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신부님의 복음서 여행 : [요한복음] 9.5. 진리의 빛으로 겨레의 신성을 보다

[요한복음] 9.5. 진리의 빛으로 겨레의 신성을 보다

 

저녁노을의 글

2022-09-07 18:09:26 조회(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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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 문명에 대한 신학적 해석

  요한 복음사가가 보여준 표징의 신학이 의미하는 취지와, 이 표징을 담고 있는 말씀이 아시아 대륙에 뿌리내리도록 하려는 우리의 지향에 따라서 제9장의 표징에 나타난 표지들을 아시아의 역사적 현실에 비추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진리에 대해서 온전히 – 그러니까 육신의 눈만이 아니라 영적인 눈까지 포함하여 - 눈을 뜨는 데 대해서 나타난 이 다섯 단계의 표지는 개인만이 아니라 집단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데, 그 까닭은 현실의 전개 양상이 개인 단위이건 문명 단위 이건 간에, 진리는 인간 현상에 대해서 보편적으로 실현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제9장에 나오는 표징, 즉 태생소경이 눈을 뜨게 된 치유 사건은 예수의 신원 인식과 권능 실현이 보편화될 수 있는 계시 사건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 진리를 문명에 대해 적용하는 데 있어서는 문명 단위의 역사 연구에 일생을 바친 토인비의 통찰과 연구를 원용할 수 있겠다. 

 

  그는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의 양 측면에서 닥친 도전에 대하여 적절한 응전을 할 수 있었던 문명만이 살아남아 성장했음을 논증한 바 있다. 인류 역사상 국가들 사이에 일어난 분쟁과 전쟁의 대부분이 경제적 이권을 늘리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일어났음을 감안하면 여기서 자연환경이란 식량 문제와 서식지 문제라는 이 두 가지 요인이 핵심이다. 현대에 와서는 식량과 서식지에 더하여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물 같은 자원이나 석유 같은 에너지를 확보하려는 양상으로 확대되었을 따름이지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인문환경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이 제9장의 주제와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진리에 대해 개인들이나 민족이 눈을 뜨느냐 뜨지 못하느냐의 도전이 인문환경적 응전을 요구하는 도전이다. 토인비가 분석한 바 정치지도와 경제지도가 서구화되었다는 견해는 결국 서구 문명이 자연환경의 측면에서 식량을 확보하고 서식지를 넓히려고 추구한 패권적 지배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이며, 문화지도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견해가 바로 인문환경의 측면에서 서구의 패권지배가 실패하고 있으며, 아시아의 몫이 아직 남아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서구중심적 발전이 지속되리라는 백인우월주의나 문명발전이 일직선으로 이루어진다는 진보사관이 허구로 판명되었음은 물론, 동양은 변하지 않는다는 순환사관 역시 서구인들의 일방적인 선입견에 불구하다는 것이 판명되었다는 그의 견해가 이를 뒷받침한다. 

 

  유럽과 미국을 주로 의미하는 서구는 아시아보다 먼저 그리스도교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문명에는 예수님의 시선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문명과 문명의 접촉 과정에서 그들에게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원주민들은 정복의 대상이었을 뿐, 그들의 문화나 심성을 존중하려는 의식조차 그들에게는 없었다. 심지어 선교조차 정복을 합리화하는 명분으로 포장되었다. 가톨릭계의 남아메리카 정복이나 개신교계의 아프리카 및 북아메리카 정복이 백인종 우월주의적 시선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 문명의 본질은 힘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문명 간 교류의 과정과 결과로 나타난 학살과 전쟁, 억압과 착취로 여실히 드러났다. 이렇듯 제국주의적 문명의 이름으로 아시아에 접근한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예수님의 시선을 대변하기는 어려운 노릇이었다. 눈을 뜨기 위한 첫 단계부터 충족되지 못하니 그 다음 단계는 물을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그들 문명은 식량과 서식지를 확보하려는 동기를 추구했고 이는 힘의 문명을 낳았다. 바벨탑 이후 흘러온 우상숭배의 문명들이 보여준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토인비가 다룬 인류 문명들이 거의 예외없이 모조리 힘을 추구한 속성을 보인 가운데에서 히브리 문명과 고조선 문명은 달랐다. 이 두 문명은 노아의 후손 중 펠렉계 아브라함과 욕탄계 단군에 의해 처음부터 창조주께 향한 신앙이 원동력이 되어 이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생소경이 눈뜨는 과정에서의 표지는 진리를 추구함으로써 인문환경적 응전을 시도한 이 두 문명에 대해서만 비로소 적용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9.5.2. 히브리 문명의 특질: 자비와 불신

⓵ 하느님의 시선 

  태생소경이 빛을 볼 수 있게 한 치유 사건의 발단은 예수님께서 그를 바라보신 연민의 시선이었다. 히브리 문명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비춰진 하느님의 빛도 자비로운 연민의 시선이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나에게 다다랐다. 나는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억누르는 모습도 보았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탈출 3,7-10).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소명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으로서, 하느님께서 억울한 노예생활로 고생하던 히브리인들을 바라보시는 시선을 보여주신 빛이다. 이 시선은 역사적인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그것도 자비로우신 시선으로 바라보신 빛이었다. 이런 빛이 히브리인들에게 비추인 까닭은, 하느님께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히브리인들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며 공감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해방시키고자 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당신 백성으로 삼아 당신의 구원을 만민에게 전하게 하시려는 자비의 빛을 비추셨기 때문이다. 

 

  본시 히브리인들은 조상 요셉이 이집트의 재상으로서 세운 공로 덕분에 이집트 안에서도 가장 비옥한 땅 고센에 정착할 수 있었고 반역은커녕 파라오의 충실한 신민으로 살아왔었다. 그런데 그가 죽은 지 긴 세월이 흐르자 그가 이집트에 세운 공로를 잊어버린 채, 일어나지도 않은 반역을 두려워한 파라오가 내린 명령 한 마디에 히브리인들은 억울한 노예살이를 하게 되었다(탈출 1,8-10). 은인의 후손이 가상 역적 무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하느님께서 히브리인들에게 자비의 시선을 보내신 반면 이집트인들에게는 분노의 시선을 보내시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스스로 태양신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며 이집트 백성으로부터 신으로 추앙받던 이집트 파라오는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시키라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모세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부했다(탈출 5,4; 7,13; 8,11.15.28; 9,7.12.35; 10.20.27). 우상숭배적 문명의 횡포였다. 따라서 히브리인들이 감당해야 했던 종살이도 혹독했으나, 이를 끝장내시려는 하느님의 분노스런 재앙도 혹독했다. 그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이집트의 모든 맏배들을 죽이는 것이었는데, 그제서야 파라오는 굴복하였다(탈출 12,31-32). 그 덕분에 430년 만에 이집트를 겨우 탈출한 이들은(탈출 12,40)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고생스런 종살이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한 이 출애굽 사건에 대한 원체험을 기반으로 이스라엘은 자비로운 빛을 통해 하느님의 신성과 존재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히브리인들의 신앙과 이에 따른 전승에 의하여 이집트 탈출 사건에 담겨진 역사적 계시는 이스라엘에 주어진 자비로운 빛에 관한 하느님의 시선으로 보편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이집트 문명인들과 비롯한 수메르 문명인들이 신처럼 숭배하던 빛이 사실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임을 선언하는 기록으로 성경을 시작하였으니(창세 1-2장), 이것이 히브리 문명의 독립 선언이었다. 창조에 관한 전승을 기록하면서 이스라엘은 가장 먼저, 하느님은 창조주이심을 고백하였다. 그리고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시고 이 빛 가운데에서 다른 피조물들을 창조하신다고 보았다. 빛은 이러한 역할을 통해 생명과 직접 연결된다(바룩 3,29; 시편 49,20; 욥 3,16.20). ‘성조들의 이야기’(창세 12-50장) 속에서도 빛은 ‘환시’(창세 15,1; 16,13; 18,1 이하; 28,10-22; 32,31; 46,2), ‘꿈’(창세 20,3; 26,24; 31,24), ‘무지개’(창세 9,14; 참조 에제 1,28), ‘별이 총총한 하늘’(창세 15,5; 22,17; 26,4), ‘활활 타는 횃불’(창세 15,17; 참조 탈출 24,17) 등의 함축된 의미로 제시된다. 

