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신부님의 복음서 여행 : [요한복음] 6.4. 민족의 얼(1): 노래와 문양

[요한복음] 6.4. 민족의 얼(1): 노래와 문양

 

저녁노을의 글

2022-08-28 19:37:58 조회(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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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민족의 얼 (1) 

  유석근은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을 출간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성경적 근원을 공식적으로 처음 제기하였다. 이는 우리 민족의 기원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무신론적인 진화론의 성과에 기대어 설명할 뿐 성경의 기록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역사가들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또한 단군 신격화를 오해한 나머지 단군상을 파괴하려 들던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에 대해 맹렬한 반성을 촉구하는 메시지이기도 하였다. 

 

  그는 노아의 6대손(노아-셈-아르팍삿-셀라흐-에베르-욕탄. 창세 10,1-25) 인 욕탄이 노아의 방주가 다다랐던 아라랏산으로부터 메사와 동부 산악 지대를 거쳐 스파르까지 이주 정착함으로써(창세 10,30) 우리 민족 시조가 되었음을 창세기 기록을 분석하여 밝혔다. 그리고 욕탄이 우리 민족의 시조인 근거를 밝히고자 오늘날까지 우리 민족의 문화와 민속 안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고고학적이고 인류문화학적인 성과를 수용하여 추적하고 제시하였다.

 

 필자는 유석근의 문제 제기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신학적으로 보충하여 말씀이 사람이 되신 계시를 전한 요한복음을 묵상하는 데 참고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를 위한 우리 민족의 사명을 이해하고 고취하는 바탕으로 삼고자 한다. 욕탄과 그 후손들이 동아시아의 스파르에 정착하기까지, 그들은 노아 선조가 하던 대로, 하느님께서 계시다고 믿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높은 산정에서 제사를 바치며 창조주께 대한 신앙을 거듭 확인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과 소통하고자 자신들의 얼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게 되었을 것이다. 영이신 하느님의 얼과 소통하자면 인간의 얼인 혼도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얼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문화가 생겨나는 것인데, 여기에는 노래도 있고, 문양도 있으며, 말도, 글도 있었다. 

 

6.4.1. 겨레의 노래, 아리랑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역사와 함께 슬픔과 기쁨을 노래해 온 단 하나의 노래로서,  매우 단순하면서도 무언가 큰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노래이다. 한민족의 대표적인 민요로서 아리랑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뜻은 몰라도 들으면 반가운 노래여서 정선, 밀양, 진주, 경기, 해주 등등 각 고장마다 고유한 아리랑 한 곡조씩은 다 가지고 있다. 아리랑 노래는 한국인만 느끼는 고유한 정서를 담고 있다. 우리 민족은 근현대사에서 나라를 빼앗기고 전 세계에 흩어져야 했던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전 세계에 흩어진 한민족의 디아스포라에서 한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꼭 부르는 노래가 바로 이 아리랑이다. 아리랑이 우리 겨레의 가슴 속에 이렇게도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 무엇일까?

 

  ‘아랑낭자설’, ‘대원군의 경복궁 건축에 얽힌 전설’, ‘알영왕비설’, ‘악랑고개설’ 등 아리랑에 관한 기존의 몇몇 가설들을 분석한 유석근은 이 가설들로는 아리랑 노래가 담고 있는 아득히 먼 옛날 우리 겨레가 ‘함께’ 경험했던 어떤 ‘민족 공통의 원체험’을 제대로 설명해 내지 못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우리 민족 성원들이 정신적 유전자로 물려받아 길이 간직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아리랑 노래의 기원에 관한 대담한 가설을 다음과 같이 세웠다. 

 

  아리랑은 우리 한민족의 선조들이 대홍수 후 셈족계의 창조주 신앙을 가지고 동방으로 이동할 때(창세 10,21-30), 험한 산과 높은 고개, 그리고 고원들을 넘어 오면서 부른 노래로 보인다는 것이다. 유석근의 가설에 의하면, 이 노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리랑’이라는 낱말이다. 모든 종류의 아리랑 노래에서 변함없이 불리는 후렴구가 ‘아리랑’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아리랑’이라는 말은 특별한 뜻과 사연이 배어 있다는 증거이다. 사실 한국인은 그 연원이나 의미를 정확히 모르면서도 ‘아리랑’이라는 말 자체에 친근감을 느낀다. 그런데 사실 이 ‘아리랑’에는 한국인의 원형과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아주 귀중한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아리랑’은 선민 한민족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특별한 ‘열쇠말’이다. 

