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뜸에,
"싫다! 정신산란하게 오데로 올라꼬?.. 아부지하고 조용하고 편하게 갔다올끼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그것도 참 기특한 생각이다 싶어
"생각 좀 해보자..."
2주전 다녀온 용인 한덕골 성지는 골짜기 외진 언덕받이에 덩그라니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 과 성모상. 그리고 양쪽 옆으로 김대건신부님과
최양업신부님 상 만이 잡초무성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관리소도 없고, 주차장 못들어가게 쳐놓는 쇠줄 한가닥만이 들어가는
입구 경계를 알려주고 있는 물어물어 돌고돌아 찾아간 골짜기 산자락 아늑한 곳엔
그옛날 박해의 칼날을 피해 모여든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던 척박의 땅 그대로의
모습처럼 .... 오늘도 참 고즈녁히 침묵속에 외로이 앉아있다.
땡볕에 앉아 잠깐 기도하고 돌아서 나오는 길가 저쪽 기슭에 오디열매가 수두룩히
떨어져 있어 옥잠화의 기억도 잠깐 잊어버린채 또 주섬주섬 줏어담고, 나무에
달려있는 오디열매를 한봉다리 따고있으려니
"아니, 또 경찰서 끌려가면 어쩔려고 ,,, 놀려대는 할배도 높다란 나뭇가지 길게
잡아당겨 주곤 어서 따보라고 격려? 해가며 우리부부는 또 신나게
한바탕 오디서리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저만치 높은 산자락에 빨강 열매 주렁주렁 달고있는 앵두나무를 보곤
또 기어올라가 두손이 모자랄 지경으로 봉다리봉다리 따들곤 내려오며
"세상에~ 하느님이 우리가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골짝까지 찾아왔다고
이리 좋은 선물을 주시는 가봐요. 아부지... 참 고맙습니데이~"
그날은 아침일찍 출발해서 용인 수지구에 위치한 맷돌로 만든
십자가가 있는 도리신부님과 무명의 순교자들이 잠들어 있는 손골성지를 들렀다가
처인구의 골짝 한덕골을 찾았다가. 또 길 떠나가는 골배마실 성지인데
이 또한 만만치않은 길이다.
네비가 일러주는 대로 열심히 갔는데 길이 끊어진 도로부턴 목적지에
다 왔다는데 . 사람들 하하호호 웃어대는 소리만 들려오는 광활한 골프장만
펼쳐진 언덕배기 들판과 잔잔한 수풀들 뿐...
"여긴 또 왜 이래? 도대체 김대건신부님이 뛰어놀았다던 생가동네는
오데야?.. "
할머니 한분과, 딸? 같은 두사람도 골짝까지 올라가다가 도저히 안되겠는지
도로 내려가며 아쉬워 하신다.
등산길 끝나고 내려오던 아저씨 한분을 만나
"아저씨.. 저기 김대건신부님 생가터성지가 어디있는지 아세요?"
했더니
"아이구~ 너무 올라오셨네요. 저 아래 입간판 서있는 바로 뒤에 작은
계단으로 내려가면 잠겨있는 철문이 있는데 아마도
그곁에 우체통같은데서 뭘 꺼내는걸 보면 열쇄인것 같은데...
한번 가보세요."
얼씨구나! 여기서도 그냥 돌아가야하나 했는데 또 천사 한사람을
보내주신 우리주님께 감사하며 내려갔더니..
"참 ~내 보통사람들은 우찌 알겠노? 서있는 간판 뒤에 보일듯말듯
돌계단 몇개 놓인채 그 앞에 철문이 굳게 잠겨 안쪽 잔디밭만 쪼매 보이니.
아까 지나쳐 갈땐 무슨 골프장 뜨락인줄만 알았제..."
은이성지 관할 터라 은이성지 사무실에 전화걸어 자물쇠 비번을 알아
열고 들어가본 골배마실성지 땅엔 옆으로 작은 개천이 흐르고.
바윗돌 몇개와 신부님 상과 연혁들이 모셔져 있었다.
7살때 이곳 골배마실로 부모님 따라 피난살이온 꼬맹이가 온 개천을
