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신부님의 복음서 여행 : [요한복음] 7.6. 우리 민족의 얼(2): 말과 글

[요한복음] 7.6. 우리 민족의 얼(2): 말과 글

 

저녁노을의 글

2022-09-01 17:39:45 조회(406)

  이 게시글이 좋아요 싫어요

 

7.6. 우리 민족의 얼 (2)

 

  우리는 생명의 빵에 관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요한복음 제6장의 본문을 풀이하는 글의 마무리 부분에 우리 민족의 얼이 되어준 노래와 문양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제 생명의 물에 관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요한복음 제7장의 본문을 풀이하는 글의 마무리 부분에서 우리 민족의 얼이 되어준 말과 글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얼은 알에서 나온 말로서 ‘알’이 생명의 모태를 뜻하듯이 ‘얼’은 생명의 본질을 뜻한다. 하느님의 얼은 성령이시다. 사람의 얼은 혼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얼인 성령과 사람의 얼인 혼이 만나야 영혼이 비로소 생기를 얻는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얼이신 성령을 우리 인간에게 주고자 하셨고, 그 성령께서 당신에게서 나오는 생명의 빵과 생명의 물이라는 두 가지 표상으로 가르치셨다. 이는 실제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빵과 물로서 살아가신 그분 생애로 뒷받침된다. 그리하여 노래와 문양과 마찬가지로 말과 글 또한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그릇으로서, 생명의 빵이시며 동시에 생명의 물이신 예수님께서 부어주시는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다. 

 

7.6.1. 겨레의 말, 한국어

 

  정서를 표현하는 노래나 보이지 않는 사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문양 못지않게 겨레의 얼을 담고 있는 그릇이 말이다. 나라를 빼앗겼던 식민통치 시절에 악랄하게 우리 겨레의 얼을 말살하려던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집요하게 탄압했던 것이 우리 말이었던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우리’라는 말: 우리 민족이 쓰는 말은 한국어이다. 한국어에서 우리 한국인은 ‘우리’라는 말을 아주 흔하게 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단어를 매우 좋아하는 민족이다. 우리 민족이 ‘우리’라는 단어를 쓰는 용례대로 다른 민족들의 언어로 옮기자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되어 버릴 정도이다. 다른 민족의 언어에도 ‘나’의 복수형 단어는 존재하지만, 한국인에게 있어서 ‘우리’는 단순히 ‘나’의 복수형 단어가 아니다. 영어를 비롯한 서양 언어는 물론 다른 민족들의 언어에는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배어 있다. 하지만 한국어의 ‘우리’는 나보다는 ‘공동체’를 생각하는 다정한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된 배경이 하느님이시다(유석근). ‘우리’라는 말은 하느님에게서 나왔음이 성경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와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세 1,26).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동산에서 내치시어, 그가 생겨 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창세 3,22)

 

이상의 성경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면서도 당신 자신을 일컬을 때 ‘우리’라고 부르신다.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하느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선천적 심성이 담겨 있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특별한 단어이다.  

 

  ‘우리’, 삼위일체 신 관념의 원형: 아브라함으로부터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물려받은 유다인들도 하느님께서 삼위일체라는 개념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없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해 이집트를 탈출하는 역사적 사건을 겪으면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막연한 인상을 씻고 구체적인 계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이집트 탈출 사건이 이스라엘이라고도 불리는 유대 민족의 하느님 체험이요 하느님의 역사적 계시로서 민족사의 기점이 되었다. 그리고 모세의 중재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시나이 계약과 십계명이 이스라엘 민족의 사상적이고 종교적인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신앙은 유일신 성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었다. 

 

