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미사 강론 : 세계 가난한 이의 날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2018년 11월 18일 주일[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미사 강론] 세계 가난한 이의 날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2018년 11월 18일 주일[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Fran.의 글

2018-12-14 16:41:41 조회(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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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s://www.vaticannews.va/en.html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8.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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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8년 11월 18일 주일[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다니엘 예언서 12,1-3

화답송 : 시편 16(15),5와 8.9-10.11(◎ 1 참조)

제2독서 : 히브리서 10,11-14.18

복음 : 마르코 복음 13,24-32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8930&gomonth=2018-11-18&missatype=DA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당일 복음 말씀은 마태오 복음 14장, 제2독서 말씀은 에페소서 12장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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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가난한 이의 날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베드로 대성당

2018년 11월 18일 연중 제 33주일

 

오늘의 복음 말씀 안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세 가지를 바라봅시다.

 

첫째. 아직 낮일 때 그분께서는 “떠나십니다”. 그분께서는 빵 다섯 개를 늘리시어 칭송을 받는 그분 성공의 절정에서 군중들을 떠나십니다. 제자들이 영광을 누리고 싶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먼저 가게 하시고 군중을 돌려보내셨습니다(마태오 복음 14,22-23). 사람들이 찾았지만 그분께서는 홀로 자리를 뜨셨습니다. 흥분이 가라 안는 동안 그분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새벽에 그분께서 내려오셔서 바람에 파도가 이는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십니다. 이 모든 일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흐름을 거슬러 가십니다. 첫째 그분께서는 성공을 뒤로 하고 떠나십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평온함.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떠날 용기를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부풀리는 성공을 뒤로하고 영혼을 죽이는 평온함을 뒤로하고 떠날 용기.

 

어디로 갑니까? 기도함으로써 하느님께 그리고 사랑함으로써 궁핍한 사람들에게. 이 사람들은 삶에서 진정한 보물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시는 길입니다. 하느님께 올라가라고 그리고 우리의 형제 자매들에게 내려가라고. 그분께서는 우리를 삶의 편안한 풀밭 안에서의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목초지에서 우리를 떼어 놓으십니다. 약간의 일상적인 쾌락들 안에서 편안한 삶을 사는 것에서 우리를 떼어 놓으십니다. 그분의 제자들은 인생의 근심 걱정 없는 평범한 고요함으로 운명 지어져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그들은 빛을 여행하면서 나아가고 일시적인 영광들을 뒤로 하고 떠날 준비를 하고 덧없는 재물들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주의하면서 자신들의 길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본향이 다른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은 지금조차도 –바오로 사도가 제2독서에서 우리에게 상기시킨 것 같이 –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에페소서 2,19 참조). 그들은 여행자가 되는 것에 익숙합니다. 우리는 축적하려고 살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광은 지속되는 것들을 붙잡기 위해서 사라지는 것들을 영원히 떠나는데 있습니다. 우리를 제1독서에 묘사되어 있는 교회처럼 만들어주시기를 하느님께 간청합시다. 즉 언제나 여행 중에 있고 떠나는 것에 익숙하고 섬길 때에 충실한(사도행전 28,11-14 참조). 우리의 게으른 평온함에서 주님 저희를 깨우소서. 우리의 안전한 항구들의 조용한 휴식에서 저희를 깨우소서. 삶을 짓누르는 자기 도취의 정박소에서 저희들을 해방시켜 주소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소서, 주님, 당신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러 오신 길, 하느님을 향한 길 그리고 이웃들을 향한 길로 떠나기 위해서 어떻게 “떠나야” 하는지를 깨닫도록 가르쳐 주소서.

 

두 번째. 한밤중에 예수님께서 안심시키십니다. 그분께서는 어둠 속에서 “호수 위(on the sea)”를 걸으시어 제자들 쪽으로 가셨습니다(마태오 복음 14,25). 이 장면에서 “호수(sea)”는 정말로 호수(lake)이지만 “호수(sea)”의 개념은 어둡고 음침한 깊이를 갖고 악의 세력을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인간의 악의적인 원수들을 짓밟으심으로써 제자들을 만나러 가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표징의 의미입니다. 그것은 권능의 승리에 취한 전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커다란 적들, 즉 악마, 죄, 죽음, 두려움, 세속화에 대해 예수님 홀로 승리하신다는 용기를 주는]확신의 계시입니다. 오늘 그리고 우리에게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오 복음 14,27)

 

