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미사 강론 : 주교 시노드 제15차 정기총회 폐막 장엄 미사[2018년 10월 28일 주일(연중 제30주일) ]

 

[미사 강론] 주교 시노드 제15차 정기총회 폐막 장엄 미사[2018년 10월 28일 주일(연중 제30주일) ]

 

Fran.의 글

2018-11-06 12:01:50 조회(399)

  이 게시글이 좋아요 싫어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s://www.vaticannews.va/en.html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8.index.html

 

---------------------

[교황님 강론 날짜] 2018년 10월 28일 주일[연중 제30주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예레미야서 31,7-9

화답송 : 시편 126(125),1-2ㄱㄴ.2ㄷㄹ-3.4-5.6(◎ 3 참조)

제2독서 : 히브리서 5,1-6

복음 : 마르코 복음 10,46ㄴ-52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8907&gomonth=2018-10-28&missatype=DA

--------------------


 

 

주교 시노드 제15차 정기총회

폐막 장엄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2018년 10월 28일 주일

 

우리가 방금 들은 구절은 저 복음사가들 중 마지막 복음 사가인 마르코가 예수님의 순회전도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막 입성하려는 참이었습니다. 바르티매오는 그렇게 그 길을 따라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 중 마지막 사람입니다. 예리코로 가는 길을 따라 가는 거지에서 그는 예루살렘을 향한 길에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 걷는 제자가 됩니다. 우리도 서로 함께 길을 따라 걸어왔습니다. 우리는 “시노드”여 왔습니다. 이 복음은 신앙의 여정에서 세 가지 기본 단계를 확정 짓습니다.

첫 째, 바르티매오에 대해 생각합시다. 그의 이름은 “티매오의 아들”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복음 말씀이 그를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즉,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마르코 복음 10,46).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아버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바르티매오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서 아버지 없이 혼자 길가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사랑 받지 못하고 있고 버려져 있습니다. 그는 눈멀었고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가 말하려고 애썼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간청’을 들으십니다. 바르티매오가 그분께 갈 때 그분께서는 그가 말하게 하십니다. 바르티매오가 원하는 것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눈먼 사람은 보고 싶거나 그의 시력을 다시 찾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시간을 내십니다. 그분께서는 듣기 위해서 시간을 내십니다. 이것이 신앙의 여정을 돕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듣기’. 그것이 귀의 사도직입니다. 즉, 말하기 전에 듣기.

그렇게 하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르티매오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명령했습니다(마르코 복음 10, 48). 그 제자들에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길에서 귀찮은 존재였고 기대하지 못한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해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승님의 시간표보다 그들 자신의 시간표를 더 좋아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기보다 그들 자신이 말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마음에 자기 자신의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는 위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의 외침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보람 있는 과제입니다. 우리가 삶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들은 그들의 형제 자매들을 염려합니다. 쓸모 없는 수다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웃들에 대한 요구에 맞게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의 기도에 해 주시는 것과 똑같이 바로 그렇게 그들은 끈기 있게 그리고 사랑하면서 귀 기울여 듣습니다. 그러나 그 일들은 지루하게 반복적일지도 모릅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지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찾을 때 언제나 행복하십니다. 우리도 듣는 마음의 은총을 간구하게 하소서. 나는 우리 어른들의 이름으로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종종 우리가 여러분에게 귀 기울여 듣지 않아 왔다면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우리의 마음을 열지 않고 우리가 여러분의 귀를 채워 왔다면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우리는 사랑으로 여러분에게 귀 기울여 듣고 싶습니다. 즉 확실한 두 가지. 즉, 하느님의 눈에 여러분의 삶은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젊으시고 젊은이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은 우리들의 눈에도 소중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정말로 꼭 필요합니다.

듣기 다음에 신앙의 여정에서 두 번째 단계는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많은 군중” 중에서 누군가를 대리로 보내지 않으시고 바르티매오를 직접 만나러 가십니다. 그분께서는 그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마르코 복음 10, 51)무엇을 바라느냐…-예수님께서는 바르티매오에게 온전히 전념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를 피하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 내가 무엇을 해 주기를 – 단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행하시겠다는. … 너에게 – 나 자신이 미리 한 생각에 따라서가 아니라 너에게, 너의 개인적인 특정한 상황에서. 그것이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분께서는 몸소 모든 사람을 위해 특혜의 사랑으로 관여하십니다. 그분의 행함을 통해서 그분께서는 이미 그분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그렇게 신앙은 삶 속에서 꽃피웁니다.

신앙은 삶을 관통합니다. 신앙이 단지 교리 공식과 연관될 때 그것은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오로지 머리에만 말하는 위험에 처합니다. 그리고 신앙이 활동에만 연관될 때 그것은 단순한 설교나 사회 사업으로만 되어 버리는 위험에 처합니다. 신앙은 그것이 아니라 삶입니다. 신앙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교리와 활동 사이에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하느님 당신의 길에서 수행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친밀함 안에서, 그분을 향해서 헤치며 나아감으로써 서로와의 친교 안에서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따라서. 친밀함. 그것은 신앙의 심장을 소통하는 비밀입니다. 부차적인 측면이 아닙니다.

