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처 - 황사영(알렉시오)순교자 묘 1,2차/의정부교구

19처 - 황사영(알렉시오)순교자 묘 1,2차/의정부교구

 

서번트의 글

2023-09-03 22:25:09 조회(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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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8.....첫 번째 순례길

 

따릉 따릉~~♬

아버지의 축일을 축하드린다며 걸려온 리노애비, 에미의 전화다.

이런저런 얘기하다 가 요즘 김밥집에 만연한 식중독 사건 때문에

에미, 애비도 걱정이다 라고 했더니, 어제인가 다른 대리점의

한곳에서 한사람이 배탈이 났다고 연락이 와서 걱정이라는 말을 하더라.

 

보통때 같으면 보험에서 병원치료 를 다 해주어 별거 아닌 일들이라

여겼던 일들이 시절이 시절이다 보니 온 나라가 여기저기서 뻥 뻥

식중독 사건들 때문에 초긴장 이라... 여간 걱정이 아니다.

 

다음 순례지로 가는 차안서부터는 밀려오는 자식놈 걱정때문에

"아부지 아부지... 우리반석이 살려주이소~" 매달려 대면서도

내안에 들려오는 아버지 소리

"놓아라. 놓아버려야지 ..그놈은 그놈의 하느님을 찾게 놔둬야지..")

 

10분이 안되는 거리에 있는 황사영 알렉시오 성인의 묘에 도착했다.

어차피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성인의 묘는,

 

엥~ 근데 뭐야?....

오래되고 낡은 모텔건물앞에 걸려있는 황사영알렉시오 성인의 간판은

참으로 민망하고 송구하다.

 

커다란 모텔 같은 건물을 끼고 길가 작고 좁은 길 언덕에 잠들어 있는

성인의 묘에 퍼질고 앉아 성모님과 함께 묵주의 1단을 바치고 일어서 나오다 보니

비어있는 모텔 건물앞에 송추성당 관할이 적힌 알림지에 공사중이라 써있는 걸 보며

아마도 이건물과 이땅을 매입한 의정부교구에서 황사영 성인묘를 새로이

단장하려나 보다.

 

송추성당 주임신부님은 김연상 비오 신부님이신데.....!!

어린왕자 속 한송이 가녀린 장미꽃이 왕자의 기억속에 끈끈한 의미로 남아있듯이 ....

우리와 함께 몇년을 동고동락 하던 비오 신부님 또한

작은 한 의미로 우리의 기억속에 잔잔한 아름다움으로 남아있음에 그립다.

 

황사영 알렉시오 성인! 전혀 모르던 분이었는데....

베론성지를 찾아 토굴속에 은거해 백서의 순교자로 알게된 성인의 가족사는

많이 가슴을 찡하게 했다.

 

남편 황사영은 백서사건으로 잡혀 참수당하고.

(정약용의 형 정약현의 딸) 아내 정난주(마리아)와 아들 황경한(1살)

은 아비의 백서사건 때문에 제주도로 노비가되어 끌려가던 중

어머니 정난주는 아들까지

노비로 살게할순 없다는 모성애로 한살짜리 아들을 추자도 작은 황새바위에 내려놓곤

피를 토하는 아픔으로 노비로 평생을 살다 갔다 하는 이야기와 섬마을 사람들에게

거둬진 아들 황경한은 오씨의 자손으로 자라다가 부모의 이야기를 전해듣곤 평생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한다.

 

추자도 성지에는 아들 황경한의 무덤과

지금도 황경한의 눈물샘이란 곳이 있어 마르지 않고

오늘도 흘러넘치고 있다는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가슴아픈 순교자의 가족이야기이다.

 

어머니 얼굴도 모르는 아들의 눈물일까 마는....

그 아들을 버려두고 평생을 홀로 그리워하며 펠리칸의 가슴으로

살아간 그 어머니의 피눈물의 샘이 아니었을까?....할매의 생각이다.

