위한 고난(Righteous suffering): 박해의 고난이라고도 한다. 공감적 고난, 증거적 혹은 증언적 고난, 찬양적 고난도 이 유형에 분류할 수 있다.
(1) 성경의 예
(a) 요셉의 투옥
(b) 구약의 예언자들
(c) 태생 맹인(요한 9:1-3)
(d) 사도 바오로 등 사도들에 대한 박해
(e) 초대 교회에 대한 박해
(f) 욥 29:11: “귀는 내 말을 듣고 나를 복되다 말하며 눈은 나를 보고 기리며 증언하였지.”
(g) 마태 5: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h) 2티모 3:1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이들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2) 이 고난은, 하느님을 대적하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거나 복음을 전하는 것 등과 같이 옳은 일을 행하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 이 고난은 신앙 때문에 겪는 비방, 거짓말, 허위 고발, 조롱, 괴롭힘 등의 언어적인 고난을 겪게 되지만, 때로는 육체적인 고난을 수반하기도 하고, 궁극적으로는 순교까지 당하게 되기도 한다.
(3) 박해란 강제력과 심리적 수단으로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탄압 행위를 말한다. 그 목적은 신자들을 배교시켜 신앙을 말살하려는 데에 있다. 이 박해의 역사는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 박해에서 시작된다. 이는 폭군 네로(54~68년 재위) 시대에서 밀라노 칙령(313년)까지 약 3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 박해는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박해에 굴복하여 신앙을 버리기도 한다. 어떤 형태의 박해를 받든지, 이 고난은 잘못이 없더라도 신념과 가치관 때문에 겪는 고난이며, 성경은 이를 ‘복되다’고 표현한다. 또한, 이 고난에는 나중에 영광과 상급이 약속되어 있다. (예레 17:7)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4) 아래의 고난도 “의를 위한 고난” 혹은 “박해의 고난”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a) 공감적 고난: 사랑하는 사람이 고난받을 때 우리가 함께 느끼는 고난
(b) 증거적 혹은 증언적 고난: 신자의 믿음을 시험하고 증명하여 그들이 참된 신자임을 확증하고,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강하게 하며, 불신자들에게 복음적인 증거가 되는 고난을 말한다. 이 고난은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해 더 깊은 인식과 이해를 갖도록 복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고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정체성을 시험하고, 우리가 참된 신자임을 확인시켜 주며,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강하게 하고, 비기독교인들을 복음화한다. 성경에서의 전형적인 예는 예언자 호세아와 고메르의 혼인이다. 하느님은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헌신의 본보기로, 호세아 예언자를 부르시고, 그에게 불충실한 고메르와 혼인하고 혼인을 유지하라고 명하셨다.
(c) 찬양적 고난: 요셉이나, 태생 맹인(요한 9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죄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게 하느님에 대한 교훈을 가르쳐서 하느님을 향한 예배가 더욱 풍성해지도록 하기 위한 고난을 말한다.
4. 고난을 영적 성장으로 전환하는 절차: 가톨릭 교회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함으로써 영성적 성장을 이루는 과정으로 가르친다. 그에 따르면, 결국 내부적 변화를 통해 고난이 구원의 도구로 전환된다. 주요 단계는 다음과 같다.
a. 고난의 인정과 ‘왜?’라는 질문과 답의 탐색
1) 고난을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고난을 부정하지 않는 용기이다.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거나 회피하기보다, 현재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고난 앞에서 인간은 전형적인 항의와 “왜?”라는 질문에 들어가므로, 이 질문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내면적 여정의 출발점이다.
2) 인간은 고난의 의미를 묻고 인간적 수준에서 답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고난은 우리 안의 불순물(교만, 이기심 등)을 제거하고 인격과 영성을 단련하는 기회가 되고, 또한 고난을 통해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달음으로써 겸손한 존재가 되어, 하느님을 더욱 의지하는 존재가 된다.
b. 관점의 전환과 섭리의 수용
1) 관점의 전환: “왜 이런 일이 생겼나?”라는 원망에서 “이 일을 통해 하느님께서 무엇을 이루려 하시는가?”라는 질문으로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하느님께 솔직히 호소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본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답하시며, 고난을 외부 은총이 아닌 내면에서 변화시킨다.
