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동안 선종하신 추기경들과 주교들의 영혼의 안식을 위한 거룩한 미사[2019년 11월 4일 월요일(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미사 강론&심쿵소리강론] 한해 동안 선종하신 추기경들과 주교들의 영혼의 안식을 위한 거룩한 미사[2019년 11월 4일 월요일(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Fran.의 글

2019-11-07 16:50:09 조회(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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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index.html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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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19년 11월 4일 월요일[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로마서 11,29-36

                           화답송 : 시편 69(68),30-31.33-34.36-37(◎ 14ㄷ 참조)

                            복음 : 루카 복음 14,12-14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1334&gomonth=2019-11-04&missatype=DA

                            * 교황님께서 강론하신 미사의 독서 말씀과 미사 말씀이 그날의 말씀 전례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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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동안 선종하신 추기경들과 주교들의 영혼의 안식을 위한 거룩한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바티칸 대성전, Altar of the Chair of Saint Peter

2019년 11월 4일

 

우리가 들은 독서 말씀은 우리가 들어 올려지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즉, 우리는 죽음이 아니라 부활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제2독서에서 쓴 대로 지금조차도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필리피서 3,20). 그리고 예수님께서 복음에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마지막 날에 들어 올려질 것입니다(요한 복음 6,40 참조). 그것은 제1독서에서 유다 마카베오를 “훌륭하고 숭고한 일을 하”도록(마카베오기 하권 12,43)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부활 사상이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들어올려지리라는 부르심에 나는 어떻게 응답하는가?

 

도우심은 먼저 예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분께서 오늘의 복음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요한 복음 6,37). 그것은 그분의 초대입니다. “나에게 오너라(마태오 복음 11,28 참조). 예수님께, 살아 계신 분께 오는 것, 죽음과 모든 것이 끝나리라는 공포에서 미리 보호되기 위해서. 예수님께 오는 것. 즉 이것은 일반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영적 권고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몇 가지 질문을 함으로써 그것을 구체적으로 만듭시다. 오늘 내가 사무실에서 다룬 서류철들 안에서 나는 주님께 가까이 다가갔는가? 나는 그것들을 그분께 말씀 드릴 기회로 삼았는가? 나는 내가 만난 사람들 안에 예수님을 관련시켰는가? 나는 기도 안에서 그들을 그분께 데리고 갔는가? 아니면 나는 오로지 나의 관심사만을 생각하면서 오로지 나를 위해서 잘되어 가는 일들 안에서 기뻐하면서 그렇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불평하면서 모든 일을 했는가, 한 마디로 나는 주님께 오는 나의 날을 살았는가 아니면 나는 오로지 단순히 나 자신의 궤도를 돌고 있었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나는 오로지 좋은 인상을 주는 것만 추구하고, 오로지 내 역할 내 일정 그리고 내 여가 시간을 지키는 것만을 추구하는가?

 

예수님의 말씀은 놀랍습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마치 그분께 오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물리쳐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궤도를 돌면서 예수님께 속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 속하는 사람들은 끊임 없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 그분께로 나아가며 살아 갑니다.

 

인생 그 자체가 끊임 없는 나아감입니다. 우리 어머니의 태중에서 우리의 태어남으로, 유아에서 청소년으로, 청소년으로부터 성인으로 등등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으로부터 나아가는 날까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이 삶으로부터 나아간 우리의 형제 주교들과 추기경들을 위해 오늘 우리가 기도한 것처럼 우리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어려운 “나아감”을 잊을 수 없습니다. 모든 다른 이들에게 의미를 주는 것, 바로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와 나아감. 오로지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와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우리는 주님께 이르는 문을 엽니다. 이러한 은총을 간구합시다. “주님, 저는 당신께로 오고 싶습니다, 길을 따라 제 여행의 동료들과 함께 매일 매일. 제가 당신을 향해 오기 위하여 저 자신으로부터 밖으로 나가도록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생명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생각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제1독서 말씀, 유다 마카베오가 죽은 이들을 위해서 했던 “숭고한 일”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들은 대로 그는 “경건하게 잠든 이들에게는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고 내다보았”(마카베오기 하권 12,45)기 때문입니다. 경건함, 독실함은 넉넉히 갚아집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경건함은 영원의 문을 엽니다. 가난한 이들 앞에서 그들을 섬기기 위해서 허리 굽혀 절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입니다. 만약 성 바오로가 말한 대로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코린토 1서 13,8) 라면  그때 사랑은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다리 그 자체입니다. 나는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의 상황에 감화되도록 나 자신을 놓아 두고 있습니까? 나는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 울 수 있습니까? 나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까? 나는 나에게 보답할 수 없는 누군가를 돕습니까? 이것은 감상적이거나 약간의 자선 행위에 참가하는것이 아닙니다. 이 물음들은 생명의 물음, 부활의 물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부활에 대한 세 번째 생각을 제시합니다. 나는 영신 수련으로부터 이것을 가져 왔는데 이 영신 수련에서 성 이냐시오는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우리는 마지막 때에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을 상상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그것은 마지막에 반드시 있을 순간, 우리 모두가 직면하게 될 순간입니다. 저 관점에서 바라보아 지는 모든 삶의 결정들은 잘 이끌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활, 삶의 의미이자 목적인 부활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출발이 그 목적지에 의해 계획되는 것처럼 씨 뿌리기가 그 추수에 의해 판단되는 것처럼 그렇게 인생은 그 끝과 목적으로부터 시작될 때 가장 좋게 판단됩니다. 성 이냐시오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내 심판의 때에 서 있는 나 자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내가 내렸어야 했다고 바라게 될 현재의 문제에 대한 어떤 결정을 묵상하겠습니다. 나는 지금 내가 그때 지켰어야 했다고 바라게 될 삶의 법칙을 선택할 것입니다”(영신 수련 187). 그것은 우리 자신의 눈이 아니라 주님의 눈을 통해서 현실을 바라 보는 유익한 수련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지나가 버린 날 뿐 아니라 미래, 부활을 바라보는 것, 영원의 풍미와 사랑의 맛이 있는 선택을 하는 것.

 

나는 매일 주님께 오기 위해서 나 자신으로부터 나와 나아갑니까? 나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실천합니까? 나는 하느님의 눈으로 중요한 결정을 합니까? 세가지 생각 중에 적어도 한가지 생각에는 도전을 받도록 우리 자신을 놓아 둡시다. 우리는 오늘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표현하신 열망에 더 많이 맞추어지고 조율되어야 합니다. 그 열망은 성부 하느님께서 그분께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는 것입니다(요한 복음 6, 39 참조). 삶의 의미를 잃게 만드는 너무나 많은 세속적인 목소리들 가운데서 우리는 부활하시고 살아계신 예수님의 뜻에 조율되고 맞추어집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오늘 우리 삶을 부활의 새벽으로 만들게 될 것입니다.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documents/papa-francesco_20191104_omelia-suffragio-defunti.html

교황님 미사 동영상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19/11/4/messa-suffragio.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www.mariasarang.net/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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