 

  그는 먼저 어원으로 추적하였다. ‘아리랑’은 원래 ‘알+이랑’이었는데 부르다 보니 발음하기 쉽게 ‘아리랑’이 되었다. ‘알+이랑’은 ‘알’과 ‘이랑’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여기서 ‘이랑’은 ‘∼와 함께’라는 토씨여서 ‘알’의 뜻이 중요한데 그는 이 말이 ‘하느님’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어째서인가? 쌀도 볏알(볍씨)에서, 과실도 씨알에서 생기고, 하늘과 땅과 바다의 허다한 생물들이 또한 ‘알’에서 탄생한다. 그런데 하늘이야말로 수많은 생명체들을 낳아 주는 모체(母體)이고 근원(根源)이며 시작(始作)으로서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가장 닮은 ‘알’이며 가장 큰 ‘알’이라고 보았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 ‘알’이 훈민정음의 원글자로는 아래 아(·)자를 쓰는 ‘ᄋᆞᆯ’이다. 그러므로 ‘ᄋᆞᆯ이랑’은 ‘하느님과 함께’ 라는 말이다. 이런 의미로 하느님을 부를 수 있는 이름을 짓다 보니, 크다는 뜻으로 ‘ᄒᆞᆫ’이라는 관형사를 ‘ᄋᆞᆯ’ 앞에 붙이고, 높으신 분이라는 뜻으로 ‘님’이라는 존칭명사를 ‘ᄋᆞᆯ’ 뒤에 붙여서 ‘ᄒᆞᆫᄋᆞᆯ님’이라고 하게 되었다. 그것이 ᄒᆞᆫᄋᆞᆯ님 → ᄒᆞᄂᆞᆯ님 → 하늘님 → 하느님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 민족의 신앙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문화적 통찰이다. 

 

  사실 2백여 년 전 우리 민족에게 그리스도 신앙이 전해질 무렵, 유학을 배운 선비들은 ‘상제(上帝)’, ‘천(天)’, ‘천주(天主)’ 등 유학 경전에 적힌 이름으로 불렀지만, 유학은 물론 한문을 모르던 중인 이하의 계층에 속하는 이른바 민중에서는 ‘하느님’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천주교가 들어오기 전에 벌써 이 ‘하느님’이라는 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제사금지령으로 양반 신자층이 대거 이탈하는 가운데에서도, 심지어 박해령 때문에 신자임이 발각되면 고문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민간에서 천주교가 급속도로 수월하게 전파될 수 있었던 배경이 여기에 있다. 이를테면,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 ~ 1610)가 쓴 교리서 ‘천주실의(天主實義)’나 판토하(Pantoja, D., 龐迪我, 1571~1616)가 쓴 수양서(修養書) ‘칠극(七克)’에서 원시유학 경전의 ‘천’과 ‘상제’ 개념을 원용하여 천주교 교리를 저술함으로써 1단계 토착화를 이루었고, 이 한역서학서들이 조선에 유입되면서 선각자 선비들이 천주교회를 창립한 노력은 2단계 토착화였는데, 이 마중물 효과로 천주교 교리에 담긴 본격적인 하느님 진리가 민간에 퍼지게 되자 무려 4천 년 이상을 전수해 내려온 이 하느님 신앙의 본류가 봇물 터지듯 퍼져나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백 년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대근). 