 





 

5시가 다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은 길도 짧고 시간도 짧았던 순례길이었지만

그래도 일당은 넘치도록 벌었지 ?"

 

"하모요~~!! 하모요~~!!"

 

 

 

2022.11.13........두번째 순례길

 

 

주일아침 8시5분 오늘 아침순례길은 가까운 의정부교구의

황사영 묘를 향해 출발해 간다.

오락 가락 하던 비가 그쳐주었음에 또 감사드리는 이 아침이다.

길을 잘못들어 잠깐 헤메다 길가의 모텔옆 성인의 묘가 있는

거룩한 땅을 찾아든 시간은8시 58분이다.

하늘은 잔뜩 흐려 물기를 머금고있지만 비가 그쳐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다.

 



 

혹독한 박해의 상황을 북경 주교에게 알리고

그에 대한 대책을 건의했던 ‘백서’의 주인공인 황사영의 묘는

지난 1980년에 겨우 그 위치가 확인되었다. 

양박청래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능지처참 형을 받은 그의 시신은 어렵게 

황씨 문중 선산에 안장되었고, 집안에서조차 잊혀 왔던 묘를 황씨 집안의 

후손이 족보 등 사료를 검토하고 사계의 고증을 받아 홍복산 선영에서

황사영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을 발견했다.

 

이를 발굴한 결과 석제 십자가 및 비단 띠(토시)가 들어 있는 항아리가 나오면서 

무덤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황사영은 초기 교회의 지도자급 신자로 1791년 이승훈에게

천주교 서적을 얻어 보는 한편

정약종, 홍낙민 등과 함께 천주학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나누면서 

천주학의 오묘한 이치에 매료된 알렉시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이로써 그는 부귀공명의 벼슬길을 마다하고 죽음의 길로써 진리를 찾는 

고통스런 일생을 선택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령이 내려지자 

황사영은 박해를 피해 제천 배론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옹기가마 토굴에 숨어 지내며 자신이 겪은 박해 상황과 

김한빈, 황심 등으로부터 수시로 전해지는 박해 상황을 기록하던 중, 

그 해 8월 주문모 신부의 치명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낙심과 의분을 이기지 못한 그는 북경 주교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작은 붓으로 

명주 천에 적었는데, 옷 속에 이 비밀문서를 품고 가던 황심이 붙잡힘으로써 

백서가 발각되어 황사영은 9월 29일 체포되었다.

이것이 유명한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그는 대역 죄인의 오명을 쓰고 11월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었다.

 

제주도 대정성지엔 황사영순교자의 아내 정난주마리아가 

일생을 귀양가서 추자도 바위위에 버리고온아들 

황경한을 그리며 어머니의 한많은 일생을 살다간 묘가 있고,.

 







 

추자도 바닷가 높다란 바위 위에는 방울방울 피눈물을

흘리며 있는듯한 은색 십자가 하나. 높이걸려있다.

 

 

어머니의 눈물이 포대기에 버리고온 갓난아기를 제주 끝 서귀포 땅까지 잡혀가 

평생을 살았을 철들어 알게된 보고픈 어머니를 기다리던 아들

황경한의 묘가 오늘도 

추자도 꼭대기에 누워 먼 바다 끝 제주를 향해 그리워하고 있는 듯한 

철부지 아기의 동심을 안은채 잠들어 있을테다.

 





 

천 주 를 믿는다는 죄명때문에.....!!

뿔뿔이 묶여 간채 각자의 삶과 죽음을 살았던 기구한 세가족의 가슴아픈 역사의

한페이지가 이곳 외따고 후미진 장흥땅 길가에 소리한번 못지르고 잠들어 계시다.

 



 

역사의 한페이지속에 소리없이 사라져갔을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족이 함께 서로의 안부를 염려하며 살아갈수 있음이

참으로 감사함을 깨달아 보며 좁은 골목길 돌아나온다.

 



 

 주님! 그분들의 가족들에게 영원한 천상 낙원을 살게 하소서~

 

  + 오늘도 본향을 향하는 길, 감사드립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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