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신부님의 복음서 여행 : [요한복음] 12. 8. 예수의 신성을 아시아에서 드러내기 위한 길

[요한복음] 12. 8. 예수의 신성을 아시아에서 드러내기 위한 길

 

저녁노을의 글

2022-09-18 16:11:48 조회(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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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사가는 제1부 표징의 책을 마치고 제2부 영광의 책을 시작하면서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가 귀한 나르드 향유로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치룬 일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일을 보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배층 유다인들이 그분을 죽일 음모가 노골적으로 가시화되어감에 따라 그분께서도 죽을 각오를 하시게 된 대목도 소개하였다.  공생활 동안 당신의 신적 능력으로 무수한 기적을 일으키셨고 또한 율법 학자들을 능가하는 권위로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시면서도 당신의 메시아 신원을 의도적으로 감추셨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는 당당히 메시아로서 당신을 드러내셨다. 이제 때가 왔다고 여기셨기 때문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도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사시는 길을 모색하려는 우리는 이 예루살렘 입성 사건에 대한 보도 말씀을 통하여 아시아의 상황에서 말씀이신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야 하는 과업과 이에 수반되는 십자가의 믿음이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알아듣고자 한다. 아시아의 군중은 아직 그분을 메시아로 맞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길을 가자면, 아시아 주교들의 건의에 따라 요한 바오로 2세가 아시아 가톨릭 신앙인들에게 권고한 바(「아시아 교회」)를 기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교황권고 문헌은 아시아인들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게 하며 특히 한국의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진군나팔이요 파스카의 복음을 선포할 것을 촉구하는 교도권의 깃발이기 때문이다.

 

12.8.1. 아시아 복음화의 길

  앞에서(1.5.) 소개한 대로 아시아 복음화의 길은 1998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같은 주제로 열린 아시아 주교 시노드의 건의문을 받아 모든 아시아 신자들에게 권고한 문헌 「아시아 교회」 에 담겨 있다. 이제까지는 말씀이 아시아에서 시작되었다는, 당연하지만 매우 새로운 명제에 기반하여 서술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아시아의 복음화에 대해 서술하기 위하여 그 전반적인 내용을 검토하고자 한다. 다음은 그 개요이다. 

 

아시아에서 경이롭게 나타난 하느님의 계획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당신의 구원 계획을 아시아에서 계시하시고 완성하셨다. 우상을 숭배하는 아시아 서쪽 수메르 문명권에 살던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으며(참조 창세 12장),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그 후손들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시고자 모세를 불러 아시아 땅 가나안에로 해방시키셨다(참조 출애 3,10). 그분께서는 당신께서 선택하신 백성에게 많은 예언자들, 판관들, 임금들 그리고 굳건한 믿음의 여인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다가, “때가 찼을 때”(갈라 4,4) 당신의 외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아시아인의 육신을 취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나자렛에서 생활하시다가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셨으며, 모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기에, 아시아의 서쪽 끝에 위치한 이 작은 땅 이스라엘은 모든 인류를 위한 약속과 희망의 땅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역사를 잘 알고 계셨으며, 이 백성의 고통과 희망을 사랑하셨고, 전통과 유산을 받아들이셨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백성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맞아들이지 않았기에 당신을 맞이한 소수의 유다인들로 새로이 하느님 백성을 시작하셨으니 그것이 교회이다. 교회는 이 아시아에서부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되었는데, 그 당시 지중해 문명의 중심이었던 로마를 향하여 서진하였다. 

