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성유축성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2019년 4월 18일 성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심쿵소리강론] 2019년 성유축성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2019년 4월 18일 성주간 목요일]

 

Fran.의 글

2019-07-23 09:19:10 조회(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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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3_2019년_성유축성미사_프란치스코_교황_성하의_강론[20.mp3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index.html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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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19년 4월 18일 월요일[성주간 목요일 - 성유 축성 미사]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이사야서 61,1-3ㄹ.6ㄱㄴ.8ㄷ-9

                           화답송 : 시편 89(88),21-22.25와 27(◎ 2ㄱ 참조)

                           제2독서 : 요한 묵시록 1,5-8

                           복음 : 루카 복음 4,16-21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0319&gomonth=2019-04-18&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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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 축성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당

2019년 4월 18일 성 목요일

 

우리가 방금 들은 루카 복음 말씀은 주님께서 당신 백성 가운데에서 엄숙하게 이사야 예언을 읽으시면서 당신 몸소 이사야 예언을 하신 때 그 순간의 흥분을 다시 체험하게 합니다. 나자렛의 회당은 그분의 친척들, 이웃들, 지인들, 친구들 그리고 그뿐 아니라 그 밖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습니다. 교회의 눈이 언제나 예수님, 기름부음받은이, 주님의 영꼐서 하느님의 백성에게 기름 부어 주시려고 보내신 분 그분을 주시해 왔습니다.

복음은 자주 병든 이들과 함께 주님께 다가가는 사람들, 악령들을 내쫓아 달라고 그분께 간청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 여정에서 그분과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밀리고 둘러싸이면서 군중 가운데 계시는 주님의 이러한 모습을 나타내 보여 줍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요한 복음 10, 27. 28)

주님께서는 결코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심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저 군중들 가운데에서 그분께서는 항상 전체로서의 그분 백성과의 친밀함 그리고 각 개인들,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친밀함이라는 은총을 유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 공생활 전체를 통해서 이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처음부터 그러하였습니다. 즉, 아기 예수님의 빛이 목자들, 시메온과 한나와 같은 나이든 꿈꾸는 이들을 부드럽게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분 예수님의 성심은 모든 사람들을 당신께로 이끌어 들이십니다(요한 복음 12, 32). 베로니카, 키레네 사람들, 도둑, 백인대장…

“군중’이라는 말은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의 귀에는 그 말이 얼굴 없고 이름 없는 인파를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에서 우리는 군중이 주님과 소통할 때 – 그분께서는 당신의 양떼들 가운데에 목자로서 그들 한가운데 서계십니다- 사람들은 내면 깊이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열망을 느끼고 놀라움이 커지고 식별은 빠르게 자라납니다.

나는 예수님과 군중의 관계를 특징짓는 세 가지 은총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묵상하고 싶습니다.

따름의 은총

성 루카는 군중이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루카 복음 4,42)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루카 복음 14,25)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분을 밀어” 댔고 “스승님을 에워싸”고 있습니다(루카 복음 8,42-45). 그들은 그분의 “말씀도 듣”기 위해 “모여” 왔습니다”(루카 복음 5,15). 그들의 “따름”은 전적으로 예측되지 않는 어떤 것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가득 찬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제자들의 속 좁은 인색함과 대조됩니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구하도록 그들을 보내라고 예수님께 말할 때 제자들의 마음 가짐은 거의 잔인함에 가깝습니다. 나는 믿거니와 여기가 성직자중심주의의 시작이었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이 밥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욕망, 개인적인 편안함을 보장받고 싶어하는 욕망 안에서. 주님께서 .그 유혹을 끝내 버리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가 예수님의 대답이셨습니다. “사람들을 돌보아라!”.

