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바꾸신 십자가의 의미

a. 서론

1) 십자가의 기본적인 의미는 죽음이다. BC 6세기경부터 AD 4세기까지, 십자가는 가장 고통스럽고 잔인한 방법으로 사형하는 도구였다. 십자가에 사람을 묶어 놓거나 못을 박아 놓고 죽을 때까지 매달아 두었는데, 죽음은 천천히 다가왔고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해, 오늘날의 십자가는 완전히 다른 의미, 즉 하느님의 사랑과 승리라는 의미를 지닌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주요 상징으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과 그의 수난과 죽음의 구원적 혜택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십자가는 그리스도 자신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표이다. 전례에서 십자가 표시를 하는 것은 맥락에 따라 신앙 고백, 기도, 헌신 또는 축복의 행위가 될 수 있다.

3) 십자가는 한국어 신약에 80번 정도 사용되고, NRSVCE에는 신약에 33번 사용된다.

b. 십자가의 뜻과 사용

1) 십자가의 뜻과 형태

a) 십자가의 뜻: 고대 카르타고(혹은 페르시아), 이집트, 아시리아에서, 사람을 고문하고 사형을 집행할 때 사용한 형구를 말한다.

b) 십자가의 형태: 십자가의 형태는 수십 가지인데, 대표적인 두 가지 형태로는, 두 개의 막대기가 한가운데 교차하는 그리스 십자가(+ Greek Cross. crux quadrata), 수직 막대의 윗부분에 가로막대가 있는 일반적인 십자가로 라틴 십자가(† Latin Cross, crux immissa)를 들 수 있다. 위의 두 가지 기본형 외에 그리스 문자 tau의 모양으로 된 성 안토니오 십자가(crux commissa), 그리고 두 개의 막대기를 ×자로 교차한 성 안드레아 십자가(crux decussata, 12제자 중 한 사람이며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가 순교 당한 십자가로 추정된다) 등이 있다.

2) 십자가의 사용

a)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티로를 정복한 뒤 지중해 연안을 따라 십자가를 세우고 지도자급 2,000명을 매달아 죽였다고 한다. 그 후 십자가형은 로마에 도입되어, 극악한 범죄자나 로마 황제의 권위에 도전한 반역자에게만 가해졌다.

b) 로마 제국은 십자가를 공개적인 사형 형태로 사용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하시기 전에 십자가는 부끄러운 처형 방법이었다. 피고인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사형집행인들은 피고인의 옷을 벗기고 채찍질했다. 그런 다음 피고인은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러한 형태의 처벌은 주로 로마 제국에서 심각한 범죄(보통 당국에 반항하는 행위)를 저지른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심각한 범죄자들과 반대자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 대중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십자가는 권위의 표시였으며,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 머물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상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c) 요세푸스에 의하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나중에 로마 황제가 된 티투스는 십자가를 세울 장소가 없을 정도로 많은 십자가 형벌을 가했고,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하루에 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십자가에 매단 적도 있었다고 한다.

c.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

1) 예수님의 십자가 윗부분에 죄목과 죄수의 이름이 씌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마태 27:37), 예수께서는 아마 라틴형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으로 보인다.

2) 죄수는 십자가 형벌을 받기 전에 심한 채찍질을 당하거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문을 받았다. 예수께서도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갈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매질을 당하셨다(마태 27:32).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는 대개 2-3일이 지나면 죽게 되는데, 그동안 낮의 뜨거운 태양과 날짐승들로 인해 큰 고통을 받아야 했다. 이런 고통을 들어주기 위해 몰약을 탄 마취제(신 포도주)를 먹이는 경우도 있었다(마태 27:48). 그리고 숨이 멎으면 죄수를 십자가에서 내린 뒤 망치로 다리를 힘껏 내리쳐서 꺾었는데, 이것은 죽음을 최종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다리가 꺾이는 대신 창으로 옆구리를 찔렸다(요한 19:32).

3) 나무에 매달려 죽임당한 자를 저주받은 자로 간주했던 유다인에게, 예수님의 십자가형은 저주의 상징이었다(신명 21:23; 갈라 3:13). 하지만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대신 저주를 받으셨으며, 십자가의 극한 고통과 수치를 참으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기 희생의 가장 강렬한 표현이며, 대속과 구원의 상징물이다.

d. 예수님께서 바꾸신 십자가의 의미: 십자가는 하느님의 사랑과 공의의 교차점이다. 한편, 하느님의 공의는 죄에 대한 심판과 형벌을 요구한다.

1) 중요한 상징들

a) 십자가는 용서, 화해, 구원을 상징한다.

(1) 십자가는 죄의 용서를 위한, 십자가에서의 피 흘림을 상징한다.: 인간의 조상이 원죄를 지은 후 인간의 후손들은 그들 자신의 힘만으로는 죄를 용서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하느님이시기도 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용서받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왜냐하면, 피가 그 생명으로 속죄하므로(레위 17:11), 죄의 용서를 위해서는 피 흘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 십자가는 죄의 용서를 통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아직도 죄인이며 구원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죄인의 신분에서 하느님의 양자의 신분으로 바꾸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다.