 

  그 후 계속하여 서진하며 복음을 전해 온 교회가 제1천년기에는 유럽 대륙에 십자가를 세웠고, 제2천년기에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는데, 지구를 한바퀴 돌아온 이 제3천년기에는 찬란한 문화와 고등 종교의 발상지인 아시아에서 신앙의 큰 열매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그리스도교 제삼천년기의 문턱을 넘어가고자 한다. 이 ‘넘어감’이 우리 한국 가톨릭교회와 민족에게 부여되어 있는 파스카 소명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시아 대륙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아시아 지역의 고대 문화 종교들과 만나는 문제가 절박한 현안이 되어 있는 바, 이는 복음화의 도전으로서 다가오고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불교나 힌두교와 같은 종교 체계들은 그리스도교를 능가하거나 이에 못지않은 독자적인 구원론 체계를 보유하고 있어서 아시아 대륙의 백성들이 굳이 하느님을 갈망하거나 구세주를 기다릴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의 구원자께서 아시아에서 태어나셨지만, 지금까지 이 대륙의 백성들에게는 대부분 제대로 알려지지 않으신 채 남아 계심은 커다란  역사적 수치가 아닐 수 없으며 선교의 막중한 숙제로 남아 있다. 

 

  이는 중세 이후 교회를 주도해 온 라틴 교회가 루터로 인한 분열 사태를 겪으면서  아시아 선교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아시아의 고등 종교와 앞선 문화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라틴 교회의 신관(神觀)과 교회 모델을 이식시키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라틴 교회는 아시아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서구 사회 안에서도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함으로써 전체 인류 안에서 주도권을 상실하였다. 

 

아시아의 다양한 현실

  아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대륙이고, 세계 인구의 3분의 2 가량이 거주하고 있는 땅이며, 또한 세계의 주요 종교들, 곧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의 요람이며, 불교, 도교, 유교, 조로아스터교, 자이나교, 시크교, 그리고 신도(神道)와 같은 다양한 영적 전통들의 발상지이다. 이러한 종교적 전통과 문화적 가치에 따라서 아시아인들은 그리스도교가 전해지기 이전에도 영적 가치를 생활하고 있었으며 강한 유대를 지닌 공동체들을 유지해 왔다. 

 

  아시아 대륙의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볼 때에도 대단히 다양해서, 고도로 발달된 선진 국가들이 있는가 하면, 개발도상 국가들도 있으며, 절망적인 빈곤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후진국들도 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의 물결이 휩쓸고 있어서 전통적으로 계승해 온 정신 전통을 위협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아시아 나라들은 대단히 복합적이어서, 민주주의 정치형태로부터 신정 정치의 형태, 군사독재 정치들과 무신론적 공산주의 정치 형태에 이르기까지 극과 극의 정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변수는 민주화와 복음화인데, 대체로 이 두 변수는 서로 정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그 반대변수는 부정부패와 인권 상황인데 이 두 변수는 서로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민주화를 촉진시키고 부정부패를 추방하는 과제가 인권 상황을 개선하고 복음화를 이룩하는 과제로 귀결된다. 

 

아시아 교회의 현실과 선교의 당위성

  사실 아시아 대륙 선교의 역사는 그리스도 교회의 전체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다. 하지만 크게 성과를 거두지 못하던 터에 본격적으로는 루터로 인한 라틴 교회의 분열 사태 이후에 아시아 선교가 시작되었는데, 우수한 인력과 풍부한 물적 자원을 아낌없이 기울였지만 위에 언급한 배경과 이유로 말미암아 그 노력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 결과 대부분의 아시아 나라들에서 그리스도인들, 특히 가톨릭 신앙인들은 3%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아시아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들 수 있다. 첫째, 우리가 유일한 구세주로 선포하는 예수님께서는 인간 본성을 충만히 소유하시고 이 땅 위에서 사셨던 하느님이시다. 이는 아시아에서 주도적인 종교들 즉 유교나 불교, 힌두교 또는 이슬람교의 창시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역사적 사실이다. 둘째, 그분께서는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보잘것없는 이들과 가깝게 지내셨으며,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기에 그들을 진실로 복되다고 선언하셨다. 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시아 대륙의 가난한 이들에게도 전해야 한다. 셋째, 그분의 존재가 위에 언급된 바처럼 공생활 중에 베푸신 은총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분은 비록 배척을 받아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셨으므로, 부활하신 후에 성령으로 믿는 이들 안에서 현존하시면서 살아계실 때와 똑같이, 시공의 한계에 제약을 받음이 없이 하느님의 은총을 보여 주고 계시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야말로 소수의 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이 절대 다수의 아시아 동료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하는 선물인 것이다. 

