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신부님의 오늘의 강론 : 캄캄한 지하 감옥에서도 도덕성의 회복을 크게 외쳤던 세례자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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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지하 감옥에서도 도덕성의 회복을 크게 외쳤던 세례자 요한!

 

양승국 스테파노신부의 글

2022-09-22 00:09:33 조회(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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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지하 감옥에서도 도덕성의 회복을 크게 외쳤던 세례자 요한!

 

 

헤로데 왕가의 타락은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 안티파스는 부친이었던 헤로데 대왕의 세 아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헤로데 대왕이 죽고 나서 영토는 세 아들에게 분배되었는데, 헤로데 안티파스는 갈릴래아와 페레아를 차지하게 되었지요.

 

 

한번은 헤로데 안티파스가 로마로 가던 도중에 동생이었던 헤로데 필립보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는 아버지 헤로데 대왕의 손녀이자 자신의 조카였던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고 있었습니다. 헤로디아는 이 사람 저 사람의 눈길을 끌만큼 빼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여행도중 헤로데 안티파스는 헤로디아와 눈이 맞게 되었고, 조카인 헤로디아에게 결혼을 신청하였습니다. 헤로디아는 이에 질세라 즉시 OK했습니다. 로마에서 돌아오자 마자 헤로데 안티파스는 아내였던 아레타 왕의 딸을 쫒아내고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보십시오. 이 끝도 없는 헤로데 왕가의 윤리적 타락을...마치도 짐승들과도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헤로데 안티파스 사건’은 동생의 아내와 결혼한, 있을 수 없는 사건, 불륜 가운데 불륜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손녀이자 자신의 조카와 결혼한 근친상간의 죄도 성립되었습니다. 참으로 수치스런 일이었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당시 헤로데 왕가에서 버젓이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 대제관들, 당시 한 자리씩 차지했던 사람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헤로데 안티파스의 철저한 타락 앞에서 입을 다뭅니다. 침묵을 지킵니다. 살기 위해 자신을 낮춥니다.

 

 

그때 유일하게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이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헤로데 왕가의 추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도저히 그래서는 안 된다며 엄중히 비난합니다.

 

 

이때 헤로데 안티파스의 모습은 눈여겨볼만합니다. 그는 세례자 요한의 탁월한 인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른 세례자 요한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두려워했을 뿐만 아니라 보호해주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안 된다고 경고할 때 마다 속으로는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그의 말을 기꺼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헤로디아는 반대였습니다. 끊임없이 바른 말을 내뱉는 세례자 요한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호시탐탐 세례자 요한을 처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유약했고, 또 여자에 약했던 헤로데 안티파스는 마침내 꽤 ‘매혹적’이었던 헤로디아의 간계에 넘어갑니다. 헤로디아는 당시 열일곱 살이던 자신의 딸 살로메에게 대연회석 상에서 춤을 추게 합니다.

 

 

당시 대연회장에서 양가집 딸에게 춤을 추게 하는 관습이 없었습니다만 ‘갈 데 까지 간’ 왕가였던 만큼 공주의 신분으로서 남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조차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살로메가 얼마나 춤을 잘 추었던지 헤로데는 정신이 거의 나간 상태에서 실언을 합니다. 헤로디아는 단 한번 찾아온 그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청하여라.”

 

 

헤로데 안티파스는 내심 엄청 당혹스러웠지만 연회 참석자들 앞에서 말만 내세우는 엉터리란 비난을 면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로 인해 세례자 요한은 참수 당하게 됩니다.

 

헤로디아는 기뻐 날뜁니다. 예로니모가 전하기를 당시 헤로디아는 너무 기쁜 나머지 죽은 요한의 혀를 바늘로 찔렀다고 합니다.

 

청렴결백했던 세례자 요한,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했던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헤로데 왕권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헤로데의 부도덕, 헤로디아의 사악함 앞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그리하여 캄캄한 감옥에서도 도덕성의 회복을 외칠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의로운 선구자는 쓸쓸히 죽어갔고, 구약 마지막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순교로서 완수하였습니다.

 

의인의 길은 언제나 춥고 배고픈 것입니다. 예언자의 길은 언제나 고독하고 쓸쓸한 가시밭길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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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2022/09/22 00: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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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luce! (2022/09/22 04: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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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고맙습니다.

 
내담 (2022/09/22 05: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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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옹달샘맑은물 (2022/09/22 10: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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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침의 글 감사합니다.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22/09/22 17: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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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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