(3)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의 표현인 예수님의 대속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감당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우리가 하느님과 화목하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

b) 십자가는 희생(대속, 순종, 겸손)을 상징한다.

(1) 십자가는 인간 범죄의 대속을 상징한다.: 인간의 범죄로 하느님께서 만드신 질서가 근본적으로 무너졌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속죄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로 결심하셨다. 즉, 예수께서는 그분의 육신, 정신, 감정 등이 모두 십자가에서 죽기를 의도적으로 원하신 것이다.

(2) 십자가는 대속을 위한, 순종과 겸손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순종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히브리서 5:8은,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자신을 낮추시어...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7-8). 즉, 예수님께서는 신성을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써 구원사업을 완수하셨다.

c) 십자가는 사랑과 능력을 상징한다.

(1) 십자가는 하느님의 사랑을 상징한다.: 요한 복음서 3:16은,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은혜를 힘입어, 죄와 죽음 아래에 놓였던 모든 인간들은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더 나아가,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생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무한한 사랑과 은혜는 나의 공로나 행위로 얻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선물이다.

(2) 십자가는 하느님의 능력을 상징한다.: 1코린토 1:18은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라고 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말씀하고 있다. 이처럼 십자가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 하실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한다.

d) 십자가는 승리를 상징한다.

(1) 십자가는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죽어야 부활하기 때문이다. 죽었기에 패배한 것이 아니며, 죽었기에 부활하며 승리하셨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세세 영원토록 살아서 역사하시며 만민의 구원자로서의 영광을 누리신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승리와 부활의 영광을 우리에게 상징하고, 가르쳐준다.

(2) 십자가는 죄, 죽음, 악마에 대한 궁극적 승리를 상징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인류를 노예로 만들고 괴롭히던 숨겨진 적대 세력(악마, 귀신)을 철저히 심판하여 십자가에서 처형한 ‘하느님의 궁극적 승리’를 상징한다. 주님의 속죄의 죽음과 무덤에서의 육체적 부활은 죄, 죽음, 악마와 같은 세상의 거대한 권세를 영구적으로 패배시켰다. 그리하여, 십자가는 인간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상징한다.

(3) 십자가는 희망, 평화, 일치, 자유 등을 상징한다.: 십자가는, 모든 장벽, 분열, 적대감 등이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졌음을 상징한다. 즉, 십자가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인류인 우리가 희망, 평화, 일치 등의 새로운 법, 곧 생명의 성령의 법을 갖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또한, 십자가는 우리의 범법으로 인해 받을 형벌로부터의 우리의 자유를 상징한다.

e) 십자가는 죄, 그 죄에 대한 대가, 인간의 무능력을 상징한다.

(1) 십자가는 죄, 그 죄에 대한 대가(죽음을 포함하여)를 상징한다.: 인간은 원죄라는 엄청난 시간을 저지르면서, 하느님께서 만드신 질서가 깨어지게 되었다. 십자가는 원죄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상징한다.

(2) 십자가는 인간의 무능력, 그리고 이기적인 욕망의 무서움을 상징한다.: 십자가는, 인간이 저지른 죄를 속죄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음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들을 부인하라는 의미로 이 말씀을 하셨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죄 많은 자아의 죽음과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이 주제를 반복해서 이야기한다(갈라 2:20 등). 그리고, 십자가는 우리의 이기적인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상징한다.

2) 그 외의 상징들

a) 십자가는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b) 십자가는 새 계약의 시작을 상징한다.

c) 십자가는 우리의 죽음을 상징한다.

d) 십자가는 은혜를 상징한다.

e) 십자가는 다른 사람을 향한 희생적인 봉사와 헌신을 상징한다.

f) 십자가는 믿음을 상징한다.

g) 십자가는 세상과의 분리를 상징한다.

h) 십자가는 우리가 예수님의 추종자로서 어떻게 살도록 부름받았는지를 상징한다.

e. 결론

1) 십자가는 한 마디로, “의인이, 모든 죄인을 위해서, 죄인들에 의해, 죄인이 된 사건”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죄 없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달리신 사랑의 십자가인 동시에, 우리의 원수인 악마가 처형당한 공의와 심판의 십자가를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서,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한 측면, 그리고 또 다른 측면(승리, 공의, 심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2) 구속은 육신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 창세기에서, 아담이 죄를 범하고 숨었을 때,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신 것은, 희생이 있어야 구속이 가능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육신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아래에 있던 백인대장이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라고 고백하였다. 이것은 바로 육신의 희생이 있어야 구속이 가능함을 말한 것이다.

3) 십자가는, 모든 인간이 자기존재의 정체성, 인생의 목적과 삶의 의미를 깨닫게 인도하는 하느님의 희생이다. 즉, 십자가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과 십자가의 의미를 통해, 사람이 자기존재의 정체성,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깨닫고 순종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돕는 하느님의 희생이다.

4) 다시 말하면, 구원이란 바로, 사람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보고 하느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뜻을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은 다시 희생의 제사를 드린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나타내는 삶을 사는 생명이 되었으니, 우리의 삶은 자연스럽게 희생의 삶이고 십자가를 지는 삶이 된다.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