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교황성하 미사 강론[2019년 6월 23일 주일(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미사 강론&심쿵소리강론]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교황성하 미사 강론[2019년 6월 23일 주일(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Fran.의 글

2019-06-28 09:46:49 조회(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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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8-지극히_거룩하신_그리스도의_성체_성혈_대축일_교황성하_미.mp3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index.html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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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19년 6월 23일 주일[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창세기 14,18-20

                           화답송 : 시편 110(109),1.2.3.4(◎ 4ㄴㄷ)

                           제2독서 : 코린토 1서 11,23-26

                           복음 : 루카 복음 9,11ㄴ-17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0618&gomonth=2019-06-23&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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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의

거룩한 미사, 행렬 그리고 성체 강복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로마 카살 베르토네 Santa Maria Consolatrice 교회

2019년 6월 23일 일요일

 

오늘 하느님의 말씀은 단순하지만 매일 매일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두 개의 동사를 더 깊이 음미하도록 돕습니다. 즉, ‘말하다’와 ‘주다’입니다.

 

말하다. 제1독서에서 멜키체덱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아브람은 복을 받으리라…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창세기 14,19-20). 멜키체덱에게 말하다축복하다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을 축복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그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입니다 (창세기 12,3. 갈라티아서 3,8. 참고). 모든 것은 축복으로 시작됩니다. 즉 선함의 말은 선함의 역사를 창조합니다. 같은 일이 복음에서 일어납니다.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그것들 을 축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루카 복음 9,16). 축복은 빵 다섯 개를 수많은 군중에게 충분한 양식으로 바꿉니다. 축복은 선함의 폭포수입니다.

 

왜 축복하는 것이 선할까요? 왜냐하면 그것이 말을 선물로 바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축복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다. 축복하는 것은 멋진 말을 하거나 케케묵은 문구들을 말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선함을 말하는 것, 사랑으로 말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이 멜키체덱이 자연스럽게 아브라함을 축복할 때 그가 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를 위해서 어떤 것을 말하거나 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똑같이 하십니다. 그리고 축복은 빵을 거저 나누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분께서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우리도 얼마나 자주 우리 교회나 우리 가정 안에서 축복을 받아 왔습니까? 얼마나 자주 격려의 말이나 우리 이마 위에 십자 성호를 받아 왔습니까. 우리는 세례의 날에 축복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사 때마다 그 끝에 축복 받습니다. 성체 성사는 그 자체가 한 다발의 축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사랑 받는 자녀들을 축복하시고 우리가 계속 가도록 용기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는 마음을 자유롭게 해주고 치유해 주는 찬미의 기쁨을 재발견하면서 우리의 모임들에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시편 68,26 참고). 우리는 미사에 가서 우리가 주님께 축복 받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그리고 우리는 우리 차례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 세상에서 선함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 떠납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진리입니다. 우리 사목자들이 계속 하느님의 백성을 축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사제들이여, 축복을 주는 일, 하느님의 백성을 축복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사제들이여, 계속 축복하십시오. 주님께서 그분 백성을 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즐겁게 우리를 위한 당신의 다정한 사랑을 우리가 느끼도록 만드십니다. 오로지 축복받은 사람들로서 우리는 결국 같은 사랑의 기름 부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그 반대의 일을 하는지 생각하는 것은 슬픕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저주하고 깔보고 모욕합니다. 만연한 광란 속에서 우리는 통제 능력을 잃고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의 분노를 터뜨립니다. 슬프게도 가장 많이 제일 크게 소리지르는 사람들, 제일 화가 난 사람들이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설득합니다. 그런 교만함에 전염되는 것을 피합시다. 우리는 모든 달콤함을 그 안에 담고 있는 빵을 먹으므로 우리 자신이 비통함에 압도당하도록 놓아 두지 맙시다, 하느님의 백성은 불평이 아니라 찬미하는 것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투덜거리라고 창조된 것이 아니라 찬미하라고 창조된 것입니다. 성체의 현존 안에서 빵이 된 예수님, 교회의 실체 전부를 담고 있는 이 소박한 빵이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축복하는 것을 우리가 배우게 하십니다.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순간으로 우리를 이끈 모든 것을 저주하지 않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하도록 말입니다.

