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신부님의 복음서 여행 : [요한복음] 38. 승리의 표징

 

[요한복음] 38. 승리의 표징

 

저녁노을의 글

2023-01-15 20:24:19 조회(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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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승리의 표징(묵시 19,11-20,15)

 

38.1. 흰말을 타신 분(묵시 19,11-16)

  지상에서의 ‘말씀’은 표상이요 그림자이고, 하늘에서의 ‘말씀’은 실체다. 거룩하신 ‘말씀’께서 그것을 통하여 하늘을 여시고 숭고한 것들을 알려 주시는 말씀들은 하늘의 ‘말씀’께서 이성과 정의와 함께 영혼 안에 사시게 하기 위하여 영혼 안의 불합리한 요소들과 싸운다. 이 ‘말씀’은 충실하고 참되시며, 그림자요 유형이며 표상인, 거룩하신 ‘말씀’께서 지상에서 하시는 말씀들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영혼을 인도한다. 우리는 ‘말씀’께서 우리 몸 안에 오심으로써 그분을 알게 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마침내 그분은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 생각의 물질적 요소들을 없애시고 하느님의 지혜의 밝음과 명료함으로 갖가지 오류를 없애신다(오리게네스). 그리스도께서 희고 깨끗한 몸을 취하신 것은, 공중의 권세들을 정복하고(베다)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고 인내로 죄인들을 참아 주러 오시기 위해서였다(아프링기우스). 이 싸움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힘이며 그분 안에서 승리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상이기도 하다(프리마시우스). 종말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천상 군대와 함께 오실 것이며(빅토리누스), 큰 능력을 지닌 장군으로서 죄의 얼룩조차 없는 당신 성도들의 군대와 함께 당신의 원수들과 전투를 벌이실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아름다운 왕관을 얻고(티코니우스),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의 영광과 영예를 당신 아버지께 바치신다(아프링기우스). 

 

  하느님께서는 계명과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베다) 의인들에게 빛을 비추시어 밝게 하신다. 널리 만물을 내다보는 그분의 권능은 불꽃 같아서(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분은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인간을 속속들이 아신다(아프링기우스). 그러나 모든 것을 보시는 하느님의 능력은 죄인들에게는 그들을 밝히는 불이 아니라 오히려 태우는 불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실로, 죄인들과 이단자들은 교회에게 그분 안에서 알아야 할 것을 주시는 ‘말씀’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한다(프리마시우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일로 인하여 여러 이름으로 불리시는 바, 그분은 ‘목자’이시며 ‘빛’이시고 ‘거룩함’이시며 ‘구원’이시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러나 그분의 거룩한 본질은 불가해한 것이어서, ‘아들’은 비할 길 없는 존재이시고, 그분의 이름은 당신 자신과 아버지 그리고 성령께만 알려져 있다(오이쿠메니우스, 프리마시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러나 ‘말씀’이 본성상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형체가 없으시며 그분의 평화는 모든 피조물의 이해를 벗어나는 것이지만(베다), ‘말씀’은 우리에게 아버지의 지혜를 풀이해 주시는 분이다. 아버지의 마음으로부터 산고 없이 나신 이 ‘말씀’은(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사람의 모습으로 오시어 당신 교회를 가르치시고 지식과 희망을 주셨다(프리마시우스, 베다). 

 

  죄를 용서받고 고통받는 그리스도를 자기 안에 모신(프리마시우스) 성도들은 강한 군대가 되어(베다) 부활로 깨끗해진 몸과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른다(아프링기우스, 프리마시우스). 이 점에서 성도들은, 역시 죄 없으며 본성에서 순수하고 하느님과 일치함으로써 빛나는 천사들과 비슷하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실로 ‘말씀’의 육화는 임금이며 주님이신 그분의 속성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다(오이쿠메니우스). 오히려, 동정녀에게서 취하신 육과 완전히 하나가 되신(아프링기우스, 오이쿠메니우스) ‘말씀’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셨으며,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시듯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도 주인이다(아를의 카이사리우스).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을 통해 입양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아들들’을 만드시며(아프링기우스), 그래서 영적 자손들의 후손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축복받을 것이다(프리마시우스). 이 믿음의 ‘아들들’은 주인이다. 그들은 죄를 발 아래 두고(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리스도께서 임금이시며 주님이심을 확고한 고백으로 증거하며(아프링기우스), 다가올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릴 것이기 때문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하느님께서는 현세에서 율법과 박해로 겸손한 이들을 가르치셨다(프리마시우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 그러나 거만한 자들은 하느님의 엄격한 정의에 의해 부러지며 정화되지도 새롭게 되지도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그런 죄인들을 의로운 분노로 벌하시고 지옥으로 던져버리실 것이다(아프링기우스, 오이쿠메니우스, 프리마시우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 

 

38.2. 위대하신 하느님의 잔치(묵시 19,17-21)

  하늘 높이 있는 천사는 교회의 선포를 나타낸다(프리마시우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 베다). 교회의 선포는 두려움을 모르며 억압을 받을수록 더욱 활발해진다(프리마시우스, 베다). 하나인 교회의 선포를 듣고 믿음에 든 이들은 희생 제사의 제물처럼 ‘먹히며’ 그리하여 교회의 몸으로 변모한다(프리마시우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천사들은 숭고하고 고귀한 본성으로 인하여 새들과 같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아마도 미카엘일 하늘 높은 곳의 천사(아프링기우스)가 모든 천사에게 하느님께서 원수들에게 승리를 거두신 기쁨을 함께 나누자고 외친다(오이쿠메니우스). 이 천사들이 ‘하늘 높이’ 있는 것은 그들이 보편 교회의 성도들을 위한 중재자요 중개자이기 때문이다(아프링기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들은 성령의 빛 속에서 명령을 전한다(오이쿠메니우스). 

