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태어나 처음으로 돈을 주고 사람을 써서 운동을 시작했다.
트레이너를 고용한 것이다.
직업상 하루 기본 12시간은 보통으로 앉아있기를 몇년간 했더니
(최악의 기록은 25시간 쉬지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한적도 있다.)
국가대표급 저질체력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한번 아프다.. 싶으면 아예 사경을 헤메고 몸져 누워버리는가 하면
멀쩡히 가만히 앉아 일하다가 갑자기 천장이 빙빙돌고 심장이 심하게 뛰고 숨이 가쁘고해서
한약을 먹고 어쩌고가 아니라 이건 근본적으로 운동을 해야될 문제다 라는 판단에
적지않은 돈을 써 독한맘 먹고 석달간 트레이너를 고용해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남들처럼 몸짱을 만들어 보겠다느니하는 사치가 아니였다.
60파운드 (약..30 kg?)이나 늘어난 몸무게에 위협을 느꼈다.
뼈의 사이즈는 김태희인데 몸매는 강호동이다.
몸이 건강해야 기도생활도 잘하고 인간관계도 덜 짜증내고 원만하겠다 싶어
살기위해 결정을 내렸다.
처음 시작할때 러닝머신에서 남들은 최고의 속도로 땀 뻘뻘 흘리며 대단한 에너지를 뿜으며 달릴때
난 옆에서 그냥 슬슬 걸었다.
러닝머신에서 슬슬 걷는데도 난 옆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사람과 맞먹는 양의 땀을 흘렸다.
트레이너는 내 옆에서 계속 '괜찮아?' '어지럽지않아?'라며 나를 아예 환자다루듯 했다.
3개월 후
난 태어나 처음으로 내 몸안에 이렇게 많은 '근육'이 있다는걸 내 두뇌로 감지했다.
처음 팔 운동을 할땐 '아이구 팔이야...' 가 전부였다.
3개월 후엔 '아이구 이두박근이야' 또는 '아이구 삼두박근이야'로 변했다.
운동을 제대로 된 방법으로 체계적으로 할땐 방법에 따라 특정한 근육이 땡긴다라는 것을
내 뇌세포에 정확하게 연결이 되어 감지하는 것이다.
꽤 오래전 나는 무슨 복인지 3개월 동안
한 신부님과 일대일로 '이냐시오 영성기도'를 할 수 있는 엄청난 호강을 누린적이있다.
신부님의 말씀.
'너무 다급한 상황이라 네게 이 기도가 필요할 것 같아 '특혜'를 주는거야'
마치 육이 고장나 운동을 한 것처럼 영이 다쳐 지치고 죽어갈 때 영의 운동을 한 것이였다.
매일 영성기도를 한것을 필기해서 일주일에 한번 만나 면담하고 필요하면 안수도 받고 등등 3개월 동안 했는데
첫 모임에 신부님의 말씀이
"기도는 영의 운동이야. 내 영을 단련시켜 주님의 뜻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거야"
이 기도를 한건 10년도 더 넘은 이야기다.
그런데 그때 신부님이 하신 '영의 운동'이라 말씀하신 뜻을
실제로 내가 육의 운동을 하며 이게 그말이구나 라고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 몸의 한부분인 근육의 움직임을 내 뇌세포가 민감하게 감지하는 것처럼
내 마음에 일어나는 영의 움직임을 내 뇌세포가 민감하게 감지하는 것이다.
올해 초 부터 시작한 것은 운동뿐만이 아니였다.
'세번의 성모송'의 기도도 올해 초 부터 시작했다.
난.. 이 '세번의 성모송'의 중요함을 강조하기위해
저어어기 위에 주구장창 거창하게 주절주절 길~~~게 글을 써 내려왔고
밑으로도 구구절절 써내려갈 것이다.
한 자매님이 내게 이 기도를 권하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난 식구들을 먹여 살리느라 너무 정신없이 일하느라 음란비디오를 보기는 커녕 TV볼 시간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나타나는지 가끔가다 '음란의 영'이 꿈틀대는 것을 느낀다"라고
"결혼을 하고 안하고 평신도고 수도자고 할 것없이 이 기도는 '거룩해 지기위해' 정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 했다.
처음엔 무슨 약장사?인가 했다.
