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미사 강론 : 미사에서 교황, 가난함의 세가지 형태[2018년 10월 18일 목요일(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미사 강론] 미사에서 교황, 가난함의 세가지 형태[2018년 10월 18일 목요일(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Fran.의 글

2018-10-23 18:09:35 조회(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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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s://www.vaticannews.va/en.html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8.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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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8년 10월 18일 목요일[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4,10-17ㄴ

화답송 : 시편 145(144),10-11.12-13ㄱㄴ.17-18(◎ 12 참조)

 복음 : 루카 복음  10,1-9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8884&gomonth=2018-10-05&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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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18 Messa Santa Marta

 

미사에서 교황, 가난함의 세가지 형태.

https://www.vaticannews.va/en/pope-francis/mass-casa-santa-marta/2018-10/pope-francis-mass1.html

오늘 아침 까사 산타 마르타 미사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살아가는 빈곤의 세 가지 방식에 깊이 생각하고 오늘날조차도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을 묵상합니다.

까사 산타 마르타에서 오늘 아침 미사에서 교황은 제자가 부름을 받는 가난함의 세 가지 형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는 돈에서 벗어난 마음으로 부유함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크든 작든 심지어 중상이라도 복음 때문에 받는 박해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삶의 마지막에 혼자라고 느끼는 외로움이라는 가난함입니다. 교황의 묵상은 the Collect Prayer로 시작됩니다. 그것은 성 루카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특별히 사랑하심을 드러내고 싶어하셨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날의 복음 말씀(루카 복음 10,1-9)은 그리고 나서 일흔두 명의 제자들을 가난함으로 보내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길이 가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돈이나 부유함을 좋아하는 제자는 진정한 제자가 아닙니다.

돈에서 벗어난 마음을 가진 가난한 제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체 강론은 그러므로 제자들의 삶에서 가난함의 “세가지 단계”, 가난함을 사는 세가지 방법을 보여줍니다. 첫째 실제로 돈과 부유함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상태의 가난함인데 그것은 “제자됨의 길을 시작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그것은 “가난한 마음”을 가지는 것에 있습니다. 정말로 그러하므로 “사목 일에서 부유함의 표시가 될 것 같은 조직들 또는 체계들이 필요하다면 그것들을 잘 활용하십시오 - 그러나 벗어나십시오.” 교황이 경고합니다. 복음에 나오는 부자 젊은이 사실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그는 “재물을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싶다면 가난의 길을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당신에게 재물을 주셔서 재물을 갖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당신은 재물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제자는 가난함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와는 반대로 제자는 가난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쿄 교황은 분명히 말합니다.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가난함.

가난함의 두 번째 형태는 박해의 가난함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 구절 안에서 항상 실제로 주님께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고 중상을 당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어제 시노드 홀에서 박해가 있는 이러한 나라들 중 한 나라에서 온 주교가 교회를 미워하는 소년들의 집단,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잡힌 한 가톨릭 신자 소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매를 맞았고 그리고 나서 물 웅덩이에 던져졌고 그 소년의 목까지 찰 때까지 진흙이 퍼부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해라. 너는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할래? – “싫어!” 그들은 돌을 던졌고 그 소년을 죽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1세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2개월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예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육체적인 박해로 고통을 받는지요. 이렇게 말입니다. “오, 그것은 신성모독입니다! 교수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고 나서 또한 박해의 다른 형태들도 있다고 상기시켰습니다. 중상의 박해, 소문들의 박해가 있고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가난함”을 침묵 속에서 견딥니다. 때때로 추문을 일으키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지키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이웃 안에서 교구 안에서의 작은 박해들… 작은 그러나 그것들은 증거입니다. 즉 가난의 증거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가난의 두 번째 형태입니다. 첫째, 부유함을 떠나는 것, 부유함을 좋아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 그리고 두 번째 박해를 겸손하게 받아 들이는 것, 박해를 인내하는 것. 이것이 가난의 한 형태입니다.

버려짐을 느끼는 가난함.

그리고 다음으로 가난의 세 번째 형태가 있습니다. 즉, 고독함의 가난함, 버려짐의 가난함입니다. 이것의 한 예는 티모테오에게 보내는 둘째 서간의 오늘 제1독서말씀입니다. 제1독서에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은 위대한 바오로”는 법정에서 그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았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는 그의 곁에 계시면서 그를 굳세게 해 주셨다고 덧붙여 말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자의 버려짐에 대해 이렇게 묵상합니다. 어떻게 17살 또는 20살의 소년에게 또는 소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요. 그 소년, 그 소녀는 열정을 가지고 부유함을 떠나서 예수님을 따르고 그리고 나서 “강인함과 충성심으로” “중상, 매일 매일의 박해, 질투들”, “작거나 큰 박해들”을 참아내고 결국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마지막 고독”을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인류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정의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옵니다. 즉, 요한 세례자.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가장 큰 인물. 위대한 설교자. 사람들은 세례를 받기 위해 그에게 갔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끝났습니까? 홀로. 감옥에서. 그저 생각해 보십시오. 감옥 방은 어떠할까요. 감옥이 지금 그런 모습이라면 그 당시의 감옥 방은 어떠했을까요. 홀로, 잊혀져서 왕의 나약함 때문에 중상을 받고 부정한 여인의 미음과 한 소녀의 변덕 때문에. 그것이 역사 속에서 가장 큰 인물이 어떻게 끝나는지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리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신의 삶을 가르치는데 보낸 사제들이나 수녀들이 있는 연로한 사람들의 집들에서 자주 그들은 혼자라고 느낍니다. 오로지 주님만 함께 계시고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밖에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제자들은 가난의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몸소 약속하셨던 가난의 한 형태가 있습니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다른 이들이 (…)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제자는 그러므로 그가 부유함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가난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첫 단계입니다. “그는 크고 작은 박해들 앞에서 인내하기” 때문에 그는 이렇게 가난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 그는 삶의 마지막에 버려졌다고 느끼는 마음의 상태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는 가난합니다. 사실, 예수님 당신 자신의 길은 성부 하느님께 바치는 저 기도로 끝납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교황의 마지막 초대는 그리하여 모든 제자들 “사제들, 수도자들, 주교들, 교황들, 평신도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께 요구 받는 대로 가난의 길을 걷는 방법을 깨닫도록 말입니다.
 

2018년 10월 18일 11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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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죄인 (2018/10/23 20: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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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감사합니다.

찬미를 받으소서. 아멘. (Fran.)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8/10/25 11: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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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감사합니다.

찬미를 받으소서. 아멘. (F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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