  이렇게 고생스럽게 받은 하느님 신앙에 충실하기 위한 노력은 눈물겹게 이루어졌다. 통일 이스라엘 왕국에서 예루살렘에 성전을 처음 세운 사람은 세 번째 임금이 솔로몬이었다. 이때부터 광야에서 천막을 세워 계약의 궤를 모셔 놓고 제사를 드려온 이스라엘은 성전에서 지성소에 계약의 궤를 모셔 놓고 제사를 드려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 이후 왕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었고 갈라진 두 왕국은 경쟁적으로 우상숭배를 도입하여 타락하여 갔다. 결국 북쪽에서 일어난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 먼저 북 왕국이, 그리고 그 다음에 남 왕국이 멸망당했고, 유배되어간 앗시리아의 바빌론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뼈저린 참회를 집단적으로 해야 했다. 그 까닭은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면서도 그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데에는 소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치욕적이게도 두 번째로 종살이해야 했던 바빌론 유배에서 풀려난 이스라엘 민족은 참회의 뜻으로 성전도 다시 지었지만 조상 대대로 구전되어 내려오던 전승을 경전으로 기록해 두었다. 제사를 드리면서도 정작 하느님의 뜻을 받들지 못했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열성이 지나쳐서 문제가 되었다. 유배 이후에도 계속되는 이민족들의 침탈과 지배에 항거하여 유다이즘의 수호를 기치로 내걸고 등장한 바리사이들은 십계명을 철저히 지키기 위하여 구두 주석을 발달시켰는데, 가지에 가지를 치다 보니 예수님 당시에는 613가지로 늘어났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의 일원으로 세상에 오신 메시아, 성자 하느님을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다.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을 하느님을 믿게 된 이들은 소수였는데, 열두 제자와 예순 제자, 여인들과 토박이 지지자 등 메시아를 기다려왔던 아나빔(anawim. ‘야훼의 가난한 이들’)과 암하레츠(amha-aretz.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로서 바빌론 유배 시절에 끌고 갈만한 지식이나 기술이 없는 자들을 남겨 둔 데서 유래된 말로서, 아나빔보다 더 가난한 자들이다)로 알려진 백 스무 명 가량이었다. 이들을 기반으로 세워진 그리스도 교회도,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민족 전체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성부 하느님께 대한 믿음만 간직하고 있다가 예수님이 나타나신 후에야, 그리고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시어 성령까지 보내신 후에야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이심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이 길고 복잡했다. 소수의 유다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에 이어 교회에 들어온 다수의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는 데에도 숱한 이단과 맞서야 했고, 더불어 성령의 신성까지를 포함하여 하느님께서는 삼위일체이심을 교리로 확정하는 데에도 무려 수백 년 동안이나 숱한 이단들과 논쟁하며 가까스로 진리로 확신하여 교리로 확정했던 것이다(325년 니케아 공의회,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성경에서는 이미 창세기에 하느님께서 ‘우리’라고 일컬으실 정도로 한 분이 아니심을 계시하셨는데도 세 위격으로 한 분이시라는 이렇듯 심오한 하느님의 계시를 인간이 알아듣는 과정이 이처럼 느리고 더디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시 한처음부터 하느님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면서도 일치하여 계시기 때문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일컬으시는 경우에 ‘우리’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로부터 선택받은 천손민족답게 한국인들은 삼위일체이신 그분의 정체에 관한 계시를 받기 이전에도 그분의 성품을 닮아서 ‘우리’라는 말을 즐겨 쓸 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나 문화적 표현에서도 공동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고대 한국인들의 조상들이 얼마나 독창적인 신앙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후천적으로 학습한 결과로 되거나, 또는 외부에서 주입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과 달리 유럽 교회사에서 삼위일체론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교회에서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이심을 사도신경으로 확정지어 놓고서도 그 실질적인 의미에 대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여 관념적인 논쟁을 해 온 역사는 고대교회 시절보다 더 길었다. - 그래서 중세와 근세의 삼위일체론 논쟁사는 다분히 사변적이었다. 사변적 삼위일체론 논쟁이 종결된 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고 나서였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은 삼위의 일체이신 하느님을 기준으로 이를 본받아야 하는 삶의 형태가 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의회는 삼위의 공동체이심을 닮아야 하는 인간도 공동체요(사목헌장, 24항), 교회도 공동체로 쇄신되어야 한다(교회헌장, 7항)고 정의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도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지향(사목헌장, 84항)을 천명하였다. 하느님께서 삼위로 역할을 나누어 활동하시되 일체로 존재하시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 다른 역할을 나누어 하면서도 일치하는 공동체를 뜻한다. 그래서 하느님 숭배와 우상 숭배를 구분하는 기준은 제사와 공동체였다. 제사를 하느님께 바쳐 드리면서 제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자면 공동체로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한국어에 ‘우리’가 들어온 이유: 욕탄의 족속들이 서방으로 가서 바벨탑을 쌓으려는 다수 무리를 떠나서 동방으로 향하게 된 것도 서향하려는 무리들이 힘을 내세워 공동체이신 하느님께 반항하려는 개인주의적 의식을 지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욕탄의 족속들은 하느님께 대해 순수한 공동체 신앙을 지키고자 빛이 비추어져 오는 동쪽을 향하여 떠났던 것이었다. 그들은 ‘거룩한 우리’였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라는 한국어에 담긴 에덴동산의 흔적이다. 사실상 한국어는 에덴동산으로부터 유래되었기 때문에 독립적이면서도 아주 오래된 언어이다. 언어학자들이 한국어를 알타이 어족(語族) 계통으로 분류하면서도 알타이 계통의 다른 언어들과의 친족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서 좀처럼 그 기원을 알아내지 못하고 오래된 수수께끼처럼 씨름한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대홍수 이후 생존한 노아와 그 가족,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늘어난 후손들은 아라랏산에서 출발하여 곧바로 바벨론으로 가지 않고 먼저 동쪽(중앙아시아 인접 지역)으로 이동하고자 했었다. 그러다가 그들 중 일부인 펠렉계 족속이 무리를 이탈하여 서쪽으로 옮겨가다가 신아르 평지에 도착해서 바벨탑을 세웠다. 하지만 노아의 후손 중 욕탄의 가계는 서쪽 바벨론 방면으로 간 펠렉계 후손들을 따라가지 않고 무리를 떠나 ‘스파르’를 향하여 동쪽으로 이동하였다(유석근). 

 

  에베르의 두 아들과 그 후손들이 갈라서게 된 배경에는 아마도 하느님과 관련된 종교적인 의견 충돌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즉, ‘아리랑’ 노래에 나와 있는 가사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면, 하느님을 흠숭하기보다 대적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자랑해 보려는 유혹에 빠진 니므롯 같은 자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하느님의 섭리 對 자신의 힘, 공동체 성향 對 개인주의 성향이 대립하는 사태가 일어났던 것이 아닐까? 이것이 제사(祭祀) 對 주술(呪術)의 대립으로 발전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까닭은 제사는 창조주 하느님께 바치고 그분의 뜻을 받드는 일인 반면에, 주술은 잡신을 불러 들여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일인 까닭이다. 

 

  욕탄 족속은 바벨론의 언어 혼란으로 인한 대규모의 인구 분산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동방으로 이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욕탄의 직계 후손인 한국 민족은 당연히 일찌감치 사회적으로 독립되었고, 한국어 또한 그 기원이 독립적이면서도 가장 오래된 기원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어는 바벨탑 이전의 언어로서 지구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언어이다. 

 

  성경에서는 바벨탑을 세우기 전에는 노아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인류 전체가 한 가지 언어를 사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온 세상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낱말들을 쓰고 있었다”(창세 11,1). 이 언어는 분명히 대홍수 이전에 쓰이던 언어로써 대홍수 이후 노아에 의해 세상으로 전해졌을 것이며, 펠렉이 후손 니므롯과 그 무리들이 바벨론에 문명을 세우는 동안 그리고 그러다가 하느님께서 바벨탑을 보시고 언어를 뒤섞어 놓으시기까지 한동안 욕탄계 노아의 후손들에 의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는데 이것이 한국어의 뿌리라고 추정하는 것이다(유석근). 

