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미사 강론 :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사목 방문 키프러스와 그리스[2021년 12월 5일 주일(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미사 강론&심쿵소리강론]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사목 방문 키프러스와 그리스[2021년 12월 5일 주일(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Fran.의 글

2021-12-20 20:01:21 조회(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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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0_프란치스코_교황_성하의_사목_방문_키프러스와_그리스[20.mp3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1.index.html

                                                 h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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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21년 12월 5일 주일[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바룩서 5,1-9

                          화답송 : 시편 126(125),1-2ㄱㄴ.2ㄷㄹ-3.4-5.6(◎ 3 참조)

                          제2독서 : 필리피서 1,4-6.8-11

                          복음 : 루카 복음 3,1-6

https://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3016&gomonth=2021-12-05&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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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사목 방문

키프러스와 그리스

(2021년 12월 2-6일)

 

거룩한 미사

 

교황 성하의 강론

 

메가론 콘서트 홀, 아테네

2021년 12월 5일 주일

 

이번 대림 제2주일에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앞에 성 요한 세례자의 모습을 놓아 줍니다. 복음 말씀은 중요한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요한 성인이 나타난 장소가 광야라는 것 그리고 그의 메시지의 내용이 회심이라는 것. 광야와 회심. 오늘의 복음 말씀은 이 두 가지 말이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이 두 개의 단어를 강조합니다. 그것들을 각각 면밀히 묵상합시다.

 

광야. 루카 복음 사가는 특별한 방법으로 그 장면을 소개합니다. 그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 유다 총독, 헤로데 왕과 다른 동시대 정치 지도자들을 언급하면서 그 엄숙한 환경과 그 시대의 대단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일하고 있었던 한나스와 카야파,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 언급합니다(루카 복음 3,1-2 참조). 이 부분에서 루카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루카 복음 3,2). 그러나 어떻게 그 말씀이 왔습니까? 방금 이야기되었던 저명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내렸을 것이라고 우리는 기대해 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복음 말씀의 행간에는 미묘한 역설이 나타납니다. 권력자들의 상급 계층에서 갑자기 우리는 광야로, 무명의 고독한 한 남성 쪽으로 이동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놀라게 하십니다. 그분의 방법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 방법들은 우리의 인간적인 기대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은 우리가 관여하고 있는 힘과 위대함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작고 낮은 것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구원은 예루살렘이나 아테네나 로마가 아니라 광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역설적인 접근이 우리에게 어떤 아름다운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힘 있거나 좋은 교육을 받았거나 유명한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린다는 보증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사실 교만으로 이끌 수 있고 그분을 거부하는 것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신 우리는 내적으로 가난해져야 합니다. 바로 광야가 가난한 것처럼.

 

광야의 역설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합시다. 요한 세례자–선구자–는 이 가까이하기 어렵고 환영하지 않는 위험한 곳에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합니다. 보통 중요한 선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곳, 이미 보여질 수 있고 많은 군중들에게 말할 수 있는 곳으로 갑니다. 요한 세례자는 반면에 광야에서 선포합니다. 바로 그곳에서 메마르고 텅 빈 황무지에서 그 눈이 볼 수 있는 만큼 펼치며 주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성경이 이야기한 대로(이사야서 40:3-4 참조), 하느님께서는 광야를 못으로 만드시고 메마른 땅을 수원지로 만드십니다(이사야서 41, 18 참조). 여기 또 다른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때에 지금처럼 하느님께서 당신의 눈길을 슬픔과 외로움이 넘치는 곳으로 돌리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 이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 안에서 몸을 녹이거나 오로지 우리 자신만을 생각하는 한 주님께서 종종 우리에게 닿으실 수 없으십니다. 그러나 시련 속에서 특별히 그분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시어 그분을 위한 자리로 만드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실존적 광야를 찾아 오십니다. 주님께서 그곳으로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개개인들이나 나라들로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항상 우리가 광야 한가운데 있다고 느끼는 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당신의 현존이 느껴지도록 만드시는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정말로 그분께서는 자주 자기 만족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무력하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환영 받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친밀함과 연민과 다정한 사랑의 말씀으로 오십니다.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이사야서 41,10). 광야에서 선포함으로써 요한은 우리에게 주님께서 우리를 해방시키시려고 오시고 우리를 구제할 길 없고 희망이 없고 출구가 없는 것 같은 상황들 속에서 우리에게 다시 생명을 주시려고 오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증하여 줍니다. 그분께서 그곳으로 오십니다. 오늘 우리가 그분께서 광야를 선택하시는 것을 보며 기뻐하고 그분께서 사랑으로 우리의 작음에 닿으심을 기뻐하고 그리고 우리의 메마른 영들을 새롭게 채워 주시는 것을 보며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작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것은 작거나 수적으로 적은 것에 관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과 다른 이들에게 열려있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메마름의 상황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곳으로 우리를 찾아오시기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단어로 나아갑시다. 그것은 회심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이것을 끝까지 강력하게 선포헸습니다(루카 복음 3,7 참조) 이 말은 또한 “불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광야는 우리가 가려고 생각하고 싶은 첫 번째 장소가 아닌 것처럼 회심으로의 부르심은 확실히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첫 번째 말은 아닙니다. 회심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를 우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기쁨과 화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단순히 도덕적인 완벽함을 위해서 우리 자신의 고군분투와 관련하여 회심을 생각한다면 우리 자신의 노력의 결과로 달성할 수 있는 어떤 것인 듯 합니다. 거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영적인 슬픔과 좌절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회심되기를 원하고 더 나아지기를 원하고 우리 자신의 잘못을 극복하고 변하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이것을 온전히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고 그리고 우리의 모든 좋은 의도들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비틀거리고 넘어집니다. 우리는 성 바오로와 같은 경험이 있습니다. 성인은 바로 이 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로마서 7, 18-19). 우리 혼자서 그렇게 우리가 바라는 선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우리의 회심에 대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여러분의 아름다운 그리스 언어가, 복음에 쓰이는 “회심하다”, 라는 동사의 어원metanoeίn을 기억하게 해서 우리를 도울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넘어서”를 의미하는 전치사 metá와 동사 noéin, ”think”로 구성되어서 그 말이 우리에게 회심은 “넘어서서 생각하다”, 우리가 평소대로 생각하는 방법을 넘고 우리의 습관적인 세계관을 넘어서 가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이야기 해줍니다. 모든 것을 우리 자신에게로, 우리의 믿음을 우리 자신의 자기 만족으로 축소시키는 저 모든 사고 방식들. 또는 완고함과 마비시키는 두려움으로 특징지어지는, 그리고 “우리는 늘 이렇게 해왔어, 왜 바꿔” 라고 말하는 유혹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삶의 광야가 하느님 현존의 장소라기보다는 죽음의 장소라는 생각으로 특징지어지는 저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들.

