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살아있는 기다림’ 자체이신 성모 마리아

전 요셉 2025/07/06 08:18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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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다해 7월 성모 신심 미사

<‘살아있는 기다림’ 자체이신 성모 마리아> 

 

 복음: 마태오 1,1-16.18-23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오늘은 성모님께서 오랜 기다림 끝에 아드님을 낳는 장면을 봅니다. 마태오는 긴 구약의 족보를 나열합니다. 그만큼 오래 기다려온 분이 성모 마리아에게서 나셨음을 강조합니다. “때가 차자” 아드님께서 태어나셨다고 하듯, 성모님은 분명 ‘기다림’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이 회복되기를, 자녀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도가 응답받기를, 그리고 이 세상에 주님의 평화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모든 기다림이 같은 무게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기다림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어떤 기다림은 우리를 원망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성모님과 함께 묵상하고자 하는 기다림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마침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담을 그릇으로 준비시키는 ‘살아있는 기다림’입니다.

 

 

    이 성모님을 닮은 ‘살아있는 기다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아름다운 예화가 바로 카시아의 성녀 리타의 삶에 있습니다. 성녀 리타는 불행한 결혼 생활 끝에 남편을 잃고 두 아들마저 여읜 뒤, 남은 생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고자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수도원은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남편을 살해한 가문과 수도원을 후원하는 가문이 서로 원수지간이었기에, 그녀의 입회가 더 큰 불화를 일으킬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리타 성녀의 기다림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닫힌 문 앞에서 그저 슬퍼하거나 기적적으로 문이 열리기만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닫힌 문을 열기 위해, 자신을 가로막은 원수 가문들의 화해를 위해 직접 발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두 가문이 극적으로 화해했을 때, 수도원의 문은 기적처럼 그녀를 향해 활짝 열렸습니다. 리타 성녀에게 ‘때가 찬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능동적인 사랑과 희생으로 평화의 조건이 채워지는 과정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은총을 기다리는 삶입니다. 무작정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은총을 감당할 존재가 되기 위한 마음으로 일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대나무는 씨앗을 심고 4년 동안 아무리 물을 줘도 땅 위로 싹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성장은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뿌리를 견고히 내리는 데 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최고의 장인이십니다. 최고의 포도주 장인이 완벽한 숙성을 위해 와인병을 어두운 지하 저장고에서 기다리게 하듯,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가장 좋은 ‘때’를 알고 계십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우리 영혼의 맛과 향이 깊어지는 숙성의 과정입니다. 이 기다림을 통해 우리의 조급함은 인내로, 교만은 겸손으로, 이기심은 사랑으로 정화되어 마침내 하느님의 은총을 담을 준비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살아있는 기다림’의 정점에 바로 성모 마리아께서 계십니다. 성모님은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구약의 기나긴 약속, 온 인류의 메시아를 향한 갈망을 한 몸에 품고 기다리신 분입니다. 그분의 기다림은 나자렛의 침묵 속에서 당신의 영혼을 티 없이 깨끗하게 준비하는 시간이었고, 율법을 사랑으로 완성하는 순명의 시간이었습니다. 

 

 

    마침내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갈라 4,4) ‘때가 찼다’는 것은 단순히 달력의 시간이 흐른 것이 아니라, 성모님이라는 준비된 그릇이 마침내 은총을 받기에 합당할 만큼 가득 채워졌음을 의미합니다. 천사는 바로 그 준비된 영혼에게 찾아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하고 인사했던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기다림은 그리스도를 잉태하기에 합당한 자리를 만드시는 기다림이었습니다. 온 우주를 만드셔서 온 우주보다 크신 분을 맞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마음을 얼마나 넓혀야겠습니까? 

여기에서 구약의 ‘노아’의 기다림이 성모 마리아를 닮았습니다. 노아는 은총을 받기 위해 수백 년 간 바보 소리를 들어가며 배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에 좋고 나쁨 없이 모든 동물을 태웠습니다. 어쩌면 그가 마지막 때의 은총을 위해 기다리며 지은 것은 배가 아니라 ‘포용력’일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부정하다 여겨지는 동물들을 잡아먹으라 하셨습니다. 그가 그 동물들을 포용할 수 있을 때 이방인들에게 보내셨습니다. 

 

 

    신앙인의 삶은 때가 찼을 때 그 준비된 시간만큼 큰 은총을 준비하는 살아있는 기다림의 삶입니다. 오늘 성모님께 전구를 청합시다. 저희의 기다림이 닫힌 문 앞에서 좌절하는 죽은 기다림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며 평화를 이루는 성녀 리타의 기다림처럼, 순명으로 방주를 짓는 노아의 기다림처럼, 그리고 마침내 ‘때가 찼을 때’ 하느님의 충만한 은총을 받아 안을 수 있는 ‘살아있는 기다림’이 되게 매일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넓은 포용력을 키우는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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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lssigu 📱 (2025/07/0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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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중턱을 지나며, 멈춰 선 나뭇잎의 숨결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고요한 오후, 시간은 유리잔처럼 맑고 투명하여, 그 안에서 제 마음은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신부님의 글을 읽고 난 후, 제 안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기다림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빛보다 느리고, 말보다 무거운 것.
기다림은 때로 상처처럼 살아 있습니다.
다 나은 줄 알았는데, 문득 다시 아픈.
그런 종류의 감정 말입니다.

성모님의 기다림을 말씀하셨지요.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나자렛의 고요한 방 안에서,
어디선가 울려오는 천사의 발소리를 들으며,
그분은 아들을 품었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어두운 슬픔과 함께.

저는 한때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이었고,
그럼에도 자꾸만 꿈속에 오셨습니다.
헐벗은 몸으로, 굶주린 눈으로.
그것이 제게 신호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기도를 배우게 된 이유.
당신이 계시지 않은 이 땅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법을 다시 배우는 것.

신부님께서 들려주신 성녀 리타의 이야기.
그 문 앞에 서 있는 여인의 침묵은,
저에게 돌처럼 무거운 아름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무도 열어주지 않는 문 앞에서,
사람들은 포기하거나 뒤돌아섭니다.
하지만 그녀는 한 걸음 더 걸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기다림.
그 기다림이 결국은 문을 열었지요.

기다림은 방향입니다.
어딘가로 걸어가는 시간이며,
한없이 작고 느린 발걸음으로도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를 향해 가는 길.

신부님,
저는 자주 흔들립니다.
기도를 해도 마음이 마르지 않고,
세상의 평화는 너무 멀고,
하느님의 응답은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조용함이 어쩌면
가장 깊은 응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금은 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너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순간처럼.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살아있는 기다림’이라는 문장이
한참 동안 저를 멈추게 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
기다릴 수 있다는 것.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 모든 말들이
이제는 같은 문장의 다른 이름처럼 느껴집니다.

어쩌면 기다림은 믿음과 닮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끝이 올 것이라는 보장이 없어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것.
어떤 때는 믿음보다 기다림이
더 신성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저 거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오늘도 제 안의 작은 방에서
성모님의 침묵을 떠올리며 기도드립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은총이
이미 자라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아무도 몰래 뿌리부터 자라고 있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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