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싶어요 : 배우자는 하느님께서 직접 선택해 주시나요?

배우자는 하느님께서 직접 선택해 주시나요?

 

아메림노스 클라라의 글

2019-12-09 21:15:58 조회(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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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배우자는 하느님께서 직접 선택해 주시나요?"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송용민 신부님의 신학 하는 즐거움을 공부하면서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움이 될까 싶어서 강의 녹취록 일부를 올려드립니다.

발체시작

■ 나는 누구인가?

 - 역사적 존재 / 관계적 존재 / 의미를 묻는 존재



내가 도대체 뭘 알 수 있는가? 이 세상에서 또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또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이 우리들의 삶을 감싸고 있는 질문인데 이 질문 속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고 의미를 찾는 존재다. 그러면서 동시에 언제인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닥칠 죽음이라고 하는 마지막 단어를 뛰어넘는 또 다른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 내가 알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바랄 수 있는 것?

* 신앙인: 죽음을 뛰어넘는 희망을 찾는 존재 ​



먼저 우리가 풀어야 될 인간 실존이라는 이 단어에서 가장 중요한 실존의 의미는 첫 번째는 우리가 굉장히 우리의 삶을 우연적인 우연성이라고 하는 그 어떤 삶하고 동시에 철저하게 비구원적인, 비구원이라는 말은 달리 말하면 불안의 체험이다. 이 두 가지가 굉장히 중요한 인간 실존의 체험의 핵심적인 단어입니다.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사실은 우리가 다 겪고 있는 겁니다.



* 불안과 확실성의 체험: 내가 만난 사건들이 내 의도와 상관없이 다가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것. ​



우연적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우연적인 겁니다. 여러분 우연한 일들 다 겪으시죠? 우연은 우리가 살면서 우연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 우연한 일들이 때로는 ​즐겁게 생기는 우연한 일도 있지만 대부분 우연한 일들은 내가 전혀 예기치 못했던 순간에, 기대하지 못했던 순간에 도대체 이게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도대체 어떻게 풀어낼 수가 없는 거예요. ​이제 그런 것들을 흔히 우연성의 체험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 우연히 겪게 되는 사건들 속에서 우리 인생은 이 우연이라는 것이 그냥 내게 별거 아니야 하고 자나가 버린다면 그냥 별거 아닙니다. 정말 우연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그 우연적으로 내가 맞은 사건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야 되는 것처럼 생각하거든요. 그것이 바로 그 우연적인 사건을 바로 의미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아, 이건 정말 의미가 있는 일이구나. 

 

우리가 우연적인 것 중에 가장 인생의 세 가지가 필연적인 사건이 되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내가 직업을 선택할 때, 둘째는 내가 결혼할 때, 셋째는 내가 종교를 가질 때라고 합니다. 결혼을 하실 때, 직업을 가질 때 내가 어떤 것이 내 평생직장이 될지는 처음부터 계산하지 않았는데 살다 보니까,  아, 이게 내 평생직장인가 보다 하고 살아가면서 ​그냥 우연한 기회에 어떤 계기에 얻는 직장이 내 평생직장이 된다고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거죠.



동시에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 여러분 배우자를 어떻게 만나셨는지 보시면 참 우연하게 만났거든요. 그런데 그 우연한 사람이 어, 이 사람은 왠지 모르게 내 인생의 어떤 반쪽짜리가 될 것 같다고 생각을 해서 결혼을 했고, 살다 보니까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으시잖아요. 그런데도 그래, 이 사람이 내 평생의

내 짝이었다고 그 사람을 내 인생의 반쪽의 의미로 받아들일 때 내 필연적인 사람이 되는 겁니다. ​



또는 종교입니다. 종교도 내 부모님이 신앙을 가져서 내가 우연히 신앙을 가질 수도 있고, 만약에 우리들이 이 가톨릭 신앙이 아니라 이슬람 국가에 태어났으면 우리는 이슬람 신자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신앙인이 된 우연한 사건들이 지금 살아오면서 ​ 신앙 안에 기쁨이 있구나. 이건 정말 필연적인 거구나.



우리 신앙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이게 하느님이 나에게 원하신 거고, 계획하신 것이었다는 필연적인 사건이 되는 겁니다. 이토록 우연이 필연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 가는 사건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굉장히 중요한 우연성의 체험의 하나입니다.<발체끝>

송용민 신부님의 신학하는 즐거움 제9회 5부 강의 일부내용입니다.

 

더 많은 신학에 관해서 공부하고 싶으시면

'성경과 함께' 카페에 성경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있으니 공부해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https://cafe.naver.com/withbible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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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나의 기쁨 (2019/12/11 07: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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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남들은 우연이라고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일상의 삶을 해석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지요.
오늘도 주님 안에서 행복한 날 되세요! (아메림노스 클라라)
 
세퍼드 (2019/12/31 11: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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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느님의 계획에

인간은 동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 뜻대로가 아닌

자기 뜻대로 자기 맘대로 살아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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