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미사 강론 :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장엄 미사 제 52차 세계 평화의 날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강론[2019년 1월 1일 화요일[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미사 강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장엄 미사 제 52차 세계 평화의 날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강론[2019년 1월 1일 화요일[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Fran.의 글

2019-01-04 11:17:16 조회(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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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s://www.vaticannews.va/en.html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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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9년 1월 1일 화요일[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민수기 6,22-27

화답송 : 시편 67(66),2-3.5.6과 8(◎ 2ㄱ)

제2독서 : 갈라티아서 4,4-7

복음 : 루카 복음 2,16-21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9604&gomonth=2019-01-01&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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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장엄 미사

제 52차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강론

 

바티칸 대성전

2019년 1월 1일 화요일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루카 복음 2, 18). 놀라워 하는 것. 이것이 성탄 팔일 축제를 마감하는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사랑에서는 부유하신 우리를 위해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우리가 계속해서 묵상하면서 말입니다. 놀라움은 우리가 매년 시작 때에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이 가장 비천한 상황에서조차도 새로운 출발을 할 기회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또한 천주의 성모께 놀라워하는 하루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창조주를 먹이는 한 여인의 팔에 안긴 작은 아이로 나타나셨습니다. 우리 눈 앞에서 그 성모자상은 너무 친밀하여 한 분인 것처럼 보이는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을 묘사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 경축하는 신비입니다. 그것은 한없는 놀라움을 일으킵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원히 인류와 하나가 되셨습니다. 하느님과 사람이 언제나 함께, 그것은 올 한해의 기쁜 소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 위에 화려한 고립 속에서 사시는 멀리 계신 주님이 전혀 아니시고 우리와 형제가 되기 위해서 우리와 가까워지기 위해서 우리와 똑같이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신 사랑의 강생이십니다. 하느님의 친밀하심. 그분께서는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쉬십니다. 그 어머니는 또한 우리의 어머니이시며 그곳에서부터 그분께서는 인류에게 새로운 다정한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부성과 모성 둘 다의 더 완전한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사랑은 자신의 자녀들을 믿어 주기를 결코 그만두지 않고 그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않는 한 어머니의 사랑 같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임마누엘께서는 우리의 잘못, 우리의 죄, 우리가 세상을 다루는 방법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인류를 믿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그 첫 번째 탁월한 지체가 당신 자신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새해의 시작에 하느님의 경이로우심에 놀라워하는 은총을 마리아님께 간구합시다. 믿음이 우리 안에서 처음 생겼을 때 우리가 느꼈던 놀라움을 다시 새롭게 합시다. 천주의 성모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주님을 낳으신 성모님께서 이제 우리를 주님께 새로 태어난 우리를 바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 안에 신앙의 놀라움을 불러 일으키시는 어머니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종교가 아니라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놀라움 없이 삶은 무디고 틀에 박힌 것이 됩니다. 그래서 그것은 믿음과 함께 입니다. 교회도 살아 계신 하느님, 주님의 신부 당신의 자녀를 낳으시는 어머니가 살고 계신 장소가 된 것에 대한 놀라움을 스스로 새롭게 해야 합니다. 한편 어머니께서는 과거의 아름다운 박물관이 될 위험을 무릅쓰십니다. 하나의 “교회 박물관”. 그것이 아니라 우리의 성모님게서는 교회에 하나의 집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 하나의 집에는 새로움의 하느님께서 살고 계십니다. 에페소의 주민들이 공의회 때에 했던 것처럼 놀라워하며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신비를 받아들입시다. 그들과 같이 성모님께 “천주의 성모님”이라고 환호합시다.우리는 성모님께서 바라보시도록 우리 자신을 놓아 둡시다. 바라보시도록, 껴안으시도록, 손을 잡으시도록 우리 자신을 놓아 둡시다.

 

바라보시도록 우리 자신을 놓아 둡시다. 특히 어려운 때에 우리가 인생의 매듭 안에서 엉켜 있을 때 우리는 성모님을 향해, 우리의 어머니를 향해 똑바로 우리의 눈을 듭니다. 하지만 먼저 우리는 성모님께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성모님께서는 죄인들을 보지 않으시고 자녀들을 보십니다. 눈은 영혼의 거울 입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님의 눈은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비추십니다. 그 눈은 우리에게 비치는 하느님 나라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오 복음 6,22). 성모님의 눈은 모든 어두운 곳에 빛을 가져다 주실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눈은 모든 곳에서 희망을 다시 밝히십니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의 자녀들아. 너희의 어머니 내가 여기에 있다.”