 

  탈출에 관한 전승에서는 히브리인들이 실제로 역사에서 겪은 원체험이 담겨 있으므로 창조 전승에 비해 한층 더 발전된 내용을 기록하였다. 우선 빛과 함께 이에 반대되는 명제로서 어둠을 함께 제시하였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계시하신 기록(‘야훼’, 탈출 3,14)도 여기서 나온다. 빛이 숭배할 대상이 아니라 피조물일 수밖에 없는 근거로서 드디어 창조의 주체가 계시된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빛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시며, ‘불기둥’(탈출 13,21-22; 14,24; 민수 14,14; 느헤 9,12.19; 지혜 18,3) 속에 현존하시고, ‘불꽃과 불기둥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분’(탈출 3,2; 13,21; 19,18; 40,38; 민수 9,15; 신명 1,33; 4,12.33; 5,22)으로도 나타나신다. 

 

  그뿐이 아니다.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이기에 어둠을 주시려면 아주 간단히 빛을 거두시면 되었다. 그리하여 빛의 창조주로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적들에게서 빛을 거두시는 분”(탈출 14,20)이시며, “해가 빛을 잃게 하시는 분”(탈출 19,16-20)이시기도 하고, “해를 멈추게 하시는 분”(여호 10,12-13)이신가 하면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호의와 구원을 베푸시는 분”(민수 6,24-27)이시다. 이 전승들은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시는’ 하느님을 특별히 기억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빛을 보면 하느님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분의 뜻에 따라 나아갈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렇듯 노예들을 탈출시켜 빛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을 이스라엘은 전투적으로 인식하였다면(‘만군의 주님’, 이사 1,9 이하 다수. 이사야는 자신의 예언서에서 이 호칭을 59회나 사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역사적 원체험을 상기시키고자 하였다), 그 이후의 예언 전승에서는 한결 차분하게 회고적으로 예언자들이 이 원체험을 상기시키는 표상으로 빛을 자주 사용하였다. 이스라엘은 만민에게 빛을 비추어야 하는 사명을 받은 공동체이므로 “빛 안에서 걸어가야 하며, 빛을 전파해야 한다”(이사 50,10; 603,3)는 예언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불충실한다면 빛이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로써 하느님의 심판도 예언하였다. “불행하여라, 주님의 날을 갈망하는 자들! … 그날은 어둠일 뿐 결코 빛이 아니다. … 불빛이라고는 전혀 없이 캄캄할 뿐이다”(아모 5,18-20; 이사 3,11; 59,9; 예레 13,16). 이런 노선을 따라 지혜문학 전승에서도 빛은 선, 생명, 행복을 상징하고(욥 30,26; 참조 이사 59,9; 예레 8,15), 어둠은 위험, 질병, 고통, 죽음을 상징하는(지혜 17,2; 욥 3,16.20; 12,24-25; 17,12; 18,18; 잠언 20,20; 시편 18,28; 23,4; 58,9) 표상으로써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교훈을 남기고자 하였다(P. Gironi, 빛, 성경신학사전).

 

⓶ 백성의 물음 

  태생소경의 처지에 대하여 제자들은 누구의 죄 때문인지를 예수님께 물었다. 그들은 그 처지가 본인의 탓인지, 조상들의 탓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탓인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며, 그가 보게 됨으로써 드러날 하느님의 영광이 중요하다고 대답하셨다. 제자들의 물음은 초점이 빗나가기는 했지만 예수님께 질문을 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였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예언자들이 활약했던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어둠이 찾아와도 빛이신 하느님께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묻지도 않는 자들에게 나는 문의를 받아 줄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나를 찾지도 않는 자들에게 나는 만나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겨레에게 나는 ‘나 여기 있다, 나 여기 있다.’ 하고 말하였다”(이사 65,1; 참조 예레 2,6). 

 

  이스라엘은 히브리 노예 시절에도 자신들이 왜 노예살이를 해야 하는지 도무지 묻지 않았다. 그저 이 고생스러운 처지에서 벗어나기만을 울부짖었을 뿐이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나이 광야를 거쳐야 했던 40년 동안에도 이미 그 지방에 자리잡고 있던 힘센 부족들, 아말렉족, 여부스족, 히위족, 프리즈족, 가나안족, 아모리족 등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 통과할 때에도(탈출 17,8; 34,11) 그 까닭을 묻지도 못했으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 위해 필리스티아족과 겨루어야 했던 3백 년 동안에도(판관 10,6; 11,26) 왜 그 땅에 꼭 들어가야 하는지 물을 겨를이 없었다. 모세의 후계자였던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는 그 이전의 역사를 아는 인물도 사라졌고 후손들도 그 이전의 역사를 알고자 하지 않는 탓이었다(판관 2,10). 이는 이스라엘 백성 안에서 역사의식이 사라지는 현상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사야는 역사의식의 부재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생겨난 이 구조적인 소통 부재 사태에 대해 이렇게 예언하였다. “너는 가서 저 백성에게 말하여라. ‘너희는 듣고 또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마라. 너희는 보고 또 보아라. 그러나 깨치지는 마라’. 너는 저 백성의 마음을 무디게 하고 그 귀를 어둡게 하며 그 눈을 들어붙게 하여라.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게 되고서는 돌아와 치유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이사 6,9-10). 전형적인 반어법(反語法)적 표현이다. 

 

  예수님 당시에 왜 그렇게 많은 질병이 창궐했는지, 또 마귀 들려 고생하는 이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에 대해서도 백성은 물을 수가 없었다. 출애굽 사건에서 히브리인들이 겪은 원체험이나 하느님의 시선에는 관심도 없고, 따라서 하느님께 묻지도 않는 바리사이들의 억지 답안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인이나 그 조상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간단히 대답해 주었다. 예언자들이 그게 아니라고 수없이 가르쳐 주었건만 완고한 그들의 고정관념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었다. 특히 예레미야와 에제키엘은 죄의 사회적·공동체적 측면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개인 책임의 원칙을 선언한 바 있었다(예레 31,29-31; 에제 18,2-32). 이러한 현상은 정치지배자 계층이나 지식인 계층의 불신과 판단 착오가 하느님을 가리고 대중에게 미치는 엄청난 부정적 파급 효과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니 그나마 제자들이 태생소경의 시력장애 원인에 대해서 예수님께 여쭈어 본 일은 이스라엘의 질문 능력 마비 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이 엉뚱한 질문이나마 받으시고서 답변을 하실 기회를 얻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의 답변은 질문의 의도를 충족시킴은 물론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의 시작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 시작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왜 눈이 먼 채로 태어나야 했는지에 대한 원인을 따지지 않고 일단 태생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시는 일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이런 불통 관계가 되어 버린 데에는 지도자들, 그러니까 하느님의 뜻을 백성에게 알릴 책임이 지고 있었던 권세가들과 지식인들의 책임이 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피해자에 해당되는 백성, 그 중 한 명인 태생소경에게 죄를 지워서는 안 된다고 하신 것이고, 그 부모나 조상들의 탓도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믿음을 잃어버린 지도자들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역사의식을 잃어버린 채 하느님의 심판으로 벌을 받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불충실하다면 빛이 사라질 것이라던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예언자들의 경고가 이렇게 소통 불능 사태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⓷ 하느님의 일: 눈을 뜨게 함 

  히브리 문명에서 지속된 이 영적 불통 사태 때문에 구약성경에는 눈먼 사람을 눈 뜨게 해서 치유해 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어떤 예언자도 그런 기적의 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였다. 오직 하느님께서만 말 못하는 사람을 말하게 하실 수 있고 못 보는 사람을 보게 하실 수 있는데(탈출 4,11; 시편 146,8), 이스라엘이 백성이건 지도자건 하느님께 묻지도 않고 하느님께서 해 주시기를 바라는 믿음도 메마른 터에 기적이 일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이 당연한 이치를 전하고자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인류 역사를 하느님의 나라로 완성하심을 알리기 위하여 앞 못 보는 자들을 눈뜨게 하시고, 귀머거리의 귀를 열어 주시며, 벙어리의 혀를 풀어 주실 것을 내다보면서 자신의 예언서 두 군데에서 기록해 놓았다(이사 29,18; 35,4-5). 사실 예수님 시대에 그토록 많은 질병이 창궐하여 병자들이 많아지고 마귀 들린 이들까지 도처에 널려 있었던 현상은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불통 사태와 상관관계가 있다. 이를 암시하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 대하여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라고 답변하시는 한편으로, “나를 보내신 분의 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9,3-5) 하고 말씀하셨다. 그 ‘일’이 태생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일이다. 이 사건뿐만 아니라 공생활 동안 예수님께서 신체적으로 질병에 걸린 이들이나 장애자들, 그리고 마귀 들린 이들이나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도와주신 일들이 모두 이 ‘하느님의 일’에 해당한다. 즉 사람들이 불신이라는 죄 때문에 영적 병리상태에 놓였으니 하느님께서 몸소 오셔서 영적 소통의 길을 뚫고자 하시는 것이다. 히브리 문명의 역사에서 이 태생소경 치유 기적 사건은 예수님께서 문명의 빛이심을 계시해 주는 기능을 발휘한다. 