 

  그러면 ‘고개를 넘어 간다’는 무슨 뜻일까? 유석근은 이 말의 뜻은 고대 한민족이 대홍수가 그친 후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 산에서 내려와 동방으로 향하던 여정에서, 이란 고원을 지나 파미르 고원을 넘어 천산 산맥과 알타이 산맥 등 수많은 고개들을 넘어가야 했던 데에서 나온 말이라고 보았다. 이 고개들 중 가장 높은 고개가 해발 높이가 평균 6,100m 이상이나 되는 ‘파미르 고원’이었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고개는 파가 많이 자생하는 산마루이기에 한국어 그대로 ‘파+마루’ 고원으로 불렀던 것이고, 지금은 ‘파미르’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학적 연관성은 고대 한국인이 참으로 ‘파미르 고원’을 지나 알타이 산맥도 넘어서 동방으로 이동해 왔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고고학적 증거이다. 알타이 고개를 넘어서 동쪽으로 조금 더 이동하면 바이칼(ᄇᆞᆰ하알) 호수가 나온다. - 단군세기는 물론 삼성기를 포함한 환단고기를 종교적 경전으로 삼는 민족종교에서 한민족의 기원으로 삼는 곳이 바로 이 바이칼 호수이다. 유석근은 이 호수를 시원지로가 아니라 경유지로 본다 - 한국인의 선조들은 이 바이칼 호수를 거쳐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다가 마침내 아시아 동녘에서 제일 높고 밝은 산인 한ᄇᆞᆰ산(太白山→白頭山)에 이르러 배달나라를 세웠다고 보는 것이다. 고대 한국인들이 그토록 험준하고 높은 고개들을 넘어서 아시아 동녘까지 가야만 했던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는 마치 히브리인들이 이집트 땅을 탈출하고 시나이 광야를 거쳐서 어렵사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찾아가는 여정을 방불케 한다. 과연 한민족의 선조들은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된 땅으로 믿고 온갖 고난을 감내한 것처럼, 동방의 스파르로 옮겨갔던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한민족이 동방의 스파르에서 이룩한 문명과 문화의 내용에 들어있을 것이다. 특히 그 문명과 문화 속에 하느님에 대한 인식, 하느님의 뜻을 받들려는 의지 등 신성 관련성이 얼마나 담겨있는지가 결정적인 열쇠이다. 지금 추적하고 있는 아리랑 노래나 삼원태극 문양, 우리 말이나 창세기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고안해 낸 초기 한자인 상형문자 등도 이 해답 중의 일부이다. 

 

  이렇게 ‘아리랑’은 창조주 하느님을 섬기던 고대 한국인이 이 땅에 오기까지 수많은 산과 언덕과 고원들을 넘으면서 부른, 이를테면 민요이기도 하고 성가 같기도 했던 노래였던 까닭에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그토록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또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는 말은 나를 버리고 가는 그 누군가에 대한 악담이나 저주가 아니다. 비록 하느님을 불신하고 배척하여 우리 일행을 떠나갔지만 다시 돌아와 달라는 마음을 담은 반어법적 해학(諧謔)이다. 적어도,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발병이 나서라도 더 가지 말고 다시 만나자는 회귀(回歸) 원망(願望)을 노래한 연정(戀情)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에 대해서 유석근은 이렇게 풀이한다. 이들은 대홍수 후에 욕탄이 창조주 신앙을 간직하고서 동방으로 이동을 시작할 때, 창조주를 불신하는 마음을 품고서 욕탄계 족속을 버리고 서방으로 이동했던 모든 펠렉의 후손들을 가리킨다. 서방으로 간 그들에 대한 기록이 이러하다.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주해 오다가 신아르 지방에서 한 벌판을 만나 거기에 자리 잡고 살았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 단단히 구어 내자.” 그리하여 그들은 돌 대신 벽돌을 쓰고, 진흙 대신 역청을 쓰게 되었다.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창세 11,2-4).

 

  그런데 노아의 증손자이며 함의 손자요 에티오피아의 아들인 니므롯(창세 10,8)이 왕국을 세워 신아르 지방에 왕국을 세웠다(창세 10,10). “주님 앞에도 알려진 용맹한 사냥꾼”(창세 10,9)이었던 그는 자신의 힘과 용맹을 앞세워 신아르 벌판에 왕국을 세우고, 바벨과 에렉과 아카드와 칼네에 이르는 왕국의 영토 중 바벨에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창세 11,4)고 선동하였다. 이는 결국 하느님께 대적(對敵)하려던 죄악이었는데, 불행하게도 니므롯의 선동에 휘둘려 펠렉의 족속들이 욕탄의 족속과 헤어져 서방의 바벨론으로 갔던 것이다. 이들이 바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으로 지칭된 무리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추론한 유석근은 겨레의 노래 ‘아리랑’은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으뜸가는 ‘코드(Code)’라고 보았다. 