이 기도가 좋으니 다짜고짜 그냥 무조건 하라는 거다.
특히 젊은이들 미혼자들.
순결과 정결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다.
난 일단 이 세번의 성모송 기도가 너무 간단?해서 맘에 들었다.
그리고 너무 간단해서 시시?했다.
하지만 일단 몸에 좋다는건 먹고보는것처럼
내 영에 좋다길래 '2분도 안되는 이까이꺼 뭐 하지뭐' 하고 가볍게 이 기도를 시작했다.
이 기도를 시작한지 7개월이 됐다.
아침 저녁으로 2분도 안되는 짧은 이 기도를 하루도 안빠지고 했는데
조금씩 이 기도의 엄청난 힘을 감지한다.
1989년에 첫 영세를 받은 이후
난 항상 묵주기도를 했다.
아무리 바빠도 빠뜨리지 않고 적지않은 시간을 들여서 묵주기도를 했고
웬만큼 독한?사람아니면 못한다는 15기도도 3년간이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적도 있고
이것도 한적 있고 저것도 한적있고 남들하는 기도는 왠만한건 다~~~~~ 해봤다.
그런데
정말 이 2분도 안되는 '세번의 성모송'만큼 커다란 힘을 발휘한 기도는 본 적이 없다.
나의 두리뭉실한 팔뚝안에 이런저런 근육이 운동하고 있다는 것을 내 뇌세포가 감지하는 첫 전율.
난 이 '세번의 성모송'을 하며 내 영이 어떤 상태인가를 내 뇌세포가 민감하게 감지하는 것을 느꼈다.
이제껏 한번도 '죄'라 느끼지 못한것을 환한 빛으로 밝혀 주신다.
순간순간 인간관계에서도 '앗 이게 아니지' '앗 이렇게 해야 하는거지'라고 민감하게 깨우쳐 주신다.
모든 기도는 다 좋은 거지만 이렇게 내 속을 환하게 비춰주는 기도는 본 적이 없다.
나의 나약함을 힘있게 붙들어 주는 기도를 본적이 없다.
이 기도는
1. 거룩함을 회복하는 은총을 얻음
2. 음란죄를 이기는 은총을 얻음
3. 궁극적 구원의 은총을 얻음
의 약속을 가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지옥에 떨어질때 대다수가 '음란죄'라고 한다.
인간에겐 이 죄를 이길 힘이 없다.
한창 홀몬분비가 왕성한 청소년에게 순결/정결을 명하고
안따르면 고해성사하라 그러고 죄책감만 심어준다면
성당다니기 얼마나 힘들겠는가.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은 너무나도 많은 죄악으로 덮혀있기에 조금만 방심해도 죄에 빠진다.
너무 죄가 난무해 무감각해져있을 정도다.
나는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의 이름으로 모든 이들에게 이 기도를 권한다.
미혼자이건 기혼자이건 평신도이건 수도자이건 사제건 모든 이에게 이 기도를 권한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감히 이런 기도를 권하는 건
내가 아는 단 한가지 이 기도가 주는 주님의 엄청난 은총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성서에 많은 존경하는 인물들이 나오지만 특히 내가 존경하는 인물중 하나가
이집트로 팔려간 꿈쟁이 요셉이다.
주인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을 때 요셉이 한 행동은 어땠는가?
쿨~하게 멋있게 그 상황에서 대화로 뭘 어떻게 해 보자는 그런 교양있는 행동은 없다.
그냥 웃옷이 찢어져 벋겨나가는지 신발이 떨어졌는지 체통이고 뭐고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 갔다.
나는 죄로부터 전 속력을 내어 멀어지려는 그의 용감함에 항상 감동한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너무 나약하다.
그 은총의 힘을 주님께로 부터 받지 못한다면 아무도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난 이제것 살면서
죄와의 싸움에서
단순히 죄를 안 짓고 살기만으로 (시쳇말로) 허벌났다.
기진맥진 상태다.
하지만
이 기도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나도 예수님처럼 성모님처럼
'거룩'해 지고 싶다는 생각을 감히 해 보았다.
