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성유축성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2016년 3월 24일 성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심쿵소리강론] 2016년 성유축성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2016년 3월 24일 성주간 목요일]

 

Fran.의 글

2019-08-13 12:18:19 조회(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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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3_2016년_성유축성미사_프란치스코_교황_성하의_강론[20.mp3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index.html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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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16년 3월 24일 목요일[성주간 목요일 - 성유 축성 미사]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이사야서 61,1-3ㄹ.6ㄱㄴ.8ㄷ-9

                           화답송 : 시편 89(88),21-22.25와 27(◎ 2ㄱ 참조)

                           제2독서 : 요한 묵시록 1,5-8

                            복음 : 루카 복음 4,16-21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7196&gomonth=2016-03-24&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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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 축성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당

2016년 3월 24일 성목요일

 

예수님께서 이사야 예언자로부터 읽으시고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복음 4,21)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후에 나자렛의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큰 박수 갈채를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성벽을 다시 쌓는 동안 느헤미야와 에즈라 그 사제가 율법서를 읽어 줄 때 백성이 울었던 바로 그대로 그들은 그때 기쁨으로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고을의 사람들은 그 반대였다는 것을 복음이 우리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그들은 그분께 그들의 마음을 닫았고 그분을 내몰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습니다(루카 복음 4,22). 그러나 그 다음에 서서히 퍼지는 의문들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루카 복음 4,22). 그리고 나서 “그들은 화가 잔뜩 났”습니다(루카 복음 4,28). 그들은 그분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떨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반대를 받는 표징”(루카 복음 2,34)이 될 것이라고 동정 마리아께 했던 나이든 시메온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동으로 모든 남자와 여자의 마음의 비밀들을 드러내십니다.  

주님께서 가난한 이들, 버림 받은 이들, 억압 받는 이들을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자비의 복음을 선포한 곳이 우리가 굳건히 서 있으라고 부름 받은 바로 그곳이고 “믿음을 위해서 훌륭히 싸우”라고(티모테오 1서 6,12) 부름 받는 바로 그곳입니다. 그분의 전투 상대는 남자들과 여자들 인간이 아니라, 악령들 (에페소서 6,12 참고) 인간의 적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분을 막으려고 하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고 그분의 길을 계속 가셨습니다.(루카 복음 4,30). 예수님께서는 권력을 세우려고 싸우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벽을 허무시고 우리들의 경계심에 도전하신다면 성부와 성령과 함께 우리 세상에 부어 주고 싶어 하시는 저 자비의 홍수의 문을 열기 위해서 그분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확장되는 자비. 다시 말해 그 자비는 새로움을 선포하고 전합니다. 그 자비는 치유하고 해방시키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합니다.

