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미사 강론 :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강론[ 2018년 12월 25일 화요일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 강론]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강론[ 2018년 12월 25일 화요일 주님 성탄 대축일]

 

Fran.의 글

2018-12-30 21:48:38 조회(441)

  이 게시글이 좋아요 싫어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s://www.vaticannews.va/en.html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8.index.html

---------------------

[교황님 강론 날짜] 2018년 12월 25일 화요일[주님 성탄 대축일 - 밤 미사]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이사야서 9,1-6

화답송 : 시편 96(95),1-2ㄱ.2ㄴ-3.11-12.13(◎ 루카 2,11 참조)

제2독서 : 티토서 2,11-14

 복음 : 루카 복음 2,1-14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9916&gomonth=2018-12-25&missatype=DA

------------------



밤 미사

주님 성탄 대축일

교황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강론

 

바티칸 대성전

2018년 12월 24일 월요일

 

마리아와 함께 요셉은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루카 복음 2,4)로 올라갔습니다. 우리도 크리스마스의 신비를 그곳에서 발견하기 위해서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베들레헴. 그 이름은 빵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이 “집”에서 주님께서 오늘 모든 인류와 만나시기를 바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살기 위해 음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또한 이 세상의 음식물이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성경에서 인간의 원죄는 바로 음식을 먹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부모는 “열매를 따서 먹었다”고 창세기는 말합니다(창세기 3, 6 참고). 그들은 따서 먹었습니다. 인류는 탐욕스러워지고 게걸스러워졌습니다. 우리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의미가 소유하는 것에서 찾아지고 필요한 것 이상의 물질적인 것들을 갖는 것에서 찾아집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은 인류 역사 전체에 자국을 냅니다. 오늘날까지도 역설적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 모두가 살기 위해 필요한 일용할 양식이 없이 지내는 반면 적은 수의 사람들이 호화롭게 잘 차려 먹을 때 그러합니다.

베들레헴은 역사의 진로를 바꾸는 전환점[turning point]입니다. 그곳 빵의 집에서 하느님께서 구유에서 태어나십니다.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싶어하시는 듯 합니다. “나 여기 있다, 너의 음식으로”. 그분께서는 받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먹으라고 주십니다. 즉,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단지 어떤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을 주십니다. 베들레헴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생명을 받지 않으시고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받아 먹는 것에 익숙한데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마태오 복음 26,26). 베들레헴 아기의 그 작은 몸이 우리에게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길에 대해 말해 줍니다. 즉 게걸스럽게 먹고 비축함으로써가 아니라 나누고 줌으로써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음식이 될 수 있도록 당신 자신을 작게 만드십니다. 그분을, 생명의 빵을 먹음으로써 우리는 사랑 안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고 그리고 욕심과 탐욕의 순환을 부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빵의 집”에서 집으로 다시 데려가십니다. 우리가 우리 이웃들에게 하느님의 가정, 형제들과 자매들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구유 앞에서 서서 우리는 생명의 음식이 물질적인 부유함이 아니라 사랑임을 깨닫고 폭음 폭식이 아니라 자선, 과시가 아니라 소박함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날마다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것이 그분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매일 그분 생명을 주시는 이유입니다. 베들레헴의 구유에서부터 예수살렘의 이층 방으로. 오늘도 제대 위에서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쪼개어지십니다. 그분께서는 들어가 우리와 함께 먹기 위해서 우리의 문을 두드리십니다(요한묵시록 3,20)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세상에서 예수님,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을 받습니다. 결코 썩어가는 빵이 아니라 현재에도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볼 수 있도록 해 주는 빵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 오셔서 그 안에 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그 선물을 맞이한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작되어 역사는 바뀝니다. 예수님께서 일단 우리 마음 안에 사시기 때문에 삶의 중심은 더 이상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자아가 아니라 사랑 때문에 태어나고 사시는 한 분이 [삶의 중심이] 됩니다. 오늘밤 우리가 베들레헴 빵의 집으로 올라가라는 부르심을 받으면서 우리 자신에게 불어 봅시다. 우리 삶의 빵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내가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입니까? 주님입니까 아니면 다른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나서 우리가 그 온유한 가난 속에서 새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 생명의 새로운 향기를 느끼면서 소박함의 향기를 맡으면서 마구간에 들어 갈 때 우리 자신에게 물어 봅시다. 나는 정말로 살아 가는데 이 물질적인 것들과 복잡한 레시피들이 필요할까? 나는 이 모든 불필요한 여분들 없이 해나갈 수 있고 더 위대한 소박함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베들레헴에서 예수님께서 누워 계신 곳 옆에 스스로 여정을 해 온 사람들, 마리아, 요셉 그리고 목동들을 봅니다. 예수님은 여정을 위한 빵입니다. 그분께서는 오래 질질 끄는 식사를 좋아하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쪼개어지는 빵과 같이 섬기기 위해서 식탁에서 빨리 일어나라고 분부하십니다. 크리스마스에 나는 나의 빵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과 나누고 있습니까?