 

  하느님께서 사람들이 쓰던 언어를 뒤섞어 놓으신 단 하나의 이유는 바벨론에 살던 사람들을 흩으시기 위함이었다(창세 11,8-9). 그러니 이미 바벨론으로 간 무리들과 달리 동방으로 가는 경로를 선택했던 무리들은 노아가 가르쳐준 언어를 계속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니 욕탄과 그 후손들은 바벨탑 사건에 영향을 받지 않았고, 에덴과 최초 인류 가계로부터 내려온 이 지상 최초의 언어를 존속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어가 다른 어떤 언어와도 친족 관계가 분명치 않은 역사적 원인이며, 그 기원의 형체도 명확하지 않은 근본적 이유인 것이다. 한국어는 지상 최초의 언어로서 동방으로 이주해 오는 동안 갈라져 나간 언어들, 즉 만주·퉁구스어, 몽골어, 터키어 등 알타이 어족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공통 특질도 갖게 되었는데,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알타이어족에서 분리된 언어처럼 오해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어는 알타이어 단일체에서 분화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알타이어 계통의 언어들이 한국어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욕탄의 후손들이 동방으로 향해 가는 가운데, 선호하는 지방을 찾아 가지치기 하듯이 갈라져 나갔는데 사람들이 갈라져 나가면 언어도 갈라져 나가서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근(語根)은 변하지 않고 어미(語尾)만 변하는 것이 언어 진화 현상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법칙이다.

 

  한국어의 기원과 특성: 한국어의 기원은 바벨론이 아니라 에덴에 있다. 말하자면 한국어가 인류 언어라는 나무의 본 줄기라면 알타이 어족 언어들은 이 본 줄기에서 갈라져 나간 곁가지에 비할 수 있다 할 것이다. 언어학자들도 알타이 계통 언어들 가운데 한국어가 제일 근본적인 형태소(形態素) 즉 어근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고, 여기서 분리된 몽골어, 터키어, 만주·퉁구스어는 같은 형태소를 공유하고 있어 매우 밀접한 친족관계에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어는 여러 가지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알타이 어족 이외의 다른 어족에 속하는 언어들, 예를 들면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은 그 뿌리가 바벨론에 있으므로, 한국어 및 알타이 어족 언어와의 커다란 차이도 당연히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한국어가 바벨탑 이전에 에덴동산에 있었던 최초의 인류 가계로부터 내려온 지상 최초의 언어라는 근거는 첫째, 표현할 수 있는 말소리가 다른 언어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풍부하고 다양하며, 둘째 종성(終聲)이 가장 발달되어 있고, 셋째 고상하고 격조 높다는 사실이다. 

 

  하느님께서 에덴에서 인류에게 말씀하셨던 최초의 언어는 모든 소리를 발음할 수 있는 언어였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어가 바로, 말소리가 풍부하고 음성학적으로 뛰어나서 세계 어느 나라 말이든, 또 어떤 사물의 소리든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이다. 소리뿐이 아니다. 모양과 빛깔에 대해서도 한국어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한국인의 말만 풍부하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풍부하고 다양한 말을 표기하게 하려고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도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표기할 수 있는 ‘누리글’이다. 한글의 이 다양한 표현력이라는 장점은 한국어의 장점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사람이 말로 소리를 내는 음(音)은 초성(初聲)에서 시작하여 종성(終聲)으로 끝난다. 한국어는 종성이 가장 발달된 언어이다. 일본어나 지나어는 원칙적으로 종성이 없는 언어이고, 서양 언어들에서도 종성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어를 표기하는 한글은 초성을 ㄱ, ㄲ, ㄴ, ㄷ, ㄸ, ㄹ, ㅁ, ㅂ, ㅃ, ㅅ, ㅆ, ㅇ, ㅈ, ㅉ, ㅊ, ㅋ, ㅌ, ㅍ, ㅎ 등 19자, 중성을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ㅜ, ㅝ, ㅞ, ㅟ, ㅠ, ㅡ, ㅢ, ㅣ 등 21자, 종성을 ㄱ, ㄲ, ㄳ, ㄴ, ㄵ, ㄶ, ㄷ, ㄹ, ㄺ, ㄻ, ㄼ, ㄽ, ㄾ, ㄿ, ㅀ, ㅁ, ㅂ, ㅄ, ㅅ, ㅆ, ㅇ, ㅈ, ㅊ, ㅋ, ㅌ, ㅍ, ㅎ 등 28자로 적을 수 있어서 다른 어떤 언어들보다 종성이 발달되어 있다. 그리하여 한글로는 초성과 중성과 종성을 합하여 11,172개의 문자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하지 않고 있는 문자를 빼면 한국어를 표기할 수 있고 또 사용하고 있는 문자 전부는 6300자 미만 정도가 된다.

 

  그리고 한국어는 높임말이 최고로 발달된 말로서 격조 높은 언어이다. 한국어처럼 존대어(尊待語) 체계가 발달되어 있는 언어는 없다. - 일본어에도 존대어 체계가 있으나 이는 고대 한국어가 건너간 형태로 본다. 실제로 현대 일본어에는 고대 한국어의 형태가 다수 남아 있다 - 하느님께서 에덴에 있던 인류에게 처음으로 주셨던 원형 언어는 바벨론에서 뒤섞여 생겨난 언어들보다 월등히 고상한 언어일 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마땅하고, 그 고상함은 존대어 체계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 존대어 체계의 기본 단어가 ‘말씀’이다.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천지만물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심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최초의 언어는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말에서는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된 말을 단지 ‘말’이라 하지 않고 ‘말씀’이라고 높여 부른다. 이 ‘말씀’이라는 단어는 다른 언어에는 없다.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영어의 경우, 말씀을 굳이 표기하자면 첫 자음을 대문자로 하는 방식 즉 word를 Word로 바꾸어 쓸 수 있을 뿐이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세상과 생명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셨음을 기억하는 욕탄과 그 후손들은 후대에 이 사실을 전수하기 위하여 ‘말씀 언(言)’자를 고안하였다. 이 글자는 반드시 ‘말씀 언’으로 읽지 결코 ‘말 언’으로는 읽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전하고자 고안된 글자이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요한복음 성경을 한국어로는 이렇게 번역해 놓았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올바른 번역이다. 그래서 한국어는 에덴동산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에서 비롯되어 노아와 욕탄을 거쳐 오늘날 우리 한민족에게 전해 내려온 언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말에는 겨레의 얼이 듬뿍 담겨 있다. 하느님의 얼이 담긴 말씀도 이 말을 통해서 알아듣는다. 그래서 말은 민족의 얼을 담는 그릇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 유석근은 성경 창세기의 기록을 근거로 우리 민족의 역사, 특히 그중에서도 언어의 뿌리를 추적하고자 하였는데, 고조선 문명의 고조선어 또는 고대 한국어가 우랄 알타이 어족의 기원이며 이는 노아를 거쳐 에덴 동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7.6.2. 창세기를 담은 문자