우리 하느님의 자비는 무한하고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앞을 향해 작음 발걸음을 걸으면서 그리고 무관심과 폭력이 판을 치는 황무지 안에서 전진하면서 우리는 이 신비의 힘을 “훨씬 더 위대한” 자비, 움직이는 자비, 하루 하루가 전진하기를 추구하는 자비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자비를 베푼”(루카 복음 10,37) 착한 사라미아인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고 그는 그 상처 입은 사람에게 다가갔고 그는 상처를 싸매 주었고 그를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그날 밤 그곳에 머물렀고 그리고 비용이 더 들면 자신이 돌아올 때에 갚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것이 자비의 방법입니다. 그것은 작은 몸짓들을 모읍니다. 비하하거나 모욕하지 않고 그것은 각각의 도움이 되는 표징과 사랑의 행위로 자라납니다. 우리 각자는 우리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서 바라보시는 대로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줄곧 자비로우셨던 것을 기억하려고, 그분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얼마나 훨씬 더 자비로워 왔는지 기억하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 안에서 우리는 그분께 한발 더 나아가게 해 주시기를 그리고 앞으로 그분의 자비를 훨씬 더 많이 드러내시기를 간구할 용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주님, 저희에게 당신 자애를 보이시고”(시편 85,5). 훨씬 더 많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의 이 역설적인 방법이 우리가 그분 마음의 풍성한 위대함을 품으려고 노력할 때 만나게 되는 저 성벽들을 무너뜨리도록 우리를 돕습니다. 우리가 정한 방법들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자애하심으로 흘러 넘치시고 훨씬 더 많이 주는 것으로 흘러 넘치시는, 하느님의 마음에 그것이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억제되는 한 방울의 자비보다 소비되는 자비를 더 좋아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나의 씨앗이 잃어지도록 하기 보다 많은 씨앗들이 하늘의 새들에 의해서 옮겨지도록 하십니다. 왜냐하면 저 씨앗들 하나하나가 풍성한 열매,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제로서 우리는 영원히 커지는 풍성한 성부 하느님 자비의 시종들이자 증인들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모든 이들을 감동시키실 수 있도록 천 가지 방법으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었던(사도행전 10, 38) 대로 우리는 강생하는 자비의 보상하고 위로하는 임무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비를 껴안고 개인적으로 자비를 경험할 수 있도록 자비를 문화 안에 전해지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지역 문화와 가정들을 존중하는 방법으로 창의적으로 진정으로 자비를 이해하고 실천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오늘 이번 자비의 희년 성 목요일 동안 나는 주님께서 자비 안에서 넘치도록 베푸시는 두 가지 영역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그분의 모범을 따라 우리도 넘치게 베풀기를 망설여서는 안됩니다. 내가 말하고 있는 첫 번째 영역은 만남입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의 용서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주면서 또한 고귀함을 줍니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원히 커지는 자비 안에서 넘치게 베푸시는 것을 보는 첫 번째 영역은 만남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시고 그런 방법으로 그 모든 만남이 기뻐함에 이릅니다.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에서 우리는 깊이 가엾은 마음이 들어 자신의 아들에게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는 그 사람에게 놀랍니다. 우리는 그가 그의 아들을 껴안고 입을 맞추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그리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며 그렇게 그가 종이 아니라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모든 이들에게 명령하여 잔치를 합니다. 자신의 아들이 돌아왔을 때 자유롭고 무한하게 표현되는 이 넘쳐 흐르는 아버지의 기쁨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감사를 넘치게 확장하여 생각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가짐은 자기 자신이 낫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이르신 것을 하기 위해서 자리를 뜬 아홉 명의 친구들을 떠나서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리며 주님의 발 앞에 엎드리기 위해 돌아온 그 가난한 나병 환자여야 합니다.

자비는 모든 것을 회복시킵니다. 그것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귀함을 회복시켜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흘러 넘치는 큰 감사가 합당한 응답입니다. 우리는 잔치에 가야하고 우리의 가장 좋은 옷을 입어야 하고 큰아들의 앙심을 던져 버려야 하고 기뻐하고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온전하게 그 기쁨에 참여 하면서 오로지 이러한 방법으로 솔직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가능하고 우리가 저질러 온 악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지 더 분명하게 봅니다.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고해성사 후에 나는 기뻐하는가? 아니면 나는 곧바로 다음 일로 넘어가는가, 우리가 의사한테 다녀온 후에 그렇게 하는 것처럼, 시험 결과가 그렇게 나쁘지 않아서 그 봉투에 다시 넣어 두는 때에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리고 내가 자선을 베풀 때 나는 그것을 받은 사람이 자신의 감사를 표현할 시간을 주는가, 나는 그 가난한 사람이 주는 미소와 축복을 기념하는가 아니면 나는 동전 하나를 던지고 나서는 서둘러 나 자신의 일을 계속 하는가?

우리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원히 커지는 자비 안에서 넘치게 베푸시는 것을 보는 두 번째 영역은 용서 그 자체입니다. 자비를 간구하고 자기의 채무자에게 인색한 저 종에게 그렇게 하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막대한 빚을 탕감해 주실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또한 어떤 중간 단계도 없이 우리를 가장 부끄러운 치욕에서 가장 높은 고귀함으로 곧장 옮겨갈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용서받은 여인이 그녀의 눈물로 당신의 발을 닦아주도록 놓아 두십니다. 시몬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신에게서 떠나 달라고 간청하자 마자 주님께서 그를 일으키시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두 가지 마음 가짐을 분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부끄러워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숨기고 고개를 숙이고 걷습니다. 아담과 이브처럼. 그리고 우리가 어떤 고귀함으로 일으켜 세워 질 때 우리는 우리의 죄를 덮으려고 하고 보여지는 것 거의 과장되는 것을 즐기려고 합니다.

