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열 신부님 느티나무 강론 : 에파타

에파타

 

하늘호수♡의 글

2021-09-13 15:48:19 조회(343)

첨부1: 88c08e89e2e44b10d9fef0feec850cf96cc6362d.jpg 88c08e89e2e44b10d9fef0feec850cf96cc6362d.jpg (41.8 KB)

  이 게시글이 좋아요(2) 싫어요

 

▪마르코 7, 31 - 37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원래 금요일에 공지한 대로 여느 때처럼 아파트에서 실시간 미사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려 했는데,
기계적인 문제로 준비가 더 필요합니다.
 
이제 은퇴 미사 한 지 딱 일주일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아직도 차 가지고 나갔다가 아무 생각 하지 않으면 99프로 서운동 성당으로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이번 한 주 어디 나가지 않고 혼자서 개인 피정했습니다.
마치 봉쇄수도원에 들어온 느낌입니다.
또, 여러분 없이 혼자 증폭 마이크에 대고 강론하는 것도 어색합니다.
확실히 신자들이 있을 때와는 느낌이 다릅니다.
예전 신학교 들어가기 전 클래식 다방 DJ를 할 때, 조그만 방에 들어가 조곤조곤 혼자 말하는 기분입니다.
 
오늘 주일 미사에 여러분에게 선물로 드리고 싶은 성서 구절이 있습니다.
시편 81장 11절(공동번역성서 시편 81장 10절), 다만 입을 크게 벌려라내가 채워주리라.’
무엇을 채워주실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분들 감이 올 것입니다.
축복, 은사를 주신다는 것이지요.
은사만이 아니라 거기에 따른 열매도 분명히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입을 벌리면 내가 여러 가지 영적인 보화를 채워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입을 벌리기 전 단계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품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입을 벌립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아 삼키기 위해 입을 벌리기 전에는 반드시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회개를 안 하고 살던 사람이 죽음 임박해서 한꺼번에 하려 하니, 다 기억도 안 납니다.
돌을 마당에 던지고 다시 주운 후, 아까 있던 자리에 놓으라면 못 놓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때마다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할 때마다,
바로 회개를 통해 턱관절을 잘 움직여 부담 없이 입을 벌리면 그다음 하느님께서는 채워주실 겁니다.
여러분들 미사에 고백 기도하며 가슴을 치실 때다른 사람 가슴을 치지 마시고 본인의 가슴을 잘 칩시다.
 
오늘 복음에는 귀도 먹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이의 치유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분은 아마 한국의 유명한 김기창 화백을 잘 아실 겁니다.
이미 작고하셨지만, 그분은 따님이 수녀원에 가는 바람에 천주교로 귀의하셨죠.
교회 그림도 참 많이 그리셨죠.
그분이 청주 근교 내수에 계실 때, 몇 번 찾아가 뵌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수화를 못하고 그분은 귀도 안 들리고 말도 못 하시기에 종이에 쓰면서 대화를 했죠.
그분은 태어날 때부터 벙어리가 아니라, 어릴 때 심한 열병으로 청력을 상실한 후 벙어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선천적으로 말을 못 하시는 분도 있지만, 귀가 안 들리면서 말을 못 하시게 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또, 서운동 성당에 주일 미사 나오시는 참 아름답고 착하게 사는 부부가 있습니다.
제가 그분들께 서로의 얼굴이 보고 싶지 않냐고 물으니 당연히 보고 싶다 하셨죠.
제가 아내에게 남편이 너무너무 잘생기고 멋진 남자다, 남편에게는 아내가 참 아름답다,
둘은 참 잘 만나셨다고 말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말은 괜찮다고 해도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겠습니까?
그 형제도 태생이 소경은 아니었고, 병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소경이 되었다 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제 얼굴도 볼 수 없고 상상만 해야 하니, 한 번 제 얼굴을 더듬어 보라 해야겠어요.
더듬으면 모양이 그려진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가진 우리는 정말 감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볼 수 있다는 것, 들을 수 있다는 것, 말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감사합니까?
인간의 기본적인 축복 3가지가 빛의 축복, 소리의 축복, 육신에 핸디캡이 없는 것인데,
장애인들은 이런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삽니다.
물론 하느님께 귀의하여 3가지 축복을 통해 받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을 받으시면서 위로받고 사시는 분들 또한 많이 계십니다.
 
또 헬렌 켈러가 있죠?
 
제가 유튜브 서핑을 하다 통속에서 68년을 산 사람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그분이 어린 시절 50년대 초에는 소아마비 백신이 나오지 않았을 때였죠.
심한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몸속 깊이 침투해 결국 나중에는 폐도 망가지게 됩니다.
이분의 경우도 그랬는데, 이런 경우 머리만 나오게 하고 전신을 진공 통속에 집어넣어 인위적으로 호흡하게 만듭니다.
50년 초에는 이런 기계가 있었는데, 완치되는 경우는 거의 드물고,
그냥 그렇게 전신마비가 된 채로 통 안에 들어가서 살게 되는 거죠.
그분은 올해 74세이신데 삶에 대해 포기하지 않았죠.
저는 보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나중에 한 번 찾아보세요.
얼굴만 나온 그 통 속에서 살면서 고등학교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학교도 가고,
변호사로도 일하고, 근래에는 입으로 타자해서 자서전까지 냈다고 합니다.
저도 외국에 주문하여 읽어보고 싶습니다.
 