 

  욕탄과 그 후손들이 동아시아의 스파르에 정착하기까지, 그들은 노아 선조가 하던 대로 하느님께서 계시다고 믿어온 하늘과 가장 가까운 높은 산정에서 제사를 함께 바치며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거듭 확인했던 뜻은, 홍수가 일어나야 했던 이유가 세상에 가득 찼던 사람들의 죄악임을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무서운 심판이 일어나지 않도록 죄를 짓지 않도록 다짐하며 후손들에게도 이를 일러주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노아 시대에 어찌나 세상에서 사람들이 짓는 죄악이 가득 했었는지 창조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일을 후회하실 정도였다: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까지 쓸어버리겠다.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창세 6,7). 노아가 홍수가 그친 뒤 아라랏 산정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제사를 드리는 일이었는데, 그 지향은 첫째로  죄악에 물들었던 사람들을 대신해서 용서를 청하고 둘째로 홍수에서 구해주신 데 대해 감사를 드리며 그리고 셋째로 다시는 죄악에 물들지 않도록 다짐을 드리는 한편 하느님의 뜻을 받들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인류의 문명에서 종교가 발생한 배경이 여기에 있고 특히 제사의 지향은 이 배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단지 세계 각지에 흩어진 노아의 후손들은 자기 조상 노아에 대한 기억과 노아의 가르침에 대한 충실성 여하에 따라 종교와 제사의 계시적 성격이 투명하거나 흐리게 되었고, 아예 기억을 잊어버리고 충실성까지 상실한 경우에는 우상숭배적이거나 기복적인 성격의 자연종교로 변질되어 버린 차이가 있을 뿐이다. 노아의 홍수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죽었고 모든 인류 문명은 다 노아 이후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지개를 보여주시며 새로운 희망의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과 소통하고자 자신들의 얼이 살아있도록  여러 가지로 표현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에서, 보이지도 않고 흔적이 남지도 않는 말을 기록하여 다른 이들에게 전하거나 후대에 남기기 위해 고안된 것이 글이다. 글에는 노아 이후에 일어난 바벨탑 사건은 담기지 않고 그 이전 아담과 하와 시절부터 노아 때까지의 교훈을 남기기 위하여 고안된 그림문자에서 출발하여 발전된 상형문자가 있다. 이를 전해 받은 지나인들은 ‘漢字’라 하여 자기 민족의 문자로 발달시켰고 동아시아 전체로 퍼져나가서 지난 2천 년 동안 한자문화권이 형성되었다. 

 

 기원을 알 수 없는 한자: 그런데 한자(漢字)는 아직까지 그 기원을 모른 채 수천 년 전부터 발전하여 동아시아의 문화를 지탱해 왔다. 홍산문명에서 발굴된 유적 중에 나온 갑골문자로 미루어 글자체는 일찍이 하(夏, 기원전 21세기~기원전 16세기)나라 당시에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대적으로 개발된 때는 상(商, 기원전 16세기~기원전 1046) 나라 시대였다(史記). - 이 상나라는 주나라에 의해 멸망될 때 마지막 수도가 은허(殷墟)였기 때문에 은(殷)나라라고도 불리는 나라로서, 하화족이 세운 주나라와 달리 동이족이 세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이덕일, 김산호) – 그 기원에 대해서는 미궁(迷宮)에 빠져 있는 채로 기원전 86년 경에 한자를 체계적으로 해설한 사람이 후한(後漢)의 경학자(經學者) 허신(許愼)이었다(說文解字). 

 

  그가 집필한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전(字典) - 자전은 한자의 각 자를 부수(部首)와 획수에 따라 배열하고, 각자마다 자체(字體) · 자음(字音) · 자의(字義)와 운용(運用) 등을 알아보기 쉽도록 한 한자 사전을 말한다 - 으로서, 필생의 노력을 기울여 저술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자전에 보면, 1만여 자에 달하는 한자 하나하나에 대해, 본래의 글자 모양과 뜻, 발음을 종합적으로 해설해 놓았다. 

 

 허신의 「설문해자」에 의하면, 한자는 눈에 보이는 사물의 모양을 본떠 그림으로 만드는 상형(象形), 추상적인 뜻을 부호로 나타내는 지사(指事), 두 개 이상의 문자를 조립하는 회의(會意), 뜻 글자와 소리 글자를 합치는 형성(形聲)과, 이를 응용하되 이미 있는 글자의 본래 의미로부터 유추하여 다른 음이나 뜻으로 전환시켜 만드는 전주(轉注), 본래 글자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 음만 빌려 쓰는 가차(假借) 등 여섯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 첫 번째 상형문자의 예로서는, ‘뫼 산(山)’, ‘날 일(日)’, ‘나무 목(木)’, ‘문 문(門)’, ‘수레 차(車)’, ‘입 구(口)’, ‘귀 이(耳)’자 등을 들 수 있다. 

- 두 번째 지사문자의 예로서는, ‘한 일(一)’, ‘두 이(二)’, ‘윗 상(上)’, ‘아래 하(下)’, ‘가운데 중(中)’, ‘달 감(甘)’자 등을 들 수 있다. 

- 세 번째 회의문자의 예로서는, ‘날 일(日)’과 ‘달 월(月)’을 합쳐서 만든 ‘밝을 명(明)’자, 여러 그루의 나무(木)가 모여 이룬다고 하여 만든 ‘수풀 림(林)’, 불(火)이 번쩍 번쩍 거린다고 해서 만든 ‘불꽃 염(炎)’, 차(車)들이 많이 다녀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를 나타내는 ‘소리 굉(轟)’, 대문 앞에 입을 대고 묻는다고 해서 만든 ‘물은 문(問)’, 대문에 귀를 대고 듣는다고 해서 만든 ‘들을 문(聞)’, 대문이 살짝 열려서 햇빛 새어나오면 문 사이가 벌어진 모양이라고 해서 만든 ‘사이 간(間)’, 사람이 나무에 앉아 쉬는 모양을 나타낸 ‘쉴 휴(休)’자 등이다.

