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십여년이 지난 지금 성당은 계속 나가고 있습니다만 드는 의문이 그때 왜 주님께 열심이었는데 나는 마음적인 힘듦을 겪었나 하는 겁니다. 이 의문을 해결하지 못 하니 성당다니면서도 두렵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지속하며 마음 편하게 지내야하나 싶기도하고요."(본문 중에서 발췌)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일반적으로 신앙생활을 열정적으로 하고 주님만 신뢰하며 살아가면 만사형통 탄탄대로를 보장받는 것으로 생각하실 수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참으로 열정적으로 흠숭하며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우리들의 삶은 늘 유혹과 고통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저도 아들이 버럭 화를 내는 성격이 되어서 고통 중에 살고 있지만 주님의 마음으로 제 마음을 잘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암 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죽고 사는 것 또한 제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이기에 매일 주시는 하루하루를 감사히 받고 기쁘고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순수한 황금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 용광로에서 달궈져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고통과 시련을 통하지 않고서는, 곧 십자가의 고통을 겪고 나지 않고서는 부활을 체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주시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고통, 그것이 우리에게는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가시일 수 있겠지요. 그것은 우리를 더 단련시켜 믿음을 더 단단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가장 먼저 나옵니다. 코린토 1서 사랑장에 보면요.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겪는 고통과 시련이 어쩌면 축복일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암 환자가 된 후 매일 아침 일어나면 또는 수시로 시편을 노래합니다 "이날을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세!" 주님이 마련하신 날에 어떤 일을 겪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사는 삶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주님을 너무도 사랑하며 살던 욥도 고통과 시련을 당했지만 주님을 만나고야 말겠다는 굳는 의지로 주님을 체험했고 그 이후 이전의 삶보다 더 행복한 삶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렇듯 의인도 고통을 받을 수 있는데 그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는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