돌아다니며 가재도 잡고, 송사리떼들 잡고 뛰노는 광경을 생각하니
엄마인 고우르술라님의 따뜻한 미소속에 한줄기 위로와 함께
고난의 성가족이 겹쳐온다.
15살에 은이공소에서 세례를 받고 모방신부님의 권유로 멀리 마카오로
사제의 꿈 품고 길 떠나셨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유년의
꿈을 그리던 골배마실 땅이다.
지금의 우리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놈들도 비슷한 또래나이라
이놈들이 이 아늑하고 포근한 개천숲을 휘젓고 뛰어다니는
그림을 그려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져오는 것을 느껴본다.
이곳을 못찾고 그냥 돌아왔으면 꿈 한자락 날아가버릴 뻔 했다고
할배는 또 놀려댄다.
"나중 에 우리 미카엘 놈들이 커서 텔레비에라도 나올라치면
'어렸을 때 할매들이랑 온 식골공원 날아다니며 청솔모도 보고
도토리도 줍고, 매실 따다 옥잠화 이파리도 다 쓰러뜨렸다는
기억이 있다'며 인터뷰라도 할지 알아? 리노할매 유명해지겠네~~"
한참 글을 쓰고 있는데...
"외 할머니~ 이빨 여기 있어요~오"
막내 라파엘놈의 고사리손위에 얹혀져 달려오는 외할미의
틀니 한자락을 내려다보며
"잉? 할매 이빨이 와 거게 있노?..오데서 났노?"
"외할머니~ 으~ 치카통에 물에 담겨있었어요."
"에고~ 고마바라~ 우리 라파엘... 쪽!!"
ps) 옛날에 나 젊었을 땐 우리 할매 틀니한번 보곤
소스라쳐 놀라 멀리 도망쳐 갔는데.... 싶던 기억이 떠올라
어린 놈이 기특도 하다 싶더이다.
( 22년 8월 13일 두번째 성지순례의 코스로 청년 김대건길이 있는
용인 은이성지와 골배마실 성지를 찾아 나선다.)
아직은 부산교구를 끝으로 1차 마지막 순례의 여독이 풀어지지 않았지만
요즈음 감내하고 있어야 했던 사람들 속에서의 구설수들을 겪어내는 동안
휘청거리던 영혼을 수습하기 위한 방편으로 할배의 엄살에도 불구하고
토요일 새벽 5시반에 2시간 반여의 길을 떠난다.
일년전에 차로 꼭꼭 숨어있던 어린 김대건사제의 생가터를 간신이 찾아들어가
푸른 풀들을 밟아가며 물이 많지않은 개천가를 내려다보며 같은 나이또래의
우리집 세천사들을 떠올리며 행복한 웃음짓던 그날을 기억하며...
해발400미터의 칠봉산?.. 꼭대기를 오르고 또 올라가며 왕복 5시간여를 다녀올
생각을 하니... 미리부터 겁도 나고.. 아서라~ 접을까?,, 왔다갔다 하는 마음을
다잡으며.. 떠나가는 새벽시간..
리노할배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투덜댄다.
"만약 오늘 해가 쨍쨍 내리쬐던지. .. 비가 억수로 퍼붓는 다는 일기예보도 있는데
어찌 감당할려고 그러나?... 다음주에 가도록 하자"며 여엉 몸을 사려댄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기냥 갔다 오믄 되는 기라요... 그동안 숱한 시간속에서
살아서 우리를 안내하며 요리조리 데불고 다니던 고마운 성령님을 많이도
만났으면서 그런말 하믄 안되제요~~"
당연히 그 감사함과 살아움직이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알고 믿는 할배도
한번 테클 걸어보더니 잠자코 포기한 모양새다.^^
7시 반경 도착한 은이성지는 입구에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다.
내려서 살짝 밀어댔더니 차가 들어갈수 있어 들어갔더니 저만치서 덩치가
커다란 젊은 남정네가 나오며 막~ 야단을 쳐댄다