- 네 번째 형성문자의 예로서는, 무언가 바라는 것을 말한다는 문자를 만들 때 뜻으로는 말씀 언(言)자와 소리로는 푸를 청(請)자를 합하여 청할 청(請)자를 만들었다.  

-  다섯 번째 전주문자의 예로서는, 음악(音樂)에서는 풍류 악(樂)자를 쓰는데 요산요수(樂山樂水)처럼 물이나 산을 좋아한다고 할 때에는 같은 글자를 쓰지만 좋을 요(樂)자로 읽는다. 

-  여섯 번째 주로 외래어를 표기할 때 사용하는 가차문자의 예로서는, 인디아라는 나라를 알게 되었을 때에 ‘인도(印度)’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중국어로 읽으면 ‘인디아’가 되고, 천주교가 들어왔을 때 ‘바오로’라는 말이 필요해서 ‘보록(保祿)’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중국어로 읽으면 ‘바오로’가 된다. 

 

한자 기원의 탐구에 도전하다: 개신교 선교사 중국인 C.H. Kang은 많은 한자들에서 성서의 창세기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발견하고 미국인 병리학자 E.R.Nelson과 함께 「한자에 담긴 창세기의 발견(The Discovery of Genesis)」라는 책을 1979년에 공동으로 펴냈다. 그들은 문헌을 고증하여 한자의 발생 연대가 기원전 25세기경이며 또한 이때는 구전으로 내려온 홍수 전설이 있음을 알아냈다. 이때가 대홍수 직후이고 선조들은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이라고 전해주는 내용이 있음도 알아냈다. 그리고 대홍수 후 있었던 바벨탑 사건으로 사람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을 때, 동쪽으로 이동해 온 사람들이 황하 유역에 정착하여 한족의 조상이 되었으며, 그 일부는 만주와 한반도에로 이동하였다는 것도 알아내었다. 그들은 고대 중국인들의 예술작품이나 학술서적 그리고 통치구조 기록 등을 통해 바벨탑이 있었던 메소포타미아 근처에서 이주해 왔음을 알려주는 증거들이 잇고 후기 바벨론과 앗시리아의 문명과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는 것도 알아내었다. 

 

  그리하여 그들 두 공동저자는 창세기의 이야기를 후대에 전하려 했던 상형문자 50여자를 다음과 같이 추려내었다. 船, 造, 田, 男, 女, 兄, 兇, 鬼, 魔, 生, 品, 替, 示, 禁, 婪, 神, 祝, 祈, 祭, 祥, 祀, 祖, 福, 先, 火, 榮, 仁, 西, 要, 肉, 元, 僉, 完, 裸, 始, 初, 園, 來, 衣, 義, 犧, 水, 洪, 沿, 穴, 空, 合, 血, 楚 등.

  이 같은 ‘창세기 한자들’은 아담과 에덴동산의 이야기부터 노아의 홍수 이야기까지의 성경 내용이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또한 동아시아에 이룩된 고조선 문명이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신앙에 의해서 불교나 유교 또는 도교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형성된 종교적 이야기의 산실(産室)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는 우연히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지나인들이 종사했던 농경의 경험이나, 그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종교적 경험 즉 불교나 유교나 도교와는 거리가 멀다. 오로지 에덴동산의 생활, 원죄와 추방, 죄악과 대홍수, 방주와 구원의 창세기 경험을 반영하는 흔적들이다.

 

  이 두 저자가 발견해 낸 창세기 한자들에 대하여 유석근은 이런 가설을 내세워 그 기원을 추정하였다. 즉, 밝닭나라의 이념을 상징하는 문양으로써 삼원태극을 고안해 낸 욕탄과 그 족속은 한국어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도 만들어 창조 신앙과 천지인 합일사상을 후세에 대대로 전수하려 하였다. 그러자면 자연히 아담과 노아 조상이 겪은 에덴동산과 대홍수 경험을 상기시키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 필요하였을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역으로, 이러한 상황의 관점을 달리 해서 보면, 한자는 우리 배달 동이겨레가 참으로 욕탄의 직계 자손이라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입증해 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동방에 정착한 한국인의 조상 욕탄 족속은 창세기 1장부터 10장까지의 사건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후손들에게 교훈으로 가르치기 위해 그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해서 보존하였는데, 바로 그것이 이른바 한자라고 부르는 상형문자의 기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유석근이 해설하는 내용이다. 

 

배 선(船) = 배 주(舟) + 여덟 팔(八) + 입 구(口)

이는 세 가지 요소, 즉 ‘배’를 뜻하는 舟, ‘여덟’ 八, 사람을 뜻하는 ‘입’ 口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자가 반영하고자 하던 이야기는 창세기 7,7이다.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로 들어갔다.” 이 이야기는 왜 방주를 만들어야 했는가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져야 했다. 그것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지어 내신 것을 후회하실 만큼 세상에 사람들이 짓는 죄악이 가득 차서 홍수로 심판하시려 하셨기 때문이었다(창세 5,5-6). 그러므로 욕탄과 그 후손들이 직계 조상인 노아처럼 하느님 앞에 의롭게 살아야 함을(창세 5,8) 교훈으로 가르치려 했던 글자가 이 ‘배 선’자인 것이다. 

 

사람 인(人)과 여덟 팔(八) 

‘사람 인(人)’자는 최초의 사람이었던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묘사한 문자이다. 인류는 이 두 사람으로부터 번성하였다(창세 1,28). 그러니까 ‘사람 인(人)’자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창조된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담아 후손들에게 가르쳐 전하기 위하여, 왼쪽 획은 아담을 표현한 다음에 오른쪽 획을 그 왼쪽 획으로부터 그어서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온 하와를 표현했다고 본다(창세 1,27; 2,21-23). 

그러나 홍수 심판 때에 노아의 여덟 식구를 제외한 전 인류는 멸절하였고, 홍수 이후의 모든 세대는 노아의 방주에 탔던 그 여덟 사람으로부터 다시 번성하였다. 즉, 한처음에는 두 사람 아담과 하와가 인류의 조상이었듯이, 홍수 이후에는 노아의 가족 여덟 사람이 인류의 새로운 조상이 된 것이다. ‘여덟 팔(八)’자를 ‘사람 인(人)’자를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그린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 아담과 하와가 인류의 조상이듯이, 여덟 사람도 역시 인류의 조상이 된 것을 기억하고 전하려고 한 동시에, 그렇게 되어야 했던 홍수 이전의 사람들이 지은 죄악을 경계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본다. 

