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이란

겸손이란

 

하늘호수♡의 글

2023-11-18 13:41:23 조회(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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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23,1-12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아멘
집만큼이야 편하지는 않지만 잘 주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늘은 강원도 번개모임이 어제부터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실 분들은 어제 가시고, 지금 15명이 남아서 운영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혹시 유튜브 들으며 강원도 소속 분들은 그런 게 있었나, 알면 갔을 텐데 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특별히 지금 저는 강릉에 와 있는데, 강릉 쪽에도 많은 느티식구들이 있지만 한 분도 참석 못 했습니다.
이런 곳에 참석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카페에 성실하게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강원방 번개 공지는 카페 강원방에 올라갔죠.
유튜브만 들어오면 이런 번개가 있다는 소식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카페에 들어오시어 자기 지역방 활동에 적극적으로 매일 와서 보시고 근황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원방은 어제 방장과 부방장이 새로 임명된 좋은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수고했던 방장님이 개인 사정으로 자리를 물러나시어 이제 편히 지내시라 했습니다.
 
제가 하룻밤 묵고 있는 이곳은 경포대에 있는 수호텔인데,
제가 바이크 타고 와서 잔 날이 확실하지는 않으나 30일 정도는 되었을 겁니다.
이 호텔만 온 이유는 천주교 신자 집이었기에 제가 좀 편했습니다.
원래 수모텔의 주인으로 계셨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예 다른 사람은 사용할 수 없게
오로지 나만 쓰는 방을 따로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언제 바이크 끌고 간다고 하면,
일부러 두 부부가 모텔 밖에서 기다리셨다가 제가 내리면 눈치 보지 않고 무조건 제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제 손에 입을 맞추는, 옛 교우의 모습을 보여주셨죠.
방에 들어와서도 절대 의자에 앉지 않으시고 항상 무릎을 꿇고 대화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한 3년 전에 할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고, 지금은 할머니 이름으로 되어있지만 거의 딸이 운영하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굳이 이곳으로 올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는 할아버지 만나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 재미가 없으니까요.
또 미사 드려야 하는 것을 배려해 늘 큰 방을 주신 것 같아요.
돌아보니 참 큰 어르신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이 강론을 들으시는 분 가운데 호텔이나 모텔을 운영하신다면,
사제와 수녀들이 자는 방 하나는 따로 만들어 준비해 두고 다른 사람에게는 빌려주지 않으면 좋을 것 같아요.
방에 여유가 있다면 말이죠.
이것은 단지 권고입니다.
 
아무튼 파도 소리 출렁거리는 곳에서 미사들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연중 제31주일로 복음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말해 겸손, 라틴어로 후밀리타스(humilitas)입니다.
오늘 복음의 제일 마지막에 무엇이라 끝나는지 크게 읽어보세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진다’에서 이때 ‘낮아진다’는 겸손하게 낮아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신을 낮추는 자는’ 에서는 겸손하게 낮아진다는 말입니다.
겸손하게 낮아질 때 하느님이 들어 올려 주신다는 뜻이죠.
 
옛날에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어요.
옛날 유럽에서는 큰 축일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교우다 보니, 십자가를 들고 앞에 향을 치며 온 동네를 돕니다.
감곡도 그전에는 성체 대회 할 때는 장호원까지 건너갔다 왔지요.
사제가 성체를 들고 뒤에 신부님들이 따르고 화동들이 꽃을 뿌리며 매산을 한 번 돌고 나서
경찰차가 앞에서 에스코트하고 군악대도 와서 다리를 건너 장호원 한 바퀴를 빙 돌았어요.
성체 거동이라 하죠.
그것이 이제는 그냥 성당 안에서만 도는 것으로 줄어든 거죠.
그런데 유럽은 지금도 보면 큰 축일, 예를 들어 세실리아 성년 축일이 되면 세실리아 성녀 동상을 모시고
천주교 신자들이 마을을 돕니다.
이렇게 귀한 성물이나 성상을 모시고 온 동네를 돌 때 가마에 모시고 사람들이 모셨거나,
그 예전에는 당나귀 등에 성상을 안전하게 모셨었어요.
그래서 어느 성당이든 그 성당에 소속된 당나귀가 한 마리 있었죠.
그 당나귀는 농사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년내내 축일 때마다 성물을 지고 다니면서 신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일이었죠.
그러면 이 당나귀는 본인이 어떤 존재인지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몰랐으면 그런 일이 안 벌어졌을 텐데, 당나귀는 알았어요.
그래서 교만해지기 시작했어요.
왜냐? 자기만 나가면 모두 성호를 긋고 어떤 할머니는 땅에 엎드려 절까지 해요.
그리고 그 당나귀는 일도 하지 않잖아요?
게다가 하루에 두 번 좋은 밀을 주고, 지나가는 수녀님마다 ‘아유, 귀하신 당나귀님’ 하며 쓰다듬어 주고 이뻐해 주니 착각을 한 거야.
‘내가 여기 제일 갑이다. 갑’
그런데 이제 당나귀가 나이다 들어 다리에 관절염이 와서 새 당나귀로 바뀌었어.
새 당나귀가 자기 대신에 다녀오니 이제 이 당나귀는 길에 못 섰죠.
그리고 새 당나귀가 갑질을 하는 거야.
이 당나귀는 너무너무 슬펐어요.
‘내가 왕년에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보고 나만 나가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도 했는데’
한마디로 당나귀는 주제 파악을 못 한 거죠.
 
