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우리가 죄를 짓는 이유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우리가 죄를 짓는 이유

 

전 요셉의 글

2024-05-29 07:43:20 조회(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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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나해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우리가 죄를 짓는 이유>

복음: 요한 12,24-26


LORENZETTI, Pietro 작, (1325)  

    

 

    영화 ‘아메리칸 뷰티’는 1999년에 개봉한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로,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레스터 버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레스터는 중년의 직장인으로, 단조롭고 무의미한 일상을 살아가며,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가족과의 소통 부족으로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습니다. 아내 캐롤린은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하며 성공을 추구하지만, 역시 삶의 의미나 목적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부동산 재벌과 외도에 빠집니다. 

 

 

    레스터의 삶은 딸 제인의 친구인 안젤라를 만나면서 급격히 변하기 시작합니다. 안젤라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매료된 레스터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로 결심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몸을 단련하며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는 자신이 항상 꿈꿔왔던 스포츠카를 구매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결국에선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이전에 행복했던 오래된 가족사진을 보며 끝을 맺게 됩니다. 

 

 

    영화에서 레스터는 종종 상상 속에서 안젤라와 함께하는 장면을 떠올리는데, 이때 등장하는 장미는 사랑과 아름다움, 삶의 의미와 열정을 상징합니다. 장미는 레스터의 욕망과 새로운 시작을 향한 갈망을 나타내며, 그의 무의미한 일상에 색다른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그러나 장미는 상상 속에만 있지 않고 영화 내내 등장합니다. 각자가 삶의 열정인 장미를 찾고 싶어 했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장미가 아닌 상상 속의 장미를 추구하게 되면서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은 목숨을 걸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습니다. 그것이 삶의 의미가 되고 목적이 됩니다. 그 목숨을 걸 것은 분명히 내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열정(passion)을 불러일으키고 나의 땀과 피를 쏟게 합니다. 그래서 열정은 수난(passion)과 같은 단어입니다. 이것이 없는 삶은 무기력합니다. 사람은 삶의 이유가 있어야 살기 때문에 내가 선한 목적으로 쏟지 않는 피는 죄를 위해 사용되게 되어 있습니다. 죄라도 삶의 이유로 삼아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 율법학자 엘아자르라는 노인도 돼지고기를 먹이려는 이들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죽음을 택합니다. 어차피 죽는 목숨, 죄짓는 목적이 아닌 하느님 뜻에 순종하는 데 쓰겠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기 때문에 죄짓기 위한 에너지가 남지 않습니다. 하느님 뜻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지 못하면 그만큼 죄를 짓는데 사용됩니다. 매를 맞아 죽어가면서도 엘아자르는 말합니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마치 소크라테스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배부른 돼지가 되어가면서도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동경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목숨을 너무 아까워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 어차피 사라져버릴 우리 목숨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기자가 우사인 볼트에게 왜 빨리 은퇴하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더는 뛸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올림픽 3관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세 번의 올림픽에서 세 개씩의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러면 그는 에너지를 어디에 썼을까요? 약혼자가 있었음에도 마지막 올림픽이 끝나고 광란의 파티를 하여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죄를 왜 짓게 될까요? 한가해서 그렇습니다. 에너지가 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은 당신 계명에 우리 목숨을 걸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죄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에게 100억짜리 명마가 있다면 술을 먹이고 지방을 먹이고 잠만 재우겠습니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내어놓지 못하는 목숨은 모두 저절로 죄를 짓는 데 사용되게 됩니다. 배부른 돼지가 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 것인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 것인지는 우리 결단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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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e! (2024/05/29 23:3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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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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