  

아시아 선교의 어려움

  그런데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자면 부딪치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 즉, “아시아 大종교들의 신봉자들은 예수님을 하느님 또는 절대자의 현현으로서, 또는 ‘선지자’의 한 사람으로서 받아들이지만, 그분을 하느님의 유일한 현현으로서 여기지는 않고 있다.” 하는 증언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증언은 그리스도교로서는 선교 활동에 앞서 근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우선, 예수님께서 아시아에서 자주 이방인, 주로 서양인으로 느껴진다는 사실 때문에 이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많은 아시아인들이 아시아 땅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아시아인이 아니라 오히려 서양인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서양 선교사들이 서양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온 불행한 결과이다. 그래서 아시아 대륙에서 이룩되어야 할 신앙의 토착화는 예수님의 아시아적 얼굴을 재발견하며, 아시아의 문화들이 예수님의 신비와 그분 교회의 보편적인 구원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는 것을 포함한다. 특히 마테오리치 같은 선교사들이 보여 준 모범적인 방식대로, 민족들과 문화들을 뚫고 들어가는 이해력 있는 통찰이 우리 시대에 재생되도록 하여야 한다. 즉, 토착화의 노력이 기본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식층부터 복음화하려 했던 마테오리치와 달리 각성된 민중으로부터 사회적 육화가 일어나야 함을 의미한다. 즉 복음 선포는 예수님의 방식에서 보듯이,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아시아 대륙에서 그리스도 신앙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서양화되어 버린 그리스도를 아시아에 뿌리내리는 토착화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서양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이거나 외래적인 인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신앙 표현의 토착화된 형태들로 점진적으로 나아감으로써, 그리고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의 감수성을 존중하며 이루어져야 한다. 

 

전례와 성경교육의 토착화

  모든 그리스도교 생활과 사명의 원천이며 정점인 전례를 토착화시키는 일도 복음화의 결정적인 수단이 되는데, 다양한 종교들의 신봉자들이 의식과 종교적 축제들, 그리고 민간 신앙에 크게 이끌리고 있는 아시아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동방 교회들에서 전례를 주변 문화와 여러 세기에 걸친 상호 작용의 결과로 대부분 성공적으로 토착화시킨 사례는 배울 만 하다. 

 

  구원의 메시지를 아시아 민족들에게 전달하는 데 성경 말씀은 특별히 중요하다. 아시아에서는 전해 내려오는 말이 종교 체험의 보존과 전달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이 거룩한 책이 아시아 교회 구성원들 사이에 더욱 널리 전파되고, 기도의 정신으로 더욱 집중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성서 사도직을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다른 종교들의 신봉자들도 성경을 알게 하여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내재적인 힘을 갖고 있으며, 이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는 세상 구원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계시하시기 때문이다. 

 

아시아적 선교사 양성

  토착화의 또 다른 핵심적인 면은 토착화의 미래가 크게 달려 있는 분야로서 바로 선교사들을 양성하는 일이다. 과거에 선교사를 양성하는 방식은 주로 서양에서 도입한 형태와 방법들 그리고 프로그램들을 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아시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선교사들에 대해서는 서양의 방식이 아니라, 아시아의 철학적이며 종교적인 전통을 가르쳐야 하며 그 문화적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양성되어야 한다. 