"9시도 안되었는데 마음대로 밀고 들어왔다며.... 당장 나가라고... 성지지기의
인자한 모습모담은 우락부락 씩씩거려 대어~ 꼬리 한껏 접은 리노할매 납작엎드려
"사실은 우리가 저어기~ 도보순례길 떠나려고 새벽부터 먼곳에서 출발해 왔는데
정말 죄송하지만서도 여기다 차좀 세워두고 갔다오믄 안될까요?"
"저윗층에 신부님도 계신데.... 절대로 안되니 밖에나가 좀 내려가면 마을회관에
주차할데가 있으니 거기다 갔다 대고 가세요"
"아? 예~!에! 알았습니다. "


마을회관에 차를 세워두고 산길을 접어오르며 할배는 옳다구나 하며 따따다다~
따발총을 쏘아대며 편치않는 할매의 심사를 휘젓어 댄다.
"됐어, 나는 허리도 아파고 힘들어 김밥도 물도 아무것도 못지고 가고., 안먹어도 된다"며
어깃장을 부려대는데... 속으론 환장절창을 하면서도 꾹꾹 눌러참는 리노할매는
"성령님! 이 새벽 나쁜 기운들이 우리의 갈길에 장애물을 자꾸 놓으려 훼방을 놓습니다.
도와주세요~" 기도하며 암말않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할배가 없어도 된다던 할배몫 김밥이랑. 우비2개. 물한병... 할매 혼자서 다 지고 가며
"성령님~ 나도 어깨가 안좋아서 겁나는데...5시간을 우찌 감당할지... 도와주이소~ 제에발!"
8시5분에 청년 김대건의 길을 서두르지않고 숲과 옆으로 신나게 흐르는 계곡의 물들을
구경하며 오르다 보니 작년처럼 올해도 텐트가족들이 몰려들 와서 자연을 즐긴다.
아이들과 함께 텐트를 치며 쇠꼬쟁이들을 박아대는 젊은 부부의 가족들을 바라보며
색깔없는 미소를 보내며 바쁘지 않은 발걸음을 옮겨가는 동안....
좀 전의 어두운 기운들은 어느새 사라져가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다정히 오르는 할배와 함께 바위에 걸터앉아 마주보고 웃는다.



생가터가 있는 골배마실 성지의 입구모양만 기억하고 있는데.
어느길... 어떤 산길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하는지는 오로지 3시간이란 시간만 가늠하며
오르는 하늘은 여전히 잔뜩 검은구름을 머금고 있는 모양새가 저 이스라엘 사람들의 갈길을
인도하시던 하느님 구름기둥을 연상케 하누나....
"햇살도 쨍하지 않고, 비도 오지않는 바람잔잔한 회색의 고마운 날씨로 날 인도하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며 찍소리없이 숨을 고르며 올라간다.



75도의 경사길을 오를때는 등과 허리를 동그랗게 말아 구부리며 기어오르다시피
힘든길을 올라갈때 "반석아부지~ 44년 광야생활 중에 만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길과 같네요. 참! 그 세월을 우찌 견뎌내었는지... 꿈만 같으네"








9시33분...
경사길의 꼭지점 구부러진 길바닥에 널부러진 도토리길이 또 열려있다.
어깨에 진 짐의 무게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쓸어담는 리노할매의
욕심은 또 앞뒤를 분간도 못한다.^^



기다리고 있는 리노할배의 욕심 또한 부창부수~~!!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심상찮은 회색하늘을 의식하며
"아이구~ 아부지! 그노무 도토리 줍는다꼬 시간을 쪼매 까묵었네요.
죄송합니더~ 쪼매만 더 비주머니 꽉 잡아 줄꺼지예~" 부탁드린다.





끝도없이 올라가던 길에 내리막이 보인다.
"반석 아부지~ 인자 다왔나 보네요. 저 밑에 앉아쉬는 저 자매들한테
올매나 남았는고 물어나 봐야 겠네요..."
내려가는 길 또한 급경사의 미끄럼타는 길이지만 끝이 보이는 저 아래로
조심조심 내려가 "골배마실 성지 다녀오느냐고 물었더니 뜬금없는 소리
말라는 여인들의 표정을 읽으며 아! 마을 여인들이 산책겸 운동나왔구나
깨달으며 고독한 순례길 발걸음을 또 다시 걸어간다.



언양 죽림굴 바위를 찾아 세시간을 오르던 구불구불한 산길을 연상케 하는
이길 또한 길고도 긴 스무고개길 이다.
"반석아부지... 와이리 끝도없이 가노요?.... 설마 잘못 온거는 아니겠지요?"
넓다란 골프장 잘 깎아놓은 잔디가 보인다. 치솟는 한줄기 분수도....
"반석 아부지~ 인자 다 왔나보네... 저어기... 골배마실 표지가 보이네요.
아이구~ 아부지. 감사합니더.... 다 왔네요."



잠겨있는 문앞에서 은이성지 사무실에 전화걸어 비밀번호를 풀고 들어간
어릴적 뛰놀던 꼬맹이 대건안드레아 의 생가터는 작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지난며칠 온 비로 개천물은 물어 더 넉넉하고. 녹색짙은 숲이며....잔디들이
에덴의 동쪽같은 평화와 만족감을 확~ 안겨주누나!