 

물 따라 내려갈 연(沿) = 물 수(氵) + 여덟 팔(八) + 입 구(口)

이 한자는 ‘내려오다, 계속하다, 이어지다, 유전하다’ 등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물 위에서 방주에 탄 채로 떠다닌 노아의 여덟 식구의 상태를 나타낸 것이라고 본다. 즉 창세기에는, “물이 불어나면서 땅 위로 가득 차오르자 방주는 물 위를 떠다니게 되었다”(창세 7,18.24)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여덟 팔(八)’자와 마찬가지로 대홍수로 나타난 하느님 심판의 이유와 의미를 전해 주기 위한 글자였을 것이다. 또한 이 ‘물 따라 내려갈 연(沿)’자는 홍수 당시의 상황만이 아니라 그 이후의 상황도 이야기도 암시하고 있다. 즉 이 글자를 만들 당시의 모든 전통과 관습, 역사와 지식 등이 대홍수 이후 여덟 사람의 생각과 신앙과 삶으로부터 ‘계속해서 내려온’ 것임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굴 혈(穴) =  집 면(宀) + 여덟 팔(八)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여덟 식구가 첫 번째 거처로 삼은 곳은 커다란 동굴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물에 오랫동안 잠겨 있었으므로 집을 지을 터전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을 뜻하는 ‘집 면()’자 아래에 여덟 식구를 뜻하는 팔(八)자를 써서, 잠겼던 물이 빠져나간 산 속의 동굴로 거처를 삼고 지냈음을 나타내는 글자라고 볼 수 있다. 그 어떠한 도구도 없이 맨손과 돌만으로 수렵과 사냥을 해서 먹을 것을 구하고 입을 것을 만들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으리라. 

 

빌 공(空) = 동굴 혈(穴) + 장인 공(工)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서 노아의 가족 여덟 사람은 숲과 들에 나가 일을 해야 했을 것이고, 그 일이란 짐승을 잡는 수렵 활동과 나물을 캐고 과일 열매 등을 따는 채취 생활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여덟 사람 모두가 일하러 나갈 경우에 동굴은 텅 빌 수밖에 없었다. 이 글자는 당시 자신들의 생활 현실의 일단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눌 분(分) = 여덟 팔(八) + 칼 도(刀)

노아의 여덟 식구들은 열심히 수렵과 채취 활동을 하여 얻은 모든 양식을 나누어 먹었다. 여기에서 칼(刀)은 분할을 상징하는 기호로 쓰였다. 이 글자도 역시 자신들의 생활 현실의 일단을 나타낸 것으로 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여덟 팔(八)’자가 들어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넉 사(四) = 여덟 팔(八) + 에울 위(囗)

여덟 사람이 네 방향으로 나누어 흩어졌음을 표현한 글자이다. 

 

여러 공(公) = 여덟 팔(八) + 사람 사(厶) 

‘사람 사(厶)자는 ‘입 또는 사람’을 뜻하는 口(구)자를 줄여서 쓴 것으로서, ‘여러 公’로 부르게 된 이 글자는 ‘여덟’ 사람이 ‘모든 사람’의 공동 조상이 되었음을 나타내려 한 글자이다. 그래서 ‘사람 厶’자 위에 ‘여덟 八’자를 쓴다. 

이 글자는 다음의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전해 주려고 만든 글자라고 본다. “이것이 민족 계보에 따라 본 노아 자손들의 씨족들이다. 홍수가 있은 뒤에, 이들에게서 민족들이 세상으로 갈라져 나갔다(창세 10,32). 

대홍수 때에 노아의 여덟 식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다. 그래서 노아의 여덟 식구는 오늘날 세상 모든 민족들의 공동 조상이 되었다. 노아를 비롯해서 여덟 식구 모두가 생존 인류의 대표가 되었다는 이 역사적 사실에 바탕하여 ‘공(公)’자는 ‘여러 사람의’라는 뜻에서 시작해서, ‘공공의’, ‘일반적인’이라는 뜻을 거쳐 ‘여러 사람에게 존경받는 사람’이나 ‘노인’에게도 해당되었다. 

 

신 신(神) = 보일 시(示) + 펼칠 신(申)

신(神)자는 보일 시(示)자와 펼칠 신(申)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하느님을 의미하는 글자로서 모두 창조 이야기와 매우 중요한 관계가 있다. 보일 시(示)자는 “나타내다, 보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 분석하면, 示의 맨 윗부분인 一은 ‘하늘’을 나타내고 있으며, 아랫부분인 一은 ‘땅’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小는 세 존재가 아래로 내려오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示는 세 분의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서 “나타내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자에서 示는 하느님에 대한 약어로 쓰인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본래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시지만 사람에게 나타나시기를(示) 원하시는 분이시다. 

  펼칠 신(申)자는 “펼치다”는 뜻 외에도, “알리다, 말하다, 명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밭 전(田)자를 포함하고 있고 이는 동산, 정원 등의 뜻도 들어 있어서, 말씀을 펼치심, 즉 명하심으로써 동산을 펼치신 의미로 풀 수 있다. 따라서 示와 申을 합쳐 보면, 세 분의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땅에 내려오셔서, 말씀으로 명하시어 동산을 지으심을 나타내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자를 통해 후손들에게 전해 주려 한 이야기는 창세기 2,8일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창세 2,8). 

 

복 복(福) = 하느님 시(示) + 첫째 일(一) + 사람 구(口) + 동산 전(田)

하느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에덴의 동산을 주신 것이 바로 복이다. 에덴동산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과실나무들이 있으며 생수가 흐르는 등 모든 것이 풍요로운 낙원이었다.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곳에서 갈라져 네 줄기를 이루었다”(창세 2,8-10). 바로 이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전해 주고자 이 글자가 창안되었을 것이다. 