 

보편적이고 전인적인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라

  아시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에 있어 교회는 교세를 확장하고 신자의 수를 늘리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사랑으로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참조 요한 15,12-13) 아시아의 벗들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하여 교회는 인류 가족에게 봉사하려는 동기에서 평화와 정의 그리고 연대성과 자유와 같은 보편적 가치들에 바탕을 둔 사랑의 문명을 기존의 종교인들, 선의의 시민들과 함께 건설하는 데에 힘껏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한 사랑의 봉사를 행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시아에서 인간의 진정하고 전체적인 발전을 증진시켜야 할 필요성은 매우 긴요하다. 부유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 사이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이러한 불균형은 정신적인 면에서나 사회 구조 면에서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발전에 관계된 국가들과 국제 공동체에 던져진 큰 윤리적 도전은 새로운 연대성의 용기를 갖는 일로서, 이 용기는 비인간화시키는 저개발과 그 어느 때보다도 억압적인 소비주의의 그물망 속에서 인간을 경제적 개체로 축소시키는 ‘과도한 발전’을 극복하고자 창조적이며 효과적이고 진보적인 방안을 취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사회교리는 복음화의 지침

  반성 원리와 판단 기준 그리고 행동 지침 전체를 제시하고 있는 교회의 사회 교리는 세상의 정치가나 기업가나 노동자들 이전에 먼저 교회의 구성원들이 지키도록 제시된 교리이다. 인간 발전을 위하여 투신하는 신자들은 교회 가르침의 이러한 귀중한 요체에 대하여 확고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복음 전파 사명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여겨야 한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이러한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 발전을 위하여 행동하도록 행동 노선들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 존엄성의 향상을 추구함에서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과 보잘것없는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그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셨기 때문이다(참조 마태 25,40). 이 사랑은 어느 누구도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며, 단지 그리스도교 전통 전체가 증언하고 있는 봉사의 우선순위를 구체화할 뿐이다.  

 

  아시아는 풍부한 자원과 위대한 문명들의 대륙이지만 몇몇 국가는 지구상의 가장 가난한 나라이며, 인구의 절반 이상이 결핍과 가난 그리고 착취로 고통 받고 있는 곳이다. 아시아와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참조 요한 13,34)는 복음적 계명 안에서 언제나 최고의 희망을 찾게 된다. 그리고 아시아 교회는 말과 행동으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이 계명을 실천하는 일을 위하여 힘껏 노력해야 한다. 

 

  가난한 이들과 맺는 연대는 그리스도인들 자신이 예수님을 본받아 소박하게 살아갈 때 가장 신뢰할 수 있다. 소박한 삶, 깊은 신앙, 그리고 모든 이 특히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에 대한 성실한 사랑은 복음의 빛나는 모범을 실천하는 일이다. 아시아의 가톨릭 신자들이 복음의 가르침과 일치된 생활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교회의 사명에 더욱 충실히 봉사하고 교회 자신이 가난한 이들의 교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아시아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 안에서, 이주자들, 본토인과 토착민들, 그리고 여성들과 어린이들에게 특히 관심을 갖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주 착취의 최악의 희생자들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문화, 피부 색깔, 인종,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사고방식에서 오는 차별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함으로써 희생되는 이들도 포함된다. 

 

  인간 발전을 위한 봉사는 하느님의 큰 선물인 생명 그 자체에 대한 봉사를 통하여 시작된다. 생명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큰 선물이다.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우리에게 계획과 책임성으로서 맡기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수호자들이지 그 소유자들은 아니다. 잉태의 순간부터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인간 생명은 하느님의 창조 활동의 결과이며, 생명의 샘이시며 유일한 목적이신 하느님과 이루는 특별한 관계 속에 영원히 머무르게 된다.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 특히 자기 자신을 방어할 목소리조차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이는 참된 발전도, 참된 시민 사회도, 참된 인간 향상도 없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어머니 태중에 있든 환자의 생명이든 장애인 또는 노인의 생명이든 모든 이를 위한 선물이다. 우리는 이 선물을 자유롭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이 생명의 시작부터 그 자연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명을 존중하고 수호하는 일을 결코 중단할 수 없다. 