이웃이 되는 것은 하느님의 새로우심을 우리 형제 자매들의 삶 안으로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쉽게 대답하고 빨리 고치려는 유혹에 대한 해독제로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집단에서 걸어 나와서 그리고 “우리 중 하나”가 아닌 사람들, 하느님께서 절절하게 찾으시는 그 사람들을 껴안으면서 우리가 이웃이 될 수 있는지를 우리 자신에게 물어 봅시다. 성경에서도 너무나 자주 보이는 유혹은 항상 거기에 있습니다. 즉, 우리의 손을 씻는 유혹. 그것은 오늘날의 복음 속에서 군중들이 한 행동입니다. 카인이 아벨에게 했던 짓입니다. 그리고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했던 행동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손을 씻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그분과 같이 우리 손을 더럽히기를 원합니다. 그분께서는 길입니다(요한 복음 14,6 참조). 그분께서는 바르티매오를 위해서 길에서 멈추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세상의 빛입니다(요한복음 9,5). 그분께서는 눈먼 사람을 돕기 위해서 몸을 굽히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그분의 손을 더럽혀 왔다는 것을 깨달읍시다. 십자고상을 바라봅시다. 그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어 하느님께서 죄와 죽음 안에서 나의 이웃이 되셨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분께서는 나의 이웃입니다. 그것 모두가 거기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도 이웃을 될 때 우리는 새로운 삶을 가져오는 사람이 됩니다. 모든 사람들의 선생님이 아닌, 종교적인 것들의 전문가가 아니라 그저 구원하시는 사랑의 증인으로서.

세 번째 단계는 증언입니다. 예수님의 요청에 바르티매오를 부르는 제자들을 생각합시다. 그들은 그의 입을 닫으려고 또는 충고를 하려고 동전을 갖고 거지에게 다가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갑니다. 진실로 그들은 그에게 오로지 세 개의 말을 말합니다. 그리고 세 개의 말 모두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마르코 복음 10,49) 복음 안에서 다른 모든 곳에서 예수님만이 홀로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왜냐하면 그분만이 홀로 예수님을 마음에 새기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복음에서 예수님 만이 홀로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영과 몸을 치유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홀로 그분을 따를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면서 쓰러진 사람들이 일어나도록 도우시면서 하느님의 빛을 삶의 어둠으로 가져다 주시면서 부르십니다. 바르티매오와 같은 매우 많은 자녀들, 그토록 많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빛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실한 사랑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군중들 속에서 예수님만을 향해 외치는 바르티매오같이 그들도 생명을 찾지만 그러나 종종 허무한 약속들만 발견하고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을 소수의 몇 명밖에는 발견하지 못합니다.

구하는 사람들인 우리 형제 자매들이 우리의 문을 두드렸어야만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들을 향해 밖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전하면서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그 제자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분의 이름으로 그들을 일으켜 세우라고 우리를 보내십니다. 그분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우리를 앞으로 보내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당신 자신이 그분의 사랑을 받도록 하라고 청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자주 우리가 이 해방시키는 구원의 메시지가 아닌 우리 자신을 전하고 우리 자신의 “레시피들”과 “꼬리표들”을 교회에 전하는지요! 얼마나 자주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그분의 말씀인양 퍼뜨려 왔는지요! 얼마나 자주 사람들이 친구 같은 예수님의 현존보다 더 많이 우리 제도들의 무게를 느끼는지요! 이러한 경우들에서는 우리는 비정부기구와 국가가 운영하는 기관과 더 닮은 모습으로, 주님의 기쁨 안에서 사는 구원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닌 모습으로 활동합니다.

듣기, 이웃 되기, 증언하기. 오늘의 복음 말씀 안에서 그 믿음의 여정은 예수님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코 복음 10,52)라고 말씀하실 때 아름답고 놀라운 방식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바르티매오는 신앙을 고백하지도 않았고 어떤 선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자비를 간구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그것에 예수님을 만나는 직통로입니다. 바르티매오를 구원한 믿음은 하느님에 대한 그의 명석한 사상과 아무 관련이 없었고 그는 그분을 찾고 그분과 만나기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믿음은 만남에 관한 것입니다. 신학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만남 안에서 예수님께서 지나가십니다. 만남 안에서 교회의 심장은 고동칩니다. 이처럼 우리 설교가 아니라 우리 삶의 증언이 주효할 것입니다.

이 “함께하는 여정”에 참여해온 여러분 모두에게 나는 여러분의 증언에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친교 안에서 솔직함으로 그리고 하느님 백성을 섬기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일해 왔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축복하소서.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귀 기울여 듣고 이웃이 되고 그리고 그들 앞에서 예수님을 우리 삶의 기쁨을 증언할 수 있도록 우리의 발걸음을 축복하소서. 

 

 

강론 영어 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8/documents/papa-francesco_20181028_omelia-chiusura-sinodo.html

 

 

 

  

카카오톡에서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구글+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PC버전 홈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마리아사랑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