어느 성가의 노래가사처럼
'벌레만도 못한 내가'
감히 '거룩'하다는건 꿈도 못 꿀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세번의 성모송'의 기도라면
이 기도라면
내가 죽기 전 아니 죽는 그 순간에라도
거룩의 문턱을 살짝이라도 밟아 볼 수 있는 은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많은 성인성녀들이 이 기도를 했다고 한다.
너무 간단하고 그래서 시시하게 느껴지는 이 기도.
주님의 사랑은 그런거다.
우리가 그분께 드리는건 너무도 보잘것 없고 시시한 것인데
그 댓가로 주는 은총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죄의 무게에 눌려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떠한 처지에 있다 할 지라도 너무나 간단한..
그래서 시시하게 느껴지기까지 한 이 기도를 항구히 바침으로서
엄청난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모두 나처럼 '희망'을 가지고 기뻐했으면 좋겠다.
이 기도로
내 죄만 보고 무력감에 빠지지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자비와 사랑의 빛을 바라보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두서없고 정신없는 글이지만
쉬는시간 없이 왕성히 활동하고 계시는 능력의 성령께서
이 글을 정화해서 읽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길 기도한다.
우리 모두의 '집'으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조금이라도 주님을 닮은 '거룩한 삶'에로 가까워 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나같이 보잘것 없는 이가 '거룩'을 말하기에 너무 가슴이 아프고 죄스럽다.
하지만
난 주님의 자비와사랑을 믿는다.
성모님의 지칠줄 모르는 전구를 믿는다.
그래서 이렇게 감히 '거룩'을 말 할 수 있다.
죄인중에 죄인
너무나도 나약한 나를
감히 '거룩함'에로 향할 수 있는 꿈을 꾸게해 준
이 '세번의 성모송'
많은이가 이 기도로
주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이 세상에 살면서도 천국의 맛을 느끼며 살 수 있길 기도한다.
세상사람들이 보고 부러워하는 '몸짱'이 아니라
천국에 계시는 우리 엄마 아빠가 흐뭇해 하실 '영짱'이 되길 기도한다.
끝으로
내게 시간이 많았다면
더 간략하게 요약해 쓸 수 있었던 이 정신없는 긴 글
인내로 다 읽어내신 모든분께
주님의 축복이 바께쓰로 쏟아지길 기도한다.
+
하느님, 지칠줄 모르는 자비에 감사합니다.
예수님, 빵의 형상으로 오셔서 언제나 저희안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령님, 당신의 감도로 저희 마음을 늘 주님께로 향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모님, 은총의 분배자시여
마지막 죽을때까지 함께하시며 마침내 주님께 안전하게 데려다 주실 엄마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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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성모송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제 몸을 깨끗하게 하시고 제 영혼을 거룩하게 하소서.
어머니, 오늘 하루 악한 죄에서 저를 지켜주소서." (3번)
저녁
성모송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제 몸을 깨끗하게 하시고 제 영혼을 거룩하게 하소서.
어머니, 오늘 이 밤 악한 죄에서 저를 지켜주소서."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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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송 세 번으로 얻는 은총
알퐁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성인(1696-1787)은 생전에 뛰어난 영성과 신학적 지식으로
수많은 이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했으며 학자로서도 커다란 업적을 쌓았다.
그리하여 사후에 교회학자로, 윤리신학의 수호 성인으로,
그리고 고해사제들의 수호 성인으로 여전히 공경받고 있다.
그런데 알퐁소 성인이,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받은 은총을 지켜 영혼을 구원하고
성모님께 헌신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권한 것이 있는데 바로 세 번의 성모송이다.
알퐁소 성인은 아주 단순하고 간단하지만 강력한 효력을 지니는 방법인
세 번의 성모송을 권하면서 그것으로써 받는 은총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방법과 은총
성모송 세 번을 어떻게 바쳐야 하는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성모송 세 번을 바친다.
이것이 하루의 첫 일과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의 마지막 일과로서 잠자리에 들기직전에 성모송 세 번을 바친다.
또한 각 성모송 사이에 이 기도문을 바치면 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제 몸을 깨끗하게 하시고 제 영혼을 거룩하게 하소서.
어머니, 오늘 하루(이 밤) 악한 죄에서 저를 지켜주소서."
세 번의 성모송을 바침으로써, 영성생활을 하는 데 근본이 되는
다음 세 가지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알퐁소 성인은 말한다.
