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女 박봉순 막달레나(1796-1839), 과부, 참수형(44세로 1839년 9월 26일 순교)

나눔지기~♡ 2011/04/02 오후 08:33 (744)
  이 게시글이 좋아요 싫어요
聖女 박봉순 막달레나(1796-1839), 과부, 참수형(44세로 1839년 9월 26일 순교)

성녀 박봉순 막달레나는 1793년(정조 20년)에 비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5세 때에 비신자에게 출가하여 두 딸을 낳았으나 얼마 후 남편을 여의고 이어서 시부모마저 여의게 되니 하는 수 없이 서울에 있는 친정으로 돌아왔다.
이때 친정에는 김 체칠이라는 훌륭한 여교우가 계모로 와있어서, 박봉순은 계모의 권고와 가르침을 받아 1834년에 입교하여 수계생활을 시작하였다. 입교한 후 그녀는 남대문 밖 이문골에 살고 있던 외삼촌 김사문의 결방살이를 하게 되었다.
집은 작은데다가 가난한 사람, 늙은이 , 어린이 10여 명이 동거하고 있었으므로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하였다. 게다가 교우들의 왕래가 잦고 보니 번잡함이 그지 않았다. 그러나 막달레나는 곤궁한 생활중에 어떤 시련을 당해도 마음이 한결같고 뛰어난 겸손을 보여 사람들의 눈을 끌었다. 그는 가장 힘들고 가장 어려운 일은 도맡아 하고, 가장 유쾌하고 가장 좋은 일을 이웃에게 남겨주는 겸손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입교한 지 5년만에 박해가 시작되자, 외삼촌과 함께 남대문밖 이문골에 살고 있던 다른 사람은 모두 피신했으나 막달레나는 혼자 집을 지키며 순교의 마음을 굳히고 포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1839년 3월 중순 어느날, 다른 날 처럼 기도하고 있다가 포졸들이 달려들어 외삼촌과 막달레나를 함께 잡아갔다.
잡혀가 첫번째 문초를 받은 막달레나는 "천주를 배반하고 네 집 사람들이 숨어 있는 곳과 책을 감추어 둔 자리를 대고 동료들을 고발해라"하는 포장의 말에 막달레나는 "천주를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내 집안 사람들은 나모르게 도망하였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으며 책을 가진 것이 없고 교우들의 일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하고 단호히 응수하였다. 그러나 포장은 피신한 사람들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형벌을 더하고 주리를 틀게 하였으나, 막달레나는 혹형중에서도 침착하게 "과연 어떤 사람이 내왕했는지 모릅니다"라고 대답할 뿐 아무도 고발하지 않았고 또 마음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형조로 이송된 후 형관이 이제라 단념하면 놓아 주겠다고 달래보았으나, 막달레나는은 "단념하려 했으면 벌써 포청에서 놓였을 것인데 여기까지 온 것은 위주 치명하고자 함이니 국법대로 죽여주십시오"하고 대답할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정강이에 세 차례나 혹독한 매를 맞은 후 7개월 만에 서소문 밖에서 참수 당했다. 그녀의 나이는 44세였다.
여기서 고문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주리질은 3가지가 있다.
1) 가새주리는 두 무릎과 두 엄지발가락을 꽉 잡아매고, 그 사이에 두개의 몽둥이를 끼워서 뼈가 활등처럼 휠 때까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당겼다가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형벌이다.
2) 주리는 먼저 두 발의 발가락을 한데 묶고, 다리 사이에 굶은 몽둥이를 끼운 뒤 양쪽 무릎에 맨 줄을 두 사람이 반대 방향으로 당겨서 두 무릎이 맞닿도록 조금씩 접근시키는 것이다.
3) 팔주리는 팔의 탈구이다. 양팔을 등 뒤에서 서로 엇갈리게 팔꿈치 위까지 잡아매고, 두개의 굶은 몽둥이를 지례처럼 사용하여 양 어깨가 접근하도록 한다. 그런 다음 팔을 발고 가슴팎을 짓누리며 양팔을 끌어 당겨서 뼈가 제자리에 돌아오게 한다. 집행자들이 익숙하면 뼈가 휘기만 하도록 누르지만 경험이 없는 풋나기는 뼈가 대번에 부러지고 피와 함께 골수가 튀어 나온다.
톱질(다리톱질)은 말총으로 꼰 밧줄을 넓적다리에 감고 두 사람이 밧줄의 한 끝씩을 쥐고 살을 파고 들어가 뼈에 닿을 때까지 서로 당겼다 늦추었다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보다 위쪽이나 아래쪽에서 다시 시작한다. 어떤 때는 삼각봉을 정강이 대고 톱질한다.
고문을 할 때는 그 시간의 장단이나 잔인성의 정도는 재판관의 변덕에 달렸다. 고문을 당하는 신자들은 다리를 끌면서라도 걸을 수 있는 일은 드물고, 집행인들이 몽둥이 두 개 위에 얹어 팔다리가 축 늘어진 수형자를 감방으로 운반하게 된다.

<교훈>
가시에 찔려도 야단법석을 떠나 우리는 순교자들이 참아낸 고문을 생각하며, 자니치게 편안함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합시다.
 
카카오톡에서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홍안기 영주바오로 (2014/09/07 14:50)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찬미예수님!

103위 한국 순교성인 발표자료를 찾던중 아주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댓글 쓰기

📢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목록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마리아사랑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