 

두 번째 동사는 ‘주다’입니다. 이렇게 “주는 것”이 “말하는 것”의 뒤를 따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경우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멜키체덱에게 축복을 받은 후에 “그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창세기 14,20)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예수님의 경우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축복하신 다음 군중들에게 나누어지도록 빵을 주셨습니다. 빵은 단지 소비되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눔의 수단입니다. 놀랍게도 빵이 늘어난 이야기는 늘어남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현저히 중요한 말들은 이것입니다. “떼다”, “주시다” 그리고 “나누다”(루카 복음 9,16 참고). 사실 중요성은 늘어남이 아니라 나누는 행위에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술 묘기를 부리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빵 다섯 개를 오천 개로 변화시키고 그런 다음에 “자! 그들에게 나눠줘!”라고 발표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기도하시고 그리고 나서 빵 다섯 개를 축복하시고 성부 하느님 아버지를 믿으면서 그것들을 떼어 내기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그 다섯 개의 빵은 결코 바닥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술 묘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그분의 섭리에 대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항상 우리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서 우리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합니까? 주기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갖기 위해서입니까? 나누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쌓아 놓기 위해서입니까? 복음의 “경제”는 나눔으로써 늘어나고 나누어 줌으로써 커집니다. 그것은 소수의 탐욕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생명을 줍니다(요한 복음 6,33 참고). 예수님께서 쓰시는 동사는 가지다가 아니라 주다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직설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루카 복음 9,13), 그들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을 생각들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한 충분한 빵을 우리가 갖고 있지도 않은데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라고 하시는 건가? 그들이 우리 스승님의 말씀을 들으러 왔다면 왜 우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하지? 그들이 자기 자신의 음식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그 사람들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셔야지, 그건 그들의 문제잖아. 아니면 음식을 살 돈을 우리에게 주시든가.” 이러한 사고 방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방식은 아닙니다. 그분께는 아무것도 갖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그것을 내어 주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다섯 개의 빵으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작은 것들을 가지고 위대한 일들을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굉장한 기적들을 행하시거나 요술 지팡이를 흔들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소박한 것들로 일하십니다. 하느님의 전능하심은 오로지 사랑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낮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작은 것으로 위대한 일들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성체는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 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한 조각의 빵 속에 담겨 있는 하느님 당신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성체, 소박하고 꼭 필요한 떼어지고 나누어진 빵은 우리가 하느님께서 보시는 대로 상황을 보도록 합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 주도록 영감을 줍니다. 그것은 이렇게 말하는 마음 가짐에 대한 해독제입니다. “미안, 그건 내 문제가 아니야”, 또는 “나는 시간이 없어, 나는 너를 도울 수 없어, 그건 조금도 내 일이 아니야.” 또는 그것은 다른 식으로 보입니다.

 

사랑과 보살핌에 굶주린 우리의 도시에서 부패와 나태함으로 고통 받고 있는 우리의 도시, 너무나 많은 혼자 사는 노인들과 어려움에 처한 가정들과 자신의 빵을 벌기 위해 자신의 꿈을 깨닫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들이 있는 우리의 도시에서 주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여러분은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조금 밖에 없어요, 저는 그런 일을 할만한 사람이 못 되요.”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조금”이 예수님의 눈에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만 갖고 있지 않고 그것이 일하도록 한다면 말입니다. 당신 자신이 일하게 하십시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성체, 여정을 위한 빵, 예수님의 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도 우리는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그분의 몸으로 영양분을 얻고 자라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 속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이 빵은 우리 안에 사랑의 힘을 뿜어 낼 것입니다. 우리는 축복받고 사랑 받는다고 느낄 것이고 그리고 우리는 결국 이곳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오늘밤 행진할 이 거리에서 우리 도시 안에서 축복하고 싶어지고 사랑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축복을 말하고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우리의 거리로 오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또한 우리도 다른 이들을 위한 축복이 되고 선물이 되라고 하십니다.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documents/papa-francesco_20190623_omelia-corpusdomini.html

  미사 동영상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19/6/23/messa-corpusdomini.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 http://www.podbbang.com/ch/1771273

PS. 성체 성혈을 주신 지극하신 예수님의 사랑. 교회 밖에 있는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가난한 우리 형제들, 쉬는 교우들에게 달콤한 단팥빵으로 예수님 사랑 전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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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9/06/28 13: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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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감사합니다.

주님, 찬미 받으소서. 아멘! (Fran.)
 
백발 (2019/06/28 15: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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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멘, 감사드립니다~~~

저희를 가르치시는 아버지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멘. (F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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