즉 거룩함을 회복하는 은총, 음란죄를 이기는 은총, 궁극적 구원의 은총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은총이 각각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거룩함을 회복하는 은총을 얻음
지옥에 가는 영혼이 모두 악독한 살인자이거나 강간범인 것은 아니다.
고해하지 않은 단 하나의 대죄만으로도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
1917년 5월 13일 파티마에 발현하신 성모님은 한 소녀의 안부를 묻는 루치아의 질문에
"그녀는 세상 끝날 때까지 연옥에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은총 지위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알퐁소 성인은 그의 저서 에서, 고해신부는 고해성사를 받는 신자에게
세 번의 성모송을 명하도록 권고했다.
"사제는 모든 통회자들이 대죄에서 보호받기 위해 특별히 아침과 밤에 세 번의 성모송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복되신 동정녀께 봉헌하도록 반드시 권해야 한다.
이는 그들의 믿음이나 죄의 경중에 상관없다.
한 영혼이 하느님의 어머니께 특별한 봉헌을 드리지 않고서
자신의 끈기와 노력만으로 하느님의 구원은총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성모송 세 번을 봉헌함으로써 우리는 대죄에서 보호될 뿐만 아니라
혹 대죄 중에 있다해도 고해성사를 통해 은총 지위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대죄 중에 있거나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죄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사람이 있다면 아침과 밤에 성모송 세 번을 바치라고 권하자.
매일 잊지 않고 무슨 일이 있든 끈기 있게 성모송을 바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만약 이미 자리에 누워 잠이 들다가 이를 바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면,
감사기도를 바치고 일어나 무릎을 꿇고 세 번의 성모송을 바쳐라.
이때 가능하다면 무릎을 꿇고 바쳐야 한다.
자리에 누워 따뜻하고 편안한 이불 속에서 바친다면
은총에 맞갖는 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어라.
이는 약속된 큰 은총에 비하면 아주 작은 고행이다.
우리 수도원에서는 모든 수도자들이 바닥에 엎드려 세 번의 성모송을 바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한편 이것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단지 아침과 밤에 세 번의 성모송을 바치는 것으로 죄인이 정말로 죄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
나는 수도생활을 한 지, 그리고 이 신심을 실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수도자뿐 아니라 많은 세속 사람들에게 이 방법을 권유한 결과
세 번의 성모송이 아니었다면 결코 죄를 끊을 수 없었을 거라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들은 그전에 이미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도 소용이 없었지만
세 번의 성모송으로 효과를 보았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방법은 나의 회심에도 아주 큰 역할을 했었다.
알퐁소 성인은 이렇게 조언했다.
"은총을 보존하는 데, 그리고 회개하는 데 있어 마리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도움은, 단지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께 대한 선한 의지와 의탁하는 마음만으로도,
그리고 죄인들에게도 보장된 것이다! 예수회 출신의 위대한 성인인
요한 베르크만(John Berchmans, 1599-1621)은 생전에 아무리 작은 일이어도 최선을 다하고
근면하게 행함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으며 완덕에 도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임종을 눈앞에 둔 시간에,
마리아께 대한 봉헌이 구원에 필요한지를 묻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것을 충실히 행하는 한, 마리아를 기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세 번의 성모송이라는 이 작은 봉헌이 마리아께 아주 큰 기쁨이 되고,
더욱이 그것을 매일, 매주, 매년 죽는 날까지 조석으로 충실히 바친다면,
마리아는 그것에 약속된 은총을 우리에게 반드시 주실 것이다.
둘째, 음란죄를 이기는 은총을 얻음
세 번의 성모송을 바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은총은 음란죄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십계명 중 "간음하지 마라."는 제6 계명과
"도둑질을 하지 마라."는 제7 계명을 어기는 죄를 이길 수 있다.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죄의 99%가 음란죄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육(肉)의 죄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경우가 가장 많다는 사실은
성모님께서 직접 파티마의 히야친타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은 부도덕과 음란의 죄로 넘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매스 미디어나 인터넷은 물론이요 거리에서도 그런 음란함과 마주친다.
알퐁소 성인은, 하루에 두 번 성모송 세 번을 바침으로써
이런 사악한 모든 유혹을 극복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
그러므로 이를 알게 된 지금 바로 실천하고,
주위에, 본당에, 젊은이들에게 이 신심을 알려주도록 하자.