하느님의 넘치도록 풍성한 용서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항상 고귀한 부끄러움과 부끄러운 고귀함 사이의 건강한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겸손하고 낮은 곳을 찾는 이, 하지만 또한 주님께서 그를 선한 사명으로 높이실 때 안주하지 않고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도록 할 수 있는 이의 자세입니다. 복음이 성별(聖別)한,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할 때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모범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의심되도록 스스로를 놓아 두지만 그는 또한 주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양 떼를 보살피는 성직자의 직책을 받아 들이기를 다시 새롭게 합니다.

우리가 은총으로 존재하는 것보다 더 크게 혹은 더 작게 생각하는 것에서 우리를 구해주는 이 “고귀함 자체를 낮출 수 있는 고귀함”안에서 성장하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나자렛의 회당에서 읽으신 구절의 바로 다음에 나오는 이사야 예언자의 이 말을 이해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즉, “너희는 ‘주님의 사제들’이라 불리고, ‘우리 하느님의 시종들’이라 일컬어지리라”(이사야서 61,16). 주님께서 사제의 사람들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은 가난하고 배고프고 전쟁의 포로들인 사람들, 희망 없이 한 쪽으로 내던져지고 거부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제로서 우리는 배척된 사람들, 주님께서 구원하신 사람들과 동일시됩니다. 셀 수 없이 수많은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하고 갇혀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 자신에게 기억하게 합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그들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들에 처한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우리도 자주 눈 멀고 복음을 손에 가까지 두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복잡한 신학 이론이 너무 과도해서 빛나는 믿음의 빛이 부족하다는 것까지 우리 각자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영혼이 우리가 과도하게 그저 홀짝 마실 수 있는 생수가 아니라 영성에 목말라 한다고 느낍니다. 과도하게 “거품 낀” 영성 때문이 아니라 “빛”의 영성. 우리는 우리 자신이 또한 갇혀 있다고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넘을 수 없는 돌 성벽이나 철책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간단한 한번의 클릭으로 열리고 닫히는 가상의 디지털 세속성에 의해서 갇혀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억압 받습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처럼 위협과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목자들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양들, 주님의 양 떼들과 우리의 형제 자매들에 대한 사랑에 이르게 하는 길을 따라 자유롭게 앞으로 걸어 나아가기 위해서 떨쳐 내야 하는데 떨쳐내지 못하는 천 가지의 상업 광고들의 유혹에 의해서 우리는 억압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속량하시려고 우리를 파견하시려고 우리를 가난하고 눈멀고 갇혀 있고 억압받는 것에서 변화시키시려고 자비와 위로의 시종이 되려고 오십니다. 에제키엘 예언자가 자기 자신을 팔아 넘기고 주님을 배반했던 민족에게 말했던 말로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네가 어린 시절에 너와 맺은 내 계약을 기억하고…… 너와 맺은 계약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내가 네 동생들과 함께 네 언니들도 데려다가 너에게 딸로 삼아 주면, 너는 네가 걸어온 길을 기억하고 수치스러워할 것이다. 이렇게 내가 너와 계약을 세우면, 그제야 너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네가 저지른 모든 일을 내가 용서할 때, 네가 지난 일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며, 수치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에제키엘서 16,60-63)

이 희년에 우리는 감사로 가득 찬 마음으로 우리의 아버지를 찬양하고 우리는 “그분께서 그분의 자비를 영원히 기억하셨습니다”라고 그분께 기도합니다. 고귀함 자체를 낮출 수 있는 고귀함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 난 몸 안에서 드러나는 자비를 받읍시다.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시고 모든 악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기를 그분께 간구합시다. 그리고 성령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모든 남자와 여자들에게 전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다시 새롭게 헌신합시다. 그리고 하느님의 모든 백성의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께서 우리 각자 안에 일으키시는 영감의 일들을 수행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다시 새롭게 헌신합시다.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6/documents/papa-francesco_20160324_omelia-crisma.html

미사 동영상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16/3/24/crisma.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소리 미사 강론 ->

                                                                       마리아 사랑넷 https://www.mariasarang.net/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 (“소리로 전하는 심쿵 미사 강론”)

*P.S. 안녕하세요. 더운 여름 주님 안에서 평안하신지요?

통상 매년 7월 8월에는 교황님께서 여러 일정이 있으시고 여름 휴가를 가시기도 하셔서 새로운 강론이 나오지 않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올해 여름에는 지난 5년동안의 성주간 목요일 교황님의 성유축성미사 강론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이번 달 8월 성모승천대축일까지 마리아 우리 어머니께 봉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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