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미사 강론 : 하느님의 자비 주일 전례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2022년 4월 24일 주일(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

 

[미사 강론&심쿵소리강론] 하느님의 자비 주일 전례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2022년 4월 24일 주일(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

 

Fran.의 글

2022-11-28 06:42:39 조회(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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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1.index.html

h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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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22년 4월 24일 주일[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사도행전 5,12-16

                         화답송 : 시편 118(117),2-4.22-24.25-27ㄱㄴ(◎ 1)

                         제2독서 : 요한묵시록 1,9-11ㄴ.12-13.17-19

                         복음 : 요한 복음 20,19-31

https://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3317&gomonth=2022-04-24&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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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비 주일 전례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당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2022년 4월 24일

 

오늘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분을 버렸던 사람들에게 그분께서 당신의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상처들을 보여주십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은 우리가 세 번이나 복음에서 들은 하나의 인사로 초점이 맞추어 집니다. 즉,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복음 20:19.21.26).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이 말들이 모든 인간의 나약함과 잘못을 만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 이 말씀을 하신 것에 대해서 묵상합시다. 그 말씀 안에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 자비의 세 가지 측면을 발견할 것입니다. 먼저 그 말씀들은 기쁨을 주고 그런 다음에 용서를 주고 그리고 마침내 모든 어려움에서 위로를 주십니다.

 