성모님께 대한 이 강력한 봉헌이 없으면
음란죄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알퐁소 성인이 그의 저서에서 사제들에게 권고한 이 말에 귀를 기울여보라.
"순결을 지키는 아주 훌륭한 방법은 마리아께 봉헌하는 것이다.
마리아의 사랑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리아의 순결을 공경하는 것이다.
마리아의 순결을 공경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세 번의 성모송을 바치는 것이다."
이 신심은 순결을 지키는 데, 그리고 순결을 거스르는 유혹을 피하는 데 유용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이고 진지한 회심을 가져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음란죄에 빠져있는 죄인들이나 그런 악덕의 유혹에 완전히 무력한 사람들에게도
매우 효과적인 방법임에 틀림없다. 다시 알퐁소 성인의 말씀을 들어보자.
"여러분 중에 불순결의 수렁에 빠져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보라.
어서 빨리 그 지옥 같은 썩은 육신에서 헤어나라.
더 이상 거기 머물지 말고 순결하신 어머니 마리아께 의탁하라.
매일 마리아께 이 악덕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하라.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서, 그리고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
마리아의 순결하심을 공경하여 세 번의 성모송을 바치는 것을 결코 잊지 마라."
고해신부들에게는 이렇게 권고하였다.
"음란한 악덕의 습관에 빠진 사람에게, 복되신 동정녀의 순결하심을 공경하여
아침 저녁으로 세 번의 성모송을 바치는 것을 결코 거르지 말 것을 보속으로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보속을 받은 사람은 성모상 앞에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자신의 지향을 다시 확고히 하고서
착하신 어머니께 인내의 은총을 청한 뒤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이 신심을 실천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세 번의 성모송이 불순결의 유혹에 맞서 싸우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알기에는 충분한 예를 보았다.
바로 한 달 전에도 호주 시드니에서 알게 된 한 젊은이가 내게 와서,
자신이 세 번의 성모송 덕분에 지난 2년 동안 순결한 삶을 영위해올 수 있었다고 말했었다.
다시금 알퐁소 성인의 말을 상기해보자.
"마리아 신심은 불순결을 이겨내는 데 꼭 필요한 방법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마리아신심 방법은
아침과 밤에 세 번의 성모송을 바치는 것이다.
셋째, 궁극적 구원의 은총을 얻음
매일 두 번 성모송 세번을 바쳐서 얻는 가장 중요한 은총은 이 세번째의 것이다.
구원, 즉 천국이냐 지옥이냐는 순전히 죽는 순간에 달려 있다.
은총 지위에서 죽는다면 구원받을 것이고
대죄 중에 죽는다면 영원한 지옥불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은총에 달려 있으며,
구원을 위해 얼마나 항구하게 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마태 10,22)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하늘 나라의 왕관은 항구하는 자에게 주어지며"(성 보나벤투라),
"많은 사람이 그 시작은 좋으나 끝까지 참아내는 이는 적다"(성 예로니모).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14).
그러므로 알퐁소 성인은 말한다.
"상을 받기 위해 달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얻을 때까지 달려야 한다."
당연히 하늘나라에 자기 자리가 보장되어 있다고 안심하는 사람이
혹시라도 있다면, 유다의 서글픈 예를 기억하자.
그는 주님께서 직접 뽑으신 열두 사도 중 한 명이었으며,
주님의 모든 기적을 목격했지만 구원에 드는 데 실패했다.
에집트와 시리아 사막에 살았던 초대 교부들의 삶을 보아도
그들 중 어떤 이들은 하루에 겨우 두 시간 정도만 자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매일 소량의 삶은 채소밖에 먹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평생 할 것보다 더 많은 고행을 한 달 동안에 했다.
그들 중 기적을 일으킨 이도 있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실패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항구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궁극적 구원의 은총을 얻을 수 있는가?
알퐁소 성인은 교황이든 평신도이든 교회의 직분을 막론하고
모두가 이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경고한다.
"궁극적 구원의 은총을 얻기 위해, 궁극적 구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특별한 봉헌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마리아께 이 특별한 신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궁극적 구원을 얻는 데 힘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성 베르나르도가 확언한 대로, 하느님의 모든 은총 중에서 특히 가장 으뜸인
궁극적 구원의 은총은 마리아를 통해 우리에게 오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자녀는 곧 하늘 나라의 자녀이다.