 

⓸ 실로암의 물로 눈을 씻고 보게 하심: 여론화 작업  

  만일 예수님께서 그 태생소경의 눈만 뜨게 해 주시고자 했으면 굳이 실로암의 물로 씻으라고 번거롭게 말씀하실 필요도 없었다. 실제로 다른 복음서에 보도된 소경의 치유 기사는 직접 그 사람의 눈만 뜨게 해 주셨다(마르 8,22-26; 10,46-52). 하지만 제9장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그 태생소경 말고도 치유를 받아야 하는 병자들도 많았거니와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눈이 먼 사람들, 즉 영적 소경이 많았기 때문에 공개적인 표징으로 삼으시고자 굳이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명하셨다. 과연 그 처방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고, 바리사이들이 개입하게 되었으니,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영적 소통을 위해 개입하시려는 예수님의 일이 영적 소통의 통로를 여론화시킬 수 있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사실 공생활 동안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모든 기적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시려던 표징이었다. 요한 복음사가가 보도하고 있는 표징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분은 일찍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으로 삼으셨던 이스라엘의 믿음을 촉구하고자 오셨기 때문이다. 

 

 불신자의 눈멀음과 죄를 드러냄: 심판적 효과

  평소에 율법에 대한 충실성으로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던 바리사이들이 이 태생소경 치유 사건을 목격하고서는 기어코 하느님께 대한 영적 소경 상태를 스스로 폭로하고 말았다. 그들은 율법 지식을 무기로 안식일에 의료 행위 같은 생업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는 자신들의 평소 지론을 펴면서 예수님께 항의하였다. 이 항의로써 그들 바리사이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께 눈이 먼 불신자이며 따라서 죄인임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는 바리사이들이 대표하는 유다이즘의 사망선고와도 같다.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종교가 정상 종교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바리사이 유다인들의 허접한 논쟁을 지켜보던 많은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한 10,42). 

 

  불신에 가득 찬 바리사이들의 이런 행태는 그 후에 더욱 노골화되어서 급기야 예수님을 신성모독과 성전모독 혐의로 사형을 선고하고는 로마인 총독의 권세를 빌어 집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 혐의만으로는 사형을 집행할 명분이 모자랐으므로 로마 황제에 대항하여 유다인들의 왕이 되려 했다는 터무니 없는 또 한 가지 정치적 혐의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그 후 한 세대가 흐른 후에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에 대항하여 독립 전쟁을 두 차례에 걸쳐 일으켰다가 아예 완전히 멸망당하고 말았다. 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은 폐허가 되었으며 백성은 2천 년 동안이나 전 세계를 떠돌며 유랑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1948년에 다시 옛날 그 자리에 공화국을 세워 독립한 지금에도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예언자 정도로 알 뿐 구세주로 믿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과 벌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정황이다. 

 

  이상에서 빛이라는 모티브를 주제로 하고, 태생소경의 치유 사건에서 드러난 다섯 가지 표지를 소재로 하여, 마치 씨줄과 날줄로 천을 엮듯이, 구약성경에 기록된 히브리 문명의 특질을 아주 간략하게 소묘해 보았다. 이는 ‘빛’이라는 열쇠 구멍으로 히브리 문명이라는 방안 모습을 들여다 본 격이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보내신 자비의 시선으로 히브리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과, 이스라엘이 이에 수용적일 때는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었지만 이에 반항적일 때는 여지없이 시련과 고난이 찾아왔다는 성경의 교훈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9.5.3. 성경과 문명

  성서학자 정태현은 성경과 문명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인들의 종교인 유다교의 경전이다. 구약성경을 포함한 성경이 우리 민족에게 처음 소개된 것은 주일과 축일의 복음을 싣고 그 해설을 곁들인 성경직해(聖經直解)와, 비슷한 내용을 담았지만 성경 본문을 발췌하여 신자들의 기도와 피정을 돕는 지침서로 엮은 성경광익(聖經廣益)이 전해졌을 때였다. 

그런데 이 두 서적은 명말청초(明末淸初)에 중국에 파견되어 선교 활동을 하던 서양 선교사(E. Diaz, 陽瑪諾, 1574∼1659; Mailla, 馮秉正, 1669∼1748)들이 서양 신학서적을 한문으로 번역한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이다. 오늘날 우리가 쉽게 접하는 성경 주석서와 해설서 등도 대부분 서양의 신학자들이나 사목자들이 쓴 것을 한글로 번역한 것들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성경 전통은 근본적으로 서구 그리스도교의 학문 전통과 문화의 안경으로 보아온 셈이다. 

 

  하지만 성경은 아시아에서 태어났다. 아시아는 고대 문명과 종교의 발상지이다. 서양인들이 동방을 창의적 직관과 명상을 통하여 고유한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발전시킨 신비의 땅으로 여겨 온 것은 결코 과장이나 무리가 아니다. 아시아에서 나온 이 세계 종교들에는 모두 경전이 있어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온 인류를 진리로 이끌고 있다. “빛은 동방에서”(ex oriente Lux)라는 오래된 서양 격언이 이를 잘 반영한다.

 

  히브리 문명의 경전인 성경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과 지중해 문명이 어우러진 땅에서 쓰이고 퍼져 나갔다. 지중해 문명 즉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의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이 두 문명의 상속자로 자처하는 서양인들은 오랫동안 성경을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내려 주신 선물인 양 여겨왔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이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보다 훨씬 앞서 생겨난 고대 근동의 두 문명 –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 의 영향을 받은 히브리 문명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근세에 들어와서야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략하면서 고대 근동의 문명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하여, 20세기에 들어서서 유럽과 미국의 학자들이 이집트뿐만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탐사하면서 고고학적 발굴 작업을 벌인 결과, 옛 신전터와 왕궁터에서 발견된 토판 문서들과 수많은 금석문에 쓰인 갖가지 고대 근동의 언어들을 해독하면서 동방 문명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하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고대 근동어로 쓰인 고문서가 20여 개 이상 그 실체를 드러내면서 서양인들은 이제 그리스-로마 문명의 독창성과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고대 근동어를 연구하는 서양 학자들은 유럽 언어들의 원조로 여겼던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동방의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셈어와 페니키아어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워하였다. 언어뿐 아니라 문학 양식에서도 서양인들은 동방의 영향을 받았음이 밝혀졌다. 서양의 정신문화를 이끌어 온 성경은 신화, 법전, 민담, 격언, 비유, 역사, 연가(戀歌)와 애가(哀歌), 예언 등 다양한 문학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런 문학 양식들이 모두 고대 근동의 문헌들에서 고스란히 발견되었으며 내용까지도 비슷하다. 

 

 그런데도 아시아인들이 성경을 낯설게 느끼는 것은 성경이 이처럼 아시아에서 생겨난 복합 문화의 토양에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서양식의 성경 해석과 접근 방법에만 매달린 탓이 크다. 그리스도교가 서양을 거쳐 세계의 모든 대륙으로 확산되는 동안, 성경도 서양인들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실용적인 사고방식으로 분석하고 객관적 진리나 교의(敎義)를 이끌어 내는 데 크게 기여한 영향이 큰데, 이것도 그리스도교나 성경을 서양의 옷을 입은 문화로 바라보게 하는 데 일조하였다. “법은 서양에서”(ex occidente Lex)라는 서양 격언이 뜻하는 바 그대로이다.  

 

  이제 우리 앞에는 2천여 년의 긴 여정을 거쳐 다시 동방으로 돌아온 성경이 놓여 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온 인류에게 구원의 표지로 주신 귀중한 경전이다. 성경의 세계가 모든 문화권을 포함하고 성경의 메시지가 모든 문화권에 열려 있다는 사실은 이제 서양 일변도의 관점에서 탈피하여 동방, 즉 아시아의 관점으로도 바라보아야 할 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동방의 ‘빛’이 서양의 관점에서만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방의 관점으로도 해석될 수 있고 또 ‘법’으로만 해석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이 서양인의 전유물이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히브리 문명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히브리 문명의 주인공인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해 쓰여진 이야기인 것은 더욱 아니다. 