놀라움의 은총

군중이 예수님을 따를 때 받는 두 번째 은총은 기쁨으로 가득 찬 놀라움의 은총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루카 복음 11,14), 그분의 기적에 놀라워했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그분 바로 그 사람에게 놀라워했습니다. 사람들은 길을 따라 그분을 만나기를 좋아했고 그분의 축복을 받고 그분을 찬미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를 찬미했던 군중 속의 그 여인처럼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믿음에 놀라워하셨습니다. 그분은 기뻐하셨고 그것에 대해 말할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식별의 은총

사람들이 받은 세 번째 은총은 식별의 은총입니다. “군중들은 그것을 알고 예수님을 따라”(루카 복음 9,11)갔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습니다. 그분께서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 7,28-29 ; 루카 복음 5,26 참고). 그리스도,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이 되어 오시어 사람들 안에서 이 식별의 카리스마를 일깨우십니다. 그 식별은 확실이 논쟁적인 질문들에 전문인 사람들의 식별은 아닙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과 논쟁했을 때 사람들이 식별했던 것은 예수님의 권위,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가르침의 힘, 악령들이 그분에게 복종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자기들의 물음들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했던 사람들을 바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하시면서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식별할 수 있었고 그것을 좋아했습니다).

복음 말씀이 군중을 바라보는 방식을 더 자세히 봅시다. 루카는 주님의 기름부음으로 우선 선택되어 은혜를 입은 크게 네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즉, 가난한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 잡혀간 이들입니다. 그분께서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말씀하시지만 그러나 그리고 나서 우리는 주님의 전 삶을 통해 이 기름 부음 받은 이들이 점차 실제 이름과 얼굴을 갖는 것을 봅니다. 몸의 한 지체에 기름이 부어질 때 그 은혜로운 효과는 몸 전체를 통해 느껴집니다. 그리하여 또한 주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를 펴시고 우리가 “포괄적인 선택주의”라고 부를 만한 내용에 따라 성령께서 그분을 보내신 다양한 “군중들”에게 이름을 주십니다. 즉, 각각의 개별적인 사람 도는 특정 집단에게 주어지는 은총과 카리스마는 그렇게 성령님의 모든 활동처럼 모든 이들에게 이로움을 더하면서 자라납니다.

가난한 이들(그리스어로 ptochoi)은 절하면서 자선을 구하는 걸인들처럼 허리를 굽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날 먹고 살 작은 두 닢의 동전을 집은 그녀의 손가락으로 기름 부은 저 과부도 가난(ptochè)했습니다. 그녀의 초라함을 다정하게 바라보시는 예수님 외에 다른 모든 이들의 눈에는 자선하는 과부에 의한 기름 부음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 과부를 통해서 주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는 그분의 사명을 온전히 완수하실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제자들은 사람들이 그녀의 존재를 좋아한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과부는 – 그 아끼지 않는 여인 – 자신이 “복음이 되리라”고 그녀의 소박한 행동이 복음에 기록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웃의 성인들”은 저 모든 남성과 여성들처럼 그녀는 내면적으로 그녀의 행위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중요하고” 그리고 세상의 모든 부자들보다 더 값지다는 사실을 살고 있습니다.

눈먼 이들은 복음에서 가장 호감을 갖는 인물들 중에 하나로 제시됩니다. 즉 바르티매오(마르코 복음 10,46-52 참고), 다시 보게 되어 그때부터 오로지 그분의 여정에서 예수님만을 따르는 눈을 가졌던 눈먼 거지. 바라보는 시선의 기름 부음! 우리의 시선, 예수님의 눈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오로지 사랑만을 거저 줄 수 있는 밝음을 회복시킬 수 있고 세상이 날마다 우리를 압도하는 속임수의 진부한 이미지들로 우리에게서 훔친 밝음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억압받는 이들(그리스어로 tethrausmenoi)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루카는 “트라우마”의 개념을 포함한 단어를 씁니다. 그것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아마도 루카성인이 가장 좋아하는-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합니다. 강도들에게 맞아 초주검이 되어 길가에 버려진 어떤 사람의 상처에 착한 사마리아인이 기름을 붓고 싸맵니다(traumata, 즉 루카 복음 10,34). 그리스도의 상처 난 몸의 기름 부음! 그 기름 부음 안에서 우리는 개인들과 가족들과 전체 민족들을 역사의 바깥쪽에 반갑지 않게 무시되고 배척된 채로 버려두는 저 모든 트라우마들에 대한 치료약을 발견합니다.