오늘도 느껴보는 6살 7살 꼬맹이들의 개구장이 물장구와 함께 깔깔거리는
하느님 천사들의 웃음과 내달음을 그려보며 행복그릇 가득가득 생수를
담아나르며....




안드레아 사제앞에 앉아 성모님과 함께 묵주의 신비 은총꽃을
세어가며 잠시나마 무념무상속으로 빠져든다.



인기척에 뒤돌아 일어나니 옆동네 용인 동백마을성당?서 왔다는 일가족을
만나 인사나누며.... 은총넘치는 순례길의 복된삶을 서로 격려하며 헤어져나오는
시간은 12시이다.


올때와는 또 다르게 늘어지는 기운은 아마도 다 이루었다는 안도감과 찾아야겠다는
긴장감이 확~ 풀어져 버렸음이로다.
모기떼들은 벌떼처럼 모여들어 피좀 빨아먹자고 아우성대고....
또 끝없이 오르고 구불거리는 세시간여의 길을 가는 동안 우리 하느님 이제는
팔목이 아파서 비주머니 놓쳐버릴세라 걱정도 되는....
"아! 우매한 믿음의 아들. 딸.."
겨우겨우 도착한 아까 그 세여인들의 쉼자리 벤치에 앉아 싸갖고 간 김밥을
꺼내 기운을 돋운다.
"반석 아부지~ 그 많던 모기떼가 와 하나도 안보이고 살랑살랑 바람이 이리도
시원한가 모르겠네요... 그라고 김밥은 또 와이리 맛있노요..^^" 우적우적~~꿀꺽!
성령님 성모님! 참말로 고맙습니데이~



김밥과 물과 우유를 비웠어도 욕심의 도토리 잔재들을 메고 진 리노할매는
찍 소리도 못한다. "내탓이요~ 내탓이니~ 내 큰 욕심탓이로이다"
기운차려 또 떠나는 이길 의 남은시간에 제발 비만 쏟아지지 않기를 바라며
내려온 오르막길을 또 기어오른다. 헉헉~~ 휴우~!!
처음부터 포기를 한 길이라선지 어째 아까보다 수월케 올랐다는 리노할배의
마음속에도 우리 성령님 뒤에서 한없이 밀어주셨나 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삼덕고개 미리내 성지길의 갈림길이 나타나는 걸 보니 많이 내려왔나보다.


정자에 앉아 도시락과 막걸리를 먹고있는 형제 4분은 만나 스스럼없는
인사나누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있음의 친근한 정으로 안부를 빌어준다.
"반석 아부지~ 저 양반들 참 건전하네요. 산에 올라 만나와 메추라기와
생수로 살찌우는 모습들이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을것 같지않은교?"
드디어.... 신덕고개의 고생다한 마루턱이 보인다.!


작년 이맘때처럼 새파란 하늘에 쨍하는 빛줄기는 없어도...
오늘은 시원한 바람을 몰고 구름기둥으로 우리를 받쳐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또 느껴보며 무지한 감사를 드린다.
양쪽으로 쏟아져 내리는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비가 할퀴고 간 울퉁불퉁한
산길 자갈들을 밟으며 끝이보이는 마지막을 향해 서두른다.
"아부지~ 성지 도착할때 까지만서도 비주머니 꽉 잡고 있어주이소"~제발!
토요일 오후 막힌길 뚫고 도착한 젊은가족들이 여기저기 또 텐트를 쳐댄다.
물총들고 여기저기 천둥벌거숭이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하며...
고기굽는 아낙네들 하며.... 참 보기좋다.
내려오는 길 한무리의 젊은 자매들의 무리를 만난다.
스틱을 쥐고.... 스무나명은 족히 되는 무리들이 이시간 저 고개를 넘어
미리내로 가는지... 골배마실로 가는지... 할 테지만 날씨가 어째 어지럽다.
저만치 은이성지의 지붕이 보이고 ... 마지막 안도의 숨을 내쉬는데..
뚝뚝뚝~~! 드디어 비가 떨어진다.


