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묵상 :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小花 글나라의 글

2015-03-22 05:27:24 조회(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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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첫영성체 교리를 하던 중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꼬마 아이가 요한은 누구에게서 세례를 받았는가 질문을 받았습니다.

정확한 답을 몰라 알아보고 알려주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이 질문을 받고 그렇다면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를 묵상해 보기로 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은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먼저 묵상해 보았습니다.



루카복음 1장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렇습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루카 1,7)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는 의미 안에는 임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인데 거기다 둘 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이미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것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을 두 번씩이나

강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즈카르야는 천사가 엘리사벳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전하는 말씀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 자기를 자신을 너무 잘 알았을 것입니다. 이미 나이가 많아서 부부

관계를 하지 못하고 있었던 어떤 사정을 다 아는데 어떻게 그런 상태에서 엘리사벳이 아이를 가질 수 있겠

는지요? 이러한 즈카리아의 마음은 아마도 우리들의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적인 현실만 보는 것 ...



이러한 상황에서 엘리사벳은 임신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임신이 됐을까요?

성령으로 인하여 잉태되었다고 묵상해 볼 수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창세기에서도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미 나이도 많았고 사라는 여인에게 있어야 했던

달거리도 이미 끊어진 상황에서 이사악을 낳았던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는지요?

아마도 이사악처럼 세례자 요한도 그렇게 잉태되신 것은 아닐까 합니다.



사람의 어떤 생식적인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으로 되었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엘리사벳은 성모님께서 동정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사건을 받아들일 수 있었지

않겠는가? 그렇게 묵상해 봅니다. 사람은 보통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지

않는 면이 아주 강하지 않는지요?



만약에 엘리사벳이 자신들의 생식 능력으로 세례자 요한을 가졌다면 ...

성모님은 사시기가 무척 힘드셨을 거라고 느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엘리사벳은

그리고 즈키르야는 성모님의 동정 잉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셨으니 사시는 것이 힘이 되었고 용기가

나지 않았겠습니까? 이 또한 하느님의 배려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성령의 능력으로 세례자 요한은 엘리사벳의 태중에서 자라났고 ...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찾아오셨을 때 인사를 드리자 세례자 요한이 태중에서 기뻐 뛰놀았다고 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어떻게 성모님의 음성을 듣고 태중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뵈올 수 있었겠습니까?

성령으로 가득찬 상태였기에 가능했던 것 아니겠는지요? 아무튼 세례자 요한은 그렇게 성령으로

충만했던 분이셨습니다.



그럼 세례자 요한은 어떻게 해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을까요?

저는 아마도 세례자 요한은 나아만이 요르단 강에서 몸을 씻고 나병이 치유된 것에서 비롯되지

않았겠는가? 그런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당시 나병은 하늘이 내린 병으로 사람들은 이해했고

그 병은 하느님만이 고치실 수 있다고 믿었던 때입니다. 그러므로 요르단 강에 들어가 물로

씻는다는 것은 나병이 치유되듯이 어떤 병들이 치유되는 것으로 이해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묵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치유가 필요한 분이 아니신대요.

저는 세례자 요한이 하고 있는 세례를 인정해 주시는 모습으로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교회는 세례자 요한이 베풀던 세례를 베풀어라라는 의미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지금 세례자 요한이 베푸는 세례가 앞으로 교회 공동체를 통해 베풀어져도 좋다고 인정해

주시는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하셨던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의 뜻을 잘 헤아렸을 것이고 ...

그렇게 하느님의 뜻을 잘 헤아렸던 요한이 베푼 세례를 또한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그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합당하다는 인정을 받는 모습으로 이해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저의 개인적인

묵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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