 

  성경을 태동시킨 이스라엘 민족은 정치나 윤리 면에서 결코 뛰어난 민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본디 정처 없이 물과 목초지를 찾아 떠돌던 유목민들과 사회의 밑바닥에서 천대받던 히브리인들의 후예였다. 그러나 그들 조상들이 하느님의 초대를 감사하게 받아들였을 때,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생명의 번영과 안정된 정착지를 약속하셨고 실제로 그 약속을 지키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탈출시켜주시고 가나안 땅으로 해방시켜주셨다. 그러나 히브리 후예들이 하느님을 배반하고 그분 뜻을 저버리자, 그분께서는 혹독한 시련과 고난의 벌을 내리셨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빛과 어둠의 역사를 통해 온 인류가 하느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배운다(성서입문).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요한복음의 취지에 따라, 말씀이 아시아인들에게 뿌리 내리게 하려는 지향으로 이 책을 펴내는 우리의 뜻에 딱 들어맞은 통찰이다.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도 서구인들이 씌워준 안경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적 체험과 복음적인  인식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히브리인들이 강대국 이집트 치하에서 당해야 했던 노예살이의 고통에 공감하신 하느님께서 던지신 자비로운 시선으로 히브리 문명이 시작된 반면에, 히브리 문명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시작된 고조선 문명은 무주공산에서 평화로이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라는 진리의 시선으로 시작되었다. 더 이른 시기에 시작되었던 까닭은 시기상으로 볼 때에 에베르의 두 아들, 펠렉과 욕탄 중에서 히브리 문명의 시조인 아브라함은 펠렉의 6대손이지만 욕탄은 펠렉과 같은 세대에 이미 동방으로 이주하여 고조선 문명의 시조인 환웅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기상으로 6세대의 기간만큼 이르다. 

 

  또한 자비의 시선과 진리의 시선으로 달라진 차이는 주변 상황의 차이 때문이었다. 즉, 히브리 문명에서는 펠렉 이후 테라까지는 우상숭배 문명에 물들어 있다가 아브라함 대에 이르러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은데다가 기존에 터 잡고 있던 우상숭배 문명 속에서 억눌리고 시달리며 간신히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명맥을 이어갔지만, 욕탄은 노아의 직계 후손으로서 다른 문명의 간섭을 받지 않고 새롭게 독자적인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로 이 차이는 매우 크고 중대한 의미가 있으니, 히브리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두 문명 사이에서 우상숭배적 성향에 억눌리고 노예살이로 고생하는 이들에게서 출현한 것과 달리, 고조선 문명은 대홍수 이후 무주공산이 된 동아시아의 만주 벌판과 한반도에서 노아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창조 신앙의 진리를 실현하였다. 그런데 바벨탑이 무너지고 난 뒤에 동아시아로 이주한 신족(sin, 창세 10,17.32)이 지나민족으로 성장하여 황하 문명을 이룩하였는데, 이들이 고조선 문명으로부터 앞선 문물을 전해받아 힘을 키우게 되면서부터, 히브리 문명이 겪은 시련에 못지않은 간섭과 방해, 지배와 억압을 한민족에게 자행하였다. 

 

  중국인을 한자로는 지나인, 영문으로는 ‘시노’(Sino) 족이라고 부른다. 이 ‘시노’는 함의 후손 ‘신(Sin)’ 족속에 해당된다. 신→시노→시님(이사 49,12)→시나→지나(支那)→차이나(China)로 전음(轉音)되어 온 것이다. 놀랍고도 기가 막히게 슬픈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성경 기록으로 뒷받침된다. ‘신’은 가나안의 아들이요, 가나안은 함이 낳은 에티오피아, 이집트 등 아프리카에 정착한 아들들에 이은 넷째 아들이다(창세 10,6.17). 그러니까 함의 후손인 신족이 지나인들의 기원인데, 이는 유전자 분석 결과로나 언어상 분류로나 민속상으로도 뒷받침되는 고고학적인 증거가 있다. 

 

- 먼저 유전자 분석 결과를 보면, 지나인들의 유전자 본체에서 Y염색체를 추출해 본 결과 아프리카 흑인들의 선조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대체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지나인의 조상은 함의 후손인 아프리카인의 조상과 같다(張亞平, 2005년 1월, 雲南省 昆明 동물연구소 유전생물학 실험실). 

 

- 또한 지나 역사는 동이족이 시베리아와 만주에서 지나에 들어가 시작되었고, 그 후에도 계속 지나에 들어가서 많은 왕조를 세워 지나 역사가 발전되었다. 바로 이것이 지나인이 현대 인류학에서 동이족과 섞인 몽골 인종으로 분류되면서도 언어학에서는 지나 어족으로 분류되는 이유이다. 

 

- 그리고 국가 상징에 있어서, 시베리아를 건너와 만주에 정착했던 동이족, 즉 한국인의 선조들은 처음부터 봉황새를 상징으로 삼았으며 그 깃발을 봉도등(鳳圖騰)이라 하였는데, 지나인의 선조들은 진시황이 고대로부터 지나인이 숭배해 왔던 용을 황제의 상징으로 삼으면서 용도등(龍圖騰)으로 그 깃발을 삼았다(문정창, 「고조선사 연구」). 용을 숭배해 온 지나인들의 독특한 문화는 용이 함의 손자 니므롯이 세운 바벨론에서 숭배하던 짐승이었다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용 문양과 그에 담긴 우상숭배 문화까지 고대에 지나인들이 동아시아로 가져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조선 문명은 욕탄의 후예인 동이족에 의하여 고조선을 세운 기원전 2,333년 무렵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약 2,000년 동안은 만주와 한반도 그리고 중원에서 독자적인 활약을 펼치면서 요와 순 임금 등 동이족 출신들이 하 나라와 은 나라를 세워 선진 문물을 지나인들에게 전수해 주었다. 그러나 기원전 3세기 말에 진시황이 지나족을 통일한 이래로 지나인들 속에 섞여 살던 동이족은 분산시켜 동화시켜 버렸고 요하 이동에 살던 동이족과는 대립하면서 독자 문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유석근). 따라서 기원전 3세기 이후 조선 시대까지는 동이족과 지나족이 대립과 투쟁, 정복과 굴종의 역사를 겪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구한말에 고종 황제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독자 연호를 광무로 하며 원구단을 세워 천자로서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지나족의 문명이 억누른 2천 년 간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배경이다. 이 국호에 쓰인 ‘한’은 고조선에 대하여 한민족이 불렀던 또 다른 이름이었고(이덕일, 신용하), 고조선 말기에 지나족에게 밀려서 한반도 남부로 축소된 후삼한(後三韓) 혹은 남삼한(南三韓)과는 달리 고조선 초기에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에 따라 대단군이 다스리던 중앙의 진한(辰韓)과 대단군의 통솔 아래 두 명의 부단군이 다스리던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의 삼한이야말로 원래의 삼한으로서, 전삼한(前三韓) 또는 북삼한(北三韓)을 가리켰던 이름이다(신채호).  

 

9.5.4. 고조선 문명의 특질: 진리와 의로움

⓵ 하느님의 시선  

  하느님께서 한민족에게 던지신 시선은 욕탄/환웅을 통하여 전해졌으니, 그것은 앞서 겨레의 길과 법에 대해 살펴본 것처럼, “開天施敎 在世理化 弘益人間”(「朝代記」,『桓檀古記』)였다. 즉, “하늘의 뜻을 펴서 가르침을 베풀고, 세상을 이치로 교화하여, 인간세상을 크게 유익하게 하라.”는 진리가 새로운 문명을 세워야 할 단군왕검에게 주어졌다. 

 

  흔히 홍익인간에 대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있으나, 한자말 ‘人間’은 원래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세상을 뜻한다(임재해). 따라서 ‘홍익인간’이란 대홍수 이전 죄악이 가득 찼던 세상에 대해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룩해야 할, 그래서 애초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며 원하셨던 세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재세이화’도 그저 사람들의 이성에서 비롯되는 이치로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치, 즉 진리로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홍익인간’과 ‘재세이화’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욕탄/환웅이 아라랏 산으로부터 노아 선조의 뜻을 전수받아 동방으로 떠나와서 동아시아에 정착하여 실제로 행한 역사적 실천 속에서 찾아야 한다. 