마리아께 참된 신심을 가진 자는 죽을 때에 마리아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죽을 때에 마리아의 도움을 받는 자는 거룩한 죽음을 맞을 것이며 구원받을 것이다."
성모님은 우리에게 많은 걸 요구하시지 않는다.
다만 선한 의지와 항구함을 요구하실뿐이다.
우리는 세 번의 성모송을 꾸준히 바쳐야 한다.
그럼으로써 선한 의지를 지니고 죄를 끊어버려야 한다.
이 방법은 너무 간단하고 쉬워서 어린아이조차도 쉽게 행할 수 있다.
혹시 시간이 없다고 변명할 수 있으나
세 번의 성모송은 바치는 데는 2분도 채 안 걸린다.
유래와 교회의 공인
최초로 세 번의 성모송 봉헌과 그에 따르는 약속을 받은 이는
뛰어난 신비가인 멕틸다 성녀(1240?-1298)이다.
또한 그의 제자이자 가장 위대한 신비가의 한 사람으로 공경받는
대 제르투르다 성녀(1256-1302)에게도 전해졌다.
그 후 이탈리아 포르토 마우리치오의 레오나르도 성인(1676-1751)과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1195-1231)을 비롯한 수많은 성인들이 그것을 권고하고 몸소 실천했다.
특히 안토니오 성인은 이 신심을 아주 열심히 실천하고
이 신심을 알리는 데 앞장섰는데 그런 덕분인지 그의 시신은 먼지로 돌아갔어도
세 번의 성모송을 전파하던 그의 혀와 성대는 아직 썩지 않은 채 남아있다.
또한 요한 보스코 성인(1815-1888) 역시도 세 번의 성모송을 바칠 것을
살레시오회의 청소년들에게 권했다.
한편 많은 교황들도 이 신심을 실천하는 데 앞장섰는데
특히 교황 레오 13세와 베네딕토 15세는 이 신심의 수호자였다.
20세기의 위대한 교황이며 가장 최근의 성인 교황인 성 비오 10세는
세 번의 성모송 신심의 열렬한 전파자였다.
그는 이 신심에 대한 개인적인 사랑을 설파했을 뿐 아니라,
이 신심에 대사를 부여하고, 주교들과 신부들에게 이 신심을 권함과 동시에
신자들에게도 널리 확산시킬 것을 요청했다.
세 번의 성모송, 구원의 겨자씨
세번의 성모송을 하루 두 번 바치는 것은 겨자씨처럼 작고 미소하게 여겨지는 신심이지만
진심으로 행할 때 이것은 우리에게 궁극적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성모 신심의 겨자씨", "구원의 겨자씨"가 될 수 있으리라.
그러기에 혹시라도 이것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기도문에 매달리고 심한 고행을 거듭했지만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상기해야겠다.
모든 은총은 하느님에게서 오지만 마리아의 손을 거쳐서 온다.
마리아 신심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다음 이야기는 어느 사제가 직접 들은 실화이다.
"신부님, 나는 지금 75세이며 평생 고통을 많이 겪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몰락시킨 수많은 위험들을 나도 많이 만났습니다.
하지만 노년에 이른 지금 나는 첫영성체 이후로 단 한 번도
대죄를 짓지 않았다는 행복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날, 내 어머니는 한참 동안이나 나를 당신품에 꼭 안고서,
내가 세 번의 성모송을 충심으로 매일 아침과 밤에 바치겠다는 것을
지상의 어머니인 당신과 천상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게 약속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나는 그 약속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내 어머니와 첫영성체에 대한 기억과 마리아의 보호하심,
바로 그 덕분에 나는 지금 이 큰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다시금 촉구한다. 아니 애걸한다. 모두의 구원을 위해 애걸한다.
"성모님께 가라!"
그리고 앞으로 평생 동안 매일 아침, 매일 밤 반드시 세 번의 성모송을 바치겠다고 약속하라.
그러면 성모님은 여러분에게 큰 은총을 주실 것이다.
- 2008년 봄호에서
- 마리아지 153호
- 성모 마리아의 발현과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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