우리 인생이라는 배는 자주 폭풍에 휩쓸리고 바람에 뒤흔들립니다. 그 물이 잠잠할 때조차도 빠르게 동요됩니다. 우리가 그 폭풍에 붙들려 있을 때 폭풍은 단지 우리의 문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일시적인 폭풍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삶 전체를 통해 항해하고 있는가 입니다. 잘 항해하는 비밀은 예수님을 배에 초대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키가 그분에게 넘겨져야 합니다. 그분께서 항로를 향해 나아가시도록 말입니다. 그분만이 죽음 안에서 생명을 주시고 고통 안에서 희망을 주십니다. 다시 말해 그분만이 그분의 용서로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시고 확신을 심어주심으로써 두려움에서 해방시키십니다. 오늘 우리 인생의 배로 예수님을 초대합시다. 그분께서 일단 배에 오르시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친다는 것을, 그리고 난파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제자들처럼 우리가 깨달을 것입니다(마태오 복음 14,32). 그분께서 배에 오르시면 결코 난파는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그렇게 안도감을 줄 수 있습니다. 공허한 말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으로 그리고 생명의 행함으로 다른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는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진정한 위로를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공허하게 격려하는 말이 아니고 힘을 주시는 예수님의 현존입니다. 저희를 평안하게 하소서, 주님. 당신께 위로를 받으며 우리가 진정한 위로를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하신 세 번째 일. 폭풍 속에서 그분께서는 그분의 손을 내미셨습니다(마태오 복음 14,31 참고) 그분께서는 베드로를 붙잡으십니다. 베드로는 두려움과 의심 때문에 가라앉고 있었고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마태오 복음 14,30)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베드로의 입장에 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간구하지만 작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삶 안에서 원하고 있고 우리를 악에서 우리를 구하시려고 내미시는 주님의 손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자기 만족을 느끼게 만드는 교만함을 떨쳐 버리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이 필요하다고 깨닫는 것. 신앙은 이러한 환경 안에서 자라 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받침대에 고정시켜 놓는 것이 아니라 궁핍하고 도와달라고 소리지르는 사람들 옆에 자리 잡음으로써 그 환경에 우리 자신을 적응시킵니다. 이것이 왜 우리 모두가 궁핍한 사람들과 접하며 우리 신앙을 사는 것이 중요한지 이유입니다. 이것은 사회학적인 선택이나 한 교황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학적인 요청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간청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 모든 형제 자매들, 특히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복음의 영을 껴안습니다. “가난의 영과 사랑의 영–공의회가 말합니다–이 실재로 그리스도 교회의 영광이고 증언입니다.”(Gaudium et Spes, 88).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울부짖음을 들으십니다. 인생의 파도로 뒤흔들리는 모든 이들의 울부짖음을 듣는 은총을 간구합시다. 그것은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 태아들과 굶주리는 아이들의 숨막히는 울부짖음, 운동장의 행복한 외침보다 폭탄의 폭발에 더 익숙한 젊은이들의 억압받는 울부짖음입니다. 그것은 버려지고 스스로에게 유기된 노인들의 울부짖음입니다. 그것은 친구 하나 없이 인생의 폭풍에 직면한 모든 사람들의 울부짖음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그들의 집에서 조국에서 억지로 도망치도록 강요 받은 모든 사람들의 울부짖음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중요한 자연 자원조차도 빼앗긴 모든 민족들의 울부짖음입니다. 정의롭게 모든 이들에게 속해야 할 것들을 두고 부유한 자들이 잔치를 벌일 때 눈물을 흘리는 모든 라자로의 울부짖음입니다. 불의함은 왜곡된 가난의 근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은 날마다 더 커져 가지만 점점 더 작게 들립니다. 매일 그 울부짖음은 더 커지지만 매일 더 작게 들립니다. 소수의 부자들의 소음으로 더 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 부자들은 훨씬 더 적어지고 더 부유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멸시 받을 때 우리는 종종 팔짱을 끼고 있거나 악의 암울한 힘 앞에서 우리 절망의 징표로 힘들어 하며 한계를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관심 속에서 팔짱을 끼고 있을 수 없습니다. 또는 도와 주지 않으면서 팔을 내뻗으며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있을 때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은 들리도록 소리를 냅니다.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우리와 함께 있을 때로 그렇게 됩니까? 또는 우리에게 보는 눈, 듣는 귀, 도움을 주기 위해 내밀 손이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반복해서 “내일 다시 올래요?”라고 말합니까? “그리스도는 몸소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그분 제자들의 자애에 호소하십니다.” (Gaudium et Spes, loc. cit.). 그분께서 우리에게 배고프고 목마른 모든 사람들 안에서, 이방인들과 존엄성을 뺴앗긴 사람들, 아픈 사람들과 감옥에 갇힌 사람들 안에서 당신을 알아 보라고 하십니다(마태오 복음 25, 35-36).

 

주님께서 당신의 손을 내미십니다. 의무에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내미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 주님의 손은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선을 행하라고 부름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평범한데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더 큰 일을 하기를 요구하십니다(마태오 복음 5,46). 즉, 되돌려 줄 것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주고 무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루카 복음 6,32-36 참고). 오늘날 우리의 시대 안에서 둘러 봅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에서 우리는 완전히 무상으로 어떤 일을 합니까, 우리에게 갚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우리가 내미는 손, 하느님 나라에 쌓는 우리의 진정한 보물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손을 우리에게 내밀어 주십시오, 주님, 그리고 우리를 붙들어 주십시오. 당신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사랑하도록 도우소서. 사라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우리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편안함의 근원이 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 그리고 궁핍한 모든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소서. 아멘.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8/documents/papa-francesco_20181118_omelia-gionatamondiale-poveri.html

 

*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교황님 미사 강론을 통해 돌아오는 대림 제3주일 자선 주일을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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