첫 째 하느님의 자비는 기쁨을, 특별한 기쁨을 우리가 거저 용서 받았다는 것을 깨닫는 기쁨을 줍니다.부활 저녁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뵙고 그분께서 제일 먼저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들이 기뻐하였다.(요한 복음 20, 20). 그들은 두려움으로 닫혀진 문 뒤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자기 자신 안에 갇혀 있었고 실패감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스승을 버렸던 제자들입니다, 즉 그분께서 잡히시는 순간에 그들은 도망쳤습니다. 베드로는 그분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의 한 사람 – 그들로부터 한 사람! –은 그분을 배반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을 느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쓸모없다고 즉 자신들이 실패했다고 느낄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과거에 확실히 그들은 용감한 선택을 했었습니다. 그들은 열정과 헌신과 넉넉함으로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일이 너무나 빨리 일어났습니다. 두려움이 압도했고 그리고 그들은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가장 슬픈 시간에 예수님을 홀로 두고 떠났습니다. 부활 전에는 그들은 그들이 위대해지도록 예정되어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이냐는 문제로 말다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제일 먼저 “평화가 너희와 함께!”를 듣습니다. 제자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기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그분의 얼굴을 보고 그분의 인사를 듣는 것이 그들의 주의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예수님을 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 말씀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듯이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요한 복음 20, 20).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자신의 실패들에서 눈을 돌려서 그분의 눈길에 매료되었습니다, 그 눈길은 엄격함이 아니라 자비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한 행동에 대해서 그들을 나무라지 않으셨고 그들에게 평소와 같은 당신의 사랑을 그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을 되살리고 그들의 마음을 그들이 잃어버린 평화로 가득 채우고 그리고 그들을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용서로 깨끗해진 새로운 사람들로 만듭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가져다 주신 기쁨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그분의 용서를 경험할 때면 언제나 느끼는 것이 그 기쁨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실수들과 죄와 실패들 때문에 그 제자들이 부활에 느끼는 것을 우리 자신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때에 우리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주님께서 모든 것을 하시는 때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선하신 고해 성사를 통해서 우리와 가까이 다가오는 누군가의 말을 통해서 성령님의 내적인 위로를 통해서 또는 예상치 못한 놀라운 사건을 통해서 당신의 평화를 주십니다. 많은 방법으로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의 포옹을, “용서와 평화”를 받음에서 오는 기쁨을 우리가 느끼게 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정말로 용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창피를 주지 않고 우리를 자라게 하는 것이 바로 그 기쁨입니다. 마치 주님께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시는 것 같이 그렇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용서와 평화를 받았던 모든 때를 생각합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을 받았습니다. 즉, 우리 각자 한 사람이 그 경험을 받아 왔습니다. 그런 순간들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우리 자신의 실수들과 실패들을 기억하기 전에 하느님의 따뜻한 포옹을 기억합시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기쁨 속에서 자라납니다. 하느님의 기쁨을 경험한 사람에게 그와 같은 것을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기쁨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주님께서 이 말씀을 두 번 하시고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그분께서 그러고 나서 그들을 화해의 대리자들로 만드시면서 성령을 주십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복음 20, 23). 제자들이 받은 것은 자비 뿐만은 아닙니다. 그들 자신이 받은 자비의 분배자가 됩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공로나 학문으로 이 권한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용서 받았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순수한 은총의 선물로 받았습니다. 나는 지금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여러분에게 자비의 사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용서 받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당신이 그 용서를 느낄 때까지 자비의 사도로서 당신의 봉사를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받은 자비는 우리가 큰 자비와 용서를 나누어줄 수 있게 해 줍니다. 자기 자신이 어떤 권력을 가진 소유자가 아니라 그 자신이 먼저 받은 용서를 다른 이들에게 부어주는 자비의 통로로서 자기 자신을 보는 자비로운 고해자의 겸손한 선량함을 통해서 오늘 그리고 매일 교회 안에서 이러한 방법으로 용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으로부터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언제나 모든 것을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용서를 간구하는 것에 지치는 사람들이지만 그러나 그분께서는 언제나 용서하십니다. 용서 받은 당신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그 용서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믿는 이들이 고해소에 왈 때 그들을 괴롭힐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듣고 용서하고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좋은 조언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용서하시니 우리는 사람들에게 문을 닫아서는 안됩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이 말씀은 화해의 성사의 근원이지만 그러나 그 뿐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교회를 자비를 나누어 주는 공동체, 온 인류의 화해의 도구이자 표징으로 삼으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한 사람이 세례 안에서 화해의 남성 또는 여성이 되는 성령님의 내적인 선물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와 실패들의 짐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경험할 때면 언제나. 즉 우리가 희망이 없다고 보이는 상황 후에 다시 태어남의 의미가 무엇인지 직접 깨닫고 우리가 자비의 빵을 우리 주변 사람들과 나눌 필요를 느낄 때는 언제나. 이것으로 부르심을 느낍시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물읍시다. 집에서, 나의 가정 안에서, 일터에서, 나의 공동체 안에서 나는 친교를 강화하고 있습니까, 나는 화해를 이루는 사람입니까? 나는 갈등을 없이하는 데에 나 자신을 헌신하고 있습니까? 미움의 자리에 용서를 가져 오고 분노의 자리에 평화를 가져 오는데에 나 자신을 헌신하고 있습니까? 나는 언제나 사람을 죽이는 험담을 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이들을 아프게 하는 일을 피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으로 세상 앞에서 당신을 증언하기를 우리에게 바라십니다. 즉, 평화가 너희와 함께! 나는 평화를 받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줍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주님께서 여드레 뒤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토마스의 약해진 신앙을 강하게 하실 때 세 번째 이 말씀을 하십니다. 토마스는 보고 만지고 싶어 합니다. 주님께서는 토마스이 믿지 않는 것에 상처를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분께서 도와 주시려고 오십니다.“ 즉,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요한 복음 20, 27).  이 말씀은 무시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의 어려움을 이해하십니다. 그분께서는 토마스를 거칠게 다루지 않으시고 그리고 그 사도는 이 사랑에 깊이 감동 받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서 그는 믿는 사람이 되고 그리고 가장 단순하고 멋진 신앙의 고백을 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복음 20, 28). 이것은 아름다운 말입니다. 우리는 그 말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그 말을 하루 종일, 특히 토마스처럼 우리가 의심과 어려움을 경험할 때 그날 하루 종일 반복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의 이야기는 사실 모든 믿는 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지고 보아야 하는 위기의 순간들, 삶이 신앙을 배반하는 것 같은 어려움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토마스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님의 자비를 재발견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순간들입니다. 그 상황들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승리나 압도하는 증거들로 다가오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기적들을 행하지 않으시고 그대신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그분 자비의 표징들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오늘의 복음 말씀 안에서 하신 것과 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응답으로 – 가장 추악한 죄들, 우리의 또는 다른 이들의 죄들이든 – 주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상처들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고해 사제로서 우리의 사목 안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들 죄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당신의 상처를 그들에게 주고 계시다는 것을 보게 해야 합니다. 주님의 상처들은 죄보다 더 강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형제 자매들의 상처를 보게 만드십니다. 우리 자신의 위기들과 우리의 어려움들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자비는 자주 우리가 우리 이웃의 고통을 알도록 만듭니다. 우리는 우리가 견딜 수 없는 고통과 고통의 상황들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우리 주변의 다른 이들이 조용히 더 나쁜 일들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우리 이웃들의 상처를 돌보고 자비의 기름을 그들에게 부어준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서 우리의 고단함 안에서 우리를 위로하는 희망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누군가가 몸 또는 마음 안에서 당하는 고통을 돕는데 늦지 않았는지, 우리가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왔는지, 같이 있으면서 그저 들어 주는 것에 시간을 썼는지, 또는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가져다 주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봅시다. 우리가 이런 일들을 할 때는 언제나 예수님을 만납니다. 삶의 시련에 짓눌려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그분은 자비로이 우리를 내다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이에 관해서 나는 우리 성모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계셨음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교회의 어머니이신 그분을 성령강림 대축일 다음 날에 기린다는 것과 자비 주일 다음 월요일에 자비의 어머니로 기린다는 것을 또한 나는 기억합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의 아름다운 사목 활동 안에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주소서.

 

(번역 2022. 11. 27. 주일 22::22)

 

 

강론영어원문->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2/documents/20220424-omelia-divina-misericordia.html

강론 이탈리아어 원문->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it/homilies/2022/documents/20220424-omelia-divina-misericordia.html l

강론 미사 사진 동영상(영어) ->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22/4/24/divina-misericordia.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m.mariasarang.net/bbs/bbs.asp?index=bbs_sermon_pope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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