 

  우리 겨레는 이 많고 도 많으며 그러나 은 더 많은 민족이다. 사실, 아리랑 노래에는 겨레의 얼을 표현하는 흥(興), 한(恨), 정(情) 등 우리 민족에 고유한 정서가 담겨 있다. 은 “흥이 나다”, “춤과 노래로 흥을 돋구었다”고 일상적으로 표현하는 데에서 드러나듯이 재미나 즐거움을 일어나게 하는 감정을 말한다. 고조선 시대 이래 우리 민족은 하느님을 섬기려고 하늘에 바치는 제천의식에서도 반드시 음주가무를 즐기곤 했는데, 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기운을 이웃과 나누기 위한 필수 절차였다. 이 과정에서 흥을 일으키고 나누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흥이 나면 나이 많은 어르신들부터 시작해서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남이나 북이나 똑같이, 흥겨운 노래와 동작으로 모임의 분위기를 돋우곤 하는 것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번잡한 세속에서 벗어나 멋스럽게 놀 줄 아는 풍류”(유동식)가 이 흥에서 나왔다. 아리랑 노래 중 대표적으로 흥겨운 곡조로는 강원 아리랑을 들 수 있는데, 이 곡의 후렴은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로서 빠르고 흥겨운 곡조로 불리어진다. 

 

  한 또한 겨레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서, “한이 맺히다”, “한을 품다”, “한이 서리다” 등 일상적인 표현에서 보듯이,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을 나타낸다. 아리랑 노래 중 한을 가장 잘 표현한 곡조로는 정선 아리랑을 들 수 있다. 조선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건국하자, 고려 왕조의 선비들 가운데 강원도 정선으로 숨어 들어 살면서, 지난 날에 모시던 임금을 사모하며 읊은 한시를 우리 말로 옮겨서 불렀던 노래가 아리랑이어서 망국의 한, 이별의 한, 낯선 삶의 한 등이 구슬프고 구성진 곡조에 배어 있다. 부르는 사람에 따라 가지가지 사연들로 가사가 만들어져서 수많은 노래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대표적인 것으로 소개를 하자면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람(八藍) 구암자(九庵子) 유점사 법당 뒤에 칠성단을 모아놓고 팔자 없는 아들딸 낳아달라고 산세불공을 맡구서 타관객지에 외로이 뜬 몸을 부디 괄세 말어라” 하는 노래를 들 수 있으며, 후렴은 공통적으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로 끝난다. 

 

  흥과 한에 이어 한국인의 정서를 대표하는 정서가 이다. “정이 많다”든가, “정이 들다”라든가, “정이 떨어지다” 하는 일상적인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정이란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을 말하는 것으로서 특히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을 뜻한다. 정에는 외국어로 번역하기 곤란할 정도로 한국인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은 정서가 담겨 있는데, 사랑하는 마음의 정도 있지만 싫어하는 마음의 정도 있어서 이를 “미운 정 고운정”이라 한다. 그리하여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밀양 아리랑) 한다든지,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 날 두고 가신 임은 가고 싶어 가느냐?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리리가 났네”(진도 아리랑) 하는 등 주로 남녀 간의 오가는 미운 정과 고운 정을 담은 이 ‘정 아리랑’은 밀양에도 진도에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요컨대, 일상생활에서 흥에 겨워 모임을 즐겁게 하고, 한을 토해내며 공감대를 형성하며, 정을 나누면서 내일을 기약하는 이런 정서를 통하여 우리 겨레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밝은 미래를 바라는 하느님의 영을 널리 그리고 오래도록 공유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일상에서 날마다 느끼는 정서를 토로하여 고생스런 생활을 견디어 낼 힘을 얻거나 격려와 위로와 희망을 나누지 않으면서 어찌 살아갈 것이며 또 어찌 하느님의 선한 기운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인가. 그래서도 아리랑 노래는 겨레의 얼이 담긴 노래라 할 것이다. 오늘날 아시아는 물론 여러 대륙에 사는 인류가 한류에 새로운 공감을 느끼며 박수를 보내게 된 데에는 아리랑 노래에 담긴 것과 같이 흥겨우면서도 한이 서려 있고 정도 담긴 한국인들에게 고유한 정서가 마음껏 '끼'로 발산되기 때문일 것이다.