주변을 보면 정말 나보다 훨씬 더 불행하고훨씬 더 육신이 망가져 있지만,
모든 것을 가진 나보다 더 기쁘게 살아가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이 천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내가 욕심부렸던 것을 포기하라고 저분을 보여주시는구나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복음으로 다시 돌아와 묵상해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치유하실 때 분명히 세 가지 원칙이 있다고 제가 여러분 말씀드렸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첫 번째예수님은 치유하실 때 조건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알고 따라다닌 사람은 없었습니다.
열두 제자도 마찬가지였죠.
그들이 따라다녔던 것은 기복이었습니다.
저 양반 쫓아다니면 분명히 병 낫게 해줄 거다, 마귀 떼어줄 것이다.
저 양반이 메시아이건 말건, 말에 권위는 있어 보이나 상관없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몰려든 사람들은 모두 원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말씀드렸듯이 유대인들은 공기 중에 있는 악령이 음식이나 물을 통해 몸으로 들어가
각 부위에 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입에 붙으면 말을 못 하는 벙어리가 되고, 귀에 붙으면 귀머거리, 눈에 붙으면 장님,
머리 쪽에 붙으면 정신병자가 된다고 생각했죠.
이렇게 모든 병의 원인을 악령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당시 주술사들은 식초를 코에 대면 마귀가 놀라서 튀어나온다고 생각했고,
어느 때는 등을 때리기도 했죠.
요즘 광신적인 종교단체에서는 마귀 뗀다고 사람을 패서 죽여 사회문제가 되는 경우도
아마 그런 취지에서 온 행동일 겁니다.
아무튼 그 당시 너무나 많은 병자가 예수님을 쫓아다녔지만, 예수님은 사람마다 믿음의 정도를 보고 고쳐주신 적이 없습니다.
치유시키기 전 ‘네가 어느 정도 믿음이 있는가, 과연 치유 받기에 합당한가?’ 하며 가늠해보고 치유한 적 없습니다.
 
성서에 보면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그들의 믿음을 보고 그를 살렸다.’,
자캐오의 믿음을 보시고, ‘오늘 이 집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가 나옵니다.
하지만, 이렇게 믿음을 보고 축복을 준 사람은 손으로 꼽습니다.
속셈이 있어서 예수님을 쫓아다녔어도, 예수님은 ‘너 치유 받을 자격 없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람의 인상이나 말투를 보고 치유 받을 사람과 못 받을 사람을 절대로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치유시키기 원한다면분명히 예수님처럼 조건을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치유의 원칙뿐 아니라용서의 원칙봉사의 원칙사랑의 원칙봉헌의 원칙겸손의 원칙 모두에 해당합니다.
용서할 때도 조건을 붙이면 안 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예수님처럼 봉헌할 때도 조건을 붙이면 안 됩니다.
순명할 때, 봉사할 때, 친교할 때도 조건이 붙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두 번째 예수님은 치유하실 때 항상 감사 기도로 시작하셨고 감사 기도로 끝맺으셨습니다.
온종일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지 아실 겁니다.
예수님은 거의 쉬어보신 적이 없습니다.
저도 지난 38년간 안식년 한번 못하고 휴가 제대로 써 본 적도 한두 번인데,
그때마다 예수님도 3년간 안식년도 휴가도 없으셨다는 것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제자들은 사람들 정리하는 것이 힘들어 사람들만 물러가면 쿨쿨 깊은 잠에 빠졌죠.
하지만, 예수님은 그때 잠을 주무시는 것이 아니라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무엇보다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 사람들에게 짜증 내지 않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사람 가려 사랑하지 않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늘 웃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성부께서 저를 통하여 불쌍하고, 힘들고, 마귀 들리고 병든 이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치유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청원의 기도로 시작해서 감사의 기도로 끝났습니다.
 
많은 교우들이 청원의 기도는 합니다.
그런데 청원기도 끝나고 반드시 빠뜨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감사 기도입니다.
 
예전에 성령 지도 신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성령쇄신봉사회에는 성령 대회라든지 여러 행사가 있는데, 저는 행사 전 봉사자들을 단 몇 시간이라도
따로 피정을 시키며, 늘 하는 이야기가 이겁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기도하고 모여서 성령 대회 준비하고 잘 끝나면 긴장이 풀린다. 그때 마귀가 들어온다.
청원기도 한 달했으면, 대회 끝나고 한 달은 감사기도 해라. 이것이 예수님 방식이다.
그러면 성령 대회를 통해 받은 많은 은혜가 분명히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런데 성령 대회 끝나고 회식하면서 오늘 헌금 얼마인가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그것은 연례행사일 뿐이다.’
마귀는 항상 하느님의 일을 사람의 일로 바꿔 놓으려고 애씁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을 성령이 하신 계획을, 결과를 통해 나중에는 분열을 일으키고 상처를 주게 만듭니다.
 