 

이 어머니의 모성의 눈길은 확신과 신뢰를 불어 넣어주고 우리가 믿음 안에서 자라도록 도와 줍니다. 믿음은 전인적으로 관계를 맺는 하느님과의 결합입니다. 그것이 유지되기 위해서 천주의 성모님이 필요합니다. 그분 어머니의 눈길은 우리가 하느님의 충실한 백성 안에 있는 사랑 받는 자녀로서 바라보도록 우리 자신을 도와 줍니다. 그리고 우리의 개인적인 한계들과 방법들과 상관없이 서로 사랑하도록 돕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일치가 다양성보다 더 중요한 교회 안에서 계속 뿌리내리도록 해 주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서로를 돌보도록 격려하십니다. 마리아 님의 눈길은 믿음은 미적지근해지는 것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는 다정한 사랑(tenderness)을 요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다정한 사랑. 다정한 사랑의 교회. 다정한 사랑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전에서 지우고 싶어하는 말입니다. 신앙이 천주의 성모님을 위한 자리를 만들 때 우리는 결코 핵심을 놓치지 않습니다. 주님, 마리아님은 결코 자기 자신을 가리키지 않고 예수님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님은 어머니이므로 우리 형제 자매들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눈길 그리고 모든 어머니들의 눈길. 어머니의 눈길이 없는 미래에 기대를 거는 세상은 근시안적입니다. 그런 세상은 이득을 늘리겠지만 더 이상 다른 이들을 자녀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세상은 돈을 벌겠지만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집에서 살겠지만 그러나 형제 자매로서는 아닐 것입니다. 인류 가족은 어머니들 위에서 건설되었습니다. 어머니로서의 다정함이 단순한 감정으로 묵살되는 세상은 물질적으로는 부유할지 모르지만 미래가 우려되는 가난한 곳입니다. 천주의 성모님, 당신께서 하시는 대로 삶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를 굽어 보소서 우리의 비참함, 우리의 가난을 굽어 보소서. 저희를 인자로운 눈으로 굽어 보소서.

 

껴안으시도록 우리 자신을 놓아 둡시다. 마리아님의 눈빛에서 우리는 지금 마리아님의 마음이 됩니다. 그 마음 안에서 오늘의 복음 말씀이 이야기하듯이 성모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복음 2, 19). 즉, 우리의 성모님께서는 모든 일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모든 것을, 좋은 일 나쁜 일 모두를 껴안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 앞으로 그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비밀이었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성모님께서는 지금 우리 각자의 삶을 마음에 담으십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을 껴안고 싶어하시고 그것을 하느님께 바치고 싶어 하십니다.

 

오늘의 분열된 세상에서 우리가 우리 인내심을 잃을 위험에 처한 세상에서 어머니의 껴안으심이 꼭 필요합니다. 얼마나 많은 고독과 흩어짐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까! 세상은 완전히 연결되어 있지만 더욱 더 해체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의 어머니께 의탁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우리의 성모님은 구체적인 상황들을 껴안으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성모님이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에나 현존하십니다. 성모님은 그분의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가나의 신혼부부를 도우러 오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이층 방에서 제자들을 격려하십니다… 마리아님은 고독과 흩어짐에 대한 치유입니다. 그분께서는 위로의 어머니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혼자”인 사람들과 “함께” 서 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말은 위로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현존은 필요하고 성모님께서는 어머니로 현존하십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의 삶을 껴안으시도록 합시다. 성모찬송에서 우리는 성모님을 “우리의 생명”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과장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 당신 자신이 “생명”이기 때문(요한 복음 14,6)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님은 너무나 가깝게 그분과 일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너무나 가까워서 우리는 우리의 손을 성모님께 얹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을 하지 못하고 성모님을 “우리 생명, 기쁨 희망”으로 인정하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삶의 여정에서 손을 잡으시도록 우리 자신을 놓아둡시다. 어머니들은 자신의 자녀들의 손을 잡고 사랑스럽게 자녀들을 생명으로 이끕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오늘날 홀로 헤매고 자신의 길을 잃어 버리고 있습니까.자신들이 강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은 길을 잃습니다.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은 노예가 됩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잊어 버리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 안에서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무관심 안에서 살고 있습니까! 슬프게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모든 것에 대해 비통함과 원한으로 반응합니까! 생명은 그런 것입니다. “악의적인” 자기 자신을 보이는 것조차 때때로 강함의 표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름 아닌 약함입니다. 영웅주의는 자기 자신을 내어 줄 때 드러나고 연민 안에서 강함이 드러나고 온유함 안에서 지혜가 드러난다는 것을 우리가 어머니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어머니가 필요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이 그러합니까! 예수님 당신 자신께서 십자가에서 어머니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복음 19,27).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모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성모님께서는 선택적인 부속물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우리의 인생 안에서 따뜻하게 맞아들여져야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평화의 여왕이시고 어머니께서는 악을 이기시고 우리를 선한 길로 이끌시고 어머니께서는 그분 자녀들과의 일치를 되돌려 놓으시고 우리에게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마리아님, 저희의 손을 잡아 주소서. 당신에게 매달리며 우리는 역사의 곤경을 안전하게 지나가겠나이다. 우리의 손을 잡고 이끄시어 일치를 이루는 결합을 회복시켜 주소서. 당신의 망토 아래 진정한 사랑의 다정함 안에로 우리를 모으소서. 그곳에서 인류 가족은 다시 태어납니다. “천주의 성모님, 당신의 보호에 저희를 맡기오니”. 우리 다같이 우리의 성모님께 이렇게 기도합시다. “천주의 성모님, 당신의 보호에 저희를 맡기오니”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documents/papa-francesco_20190101_omelia-giornatamondiale-pac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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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하늘베로니카모바일에서 올림 (2019/01/12 06: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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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F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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