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의 미사 강론 :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사목여정 이라크 바그다드 성요셉성당 미사 강론[2021년 3월 6일 토요일 (사순 제2주간 토요일)]

[미사 강론&심쿵소리강론]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사목여정 이라크 바그다드 성요셉성당 미사 강론[2021년 3월 6일 토요일 (사순 제2주간 토요일)]

 

Fran.의 글

2021-03-11 15:22:49 조회(576)

첨부1: 20210311__교황_성하의_이라크_사목_방문_바그다드_성요셉성당_미사.mp3 20210311__교황_성하의_이라크_사목_방문_바그다드_성요셉성당_미사.mp3 (25.017 MB)

첨부2: 20210306_한글번역문(20210311).pdf 20210306_한글번역문(20210311).pdf (344.2 KB)

첨부3: 20210306.jpg 20210306.jpg (88.4 KB)
첨부파일은 스마트폰 종류에 따라 이용이 안될 수 있어요

  이 게시글이 좋아요 싫어요

 

20210311__교황_성하의_이라크_사목_방문_바그다드_성요셉성당_미사.mp3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1.index.html

                                                                           htps://www.vaticannews.va/en.html

 

----------------------------

[교황님 강론 날짜]2021년 3월 6일 토요일 [사순 제2주간 토요일]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지혜서 6,1 - 11

                         제2독서 : 고린토 1서 13,1 - 8

                          복음 : 마태오 복음 5,1-10

-------------------------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이라크 사목 방문

[2021년 3월 5-8일]

 

거룩한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바그다드 “성 요셉” 성당

2021년 3월 6일 토요일

 

오늘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지혜, 증언 그리고 약속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 땅에서 지혜는 고대로부터 일구어져 왔습니다. 진실로 지혜를 찾는 일은 항상 남자들과 여자들을 매혹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더 적게 가진 사람들이 열외 취급을 받는 사이에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 빈번히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더 큰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불평등 – 그것은 우리 시대에도 커져 왔습니다 –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지혜서는 이러한 관점을 뒤집음으로써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미천한 이들은 자비로 용서를 받지만 권력자들은 엄하게 재판을 받을 것이다”(지혜서 6,6)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눈에는 적게 가진 사람들이 버려집니다. 반면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특권을 누립니다.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권력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엄한 재판을 받을 것입니다. 반면 미천한 이들이 하느님께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몸소 지혜이신-께서는 복음 안에서 이 반전을 완성시키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분의 바로 그 첫 번째 설교, 참행복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그 반전은 전적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여라 라고 불리워집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세상에게 행복한 것은 부자들이고 권력자들이고 유명한 이들입니다! 중요한 이들은 재산과 돈을 가진 이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더 이상 중요한 이들은 부자들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이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 뜻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에게 온유한 사람들입니다. 군중들에게 박수 갈채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형제 자매들에게 자비를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렇게 궁금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예수님께서 하라 하시는 대로 산다면 나는 무엇을 얻을까?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으스대도록 놓아 두는 위험을 감수하는 거 아닐까? 예수님의 초대는 가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가망 없는 것일까? 그 초대는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습니다.

 

참행복의 핵심인 사랑이 설령 그것이 세상의 눈에는 약해 보일 지라고 사실은 언제나 승리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초대는 지혜롭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사랑이 죄보다 강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무덤 안에서 사랑이 죽음을 쳐 이겼습니다. 그 같은 사랑이 순교자들을 그들의 시련에서 승리하게 만들었습니다 – 그리고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이 마지막 세기에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이 거기에 있어 왔습니까! 사랑은 우리의 힘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한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편견과 치욕, 학대와 박해를 겪어 왔던 우리 형제 자매들 그들에게 힘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과 영광과 자만심은 사라지지만 사랑은 남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우리에게 말했던 대로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고린토 1서 13,8). 참행복으로 빚어진 삶을 사는 것은 이렇게 지나가는 것들을 영원하게 만드는 것이고 땅에 하늘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가 참행복을 실천합니까? 참행복은 우리들에게 우리의 능력을 넘어 서는 위업이나 비범한 것들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참행복은 일상의 증언을 청합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온유하게 사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있게 되는 곳 어디서든지 자비를 보이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어디에서 살든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임시 영웅들이 될 필요가 없고 매일 매일 증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증언은 예수님의 지혜를 구현하는 방법입니다. 그것이 세상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보여 줍니다. 권력이나 능력이 아니라 참 행복으로 변화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끝까지 당신께서 처음부터 말씀하셨던 그대로를 사셨습니다. 모든 것은 예수님의 사랑, 성 바오로가 오늘 제2독서에서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는 그 같은 사랑을 증언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그것을 나타내는지 살펴 봅시다.