 

6.4.2. 겨레의 문양, 삼일태극

 한국인들은 겨레로 모여 살기 시작한 이래로 선조들이 가르친 ‘천지인 삼재(三才) 태극(太極)’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유석근은 이를 삼원태극 사상으로 부르며 이 사상이 하느님을 대적하려 했던 바벨탑 기원의 우상숭배 문명과 하느님을 믿는 신앙에 근거를 둔 문명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고 보았다. 그런데 우실하는 하나의 근원에서 셋이 나온 것이 ‘천지인 삼재 태극’이므로 삼원태극이 아니라 일원삼(一元三) 태극, 줄여서 삼일(三一. Three in One) 태극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씀을 세상과 생명과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닮기 위하여 욕탄은 ᄇᆞᆰᄃᆞᆯ나라를 세우면서 “하늘의 뜻을 펴서 가르침을 베풀고, 세상을 이치로 교화하여, 사람을 크게 유익하게 한다.”는 건국이념을 내걸었고, 이를 삼원태극 문양으로 상징화하여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는 ‘천지인(天地人)’을 뜻하는 세 가지 커다란 극이 하나의 원 안에서 무한히 공존하는 모습을 그린 문양(文樣)이다. 문양 도면에서 빨간 극은 양(陽)으로서 천(天)을 뜻하고, 파란 극은 음(陰)으로서 지(地)를 뜻하며, 노란 극은 중(中)으로서 인(人)을 뜻한다고 한다. 하지만 적, 청, 황 이 세 가지 색깔이 끝없이 맞물리어 돌아가기 때문에 어느 극이 양과 음과 중에 해당하는지는 구별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이 천지인 삼극이 하나의 원 안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공간을 차지하며 영원한 공존과 회전을 표시하고 있다. 원을 일(一)이라고 생각하면 이 문양 자체가 이미 ‘천지인 일체’ 사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이 천지인 삼재 사상에 따라, 한글의 모음을 하늘(·), 땅(ㅡ), 사람(ㅣ)의 삼재(三才)의 조합으로 구성하였다. 둥근 하늘은 동그라미 대신에  「·」(아래 아)로 표현하고, 땅은 평평하니 「ㅡ」로 표현하며, 사람은 서 있는 형상을 그려서 「ㅣ」로 표현한 것인데, 한민족이 고대로부터 지녀온 천지인 삼재사상을 반영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우리의 전통 문화를 보면 ‘천지인 일체’에서 벗어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북을 한 번 울려도 ‘천지인 일체’요(전통북의 가죽 중앙부에는 삼원태극이 그려져 있다), 부채를 들고 바람을 일으켜도 ‘천지인 일체’였다(전통부채에도 삼원태극이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생활문화가 깊이 한국인들의 일상에 새겨져 있다. 

 

  천지인의 삼재를 나타내는 이 삼일태극 문양은 ᄇᆞᆰᄃᆞᆯ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대한민국 고유의 문양이다. 유석근은, 단순화된 이 문양을 고안해 내어 후손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수하려 한 욕탄의 의지가 문자의 발명과 태극 사상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문자와 사상의 단초가 된 것이 천지인의 삼재를 도형으로 그린 삼일태극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욕탄이 세우려 했던 새로운 문명의 단계는, 삼일태극 문양 – 한자와 이념 – 태극 사상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삼일태극 문양은 태극 세 개를 하나의 원에 둘러 그린 그림기호이다. 이를 이해하자면 ‘태극’에 대한 기본 개념을 파악해야 한다. 