2) 섭리의 수용: 당장은 이해할 수 없어도, 전체 그림을 그리시는 창조주의 지혜가 나의 짧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인정할 때 평안이 찾아온다. 이처럼, 그리스도교에서 고난은 무의미하거나 우발적으로 다가오지 않으며, 고난은 하느님께서 인간이라는 작품을 더 아름답게 빚어가기 위해 사용하는 사랑의 수단이다. 모든 고난 뒤에는 하느님의 선한 뜻과 다스림이 있다는 섭리(Providence)를 신뢰하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c.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믿음과 동참: 각자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연결짓고, 점차 동참한다. 이것은 지적 이해가 아닌 영적 공유를 말한다.
1) 그리스도의 말씀 듣기: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나 홀로 고난 속에 버려졌다는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으며, 하느님께서 몸소 인간의 고난 속으로 들어와 함께 아파하셨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각자에게 말씀하시는 사랑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2) 동행의 확신과 십자가 지기: 그리스도께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고 말씀하셨으므로,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의 동행을 확신해야 한다.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루카 9:23), 그리스도의 희생에 자신을 결합한다. 이는 인내와 희망의 덕을 불러일으킨다.
d. 사랑의 행위로 확장: 이웃 고난에 동참
1) 자비로운 사랑으로 이웃을 도우면, 이것이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 완성"으로 전환한다.
2) 고난은 인간 사랑의 세계를 불러일으키며, 이기적 ‘나’를 이웃에게 주는 비이기적 선물이다. 따라서, 내가 “선한 사마리아인 되기”를 통해, 고난이 교회의 구원 사업에 기여하도록 한다.
e. 은총과의 협력과 그 결과
1) 은총과의 협력과 성사 활용: 내면적 성숙을 위해 성령의 은총에 협력한다. 미사참례, 고해성사, 기도,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병자성사를 통해, 고난을 그리스도의 희생에 바친다. 이러한 협력이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가 지금 내가 겪는 고난을 극복하게 돕는다는 믿음을 강화한다.
2) 평화와 영적 기쁨: 인내, 희망, 감사, 사랑, 기도 등을 통해 신자들은 고난을 국복할 수 있고,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고난의 구원적 의미가 드러나며, 내면적 평화와 기쁨이 생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령이 인도하시는 결과이다.
5. 결론
a. 하느님께서 인류의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은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시는 그분의 섭리와, 악으로부터 더 큰 구원적 선을 이끌어내시는 그분의 전능하신 선하심의 신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고통의 궁극적인 의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된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통을 당신의 것으로 삼으시고, 그것을 당신의 구원적 사랑과 일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다.
b. 그리스도인들은 고통을 회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되, 그것을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는 기회로 삼아, 자신을 성화하고 타인의 구원을 위해 봉헌하도록 초대받는다. 이로써 고통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원천이 되며, 우리는 약함 속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c. 고난 중에도 창조주가 내게 맡기신 본연의 역할(소명)을 묵묵히 수행하며, 현재의 자리를 지켜내는 자세가 중요하다.
d. 신자들에게 고난은 제대로 해석되어야 할 메시지이자 성장의 발판이다. 지금의 어둠은 빛을 더 밝게 드러내기 위한 배경이며, 하느님의 자녀라는 귀한 존재를 완성해 가는 하느님의 정교한 손길일 수 있다.
e. 우리가 고난을 피할 수 없다면, 오히려 고난을 극복해야 한다.
1)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겪는 고난의 의미,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의 위대함 등을 깨달아야 한다.
2) 우리의 영혼이 더욱 풍요로워짐을 체험해야 한다.
3)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수많은 은총에 대해 찬미와 감사를 드려야 한다.
4) 기도, 믿음, 통회, 올바른 판단과 분별, 감사와 찬미, 사랑, 희망, 인내 등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겪는 고난을 벗어나 고난 극복의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다.
5) 우리가 억울한 고난을 겪을 때, 우리가 그 고난을 예수님의 고난에 합쳐드리면, 예수님께서는 엄청난 위로와 힘을 우리에게 주심을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