 

  홍익인간의 뜻을 펼치려던 환웅은 신시에 세운 고조선 문명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세 가지 일을 실천하였다. 첫째는 풍백·우사·운사의 천부인을 거느리는 일로서 구름과 바람과 비를 주관했다는 것인데 이는 자연 기후와 생태 환경을 정확하게 알고 그에 맞추어 생활하도록 백성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농경(主穀)·정치(主命)·의료(主病) 등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는 일로서 곡식을 으뜸으로 삼아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수명을 누리며 살도록 질병을 다스리며, 형벌로서 인간관계의 선악을 분별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풍요와 생리적 건강과 윤리적 질서 수립으로 문명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재세이화인데, 이는 이치 즉 진리로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었다. 진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계시임을 전제한다면 결국 하느님의 뜻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 된다. 욕탄/환웅은, 신화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곰 토템의 예족과 범 토템의 맥족에게도 이 이치를 받아들이도록 가르쳤으며(쑥과 마늘, 동굴 체험, 백일 단식), 일종의 종교적 통과의례였던 이 시험을 통과한 곰 토템의 예족과는 혼인 동맹을 맺고, 여기서 탈락한 범 토템의 맥족과도 갈라짐이 없이 연대하는 평화적 실천을 보였다(신용하). 고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와 문명의 세력 기반이 된 이 한·예·맥 세 부족이 정치적 동맹을 맺을 수 있었던 전제는 환웅의 후손 무리들이 체험하고 받들었던 창조주 하느님의 대홍수 심판과 그 교훈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크다”는 뜻으로 ‘한족’이라고 자처했는데, 이는 무리의 규모로가 아니라 받들어야 했던 하느님의 뜻 때문에 크다는 뜻이었다.  

 

  이상 한민족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동방에 자리를 잡고 나서 그 뜻에 따라 고조선 문명 초기 상황에서 실천한 바는, ‘단군신화’에 담겨 있는 신화적 표현에서 나타나듯이, 홍익인간과 재세이화의 뜻을 세우고, 풍운우(風雲雨) 세 개의 천부인으로써 3천의 무리를 다스렸으니, 이와 같이 한민족을 바라보신 하느님의 시선은 하늘의 뜻이 반영된 문명을 이룩할 수 있는 평화스러운 진리의 빛이었다. 그리고 그 주체는 단군이 아니라 환웅이었으며, 홍익인간의 ‘인간’은 단지 사람이 아니라 ‘인간세상’이었다.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뜻이 한민족에게 주어진 ‘예수의 시선’이었던 것이다. 요한복음의 표현으로는,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신 분이 보내신 시선이었다.  

 

⓶ 제천의식과 고인돌에 담긴 물음 

  제자들의 물음은 예수님의 시선에 대한 반응으로서 의미가 있다. 비록 그 물음에 담긴 초점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일단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의 통로가 열린 것이기 때문이다. 물음에 대한 대답에 따라 되묻기를 되풀이하다 보면 비로소 올바른 물음도 가능해 진다. 이것이 대화이고 소통이다. 

 

  히브리 문명에 비추어진 빛이 노예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을 보이시는 자비로운 정의의 빛이었다면, 한민족의 고조선 문명에 비추어진 빛은 평화로운 진리의 빛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욕탄/환웅의 실천에서 보여지는 반응은 평화로운 진리에 충실하게 문명을 이룩하려는 ‘의로움’의 가치였다. 하늘의 진리를 충실하게 받들어야 하는 인간의 도리를 한민족은 ‘의(義)’로 파악하고 문명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그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우선, 욕탄/환웅은 이러한 하느님의 진리를 받들고자 제천의식(祭天儀式)을 주관하면서 곰 토템의 예족 여군장과의 혼인에서 태어난 단군으로 하여금 모든 백성이 천손의식을 지닐 수 있도록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다. 고조선 문명의 제천의식은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빛이 하느님의 백성을 거쳐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도록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고 이러한 천손의식(天孫意識)을 지난 백성의 삶으로써 하느님의 빛을 반사하려던 이 뜻이 종교 질서로서 제천행사를 통하여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를 형성하는 모든 요소의 문명적 기반이 되었다. 이것이 ‘홍익인간’이라는 건국이념이었던 것이다. 

 

  히브리 문명을 기록한 구약성경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하기까지 백성이 도무지 하느님께 묻지 않아서 예언자들이 탄식을 할 지경이었으나, 고조선 문명에서는 처음부터 하느님의 뜻을 받들려는 적극적 의지가 반영된 제천의식을 행하였으므로 백성 모두가 천손으로서 제사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이 점은 노아의 후손으로서 서아시아에서 문명을 시작한 히브리인들과도 달랐지만, 같은 동아시아 문명에서도 지나족의 봉선제에서 황제로 자처하는 자만이 천자로서 제사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 것과 크게 대비되는 것이다. 천손의식에 따라 한민족은 평화로이 주변 민족들과 교류하고 교섭함으로써 하느님의 진리를 전해주고자 했으며, 침략을 당하는 경우 방어하는 것 이외에는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이 창의적으로 개발한 문물들을 주변 민족들에게 전수해 주었다. 

 

  그리고 이 점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선택된 민족으로서 그릇된 선민의식에 빠져 있던 모습이나, 지나족이 주변 민족들을 모두 야만인으로 보고 ‘오랑캐’로 부른 것과 대비된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이웃하여 살던 동이족과 지나족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설명해 주는 이유인 동시에, 노아의 같은 후손으로서 하느님의 문명을 서아시아에서 일으킨 히브리인들과 동아시아에서 일으킨 동이족 사이의 결과적인 차이를 설명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설프기는 했어도 제자들의 물음으로 예수님께서 태생소경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답변이 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고조선 문명에서는 이보다 더 이른 시기에 제사가 하느님의 빛을 받아 서로가 서로에게 반사하는 역할을 해 내었다. 그에 들인 공력(功力)이 어떠했는지는 고조선 강역 도처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들이 말해주고 있다. 실로 고인돌은 이 시대 고조선 강역에서만 발견되는 제천의식의 유적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시선에 대한 한민족의 물음은 제천의식과 고인돌에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늘에 감사를 드리고 축복을 청하는 제천의식으로 구한 하늘의 뜻이 ‘홍익인간’이요 이를 계시로 받아들이고 계시된 진리로써 다스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재세이화’였다면, 이러한 하늘의 뜻을 땅에서 실현하려는 인간의 응답 의지는 ‘의로움’의 가치를 공동선으로 파악한 8조법금과 홍범9주로 구체화되었다. 특히 고조선 문명의 정신적 및 사회적 질서를 규정한 이 8조법금에는 히브리 문명에게 하느님께서 내리신 십계명의 내용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게도 하느님과, 부모와 이웃, 위태로운 이들을 한결같이 의로운 태도로 대해야 한다는 윤리 규범이 명시되어 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주이시니 흠숭과 감사의 예로써 섬겨야 하고, 부모는 육신 생명을 낳아 길러주신 은인이시니 공경해야 하며, 천손의식으로 맺어진 이웃과는 서로 존중해야 하되 특히 약하고 천한 이웃이나 위태로운 이웃을 대할 때 더욱 존중하라는 도덕규범이었다. 이를 한민족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사상으로 간추려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수하였다. 또한 홍범9주 역시 이러한 경천애인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고안된 대단히 정교한 관료 행정 시스템이 반영되어 있었고, 더구나 이를 고조선 문명 주변에 살고 있었던 지나인들에게도 전해주어 홍익인간의 뜻을 구현하려던 천손의식의 발로였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인정할 만한 것이다. 

 

  이로써 히브리 문명의 양상과 달리 고조선 문명은 태평성대를 구가할 수 있었는데, 욕탄/환웅의 후손인 동이족 출신으로서 지나인들에게로 가서 문명을 전수해 준 요(堯)와 순(舜) 임금이 성인군자로 평판을 얻고, 역시 동이족 출신으로 은 나라에서 태어나 주 나라에서 저술 활동을 폈던 공자도 동이족의 문화를 평하기를 온순하고 의로운 무리라고 하였다: “오직 동이(東夷)만이 대의(大義)를 따르는 대인(大人)들이다. 동이(東夷)의 풍속은 어질다. 어진 사람은 장수하는 법이라 그 곳은 군자들이 죽지 않는 나라다(有君子不死之國). 고로 공자도 ”(천하에) 도가 행하여지지 않으니 나는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인 구이(九夷)에 가고 싶다.“ 하고 뗏목을 타고 바다로 띄웠다 한다. 참으로 이유있는 일이로다”(說文解字).

 

  그 이후 민족의 후손 대대로 정신적 유전자에 새겨져 내려온 이 민족성은 지나사관에 경도된 모화 사대주의자들에 의한 억압과 지나인과 왜인에 의해 초래된 국난의 시기에도 어김없이 발휘되어 왔다. 지배층이 사대주의와 내분에 휘말려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에는 민중이 들불처럼 일어나서 이 민족성을 발휘하였는데, 이들은 스스로 일컫기를 ‘의병(義兵)’이라 하였다. 이것이 민족 정체성 안에 의로움의 가치가 아로새겨져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라 할 수 있다. 