 

  이밖에도 보건, 교육, 정의와 평화를 위한 투신, 군비축소, 소외 없는 세계화, 외채 탕감, 생태계와 환경 보호 등의 사회적 현안들이 있으며 이를 아시아 영성의 전통을 살리는 한편 사회교리 실천을 그 수단으로 하여 아시아 대륙 전체에서 사회 공동선을 증진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다. 

 

12.8.2.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시사점

  아시아 주교 대의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작성되었지만, 아시아의 복음화를 염원하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지향과 기도가 담긴 교황권고 「아시아 교회」는 서구 우월적인 시각에서 아시아를 바라보던 ‘오리엔탈리즘’을 완전히 벗어나 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계획이 역사의 시초부터 아시아에서 나타났음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위 문헌의 가르침에 따라 아시아에서 복음화를 하려 할 때 유의해야 할 시사점들을 뽑아 보면 이러하다. 

 

⓵ 아시아의 복음화는 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이 주역이 되어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구약의 하느님 백성은 아시아에서 그분의 부르심을 받았으며, 메시아께서도 아시아에서 태어나 활약하셨고, 메시아의 교회도 아시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하느님 말씀의 뿌리가 아시아에 있다는 이 자명한 역사적 사실이 비로소 교도권 문헌에서 조명되고 있다. 근세 이후 서구 라틴 교회의 선교사들이 이 사실을 의식하지 않은 채 접근했기 때문에 오늘날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있다. 이제 아시아의 복음화는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역이 되어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⓶ 아시아 복음화의 세 가지 이유

아시아의 현실은 종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매우 다양하다. 종교적으로는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와 힌두교 등 고대 종교의 요람이며, 불교와 유교와 도교와 신도 등 오래된 영적 전통들의 발상지이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이 섞여 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에서 신정정치, 군사독재, 무신론적 공산주의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이다. 이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어떻게 평화로이 공존할 것인가가 과제이다. 

 

  근세 이래 서구 라틴 교회의 선교 실패를 딛고 아시아의 새 복음화에 나서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예수님께서는 아시아에서 주도적인 종교들의 창시자와는 달리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셨듯이 아시아의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믿는 이들 안에 현존하시면서 여전히 복음을 선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⓷ 아시아 복음화의 목표: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하기 위한 토착화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함에 있어 부딪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서구인들보다 탁월한 종교성 덕분에 예수님을 성현으로 알아보기는 하지만 하느님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려는 목표와 이 목표를 아시아에 뿌리내린 방식으로 실현시켜야 한다는 토착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⓸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세 가지 토착화 방안

토착화의 방식으로 신성 발현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전례는 아시아인들의 종교적 감수성을 감안하여 개혁되어야 하며, 성경 말씀이 아시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의식도 교육되어야 한다. 이로써 그리스도교의 서구적 이미지를 탈피하여 아시아의 옷을 입어야 한다. 또한 아시아 복음화의 선봉이 될 선교사를 아시아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양성해야 한다.

 

⓹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주안점: 사랑의 문명 건설

아시아의 복음화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늘려 교세를 확장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아시아인들의 최고선과 공동선에 기여하려는 동기에서 출발해야 하고, 따라서  최고선의 가치를 실현하며 공동선의 혜택을 늘리려는 봉사를 행함으로써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는 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종교인들과 선의의 시민들과 연대할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해야 한다.

 

⓺ 사랑의 문명 건설의 도구: 사회교리

 복음화의 목적이어야 할 사랑의 문명은 보편적이며 전인적인 형태로 이룩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반성 원리와 판단 기준 그리고 행동 지침을 제시하고 있는 사회교리가 확고한 지침으로 이미 제시되어 있다. 반성은 현실에 드리워져 있는 사회악을 관찰하는 것이고, 판단은 현실에 필요한 공동선을 성찰하는 것이며, 행동은 지속적인 연대로 이루어져야 할 실천을 의미한다.  

