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의 초대

말씀의 초대

 

저녁노을님의 글

2022-11-04 20:04:32 조회(418)

 


연중 제31주간 토요일(11/05)

제1독서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4,10-19

형제 여러분, 10 여러분이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을 마침내
다시 한번 보여 주었기에,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합니다.
사실 여러분은 줄곧 나를 생각해 주었지만
그것을 보여 줄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11 내가 궁핍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2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13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14 그러나 내가 겪는 환난에 여러분이 동참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15 필리피 신자 여러분,
복음 선포를 시작할 무렵 내가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
여러분 외에는 나와 주고받는 관계에 있는
교회가 하나도 없었음을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16 내가 테살로니카에 있을 때에도
여러분은 두어 번 필요한 것을 보내 주었습니다.
17 물론 내가 선물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많은 이익이 돌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18 나는 모든 것을 다 받아 넉넉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에파프로디토스 편에 보낸 것을 받아 풍족합니다.
그것은 향기로운 예물이며 하느님 마음에 드는 훌륭한 제물입니다.
19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9ㄴ-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0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11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14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제와 오늘 복음을 관통하는 주제는 ‘재물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가?’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재물에 관하여 어떤 입장입니까?
먼저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곧 재물이 이 세상을 그것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는 부정적 의미에서부터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애덕 행위를 강조하는 의미까지 폭넓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는 ‘재물을 소유하고 있던 이가 죽을 때’
또는 ‘세상의 종말이 닥칠 때’라는 의미로 풀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는
‘너희가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여질 것이다.’로 의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함께 묶어, ‘세상의 종말이 닥치게 될 때,
너희가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여질 것이다.’ 정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영원한 거처로 맞아 주시는 분’은 간접적으로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한편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라는 구절에서
‘섬기다’라는 표현은 종교적 의미로 ‘노예살이를 하다’라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그 결과, 오늘 복음 내용은 엄격한 의미에서 재물에 대한
일반적 가르침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재물을 대할 때와 하느님을 대할 때
각각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지 비교하며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재물에 각각 얼마만큼의 중요성을 부여합니까?
혹시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할 찬양과 흠숭을
하느님이 아닌 것에 쏟아붓고 있지는 않습니까?

(김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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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몬41 (2022/11/04 20:34:12)

♥아멘, 감사합니다.♥
 
한미카엘라 (2022/11/05 08:01:28)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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