 

⓷ 하느님의 일: 천손의식 실현

  자비로운 시선으로 시작되고 제자들의 질문으로 촉발된 예수님의 개입은 태생소경의 치유로 나타났는데, 히브리 문명에 유다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이름이 알려진 것은 한참 뒤늦은 18세기였다. 10세기에 당 나라에 들어온 경교(景敎)가 그리스도교의 일파로서 통일신라에 전파되기도 했으나, 이는 불교화되어 묻혀 버렸고 예수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당연히 그리스도교의 가르침도 전해질 수 없었다. 불교를 국교로 삼은 고려 시대 동안에도, 유학 중 성리학을 국교로까지 숭상했던 조선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성리학의 폐해가 극에 달하고 민중의 삶이 도탄에 빠지자 도처에서 민란이 일어나는 지경이 되었는데, 이에 호응하여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사회적 모순을 근본적으로 극복하려는 자각이 생겨났다. 

 

  이 무렵 명과 청이 교체되던 중국에 파견된 그리스도교의 서양 선교사들이 명과 청의 개방정책에 힘입어, 조선과는 달리 자유롭게 그리스도교의 교리는 물론 서양의 과학문물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한역서학서들을 다수 편찬하였고 이 서적들이 조선에도 유입되었다. 이로 인한 생겨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을 실학이라 불렀는데, 성리학적 이데올로기로 인한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고자 실학을 연구하던 선비들이 실학 서적 중 서학에 대해서도 접하게 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 계기를 제공한 서적은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지은 천주실의(天主實義)였다. 그리고 실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성호 이익의 제자 권철신이 주재하던 천진암 강학회에서는 어려서부터 서학에 대해 조예가 깊었던 광암 이벽이 합류하면서 실학에서 천주학으로 연구의 초점이 전환되었고, 급기야 서양 선교사들이 상주하고 있었던 북경으로 만천 이승훈을 파견하여 세례를 받아오게 함으로써 천주학 강학회는 천주교 신앙 공동체로 태어날 수 있었다. 이 강학회의 일원이었던 정약종은 천주실의를 참고하되 순 한글로 주교요지(主敎要旨)를 지어 민중에 배포하였다. 

 

  이렇게 되자 고려 시대에는 불교에 눌리고 조선 시대에는 유교에 눌려 미신으로 취급받아온 하느님 신앙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이대근). 제사금지령으로 양반층 신자들은 떨어져 나갔어도 중인 이하 신분의 백성 사이에서는 오히려 하느님을 천주라고 가르치고 천주 앞에서 만민이 평등함을 가르치는 천주교가 하나의 민중종교운동처럼 퍼져나갔고(노길명), 조선의 조정과 유림에서는 사상 유례없이 잔혹한 박해로 이를 막으려 하였으나 백 년에 걸친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심산유곡으로 박해를 피해 교우촌을 건설하여 신앙을 실천하는 움직임을 보이여 오히려 더 늘어났다(조광). 그리고 이 신자들을 위하여 최양업은 사제가 되어 주교요지에 담긴 천주교 교리를 천주가사로 지어 한문을 배우지 못한 일반 신자들이 4·4조로 지어진 이 노래들을 암송하여 전파하게 도왔다(김옥희). 예수의 이름은 이렇게 하여 한민족에게 퍼진 것이다. 이 이름이 백 년의 박해를 견디게 하였던 힘이었다. 우리 한민족이 드디어 영혼의 눈을 뜨고 진리를 보게 된 것이었다. 

 

⓸ 겨레의 눈을 뜨게 하다: 박해시대 천주교 교우촌의 선교효과 

  이 시기에 자행된 천주교 박해는 교우촌을 전국에 세워지게 하는 선교 효과를 발휘하였으니,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태생소경의 눈을 진흙에 침을 발라 고쳐주시고 나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심으로써 치유의 효과를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게 한 효과에 비견할 만한 일이었다. 박해 시기에 작성된 교세 통계를 보면, 크고 작은 박해가 진행되는 중에 오히려 천주교 신자의 수가 더 늘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조광). 이 과정에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치명하였고, 이들 중 순교 기록이 입증된 치명자들이 124위 복자와 103위 성인으로 현재 공식적인 공경의 대상이 되어 있다. 

 

  한민족 역사 반만년 동안 피지배층이 지배층과 다른 독자적 세계관을 지니고 비폭력으로 저항한 사례는 예수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천주교 박해 사태가 처음이었다. 백 년의 박해 이후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고 일제의 식민통치를 거쳐 해방 후 민주국가가 성립되면서 천주교가 신봉하던 예수의 가치는 대부분 헌법에 수용되었다. 그 대표적인 내용은 양심과 신앙의 자유, 만민 평등의 권리, 일부일처제, 정교분리 등이다. 

 

 불신앙 현상의 눈멀음과 죄를 드러냄

또한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는 천주교를 반대하던 조선의 조정과 유림의 이데올로기가 지닌 시대착오적 폐쇄성과 이로 인한 한계를 드러내었다. 조정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에게 국법으로 천주교를 금하는 명분으로써, 무군무부(無君無父)의 사학(邪學)을 신봉하여 국법질서를 어지럽히는 죄인이라는 혐의를 적용하여 극형에 처하였다. 하지만 취조를 받던 천주교 신자들은 임금 위에 계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천주께 대한 도리를 다 해야 함을 주장하였고, 천주교 신봉 외에 국법을 어긴 일이 없음을 항변하였다. 

 

  사실, 서양 선교사들은 동아시아에서 조선에만 천주교를 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본과 중국에는 더 이른 시기에 천주교를 전파하였다. 그리고 조선에서보다 더 끔찍한 박해를 받았고 당연히 수많은 치명자를 배출하였다. 하지만 박해 이후 신앙의 자유가 용인된 지 백 년이 넘게 흐른 오늘날 하느님 신앙이 폭넓게 자리잡은 민족은 한민족뿐이며, 지나인들과 왜인들 사이에서는 극소수의 집단으로 남아 있다. 게다가 신자들의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적 가치가 주류 사회에 수용되고 있는지의 여부인데, 지나인들은 동북공정 등의 역사왜곡 사업을 국책으로 추진하며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패권을 추구하고 있고 군국주의적 가치를 부흥시키려는 왜인들 역시 지난 식민강점 시기의 역사를 왜곡하며 한일 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은 역사의 시초부터 최근까지도, 이 두 민족에게는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실종되어 있으며,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추구하거나 국제관계를 호혜선린의 가치로 정립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오직 힘에 의한 부국강병만이 이들 지나인들과 왜인들의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조선 조정에서 무려 백 년 간이나 박해를 가했지만, 이 과정에서 신앙을 증거하며 살아남은 천주교 교우촌 신자들이 지키려 했던 가치들은 만민평등, 남녀동등, 양심과 신앙의 자유 등인데, 오늘날 이 가치들은 헌법에 모두 수용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조선 조정과 유림들에 의한 천주교 박해가 잘못된 처사였음을 심판하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불신앙 현상은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무명의 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9.5.5. 천부경, 겨레의 실로암

  유석근에 의하면, 천부경(天符經)은 욕탄이 노아 선조로부터 전해 내려온 창조의 신비를 여든 한 자의 한자로 간추린 경전이다. 특히 일(一)에서 십(十)까지의 숫자로 심오한 창조 신비를 표현했다는 데에서 놀라운 철학적 사색의 경지를 엿볼 수 있거니와, 이 철학적 사색을 담은 수리적 표현의 깊이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그 시원기에 이처럼 고도의 지성적인 사색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신 덕분이 가장 클 것이고, 하느님의 계시를 전수받아 문명의 정신적 기초로 삼은 우리 민족 선조들의 예지가 또한 위대하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대담한 이 가설을 세우면서 유석근은 욕탄이 단군이라고 단정하였는데, 필자는 단군이라기보다는 환웅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임재해의 견해에 동의한다. 욕탄이 단군이라면 환웅과 웅녀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설명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욕탄이 환웅이라면 가설에 따른 추정이 자연스러워서 모든 정황이 다 들어맞는다. 