내가 또 자주 하는 당나귀 시리즈 2탄이 있죠.
한 집에 당나귀와 개가 살았대요.
이번에는 좀 불쌍하게 당나귀가 나오는 이야기야.
이 집 당나귀는 새벽에 나가 저녁까지 뼈 빠지게 일하고 돌아와 차디찬 음식을 먹었죠.
새벽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면 그냥 차디찬 먹이 먹고
하루도 쉴 날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당나귀가 가만히 보니 그집 개는 놀고먹어,
유일하게 하는 것은 인기척이 나면 왕왕 짖고, 주인이 돌아오면 앞발 들고 꼬리 흔들며 애교떠는 거야.
그러면 또 주인이 좋아 죽겠다고 ‘아유, 우리 새끼 어디 갔다 왔냐?’ 하면서 끌어안고 이불로 들어가고.
당나귀가 보니 이것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똑같이 한집에서 사는데 자기는 이렇게 일해도 고생해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준 적도 없는데,
저 개새끼(그럼 개라 했겠어요?)는 저렇게 놀면서 대접만 받고. 음식도 주인이 먹다 남은 고기도 먹고.
당나귀가 베개를 붙들고 울면서 나랑 재랑 차이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대요.
이렇게 얘기하면서 그다음에 따라오는 말이 ‘꼴값’이죠.
‘꼴값한다.’ 이 말은 원래 되게 좋은 말이라 했죠.
사전적인 말은 누구보다도 자기 주제를 잘 아는 사람에게 쓰였던 말이 와전되어
주제 파악을 못 하는 인간한테 비아냥거리는 말이 되었죠.
꼴값하는 선생님이면 누구보다 훌륭한 선생님이죠.
군인은 나라를 지켜야 하는데 정치에 관심을 갖고 나라를 뒤엎어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군인의 꼴값하고 앉아있는 거죠.
사제의 꼴값이 있고 수녀의 꼴값이 있고 주교의 꼴값이 있고 추기경의 꼴값, 교황의 꼴값, 또 여러분 평신도의 꼴값이 있죠.
 
 
오늘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지게 된다고 했죠.
누가 높여주는 것일까요?
주변 사람들이 1번이에요
겸손한 사람들을 주변 사람들은 알아요.
제가 가끔 그런 얘기 해요.
김웅열 신부가 겸손하지 않기 때문에 겸손하지 못한 인간들은 보면 나는 못 봐.
그런데 내가 정말 꼼짝 못 하는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이에요. 꼬리 딱 내려요.
왜? 내가 안 갖고 있는 덕을 갖고 있기에.
겸손이 사실은 제일 어려운 덕이죠.
피정을 듣고 ‘아 그래, 겸손하게 살아야지’ 하지만, 웬걸, 집에 가면 똑같아.
아는 척하고, 잘난 척하고, 하느님 계산보다 자기 계산이 더 정확하다고 착각하고,
큰일을 앞두고 하느님과 상의하고 하느님께 기도로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최고로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하고 살아요.
 
겸손해지기는 참 어렵죠.
오죽하면 성 아우구스티노가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 그랬다 그러잖아요.
죽음으로 앞둔 스승을 보고 제자들이 물었대요.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에게 꼭 주실 말씀을 알려주십시오.’
그랬더니 ‘겸손하라’ 했대요.
그런데 이 말은 많이 들었으니 다른 기억할 만한 말을 알려달라 했더니, 두 번째도 ‘겸손하거라’ 했대요.
‘아니, 잠깐만요. 겸손 얘기만 하십니까? 우리 수도회에서 꼭 알아야 할 좋은 말을 해주세요.’
세 번째도 ‘겸손하라.’ 했대요.
그렇게 겸손 세 번 외치고 돌아가셨대.
그만큼 어렵다는 거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암브로시오 주교를 만나기 전에는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진 광신자였어요.
머리는 비상했죠, 거의 천재였어.
그 어머니가 누군 줄 알죠? 모니카 성녀.
어머니가 아들이 하는 꼬라지를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어.
아들이 못된 짓하러 가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눈물을 뿌렸어.
아들 살려 달라, 아들 구원받게 해 달라고.
그렇게 건방지고 교만하고 세상에 자신만만했던 그가 당대의 대 설교가였던 암브로시오 주교님이
10km 떨어진 성당에서 강연한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갑니다.
뵈려고 찾아간 것이 아니라, 싸우려고 찾아간 거예요.
왜냐하면 마니교에서는 독심술이나 말하는 법을 가르쳐요.
그래서 본인은 굉장히 논리적이라 그 주교는 나에게 못 당할 거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암브로시오 주교를 찾아가 맨 뒷자리에서 강론을 듣다가 무너져 내린 거예요.
 
그래서 여기 계신 분들, 또 유튜브 듣는 분들에게 숙제 하나 내드릴게요.
Q.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회개하게 만든 성경 구절은 무엇일까요?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 성경 구절을 인용했고 이것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에게 비수처럼 꽂혀
통회의 눈물을 흘리며 새사람이 되어 서방교회의 4대 교부 중 하나를 만들었죠.
아마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검색하면 다 나올 겁니다.
또 ‘암브로시오 주교’를 검색해도 아우구스티노 성인과의 깊은 얘기가 나올 겁니다.
이것을 찾아 강원방에 ‘신부님, 숙제 주신 것 찾았습니다. 하고 내용 적고, 몇 장 몇 절까지 적으세요.
 
어쨌든 올해의 지역방 번개는 이것으로 끝나고 각방 번개는 내년에 다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영원에 영원을 더하여 사랑합니다. 아멘
 
2023년 연중 제31주일 (11/05)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출처http://cafe.daum.net/thomas0714 (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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