 

물건 품(品) = 입 구(口) + 입 구(口) + 입 구(口)

‘입 구(口)’자는 사람을 뜻한다. 왜냐하면 입이 있는 다른 짐승들은 그 입으로 먹기는 하지만 말을 하지는 못하는데, 오직 사람만이 그 입으로 먹기도 하고 말도 하기 때문이고, 그 말을 함으로써 서로 간에도 의사를 소통함은 물론 하느님과도 기도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말, 즉 언어는 의사 소통의 도구로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특질이다. 그리고 의사 소통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근본은 창조주와 피조물 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한처음에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입김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주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그분의 입김으로 그 모든 군대가 만들어졌네”(시편 33,6).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그런데 세 개의 입으로 구성되어 있는 ‘물건 품(品)’자는 ‘만물’이 – 사람뿐만 아니라 - ‘삼위일체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나타내는 글자라고 본다. 만물 중에 오직 사람만이 “하느님의 모습으로”(창세 1,27), “생명의 숨”(창세 2,7)으로 창조되었으나, 사람 아닌 모든 피조물들도 그보다는 못해도 하느님의 말씀에서 창조되었다는 신앙 진리를 이 글자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야 하며, 이를 성품(性品)이라 한다. 타고난 성품의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 품격(品格)이다. 하느님을 닮으면 품격이 높은 것이고, 닮지 못하면 품격이 낮은 것이다. 욕탄과 그 후손들은 이 점을 후손들에게 가르치고자 이 글자를 고안해 냈을 것이다. 

 

제사 제(祭) = 고기 육(肉=月) + 다시/용서 우(又) + 하느님 시(示)

이 글자는 고기를 제물로 하여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바치며 하느님께 용서를 비는 뜻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고기 육(肉)자를 본 글자의 변(邊)으로 쓸 때에는 달 월(月)자처럼 비껴서 썼다. 

  대홍수 심판 때에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자,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식솔들과 함께 가장 먼저 행한 일은 제단을 쌓고 그들의 생명을 살려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자 제사를 드린 일이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단절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그분을 기억하며 드리기 시작했던 속죄의 제사가 홍수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노아에 의해서 감사의 지향으로 다시 드려지게 된 것이다.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창세 8,20). 그런데 노아가 하느님께 바친 제사의 지향은 홍수에서 생명을 보존하여 주신 데 대한 감사의 뜻만이 아니었으니, 홍수 심판의 원인이 되었던 죄악을 다시는 범치 않겠다는 다짐과 그 죄악을 이제는 용서해 달라는 청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우(又)’자에는 ‘용서를 빌다’는 뜻도 들어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을 조(造) = 삐침/생기 별(丿) + 흙 토(土) + 입 구(口) + 쉬엄쉬엄 갈 착(辶)

이 글자는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능력을 나타낸다. ‘삐침 별(丿)’자는 하느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시는 동작을 뜻하는 글자이므로, 하느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어서 걸어가게 하셨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글자로서 욕탄이 후손들에게 전해 주고자 했던 이야기는 창세기 2,7에 적혀 있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아담’이라는 말의 히브리어 뜻도 ‘흙에서 지어진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느님을 창조주로서 알려주고 전해주는 이 글자가 창조 신앙의 시원(始原)이다. 

 

먼저 선(先) = 생기 별(丿) + 흙 토(土) + 어진 사람 인(

하느님께서 흙으로 빚어 만드신 사람, 즉 아담이 인류의 첫 조상임을 나타내주는 글자가 이 ‘먼저 선(先)’자이다. ‘지을 조(造)’자와 함께 후손들에게 창조 신앙을 가르치고 전해 주고자 고안해 냈을 것이다. 

 

으뜸 원(元) = 두 이(二) + 어진 사람 인()

‘시작’을 의미하는 글자들 가운데에서, 이 글자는 최초의 사람은 ‘먼저 선(先)’자를 통해 아담임을 기록했지만, 인류 가족은 두 사람으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기 위하여 이 ‘으뜸 원(元)’자가 고안되었다. 

 

불 화(火) = 사람 인(人) + 불똥 주(丶) + 광채 별(丿)

이 글자는 사람 위에 광채가 발산되는 모양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원죄를 범하기 전에 아담과 하와는 찬란한 영광의 빛으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죄를 짓자 그 광채는 사라지고 알몸이 되었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동산에서 내치시어, 그가 생겨 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창세 3,9-12.23). 이 글자는 욕탄이 후손들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훈계하고자 고안했으리라. 조상 아담이 죄를 지어, 그 후손들도 그 영향으로 빛나는 광채를 잃어버렸지만, 더 이상 죄를 지으면 안 된다고, 그리고 반드시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그러면 언젠가는 잃어버린 광채를 다시 찾을 수 있다고 가르쳤을 것이다. 

 

빛 광(光) = 뚫을 곤(丨) + 불똥 주(丶) + 광채 별(丿) + 한 일(一) + 어진 사람 인()

이 글자는 첫(一) 사람()에게서 발산되는 빛(丶,丨,丿)을 나타내고 있다. 이 빛은 하느님을 닮은 인간이 하느님의 빛을 반사하는 빛, 즉 광채이다. 이 글자와는 반대로, 탐할 람(婪)자는 ‘두 나무’를 뜻하는 ‘수풀 림(林)’자 밑에 ‘계집 녀(女)’를 써서 표시한다. 이는 창세기 3,6의 이야기에서 나온 글자로 보인다.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창세 3,6). 이 나무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서 하느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금지한 바 있었고, 또 다른 나무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 나무였는데, 선악과를 따먹은 벌로 생명나무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창세 3,22) 하시며 주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에덴 동산에서 내치시어, 그가 생겨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 이 이야기를 상기시켜 주는 글자가 ‘탐할 람(婪)’이므로 ‘계집 녀(女)’자가 들어간 것이다. 

 

옳을 의(義) = 양 양(羊) + 손 수(手) + 창 과(戈)

이 글자는 양을 손에 든 창으로 찌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 글자가 ‘옳다’는 뜻을 담게 되었을까? 이는 창세기의 아담과 아벨의 고사(古事)를 연상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아담은 원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하느님께서 알몸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음을 카인과 아벨에게 가르쳐 주었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창세 3,21). 카인은 농사를 지어 아담 가족의 양식을 공급했고, 아벨은 양을 쳐서 가죽 옷과 하느님께 바칠 제물인 양(羊)을 충당했다. 창세기에 담긴 신앙과 유목 민족의 환경이라는 배경을 전제로 해서만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글자가 ‘옳을 의(義)’자이다. 