 

6.4.2.1. 태극의 유래와 의미

  태극(太極)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의 모든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본질(本質)을 표현한 개념이다. 공간(空間)과 시간(時間)과 존재(存在), 극대(極大)와 극소(極小) 그리고 극중(極中) 또는 시작(始作)과 종말(終末) 그리고 진행(進行) 같은 기본 개념을 총 집약한 우주 창조관의 기본적 표현이 태극이다. 이것이 동양 철학의 근본 원리가 되었다. 태극 개념을 전개한 동양철학 논의의 시원(始元)을 전통 사상서인 『천부경(天符經)』이나 중국의 『주역(周易)』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천지인의 삼일태극과 음양태극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하나로부터 천지인(天地人)이 나와 만물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일원론(一元論)적 관점이고, 후자는 음양(陰陽)으로 만물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이원론(二元論)적 관점이다. 이 차이를 낳는 결정적인 요인은 만물의 생성과 변화에 있어서 인격적인 창조주 하느님을 전제하는가 하는 창조론 내지 유신론과, 또는 하느님 없이 만물이 스스로 생겨나서 자율적으로 운행하는 형상으로 파악하는가 하는 유물론 내지 무신론의 차이에서 온다. 지나인들은 천지인 삼일태극에서 하느님의 자리를 없애고 오로지 물질적인 차원에서 작동하는 음양 태극(陰陽太極)만 받아들였다. 그것이 역경(易經)인데, 주(周)나라 시대에 세상 만물의 변화를 예측하고자 쓰여진 점서(占書)라는 뜻에서 주역(周易)이라고도 한다.  

 

6.4.2.2. 음양태극

  ‘태극’은 하나의 명사로서 <역경(易經)>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하나의 땅이 생기기 이전의 실체’를 뜻하였다. 즉,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역에는 태극이 있고 태극이 음과 양의 두 가지 원리를 낳으며, 이 두 가지 극이 네 가지 경우 즉 상을 낳고 또 사상이 여덟 가지 양상 즉 괘를 낳는다. [출전]繫辭傳)"고 하여 太極→兩儀→四象→八卦라는 생성론(生成論)적인 도식(圖式)을 기술하고, 태극(太極)을 본원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태극이란, ‘클 태(太)’자와 ‘더할 수 없는 만물의 기원으로서의 극(極)’자가 합쳐진 글자로서, 하늘과 땅이 아직 나누어지기 전에 세상 만물의 원시적 실체를 가리킨다. 그리하여 생성론 도식에 따라서, 태극이 음과 양으로 분화되고, 태양(太陽)과 소양(少陽)과 태음(太陰)과 소음(少陰)의 네 가지 경우 즉 사상으로 다시 분화되었다가 여덟 가지 양상(卦)으로 퍼져나간다고 하는 것이다. 

 

  음양태극에 관해 이렇게 풀이한 유학자는 주자(朱子)이다. ‘주자학(朱子學)’ 또는 ‘성리학(性理學)’이라는 명분으로 조선의 유학자들을 지배했던 그의 주장은 음양이 빛과 어둠에서 비롯되는 물질계의 현상을 분석하기에는 타당성이 있어 보이지만, 물질의 본성보다 더 복잡하고 더 높은 차원에서 전개되는 인간의 운명이나 우주만물의 운명을 헤아리는 근본원리가 되기에는 불확실하다. 그리하여 역술의 교과서로 통용되는 주역은 점서(占書)가 되고 말았다. 하느님의 뜻이 빠진 이치는 ‘도(道)’가 되지 못하고 ‘술(術)’로 전락한 것이다. 

 

6.4.2.3. 삼일태극

  <천부경(天符經)>에서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제일 먼저 세 가지를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 이에 대해서는 제9장 해설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관련된 일부만 언급한다 - 그 표현이 ‘석삼극(析三極)’이다. 여기서 말하는 삼극(三極)이란 하늘(天)과 땅(地)과 사람(人)의 삼재(三才)를 일컫는다. 또한 하늘과 땅이 사람 안에서 하나가 되어 만물을 생성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그 표현이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동일한 본질을 지닌 것도 아니요, 동일한 품위를 갖춘 것도 아니지만, 하늘의 뜻을 땅이 받아서 그 조화를 세상에서 구현하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의 존재와 역할이 높아져있다. 