잡혀간 이들은 전쟁 포로들(그리스어로 aichmalotoi), 창(aichmé) 앞에 끌려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당신의 사랑하는 도시가 짓밟히고 사람들이 끌려갈 것임을 말씀하실 때 같은 단어를 쓰실 것이었습니다(루카 복음 21, 24). 오늘날 우리의 도시들은 창 앞에서가 아니라 이념적인 식민지화라는 교묘한 수단들에 사로잡힌 포로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에게 우리의 복음적 모범이 저 “사람들”, 실재 얼굴을 갖고 있는 그 “군중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얼굴들을 주님의 기름 부음이 들어 올려 주시고 다시 살아 나게 하십니다. 그들은 우리 자신 안에서 성령의 기름 부음을 실재가 되게 하고 완성시키는 이들입니다. 그들에게 기름 부어 주기 위해서 우리가 기름 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 가운데에서 나왔고 그리고 우리는 두려움 없이 이 평범한 사람들과 동일시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약간의 기억이 우리에게 많은 유익한 일을 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영혼의 모습이고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우리 백성의 하나된 마음을 구현합니다.

우리 사제들은 가난한 이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그 거지의 손을 어루만지고 그의 눈을 보면서 자선할 때마다 가난한 과부의 마음을 갖고 싶습니다. 우리 사제들은 바르티메오입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우리는 일어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보게 해 주소서”. 우리의 죄 많은 어떤 점에서 우리 사제들은 강도들에게 맞아 초주검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손으로 연민을 보여 줄 수 있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연민 어린 손 안에 있고 싶어 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고백하거니와 내가 견진성사와 신품 성사를 집전할 때마다 언제나 나는 내가 기름 붓는 사람들의 이마와 손을 성유로 많이 바르고 싶습니다. 저 관대한 기름 부음 안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름 부음이 다시 새롭게 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병에 담긴 기름을 배급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름을 부어 주기 위해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나누어 줌으로써, 우리의 소명과 우리의 마음을 나누어줌으로써 기름 붓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기름 부어 줄 때 우리는 사람들의 상처와 죄와 근심들을 어루만지면서 우리의 손을 더럽힘으로써 기름 붓습니다. 많은 중요한 인물들이 미신이라고 묘사하는 그들의 믿음, 그들의 희망, 그들의 충실함과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그들의 조건 없는 관대함을 어루만지면서 우리는 우리의 손을 향기롭게 함으로써 기름 붓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기도합시다.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사람들 안에 있는 곳이 가장 아름다운 장소입니다. 성부께서 우리 내면 깊이 거룩하심의 성령을 다시 새롭게 해 주시기를,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서 우리의 보살핌에 맡겨진 사람들을 위해서 그분의 자비를 간구하면서 그분께서 우리가 하나가 되게 해 주시기를.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 모아 들여진 많은 민족들이 하느님의 하나된 믿는 민족이 되기를. 하느님 나라 안에서 그 완전함을 이룰 것입니다( Prayer of Priestly Ordination 참고)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documents/papa-francesco_20190418_omelia-crisma.html

미사 동영상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19/4/18/crisma.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소리 미사 강론 ->

                                                                          마리아 사랑넷 https://www.mariasarang.net/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  (소리로 전하는 심쿵 미사 강론)

*P.S. 안녕하세요. 더운 여름 주님 안에서 평안하신지요?

통상 매년 7월 8월에는 교황님께서 여러 일정이 있으시고 여름 휴가를 가시기도 하셔서 새로운 강론이 나오지 않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올해 여름에는 지난 5년동안의 성목요일 성유축성미사 강론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다음 달 8월 성모승천대축일까지 마리아 우리 어머니께 봉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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