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미사 강론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강론[2021년 3월 28일 주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강론&심쿵소리강론]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강론[2021년 3월 28일 주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Fran.의 글

2021-04-01 13:19:29 조회(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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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1.index.html

                                            h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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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21년 3월 28일 주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이사야서 50,4-7

                         화답송 : 시편 22(21),8-9.17-18ㄱ.19-20.23-24(◎ 2ㄱ)

                         제2독서 : 필리피서 2,6-11

                         복음 : 마르코 복음 14,1―15,47

        https://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2539&gomonth=2021-03-28&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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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 주일 기념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당

2021년 3월 28일 주일

 

매년 이 전례는 우리를 놀라게 놀라게 합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 오실 때 그분을 맞이하는 기쁨에서 그분이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것을 보는 슬픔이 됩니다. 내적인 놀라움의 그 감각이 성 주간 내내 우리와 함께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더 깊이 묵상합시다.

 

시작부터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놀라게 하십니다. 그분의 백성들이 그분을 장엄하게 맞이합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그분의 백성들은 파스카 과월제에 강력한 해방자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파스카를 완성하십니다. 그분의 백성은 칼로 로마인들에게 승리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의 승리를 경축하러 오십니다. 며칠간의 시간 동안 “호산나”라고 외치던 것에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소리 지르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은 메시아가 아니라 메시아라는 관념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자신을 그분에게 놀라워 하도록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놀라워하는 것은 높이 존경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존경은 세속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 입맛과 기대를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놀라워하는 것은 반면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들이 가져다 주는 새로움에 계속 열려 있는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조차도 예수님을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아름다운 것들을 말씀하셨다. 즉, 그분께서는 사랑과 용서로 가득 차 있으셨다. 그분의 모범이 역사를 바꾸셨다… 등등. 그들이 그분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존경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야 하고 우리 자신이 그분에게 도전 받도록 놓아 두어야 합니다. 즉 존경에서 놀라움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주님과 그분의 파스카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분께서 치욕을 통해서 영광을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분께서는 고통과 죽음을, 우리가 존경과 성공을 추구하면서 오히려 피하려고 하는 것들 받아들임으로써 승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 성 바오로가 우리에게 이야기한 대로 –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당신 자신을 낮추시”었습니다”(필리피서 2,7.8). 이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을 보는 것.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말씀께서 십자가 꼭대기에서 침묵 속에서 우리를 가르치시는 것을 보는 것. 만왕의 왕이 사형대 위에서 왕좌에 오르시는 것을 보는 것. 우주 삼라만상의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빼앗기신 채 영광대신 가시관을 쓰신 것을 보는 것. 인성을 취하신 선함이신 한 분이신 그분께서 모욕당하고 매맞는 것을 보는 것. 왜 이 모든 치욕입니까? 왜, 주님,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견디고 싶어 하셨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경험, 우리의 전 존재, 모든 우리의 악을 헤아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우리의 고통과 우리의 죽음 속에 버려두지 않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고통의 심연으로 내려가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 높이 들어 올려지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가장 깊은 슬픔들을 경험하셨습니다. 실패, 모든 것의 상실, 친구에게 당하는 배신, 심지어 하느님에게서 버려지는 것까지. 육신 안에서 우리의 가장 깊은 싸움들과 갈등들을 경험하심으로써 그분께서 그들을 구속하셨고 변모시키셨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나약함으로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그분의 사랑이 바로 우리가 가장 부끄러워하는 것들을 어루만지십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고통 안에서 모든 두려움 안에서 우리 편에 계십니다. 어떤 악도 어떤 죄도 결코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승리하십니다, 그러나 승리의 성지는 십자가 나무를 통해서 건너갑니다. 성지와 십자가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놀라워할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합시다. 놀라움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생기 없고 따분해집니다. 우리가 매일 그분의 사랑-그 사랑이 우리에게 용서와 새로 시작할 가능성을 가져다 주시는데–에 놀라고 놀라워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난 기쁨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이 더 이상 놀라움을 체험하지 못할 때 그것은 무뎌집니다. 그것은 은총의 기적들에 대해 눈 멀어집니다. 그것은 더 이상 생명의 빵을 맛볼 수 없고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 형제 자매들의 아름다움과 창조의 선물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런 신앙은 율법주의와 성직자주의와 예수님께서 마태오 복음 23장에서 비난하신 모든 것들로 피신하는 것 말고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이 성주간 동안 놀랄 수 있는 은총을 받기 위해서 우리의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묵상할 때 그는 그의 수사들이 울지 않는 것에 놀랐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아직 하느님의 사랑에 감동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분께 놀라는 능력을 잃어버려 왔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아마도 우리의 신앙이 습관으로 무뎌져 왔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후회들 안에 빠진 채로 있고 우리 자신이 우리의 실망들로 절뚝거리도록 놓아 두고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신뢰를 잃어버려 왔고 또는 가치 없다고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이 모든 “어쩌면들” 뒤에 우리에게 놀라움의 은총을 주시는 성령님의 선물에 우리가 열려 있지 않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놀라워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이렇게 말합시다. “주님, 당신께서 저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시는지요! 저는 당신께 얼마나 소중한지요!” 우리가 다시 살 수 있도록 예수님께 놀랍시다. 왜냐하면 삶의 위대함은 소유나 진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 받는다는 것을 깨닫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삶의 위대함입니다. 우리가 사랑 받는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삶의 위대함은 바로 사랑의 아름다움에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치욕을 당하시는 하느님, 잊혀지고 버려진 전능하신 분을 봅니다 그리고 놀람의 은총으로 우리는 잊혀지고 버려진 사람들을 받아들이면서 삶에서 학대 받고 냉대 받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곳이 그분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형제 자매들 중에 가장 작은 이들 안에, 거부되고 버려진 이들 안에, 우리의 독선적인 문화가 비난하는 사람들 안에.

 

오늘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 직후에 놀람의 훌륭한 아이콘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코 복음 15,39)라고 말하는 백인 대장의 장면입니다. 그는 사랑에 놀랐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죽음 조차도 사랑으로 채울 수 있으신 분 앞에서 놀라는 것입니다. 거저 주시고 전례가 없는 그 사랑 안에서 이교도인 백인대장이 하느님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말 -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이 그 수난의 이야기를 “증명합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그분 앞의 많은 다른 이들이 그분의 기적들과 경이로운 일들 때문에 예수님을 존경했고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침묵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오로지 그분의 권능과 전능함만으로 흠숭 받고 두려움 받는 어떤 하느님의 관념에 대한 세속적인 존경의 차원에 계속 머물러 있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밑에서는 어떠한 잘못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고 오로지 무력해진 무방비의 사랑의 힘만으로 다스리십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하느님께서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계속 놀라움으로 가득 채우십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저 놀라움으로 가득 채워집시다. 우리도 이렇게 말하게 하소서. “당신께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당신께서는 저의 하느님이십니다”. 

 

      (번역 2021. 4. 1. 목요일 13:17)

 

강론영어원문 ->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1/documents/papa-francesco_20210328_omelia-palme.html

강론 미사 사진 동영상 ->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21/3/14/messa-cristianesimo-filippine.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m.mariasarang.net/bbs/bbs.asp?index=bbs_sermon_pope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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