 

  여기서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느님 관념이 아직 명확하지 않았고 삼위일체 신앙의 교리가 알려지지도 않았던 그 시절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다른 어느 것보다도 필요하고 그래서 고귀한 하늘의 기운이 온 누리의 땅과 모든 사람에게로 퍼져나가기를 염원하던 신화(神化) 개념이 ‘삼신사상’(三神思想)으로 나타났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 ‘삼신사상’의 목표는 당연히 천손의식을 통한 신적인 변화이며 이 변화의 보편적인 전파이다. 적어도 천손의식을 계시받지 못한 여타 민족들이 그러했듯이 힘을 추구하거나 다른 민족들을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 민족의 신 개념이 서양의 신 개념보다 훨씬 보편적이며 따라서 삼위일체적임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이 조선 시대 후기에 삼위일체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 정신적 바탕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구 교회사 속에서는 오랜 신학적 논쟁을 거친 후에 성립된 삼위일체 교의를 조선의 신자들이 쉽고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아마 하느님을 삼신(三神)으로 제시했던 신화적 원형이나, 무교 및 민간신앙 속에서의 삼신신앙의 영향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이대근).  

 

  즉 만물의 기본 요소를 음양으로만 보는 역경의 사상과 달리, 천부경에서는 하늘과 땅 사이에 형성된 자연은 인간이 존재함으로써 우주 운행이 시작된 것으로 보며 그 변화 역시 인간의 운명과 함께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동시에 자연도 인간에 의해 하늘과 땅의 뜻을 구현하는 존재로 본다. 이는 한국 고유의 사상인 삼신(三神)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이원론적인 음양 사상과 구분된다. 이치상으로도 더 오묘하거니와, 연대상으로도 이 삼신 사상이 음양 사상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서, 지나인들이 물질계의 원리로 축소시켜 삼원태극을 음양태극으로 변형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지나인들이 신성을 배제하고 유물론적이고 무신론적인 가치관으로 역사와 세계를 보는 바탕을 이루는 사상적 기반이다. 

 

  세상은 양과 음이라는 두 가지 대립되는 관계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음양을 중재하는 중(中)이라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 중이라는 요소가 오행(五行)으로 나타난다. 오행은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 등 다섯 별이 운행하는 질서와 이에 상응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기본이 되는 시간 단위로 일곱 요일로 구성된 한 주간을 표시하는 이름이 바로, 음양을 뜻하는 日月과 오행을 나타내는 火水木金土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삼일태극 사상이 음양태극 사상과 비교하여 중요한 것은 그 사회적 파장이다. 즉, 이원론적인 음양태극 사상이 억음존양(抑陰尊陽)의 이데올로기로 나타나서 여성 차별, 신분 차별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인식(中華) 아래 주변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오랑캐(東夷, 西戎, 南蠻, 北狄)로 보는 국가 차별 등의 근거로 활용되어 온 데 비해서, 삼재 사상에 입각한 삼일태극 사상은 객관적인 세계에 머물러 있던 하늘과 땅이 인간의 주관적인 인식세계로 흡수됨으로써 차별이나 대립보다는 조화를 더 우월한 가치로 인식하게 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한국인 사상의 핵심은 천지인 합일사상이다. 이는 그리스도 신앙과 삼위일체 신관에 입각해서 볼 때, 하늘과 땅과 인간이 동일한 존재라는 ‘삼신사상’의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과 기운을 땅이 받아 인간에게서 발현시킨다는 천손의식을 목표로 한 신화 과정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삼일태극 문양으로 상징되는 이 사상에는 ‘홍익인간’과 ‘재세이화’의 건국이념이 표방하는 평등과 민주적 사상이 담겨 있으며 삼라만상을 창조하는 이치로부터 만민을 하느님의 자손으로 포용하려는 ‘천손의식’이 담겨 있다. 그 오랜 옛날에 이미, 현대의 민주주의 사상은 물론 복음정신까지도 포괄하는 이런 위대한 사상이 담겨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거나 우연히 생겨났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으며, 하느님의 계시로부터 연원한 까닭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하느님의 얼이신 성령을 받을 인간의 얼 즉 위대한 혼을 단순한 도형으로 표현한 그림이 바로 삼일태극문양인 것이다.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 [요한복음] 6.4. 민족의 얼(1): 노래와 문양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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