 

⓻ 최고선과 공동선 가치 구현

사랑의 문명으로 이룩되어야 할 최고선이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의 가치라면, 증진되어야 할 공동선은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며 특히 가난하고 힘 없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여 그들에게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시아의 가톨릭 신자들이 복음의 가르침과 일치된 생활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교회의 사명에 더욱 충실히 봉사하고 교회 자신이 가난한 이들의 교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신자들이 믿는 예수님의 신성이 증거되는 한편, 부활 신앙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⓼ 연대와 보편성의 견지로 부활 신앙을 증거함

덧붙여,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한 아시아 교회의 이러한 노력에 의해서 메시아의 신성이 드러나고 따라서 부활하신 그분이 증거되는 길이기에 서구 라틴 교회도 연대함으로써 보편 교회도 복음적으로 쇄신될 것이다. 또한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선도적 역할과 사명을 부여 받고 있는 한국 교회도 그 역할과 사명을 다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복음적 쇄신과 한민족의 복음화를 덤으로 얻는 은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제12장에서 복음사가 요한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마치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을 보도하였다. 위에서 간추려 놓은 시사점들도 보편 교회의 교도권에서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 아시아 교회와 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이 가야할 길을 적시해 놓은 지도와 같은 의미가 있다. 이 지도를 따라 아시아 복음화의 길을 가는 것이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안에서 유다인들의 음모가 꾸며지고 있음을 알고 계셨지만 당신이 가야 할 길을 가셨다. 그 길은 십자가 죽음으로 가는 길이요 그러나 그로 인해 부활하시는 길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 토착화하려는 노력이나 아시아의 공동선을 위해 투신하는 노력이나 무엇보다도 가난한 교회가 되려는 노력이 비록 십자가의 길일 것이지만 이는 또한 아시아인들 안에서 교회가 예수의 신성으로 부활하는 길이 될 것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며 메시아이신 당신의 신원을 당당하게 드러내신 예수님처럼, 우리 교회가 그분의 신성을 당당하게 드러내자면 아시아의 복음화에 대해 교황권고 문헌 「아시아 교회」가 제시하고 있는 복음화의 길을 앞장서 가야 한다.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이제까지 살펴본 한민족의 복음화 역사에서 얻은 교훈이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한민족을 아시아의 동방으로 불러 내셔서 다른 민족들에게는 없는 은총과 진리를 내려 주셨으니, 그것이 ‘제천의식’(祭天儀式)과 ‘천손의식’(天孫意識)이다. 그리고 이 진리를 실천하도록 계시해 주신,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재세이화’(在世理化)의 뜻을 우리 민족 선조들은 하늘이 내려주신 명령 즉 천명(天命)으로 받들며 살아왔다. 이것이 아시아 복음화의 대의(大義)와 다르지 않다. 그러자면 먼저 한민족부터 천손다운 문명의 질서를 세워야 했는데, 이것이 ‘8조법금’과 ‘홍범9주’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오묘한 섭리로 그리스도 신앙이 우리 민족에게 전래되었는데, 선교사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 우리 겨레 스스로 이 신앙 진리를 찾아왔고 모화사대주의에 젖은 조정과 유림들이 이를 백 년 간이나 박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우촌을 이루어 조직적으로 저항하면서 각성된 천손으로서의 문명을 드높였다. 이 역사적 흔적과 은총이 한국 교회가 아시아 대륙에 사는 잠재적 천손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발판이다. 이것이 또한 한민족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계시 진리를 一부터 十까지의 숫자만으로 심사숙고하여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간추려 놓은 천부경(天符經)처럼, 아시아의 복음화와 민족의 성화를 위한 설계도로서 일목요연하게 간추려 본 또 하나의 천부경이다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 [요한복음] 12. 8. 예수의 신성을 아시아에서 드러내기 위한 길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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