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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유배의 시기가 있었듯이 교회에도
힘겨운 시기가 있으리라는 것은 사실일 수 있습니다.
(참으로 호되고도 솔직한 많은 예언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교회들을 헤집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이 모든 사실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진정코 나를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내 삶을 거쳐 가심으로써
내게 확신과 위로 주심을 느낍니다.
신학교가 문을 닫는다고 해도 내게 성체성사를 집전해 줄
사제가 부족하리라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바티칸이 팔린다 해도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으로,
또 하느님이 악의 세력에 패했다는 생각으로
떨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호세아가 한 희망에 찬 말들로 노래 하렵니다.
"이스라엘아, 나는 거룩한 신으로
너희 가운데 있으며 사자처럼 악을 향해 포효하리라.
너희 자손들이 비둘기처럼 날아 오고 참새 떼처럼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오리라."(호세 11,9-11 참조)
그렇습니다. 내게는 크나큰 희망이 있습니다.
그 희망은 참된 희망으로서 인간적 낙관론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모순과 나약함, 교회의 모순과 나약함
그리고 혼란스러운 일상적 세상의 모습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나의 희망은 더 이상 내 능력이나 교회의 조직화된 힘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살아 계시는 하느님과 그분의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역사 속에서 그분의 활동, 그분의 구원의지에 의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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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르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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