"아이구~ 아부지! 5분만 참아주시믄 되는데... 팔이 너무아파 비주머니
주둥이를 놓쳐버리셨나 보네요... 그래도 고맙기는 이루말할데 없습니더.
지금까지 저노무 비를 가둬놓아 주셨음을.... 감사 또 감사드립니더. 아멘"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은이 성지에 갖다 대고 본격적으로 쏟아지는 비속을
뚫고 김가항성당 예수님을 찾아 들어 성모님도움의 구슬알 한단 돌려드리고
나와 김대건사제의 발자취가 담긴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와










비쏟아지는 성모님 앞 촛불로 오늘의 감사함과 함께 해주심을 기도의 향기로
태워 올린다.



십자가의 길 기도는 비가쏟아지니까 그냥 성전안에서 하자고 해도 막무가내로
을러대는 리노할배의 고집에 건너편 기도의 숲길로 오른다.
지난 비로 잡초는 키만큼 자라있고 땅은 질컥거리건만 ..... 또 성모님부르며
수난과 불편의 길을 걸어 올라간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맘속에 주님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진짜로~ 카나?"는 마음속 주님음성 들으며....
두 얼굴의 사나이를? 떠올리며 배시시 웃어본다.












은이 성지는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1836년 모방 신부에게 세례성사와 영성체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곳이다.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활동은 은이 공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이곳에서 순교 전 공식적인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였다.
'은이'는 말 그대로 숨겨진 동네를 의미하는데, 경기도의 다른 천주교 동네와 마찬가지로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천주교 신자들의 은신처로서 일찍이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현재는 김대건의 자취가 서려있는
당진의 솔뫼성지와 안성의 미리내성지처럼 크고 화려한 규모는 아니지만 주변의 산세와 더불어 아늑함이 느껴진다.
현재 은이 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생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기념관과 김가항 성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김가항 성당은 우리가 그동안 봐왔던 성당과 확연하게 다른 양식이라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바로 명나라 시기에 세워진 중국 상해에 있던 성당이기 때문이다.
이 성당에서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한동안 잊혔던 김가항 성당은
1990년에 이곳을 방문한 오기선 신부에 의해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성지순례를 위해 한국인들이 종종 찾기도 했었다.
남곡리 파인리조트 버스정류장 앞 골목길 입구에는 마을 옛 이름대로 뱀이 많이 나왔다고 ‘배마실’인데
거기서도 리조트 골짜기 따라 쑥 들어간 첩첩산중이 ‘골배마실’이다.
가톨릭 박해를 피해 충남 당진 솔뫼에서 7살 먹은 김대건을 데리고 조부 김택현과 부친 성 이냐시오 김제준이
1827년 무렵 서울 청파와 용인 이동면 묵4리 한덕골을 거쳐 정착한 곳이 용인 양지면 남곡리 ‘골배마실’이다.
교우촌 은이로 넘어가는 산을 등진 골배마실은 작은 개울이 앞으로 흐르며 성인의 손길이 스친 우물터와
묵은 고염나무, 생가 바닥에서 발굴한 돌로 만든 기념석들 만으로도 한국 최초의 사제,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가 마카오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 소년 시절을 보내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 했다.


에필로그***
8월20일 고초골성지를 다녀 한덕골성지를 다시가다
고초골 공소를 돌아 나오는 길목 가까운 곳에 나타난 한덕골 성지를 찾아들며
정다운 옛친구라도 만나러 가는듯 한덕골 외진 곳에서 순례자를 기다리고 계신
우리 주님을 뵈러 간다.
십자가 양쪽으로 좌청룡. 우백호처럼 서있는 김대건 안드레아/최양업토마스
사제의 모습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눈에도 참으로 멋지고 믿음직 스럽다.
작년6월말에 순례왔을 때 성모님앞 아이들과 손잡고 기도하느라 쥐고있던
묵주를 땅에 놓아둔채 집으로 와버렸던 기억이 있어 차에서 내리자 마자
얼른 달려가 샅샅이 다 찾아봐도 일년전의 그 묵주는 보이지않아 약간은
서운하고 떨떠름한 기분이 된다.
작년에 열려있던 빈사제관 같은 곳의 문짝도 올해는 굳게 걸려있어 작년여름날..
그 앵두와 오디는 구경도 못하고 앞마당 공터에 서계신 성모님과 십자가의 예수님과
마당의 돌아이들과 손잡고 기도하고 놀다가 해질녘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서운찮은
인사 나누고 차에 오른다....
든든한 두 사제에게 "두분을 믿습니다"
사계절의 긴 시간을 넘기고 풀이 깔끔히 손질된 이곳을 다시 찾을수 있게 이끌어 주신
우리 주님의 손길에 깊은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