 

회심으로 우리를 부름으로써 요한은 우리에게 “우리가 현재 있는 곳”을 넘어서 가라고 즉, 우리의 본능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과 우리 생각이 사진 찍는 것을 넘어서서 가라고 우리를 촉구합니다. 왜냐하면 실체는 훨씬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능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위대합니다. 진실은 하느님께서 더 위대하시다는 것입니다. 회심된다는 것으로 그렇게 희망을 숨막히게 하는 것들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에게 아무것도 삶에서 변하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하는 언제나 비관주의자들인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평범함의 진창 속으로 가라앉을 운명이라고 믿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 내면의 두려움들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두려움들은 특히 시련의 때에 우리의 용기를 꺾으려고 우리에게 해내지 못할 거라고, 모든 것이 잘못되어 왔고 성인이 되는 일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 표면에 떠오릅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넘어섬이고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첫째 자리에 둘 때 모든 것이 바뀝니다. 그것이 회심입니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우리가 오로지 문을 열어야 하고 그분께서 들어오셔서 그분의 놀라우신 일을 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광야와 요한의 설교는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정말로 변화한다는 것을 믿는 은총을 간구합시다. 그분께서 우리의 두려움을 없애시고 우리의 상처들을 치유하시고 우리의 메마른 곳들을 샘으로 바꾸십니다. 희망의 은총을 간구합시다. 왜냐하면 희망은 우리의 믿음을 되살아 나게 하고 우리의 사랑에 다시 불을 밝힙니다. 오늘날 세상의 광야가 목말라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희망입니다.

 

우리가 함께 여기에 있음이 예수님의 희망과 기쁨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고 내가 여러분 안에서 기뻐하며 우리의 어머니 거룩하신 마리아께 우리가 그분처럼 희망의 증인이 되고 우리 주변 모든 기쁨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기를, 희망을 간구합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결코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모두 함께여서 행복한 지금뿐만 아니라 그러나 매일 우리가 살고 있는 광야에서. 왜냐하면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의 삶이 회심됨으로 부름 받는 것은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그곳 실존적인 광야 또는 주변적인 광야가 겹겹이 쌓인 곳, 바로 그곳에서 생명이 넘쳐 흐르도록 부름 받습니다. 주님께서 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용기와 은총을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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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를 마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인사.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미사 봉헌을 마무리 하면서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서 제가 받은 따뜻한 환영에 감사의 제 마음을 표합니다. 저는 여러분에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fcharistó [감사합니다!]

 

그리스어는 교회 전체에 그리스도의 은총을 총합하는 말을 주었습니다. Eucaristia, 감사.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감사는 우리 믿음과 삶의 핵심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들의 모든 것을 우리가 “감사(Eucharist)”를 행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께 대한 감사가 되고 우리 형제 자매들을 대한 사랑의 선물이 되게 해 주시기를.

 

이러한 마음으로 나는 저의 진심 어린 감사를 시 당국자들과 우리와 함께 여기에 있는 공화국 대통령과 우리 형제 자매들과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 방문을 준비하고 조직하도록 도와준 모든 분들에게 다시 전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저의 감사를! 그리고 우리가 정말 잘 기도하도록 도와준 성가대 여러분에게 감사합니다.

 

내일 나는 그리스를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저와 함께 저의 기억 안에 그리고 저의 기도 안에 여러분을 담아 갈 것입니다. 그리고 부디 나를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시기를 내가 여러분에게 또한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번역 2021. 12. 20. 월요일 11:42)

 

강론영어원문->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1/documents/20211205-grecia-messa.html

강론이탈리아어원문->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it/homilies/2021/documents/20211205-grecia-messa.html

강론 미사 사진 동영상 ->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21/12/5/atene-messa.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m.mariasarang.net/bbs/bbs.asp?index=bbs_sermon_pope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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