 

맏 형(兄) = 입 구(口) + 어진 사람 인(人→儿)

이 글자는 가족을 대표하여 말하고, 동생을 잘 타이르는 사람이 형이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하여 ‘빌 축(祝)’자에는 장자인 형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직분을 행사하는 뜻이 담기게 되었다. 또한 이 글자는 ‘흉할 흉(兇)’자로 이어진다. 이 흉할 흉(兇)자는 막혔던 입(口)이 터지고 해서는 안 되는(×) 죄를 저지른 형인 카인이 동생 아벨을 질투하여 죽임으로써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고 말았던 고사를 반영하는 글자이다.  

 

금할 금(禁) = 두 그루 나무 림(林) + 하느님 시(示)

생명나무와 선악 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앞에서 이미 다루었다.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뜻이다. 생명나무는 영원히 살게 하는 열매를 내고, 선악 나무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눈을 뜨게 해 주지만 하느님께서 금하셨으므로 죽음을 자초하는 나무였다. 

 

예도 예(禮) = 하느님 시(示) + 노래 곡(曲) + 제기 두(豆)

이 글자는 하느님께 찬송을 부르며 드리는 제사를 뜻하는 것이다. 

 

  이상 20여 글자의 창세기적 해설을 소개하였으나, 이밖에도 훨씬 더 많은 초기 한자들이 창세기 1장부터 10장까지의 이야기를 묘사하여 상형문자로 고안되었다고 두 저자는 밝힌 바 있다. 이는 아브라함 이야기가 시작되는 창세기 12장 이후의 ‘족장사’의 배경이 되는 ‘원역사’(창세 1장-11장)도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분명히 확증시켜 주는 증거이다. 그래서 이 원역사는 ‘창조 설화’라고 부르지 ‘창조 신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창조 설화에 담긴 창조 이래의 역사적 기억을 간직한 선조들이 한자를 고안하여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전수하였으며, 이로 인해 이룩한 문명 역시 하느님을 믿는 문명이었음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욕탄은 천부경과 삼원태극사상에 담긴 우리 민족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전수해 주기 위해 이 문자들을 고안해 냈던 것이다(유석근). 가설에 입각한 추정이지만, 중국인들이 스스로 묻지도 않고 물어도 대답하지도 못하는 한자의 기원에 대한 설명으로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한자를 공부하는 것은 한자문화권으로서 2천 년 이상 지속되어온 동아시아의 철학과 문화를 이해하는 동시에 잊어버린 우리 조상들의 삶의 모습과 철학도 깨닫는 귀중한 계기가 된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한자를 한국인이 만들었다거나 한자가 우리 문자라는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이기훈). 왜냐하면 한자를 만들었거나 그들과 같은 문명을 유지했던 5천 년 전의 고대인들은 동이족으로서 아시아 곳곳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살았고, 그 후손들은 이미 각 나라들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자의 기원이 동이족의 조상인 욕탄이 후손들에게 창세기의 이야기를 전수하려던 것임을 이해하고 알리는 일에 주력하여 이에 담긴 창조 신앙을 바탕으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

 

  실상 유석근의 분석에 의해서 확인되는 바는 창세기의 전승을 담아 상형문자로 표현하고 있는 초기 한자들 안에 들어 있는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상이다. 이는 노아 때 일어난 홍수가 사람들의 죄악 때문임을 깨우치려 했고, 다시 이런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죄악을 저지르지 말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서로 평화로이 공존해야 함을 일깨우려 했기 때문임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이다. 이 소중한 사상을 통해서 한자 문화권에 사는 동아시아인들이 더욱 활발하게 소통을 함으로써 경천애인의 문화권이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동아시아에서 초기 한자에 담긴 욕탄이 지향했던 천손의식을 대국적으로 실천하는 길이기도 하다. 영토나 문화전통의 소유권을 두고 다투는 소아적인 국가 이기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이상 생명의 빵 표징으로 예수님의 신원을 드러내신 제6장과 생명의 물 표징으로 드러내신 제7장의 계시 말씀을 우리 현실에 적용하면서 우리 겨레의 얼에 대해 살펴보았다. 예수님의 얼이 생명의 빵과 물로 주어졌다면, 이를 받아들여 소통해야 할 우리 겨레의 얼은 아리랑 노래와 삼원태극 문양, 우리 말과 창세기 기억을 담은 한자로 소개하였다. 얼은 정신적인 것이요 문화적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땅만은 아니다 얼도 지켜야 한다. 우리를 지어내시고 문명을 이룩하도록 돌보아주시는 하느님의 얼을 받아온 우리 겨레의 얼,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7.6.3. 생명과 문화, 말씀과 겨레의 얼

  빵과 물의 표징으로 인간에게 오시는 생명의 영이 진리로서 겨레의 얼인 문화에 담겨 오셨다. 우리 겨레는 아리랑 노래에 하느님을 담았고, 삼원태극문양에 천손의식을 담았으며, 우리 말에 공동체를 담았고, 초기 한자에 경천의식을 담아 하느님을 전해 주었다. 아리랑 노래에 담아 전해준 하느님은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이야기였고, 하늘의 기운이 땅에 내려와 사람이 꽃 피우는 이치를 담아 전해준 삼원 태극 문양은 이론이 아니라 실체로 보여 주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일상적인 말로 표현할 수 있게 해 준 우리 말과 마찬가지로, 초기 한자들 역시 창조 신앙을 에덴 동산 시절의 이야기와 대홍수의 교훈에 담아서 일상적인 글로 기억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렇게 겨레의 문화는 하느님의 빛, 진리의 광채를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복음화된 문화란 이런 것이다. 이것이 이 땅에서 사람이 되어 오신 말씀의 토착화 실상이다.

  문화가 겨레의 역사를 지니면, 그것도 오천 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이라면 고인돌처럼 듬직한 무게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빵과 물 같은 생명의 음식으로 오시는 진리를 우리 문화가 담아내고 표현하며 공유될 수 있도록 하는 문화의 복음화 과제가 여기에 있다.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 [요한복음] 7.6. 우리 민족의 얼(2): 말과 글 - Daum 카페

  

카카오톡에서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구글+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PC버전 홈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마리아사랑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