 

  이 천부경 역시 창조 신앙을 간직하던 욕탄/환웅이 단군을 비롯한 후손들에게 전해 주기 위하여 아리랑 노래와 또 삼원태극 문양으로 형상화하게 될 사상을 간추린 수리 기호라고 본다. 앞에서 살펴본 단군의 8조법금이 홍익인간이라는 새 나라의 얼을 드러낸 건국이념이라면 이는 성경의 탈출기에 기록된 십계명에 비길 수 있는데, 이 천부경은 창조의 신비와 더불어 종말의 완성의 신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창세기와 묵시록에 비길 수 있다. 그리하여 이 경전 역시 ‘홍익인간’이라는 계시 진리에 담긴 뜻을 깊이 있게 풀이함으로써 종교 및 정치 지도자들과 함께 백성을 이끌고 나라를 다스릴 지식인들의 의식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8조법금과 홍범9주에 올바른 행동에 담긴 정의의 가치를 반영했다면, 이 천부경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와 세상과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반영하는 진리의 가치를 담고 있는 경전이다. 

 

  천부경의 본문 실체는 실로 오묘한 경로를 통해서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다. 구한말의 사상가 전병훈(全秉薰, 1857~1927)은 1920년에 천부경에 대해 ‘정신철학통편’에서 언급했는데, 이는 천부경 관련 문서로서 현존하는 책 중에 가장 오래된 책이다. 

 

  동방의 현인 선진(仙眞) 최치원이 말하기를, “단군(檀君)의 《천부경》 팔십일 자는 신지(神志)의 전문(篆文)인데 옛 비석에서 발견되었다. 그 글자를 해석해 보고 지금의 묘향산으로 추정되는 백산(白山)에 각을 해두었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가서 진사(進士)가 되었다가 (비석에 새겨놓은) 이 경문(經文)이 작년 정사년(丁巳年; 1917년)에 와서 처음으로 평안북도 영변(寧邊) 백산에서 출현하였다. 약초를 캐는 도인 계연수라는 분이 백산의 약초를 캐기 위해 깊은 골짜기까지 들어갔는데 석벽에서 이 글자를 발견하고 조사(照寫)했다고 한다. 나는 이미 《정신철학》을 편성하고 바야흐로 인쇄에 맡길 것을 계획하였을 때 우연히 유학자 윤효정으로부터 《천부경》을 구득하였는데 참으로 하늘이 주신 기이한 일이었다.<‘천부경’, 위키백과>

 

  천부경의 원문은 처음에 환웅이 신지에게 명하여 녹도문자(사슴의 발자국 모양을 응용하며 만든 문자)로써 기록했던 것을 비석에는 전자체(篆字體)로 새겨놓았다. - 한자의 서체는 갑골문에서부터 금문(金文), 전서(篆書), 예서(隸書), 초서(草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등으로 변천되어 왔다 - 그 후 신라 시대 최치원이 묘향산 바위에 전각(篆刻)해 놓은 것을 발견하여 다시 계연수가 글로 옮겨 ‘환단고기’를 편찬하면서 수록하였다. 여기서는  ‘성경과 환단고기의 만남’을 지은 신성욱이 정치학자 최민자와 증산도 종도사 안경전의 번역을 참고하여 번역을 시도하였다. 

 

  천부경은 창조와 종말의 신비를 압축적으로 묘사해 놓은 글이라 단순한 번역으로는 뜻을 알기 어려워 최민자, 안경전, 신성욱 모두 자기 나름대로 일정한 관점에서 해석한 번역을 제시하였다. 필자는 정치학자인 최민자가 해 놓은 천부경 원문의 자구 해석에 바탕하여 인문학적으로 천부경 원문의 난해함을 돌파하였고, 증산도 대종사인 안경전이 해 놓은 종교적인 해석을 참고하되, 개신교 목회자인 신성욱의 그리스도교적인 해석을 디딤돌로 삼아서, 천부경에 대한 가톨릭 신학의 노선 위에서 필자의 관점에 따라 조심스럽게 풀어 보았다. 여기서 핵심이 된다고 보여지는 ‘일(一)’은 한 분이신 창조주 하느님이시라고 풀었다. 

 

一始無始一 析三極 無盡本(일시무시일 석삼극 무진본)

번역: 하느님께서 시작하셨다. 그러나 하느님은 시작이 없으신 분이시다. 또 하느님은 삼극으로 나누어지지만 그 근본은 다함이 없다. 

해석: 이는 삼신사상이나 삼위일체 사상으로 알아들을 것이 아니라 천지인 삼재사상으로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하늘의 기운을 땅이 받아 생명을 꽃피우고 그 생명이 인간이 되어 하늘과 땅의 조화를 구현하라는 천손의식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하다. 실제 일어난 고조선의 역사에도 이 같은 해석이 부합된다. 환인 즉 하느님께서 환웅을 세상에 내시고 무리 삼천을 거느리게 하셨는데, 웅녀를 족장으로 하는 곰 토템족과 혼인 동맹을 맺고 단군을 낳아 그가 한, 예, 맥족의 세 부족의 연맹체로서 고조선 문명을 이룩하여 하늘의 뜻을 땅에 구현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번역: 하느님께서 주재하시는 영역은 하늘과 땅과 사람으로 구분되는데, ‘天一’은 하늘에 계신 존재로서 하느님을 의미하고, ‘地一’은 하늘의 기운을 받아 땅을 다스리는 존재를 의미하며, ‘人一’은 하늘과 땅의 결합으로 사람들을 이끄시는 존재를 의미한다. 

해석: 천지인 삼재사상의 본격적인 대목이니, 이도 역시 삼신이나 삼위일체처럼 동일시될 수 있는 신이 아니라 천신이 하늘의 기운을 땅에 주어 사람이 이를 천지의 조화로 구현하는, 천지인 삼재 사상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천신은 신이되, 지와 인의 신성은 천신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人一’은 자신이 받은 신성을 백성에게 고루 나누어 천손으로 살아가게 하는 천손의식의 리더십을 겨냥한 것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一積十 鉅無匱 化三(일적십 거무궤 화삼) (積 쌓을 적, 鉅 클 거, 匱 무너질 궤)

번역: 하나가 쌓여 열까지 이르지만 무너져 흩어지지 아니하고 조화로운 셋으로 나누어진다. 

해석: ‘一積十’에서 ‘一’은 아담이요, ‘十’은 노아이다. 노아는 정확히 아담의 10세손이다(창세 5,1-32: 아담–셋–에노스–케난–마할랄엘–예렛–에녹–므투셀라–라멕-노아). 즉,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한 인류가 늘고 늘어서 10세대 후인 노아 때에 이르러 많은 인구를 이루지만 대홍수 심판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모두 궤멸되지는 아니하고 노아가 살아남아 셈, 함 그리고 야벳의 세 아들을 낳아 새로운 인류를 전하였다. 새로워졌으니 옛 죄악에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번역: 하늘의 둘이 셋으로 변하듯이, 땅의 둘도 셋으로 변하며, 사람의 둘도 셋으로 변화된다. 

해석: 하늘에 떠있는 해와 달도 수많은 별 중의 하나여서 둘이 아니라 크게 보아 별들의 셋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땅에서도 우리 눈에는 양달과 응달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높은 산과 평탄한 들과 깊은 골짜기 같은 자연 속에 양달과 응달이 섞여 있어 삼라만상의 셋이 있듯이, 사람이 사는 세상에도 음양의 이치대로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서 무수한 셋을 이루게 된다. 하늘과 땅과 사람에게 모두, 음양(陰陽)의 이치처럼 서로 대립되는 두 근원 즉 이원(二元)으로 시작하지만 대립하지 않고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삼 또는 셋이란 일과 이를 합친 숫자이거나 일과 이 다음에 오는 숫자가 아니라 모든 것을 낳을 수 있는 다수를 뜻한다. 이것이 표현한 문양이 삼원태극이다. 


大三合六 生七八九(대삼합육 생칠팔구)

번역: ‘大三’은 천1, 지2, 인3의 세 가지 수를 말하는데 이를 합하면 6이 되고, 여기에서 다시 6에 1을 더하면 7, 6에 2를 더하면 8, 6에 3을 더하면 9가 생겨난다. 

해석: 하늘과 땅과 사람에게 모두, 이원으로 시작하여 나타난 새로운 것들이 더욱 늘어난다는 뜻이다. 이로써 피조물 세계의 복잡하고 정교한 질서를 묘사하고자 하였다. 


運三四 成環五七(운삼사 성환오칠)

번역: 3과 4를 운행하면 5로도 7로도 고리를 이룬다.

해석: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운행되어야 하는 피조물 세계 질서의 오묘한 이치를 수리적으로 풀어낸 대목이다. 3은 하늘의 수이고, 4는 동서남북 사방을 뜻하는 땅의 수인데, 하늘의 기운이 땅의 사방에 퍼지면 오행이 완성되고 다시 음양오행으로 더 큰  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천지(天地)의 조화(調和)를 뜻한다. 하늘의 수 3과 땅의 수 4에 있어 그 다음은 오행의 숫자 5이고 이를 합하면 음양오행을 완성하는 고리인 7이 된다.  음양(陰陽)은 ‘日月’의 기운이고 이 기운이 운행하는 길인 오행(五行)은 ‘火水木金土’이다. 