예수님처럼 감사 기도를 합시다.
아침에도 감사, 한낮에도 감사, 밤에도 감사, 잘 때도 감사입니다.
 
세 번째 예수님의 치유원칙은 사람들을 대하실 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섬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섬세하심은 충격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관상하면서, 그 깊이가 깊어질수록 정말 많이 놀랍니다.
 
오늘 예수님은 중복 장애인을 치유시킵니다.
정말 아름답게 사람을 다루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세한 배려가 보입니다.
 
대부분 통이 큰 사람은 섬세하지 않고, 또 아주 섬세한 사람은 통이 크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분 스케일이 얼마나 크신 분입니까?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오신 분인데 얼마나 큰마음을 갖고 계신 분입니까?
그렇게 통이 크신 분이 사람 대하는 것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십니다.
 
오늘 복음에 그를 군중들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그에게 에파타!”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나옵니다.
 
그 사람을 데리고 나가 ‘에파타’하고 외치기까지 과정은 참 놀랍습니다.
그 바쁘신 분이, 그 많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분인데!
그런 상황에 저 같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치유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군중들 사이에서 따로 불러내시어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사고방식 그대로 하십니다.
손가락을 귀에 넣으실 필요도 없고, 침을 발라 혀에 대실 필요도 없었습니다.
‘귀 열리고 입 열려라’ 하면 되실 분인데 당시의 풍습을 따르신 것입니다.
 
왜 군중들 사이에서 따로 떼어내셨겠습니까?
만일 군중들 사이에서 귀가 열리면,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는 소리는 아마 폭탄 터지는 소리처럼 들렸을 겁니다.
귀가 열려 처음 듣는 인간의 목소리가 축복의 소리가 아니라 두려움의 목소리로 들렸을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단계를 완화하기 위해 따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귀가 열리고 말을 하게 된 다음 제일 먼저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려주십니다.
‘이제 들리니? 이제 말할 수 있니?’
이 귀먹은 벙어리가 치유된 후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여러분들 기도 중에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십니까?
신부님의 강론이 예수님의 음성으로 들릴 때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 예수님은 나뭇잎 흔들거리는 소리를 들려주면서 알려주셨을 겁니다.
바람이 뺨을 타고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이것이 바람 소리란다 하시고, 매미 소리도 듣게 하셨을 겁니다.
이렇게 먼저 아름다운 자연소리에 적응을 시키고, 다시 군중 속으로 돌려보냅니다.
아, 이 섬세함!
 
아마 제가 예수님을 자세히 모를 때, 돌아가신 제 부친은 바로 이런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스케일은 이것이 바로 상남자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또 한편, 아버지가 사람들을 대하시고 모습, 빈첸시오 활동하면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
오갈 데 없는 분들을 집에 모시고 돌봐주고 건네는 말 한마디,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으시려 애쓰는 모습,
엄마에게 하셨던 모습을 볼 때마다 남자는 통도 커야 하지만 섬세하고 자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려고 저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사제가 되어서고 아버지가 준 영향이 참 큽니다.
그러다 나중에 예수님에 대한 관상의 상태로 들어가면서 참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그렇게 훌륭한 아버지 자식이었구나, 예수님을 닮은 아버지셨구나!
예수님이 우리 아버지의 모습으로 어릴 때부터 나를 키우셨다고 하는 생각에 얼마나 감사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오늘 예수님은 귀먹고 말 못 하는 그 사람을 함부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정말 정성을 다하여, 귀가 열린 후의 상황까지 예측하시어 정말 자상하게 치유시킵니다.
그리고 구원하십니다.
 
에파타열려라!’
저희들도 열려야 합니다.
성체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 우리는 열려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열리게 됩니다.
미사 때마다 나에게 오시면서 ‘열려라’ 하십니다.
 
열려라’ 하는 말은 포기하라는 말입니다.
‘열려라’ 하는 말은 어둠의 문을 열라는 것입니다.
교만의 문, 미움의 문, 욕심의 문을 열라는 것입니다.
마귀로부터 해방되라는 겁니다.
즉, 모두 포기하라는 말입니다.
어둠 포기하고교만 포기하고미움 포기하고욕심 포기하고,
마귀가 하는 짓거리라 생각하면 절대 한발도 빠지지 말라는 말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성체를 영하는 우리를, 또 성체를 영하지 못한다면 말씀으로 주일을 보내는 여러분들을
귀먹은 반벙어리처럼 섬세하게 치유하실 겁니다.
섬세하게 구마하실 겁니다. 아멘
 
오늘은 주일, 말 그대로 주님의 날입니다.
다만 입을 크게 벌려라내가 채워주리라
오늘 하느님의 선물로 가득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 사랑합니다.
 
2021년 연중 제23주일 (09/05)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카카오톡에서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구글+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21/09/13 20:35:11)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아멘! 감사합니다.

 
백발 (2021/09/14 08:50:20)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아   멘,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합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21/09/14 11:38:36)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 아~멘~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PC버전 홈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마리아사랑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