 

첫째, 바오로가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고린토 1서 13, 4)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형용사를 기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선함, 너그러움 그리고 선한 일들과 동의어인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바오로가 사랑은 그 무엇보다 먼저 참고 기다립니다 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다른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인내를 이야기합니다. 역사를 통해서 남자들과 여자들은 똑같은 옛날의 죄들에 빠지면서 끊임없이 하느님과의 계약에 진실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지쳐가는 대신에 그리고 떠나 버리는 대신에 주님께서는 언제나 진실하셨고 용서하셨고 새롭게 시작하셨습니다. 매번 새롭게 시작하는 이 인내가 사랑의 첫 번째 자질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초조하지 않고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지치거나 낙담하지 않고 언제나 밀고 나아갑니다. 사랑은 낙심하지 않고 계속 그대로 창조적으로 머무릅니다. 악에 직면할 때 사랑은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잘못되어 갈 때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궁지에 몰아 넣지 않고 승리하는 십자가의 지혜를 명심하면서 악에 선으로 응답합니다. 하느님의 증인들은 그와 같습니다. 일어나는 일들이나 감정들이나 곧바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자비에 대해 수동적이거나 운명론적이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고 그들은 끊임없이 희망적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고린토 1서 13,7) 내는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르지 않은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역경에 직면할 때 항상 두 가지 유혹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도망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에 냉담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도망갈 수 있고 우리의 등을 돌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힘을 과시하면서 분노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제자들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도망쳤고 베드로는 칼을 빼 들었습니다. 그러나 도망치는 것도 칼도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역사를 바꾸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셨습니까? 사랑의 겸손한 힘으로 그분의 인내하는 증언으로. 이것이 우리가 하도록 부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느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는지 보여 주십니다.

 

약속. 예수님의 지혜 – 참행복 안에서 구현된 – 는 증인들을 요구하시고 하느님의 약속 안에 포함된 보상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참행복에는 바로 약속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오 복음 5,3-12) 하느님의 약속은 어떤 것에도 견줄 수 없는 기쁨을 보증하고 결코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약속들이 이루어질까요? 우리들의 약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끝까지 그들 자신의 내적 가난함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길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선조 아브라함을 바라봅시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많은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와 사라는 이제 나이가 많고 자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시고 그들에게 아들을 주신 것은 그들의 참고 기다린 진실한 늙은 나이 바로 그때입니다. 또한 모세를 바라봅시다. 하느님께서 그가 종살이 하는 그 민족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분께서는 모세에게 파라오에게 이야기하라고 하십니다. 설령 모세가 저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지라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는 것은 바로 그의 말을 통해서입니다. 우리의 성모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율법 아래에서 아이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바라봅시다. 그는 주님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서 그의 형제들을 돌보라고 부르신 바로 그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때때로 우리가 무력하고 쓸모 없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것에 굴복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바로 우리의 약함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하시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진실로 그렇게 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밤 여덟 번 그분께서 우리에게 그 말 행복하다[ţūb’ā(blessed)]라는 말을 우리에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정말로 “행복하다”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물론, 우리는 시련을 겪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주 넘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우리는 행복하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세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빼앗아 가든 주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는 다정하고 참고 기다리는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여러분의 두 손을 바라볼 때 아마도 그 두 손은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고 아마도 여러분은 삶에 실망하고 불만족스럽게 느낄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참행복이 여러분을 위해서 있습니다. 고통을 당하는 여러분을 위해서. 여러분이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고 박해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이름이 그분의 마음에 쓰여져 있다고, 당신의 이름이 하느님 나라에 쓰여져 있다고 여러분에게 약속하십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여러분을 위하여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먼 옛날 지혜가 나타난 여기에서 그토록 많은 증인들이 바로 우리 시대에 나타나 왔습니다. 자주 뉴스에서 간과되어 지지만 그러나 하느님의 눈에는 소중합니다. 증인들. 그들은 참행복을 살아감으로써 하느님께서 평화의 약속을 이루시도록 돕고 있습니다.

       (번역 2021. 3. 11. 수요일 15:22 / 최중 수정 2021. 3. 11 수요일 17:11 )

 

강론영어원문 ->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1/documents/papa-francesco_20210306_omelia-iraq-baghdad.html

강론 미사 사진 동영상 ->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21/3/6/iraq-santamessa.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m.mariasarang.net/bbs/bbs.asp?index=bbs_sermon_pope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이 강론의 소리 강론 파일(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에서 그날의 복음 말씀을 마태오 복음 5, 1- 12까지 낭독했습니다. 강론의 내용을 보고 당연히 그러리라 여기고 낭독했는데 녹음 후에 미사 동영상에서 자세히 들어 보니 그날의 복음 말씀은 마태오 복음 5, 1- 10이었습니다.(소리 파일 1분 20초 부분) 그리고 소리 강론의 끝부분(소리 파일 17분 5초 부분)에서 ‘하느님의 눈에 정확하게’라고 녹음되어 있는데 ‘하느님의 눈에 소중하게’가 맞습니다. 늘 참아 주시는 형제 자매님들께 감사를 드리오며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카카오톡에서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구글+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PC버전 홈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마리아사랑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