 

一妙衍 萬往萬來 用變 不動本(일묘연 만왕만래 용변 부동본)

번역: 창조주 하느님의 오묘한 손길로 만물이 오고 가며 그 쓰임이 변화무쌍하지만 근본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해석: 피조물의 자율성은 조물주의 근본 범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本心 本太陽 昻明 人中天地一(본심 본태양 앙명 인중천지일)

번역: 인간의 마음은 태양에서 나온 것이니 빛을 바라라. 그리하면 인간의 마음속에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리라. 

해석: 인간의 마음은 본시 밝은 것인데 죄를 지어 어두워졌으니 빛을 바라야 한다. 그래야 본래대로 인간이 밝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에 빛을 받아들이면 하늘과 땅과도 하나가 되리라.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

번역: 하느님께서는 마치시는 분이시나 그분 존재는 마침이 없다. 

해석: 천부경의 이 마지막 부분은 실마리인 첫 부분과 맺어져 있는 마무리이다. 실마리가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로서 하느님께서 세상을 시작(창조)하신 분이신데 그분 존재는 시작도 없으신 분이라는 뜻이듯이,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로 끝나는 마무리 역시 하느님은 마치시는 분 즉 심판하시는 분이신데 그분 존재는 마침이 없으시다는 뜻이다. 

 

  첫 선민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이 부여받은 계시적 선민의 은혜를 모르고 함부로 주변 이민족들이 섬기던 우상을 들여와 섬김으로써 죄를 저질렀고 결과적으로 그들 안에 오신 구세주도 배척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였다. 그에 비해 우리 민족은 어떠한가?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하느님께 관심이 없거나 우리 민족의 시조에 대한 공경심이 없다. 우리 민족의 시원 및 상고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사학자들은 우리 민족의 옛 문헌이나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에 열정을 발휘하면서도 성경이 증언하는 홍수 사건에 대해 외면한다. 민족 시조 공경에 앞장서고 있는 민족종교에서는 우리 민족의 시조 욕탄/환웅을 비롯한 단군을  신으로 섬기면서 정작 이 시조들이 예비하였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고, 개신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분도 바치셨던 제사를 하느님께 지내고 있지 않다. 이들의 진지함과 열정, 충실함과 성실성을 알기에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우리 가톨릭교회의 그리스도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욕탄/환웅과 단군은 창조주 하느님의 계시 진리를 우리 민족에게 전해준 예언자이다. 

 

  이제 연구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풀이해 본 천부경을 강생하신 그리스도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신앙의 진리에 따른 성경 말씀으로 자유로이 묵상해 보자면 이러하다: 

 

一始無始一 析三極 無盡本: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함께 창조하셨는데, “우리를 닮은 사람을 만들자.” 하시며 사람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실 것이다.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성령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내려오시어 성자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백성을 모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셨음을 선포하셨다. 

 

一積十 鉅無匱 化三: “너희는 많은 것을 근심하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너희가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여 마음을 모아 구하면 내가 하느님 아버지께 구하여 다 이루어주겠다. 너희는 나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저 하늘의 새들을 보라. 저 들판의 꽃들을 보라. 먹이를 구하려고 길쌈도 하지 않고 씨앗도 뿌리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 다 먹여 살리신다. 땅에 떨어진 씨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사람은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영은 바람이다.” 

 

大三合六 生七八九: “하느님께서는 우리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워두셨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서 어느 것 하나도 사라질 수 없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구하여라. 그 모든 것은 곁들여 얻어질 것이다.” 

 

運三四 成環五七: “나는 내 마음대로 말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 아버지께서 시키시는 대로 말할 뿐이다. 또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그에 따라 일하는 것뿐이다. 너희도 온 세상에 나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만민에게 가르쳐라.” 

 

一妙衍 萬往萬來 用變 不動本: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요 너희에게 생명을 주는 물이다. 나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죽지 않는다. 나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하느님 아버지께 데리고 가려고 이 세상에 왔다.” 

 

本心 本太陽 昻明 人中天地一: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성령께서 내려오시면 이 모든 것을 밝히 깨우쳐 주실 것이다. 그리하면 신이 되리라.”

 

一終無終一: “나는 시작이요 마침이며, 알파요 오메가이다. 여기 있는 이 보잘 것 없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베푼 것으로 내가 너희를 최후의 날에 심판하리라.” 

 

  밝은 땅에 새 나라를 세우면서 건국이념을 밝히고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는 모든 백성이 지켜야 할 질서로서 8조법금과 홍범9주를 정하는 동시에 한민족이 떠받들고 섬겨야 할 하느님의 경륜을 천부경에 기록해 놓은 목적은 민족 구성원들이 천손으로서 함께 하느님의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다스리기 위함이었다고 본다. 법금과 홍범에 올바른 행동을 위한 정의의 가치를 민족의 정체성으로서 강조하고자 했다면, 천부경에는 올바른 깨달음을 위한 진리의 가치를 민족의 정체성으로서 강조하고자 했다고 보겠다. 이 책에서 요한복음 제9장에 소개된 태생소경의 치유 기사를 풀이하면서, 실로암 못의 샘물과도 같은 천부경을 소개하는 뜻도 빛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소명에 관한 눈을 뜨게 해 주시어 한민족이 진리의 문명을 이룩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천부경에 담긴 철학적 이치에 따라 태호복희씨는 하도(河圖)를 만들었고, 단군왕검은 낙서(洛書)를 완성하였다(李沂, 太白續經). 민족종교에서는 천부경, 하도, 낙서를 우주수학의 세 가지 원본이라 설명하면서 천부경을 종교적 경전으로 삼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고 있는 태극기의 문양은 하도에서 태호복희씨가 그린 팔괘 중에 기본 4괘(乾坤坎離. 즉 하늘, 땅, 물, 불)를 바탕으로 삼고 음양 태극을 중심에 넣어 고안한 것으로서, 1882년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할 당시에 고종의 명을 받아 김홍집과 이응준이 그려서 처음 사용했으며, 같은 해에 일본에 파견되어 가던 박영효도 이 문양을 그린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한 후 1883년에 조선의 국기(國旗)로 채택되었다. 

 

  또한 천부경에는 원형 수학의 개념이 담겨 있다. 수학의 미적분(微積分) 개념을 창안한 17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라이프니쯔(G.W.Leibniz, 1646~1716)가 중국에 파견되어 가 있던 예수회 선교사 부베(J. Bouvet) 신부가 보내온 주역의 64괘 그림을 보고 0과 1만을 사용한 이진법을 발명하였고, 이를 기초로 컴퓨터를 발명하였으며, 오늘날 디지털 문명의 기반이 되었다. 주역이 하도를 응용한 것이고 하도는 천부경에서 연원한 것임을 감안하면 천부경이 서양 수학에 미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철학적 사유란 사물의 이치가 지닌 본질을 꿰뚫어 통찰하는 인간 이성의 능력이요, 수학적 추리란 현실의 복잡한 문제들을 명쾌한 논리로 답을 찾아내어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는 인간 이성의 능력이다. 철학이나 수학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원리는 인간 이성을 수단으로 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것인데, 천부경의 위대한 가치는 환웅이 가르치고 단군왕검이 주도한 고조선 문명에서 하늘에서 계시받은 진리를 합리적으로 탐구함으로써 철학적 사유와 수학적 추리를 이끌어냈다는 데 있다. 8조법금과 홍범9주가 올바른 행동을 가르쳐 정의라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면, 천부경은 올바른 인식을 가르쳐 진리라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는 바, 이 두 가지 가치가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태생소경이 예수님을 만나 눈을 떴지만 실로암 못의 물로 눈을 씻고 나서 세상을 보게 되고, 사람들도 그가 예수님께로부터 눈을 뜨고 보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듯이, 천부경은 환웅과 단군왕검 등 우리 민족의 시조들이 하늘의 진리에 눈을 뜨고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고, 이것이 기초가 되어 위대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음을 알게 해 주는 실로암 못의 물과 같다. 다른 문명들에게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인간 이성 능력으로 파악할 수 있는 범위와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내용으로 81자가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천부경을 통해서 그리고 진리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태생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신 표징을 통해서, 우리 민족을 이끄신 하느님을 깨달아야 하고 우리 민족의 문명에 담긴 신성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 [요한복음] 9.5. 진리의 빛으로 겨레의 신성을 보다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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