빵의 집으로서의 베들레헴 다음으로 다윗 고을 베들레헴을 묵상합시다. 거기에서 어린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목동이 되라고 그분 민족의 지도자가 되라고 하느님께 선택을 받았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다윗 고을에서 예수님을 세상으로 따뜻하게 맞이한 사람들은 목동들이었습니다. 그날 밤에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루카 복음 2,9) 그러나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루카 복음 2,10)라고 말했다고 복음이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얼마나 자주 우리는 복음에서 이 구절을 듣습니까?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내실 때에 끊임없이 그 말씀을 되풀이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태초부터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하느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후에 아담이 말합니다.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창세기 3,10). 베들레헴은 이 두려움에 대한 치료약입니다. 되풀이 되는 사람의 “아니오(no)’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yes”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현존이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도록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온유한 아이로 만드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 말은 성인들에게 이야기 된 것이 아니라 목동들에게 그 시대에 확실히 세련된 태도나 경건한 언행으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소박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되었습니다. 결코 다시는 아무도 혼자가 되지 않을 것이고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기 위해서 다윗의 자손이 목자들 가운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신 목자, 우리 모두를 예외 없이 사랑하시는 목자가 계십니다.

베들레헴의 목자들은 또한 우리에게 주님을 만나기 위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말해 줍니다. 그들은 밤에 계속 망을 보고 있었습니다. 즉, 목자들은 자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주 우리 모두에게 하라고 하신 일을 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마태오 복음 25,13. 마르코 복음 13, 35, 루카 복음 21, 36 참고) 그들은 어둠 속에서 주의 깊게 깨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빛은 그때에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습니다(루카 복음 2, 9). 이것은 또한 우리를 위한 사실입니다. 우리의 삶은 기다림으로 나타내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문제들의 어둠 속에서 주님 안에서 희망하고 그분이 오시기를 열망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분의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우리의 삶은 탐욕으로 얼룩질 수 있는데 그곳에서 오로지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힘과 능력입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의 빛이 막힌 채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기다려 지는 것을 매우 좋아하시고 그리고 우리는 소파 위에서 누워서 자면서 그분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바로 떠납니다. 우리는 그들이 “서둘러” 갔다고 이야기를 듣습니다(루카 복음 2, 16). 그들은 그곳에서 이미 도착한 사람들처럼 있지 않고 아무것도 필요치 않은 사람들처럼 거기에 서 있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고 그들은 떠납니다 그들은 그들의 양떼 무리들을 지키지 않은 채 떠납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들은 세련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탄생을 선포하러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도록 말입니다(루카 복음 2,18).

꺠어서 지키기, 떠나기, 위험을 감수하기, 아름다움을 자세히 말하기. 이 모든 것은 사랑의 행위들입니다. 착한 목자께서는 크리스마스에 양들에게 그분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시고 나중에 부활절에 베드로에게 베드로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궁극적인 질문을 하실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복음 21, 15). 양 떼들의 미래는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오늘밤 우리도 예수님께 다음의 말로 대답하기를 요청 받습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대답은 양 떼 전체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베들레헴으로 가”자. (루카 복음 2, 15) 이 말들로 목자들은 떠납니다. 우리도,  주님, 베들레헴으로 올라가고 싶습니다. 오늘도 그 길은 힘든 오르막길입니다. 즉, 극치의 우리 이기심은 극복되어야 하고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발 디딘 곳을 잃거나 세속성과 소비주의로 미끄러져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저는 베들레헴으로 가고 싶습니다. 주님. 왜냐하면 그곳에서 당신께서 저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구유에 누워계신 당신이 우리 삶의 빵이심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저는 당신 사랑의 온유한 향기가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세상을 위해 나누어진 빵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당신의 어깨에 저를 떠메어 주십시오, 착하신 목자님. 당신의 사랑을 받으며 제가 저의 형제 자매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크리스마스가 올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때 말입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요한 복음 21, 17 참고)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8/documents/papa-francesco_20181224_omelia-natale.html

 

 

 

 

 

  

카카오톡에서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구글+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PC버전 홈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마리아사랑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