 

  원수의 죽음으로 인한 기쁨을 ‘양식’이라고 부를 수 있듯이, 신자들의 기쁨도 ‘양식’이다(오이쿠메니우스).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의 뜻이 당신의 양식이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이들은 하늘 나라의 잔치에서 먹게 될 것이며, 음탕하고 사악한 자들은 고통의 잔칫상을 받게 될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마귀와 그리스도의 적이 주님과 그분의 천사들을 거슬러(오이쿠메니우스) 군대를 모을 테지만, 주님께서는 말 한 마디 하는 데 걸이는 시간보다 빨리 그들을 물리치실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마음과 뜻이 일치를 이룬 그리스도의 군대는 악마가 지휘하는 죄와 이단적 견해들의 군대에게 승리를 거둘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리스도를 이길 수 있는 자는 결코 없으며(아프링기우스), 그러므로 악마와 그의 무리는 모조리 파멸할 것이다(프리마시우스). 악마와 그리스도의 적은 불 못에 던져져, 그곳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위대한 정의의 하느님께서는 악마와 그의 추종자들을 같은 벌에 처하지 않으실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칼은 날래고, 두 번째 죽음은 영원하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말랐던 성도들은 그때 하느님의 의로움에 관한 완전한 지식을 배불리 먹게 될 것이다(프리마시우스). 

 

38.3. 천 년 동안 결박되어 있을 악마(묵시 20,1-3)

  아담을 통해 인간을 정복한 악마는 인간이 갖가지 죄로 죽음에 종속되게 함으로써 인류를 노예로 묶어 놓았다(이레네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죽음을 무너뜨림으로써 인류가 생명을 되찾게 하기 위해(이레네우스) 그리스도께서는 악마와 전투를 벌이시고자 아버지의 권능을 지니고서 육신 안으로 내려오셨다(베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자유의 몸이 되게 하시고(이레네우스) 선민들을 유혹하는 악마의 권능을 제압하시기 위하여(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의 수난과 십자가라는 지고의 권능으로(아프링기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악마를 묶으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주님께서는 진노의 그릇이었던 이들을 자비의 그릇으로 만드신다(프리마시우스). 

사목에 종사하는 이들은 거룩한 심판이라는 절대 끊기지 않는 끈으로 악마를 묶도록 불린 사람들이다(아프링기우스). 주님께서 육화하여 사신 기간인 ‘구원의 날’ 동안에 악마는 구원자의 신성에 저항할 수 없었고 마귀들은 그들을 괴롭히려고 오신 주님을 두려워하였다(오이쿠메니우스). 주님 육화의 ‘날’에 이루어진 사탄의 결박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그분께서 죽은 이들을 살리고 심판하러 오시는 재림 사이인 교회의 시간에 ‘천’ 년 동안 계속된다(아우구스티누스).  그 기간에 복음 선포는 그리스도의 충만함 속에서 성숙하도록 모든 이를 부르며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악마가 힘을 못 쓰도록 묶여 있는 까닭에 우상 숭배는 사라지고 이교의 신전은 파괴된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러나 이 동안에도 악마는 비신자들을 더욱 확고히 손에 넣어 그들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교회를 미워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만이 아시는 선민들은 악마에게 유혹당해 저주받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들의 권능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하기로 옛날 옛적에 그들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다(아우구스티누스). 마치 십자가로 빗장이 질러진 것처럼 악마는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만큼만 성도들을 유혹할 수 있을 뿐이며(아프링기우스), 성도들은 그 정도의 유혹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성도들에 대한 악마의 마지막 공격은 필시 맹렬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공적은 하느님의 도성이 얼마나 큰 승리를 거두며 그 도성의 해방자요 구원자이신 분의 영광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 줄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미워하는 자들은 이 시련의 때에 아무도 믿음으로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우리는 악마와 그리스도의 적이 사악함의 독을 쏟아낼 때,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마련된 벌에서 우리를 구하시고, 우리에게는 타락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마련된 영원한 축복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38.4. 천 년 왕국(묵시 20,4)

  주님의 육화 기간에 사도들은 어느 정도 심판을 행했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그들이 단죄했기 때문이다(오이쿠메니우스). 또한 민족들을 깨치게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가르침의 어좌가 주어진 것처럼, 다가올 시대에는 그들의 가르침을 거부한 이들을 단죄하도록 심판의 어좌가 주어졌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현세에서도 교회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나라다. 성도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나라다. 그러나 ‘가라지들’은 비록 교회 안에 있을지라도 지금도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지 못한다. 성도들이 다스리는 현세의 교회는 살아 있는 성도들과 세상을 떠난 성도들의 것이며, 세례와 참회가 필요하다는 사실과 전례에서 우리가 세상 떠난 성도들을 기억하는 것이 이를 말해 준다(아우구스티누스). 

 

  일찍이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실 때 그리스도께 대한 음모에 가담하기를 거부했던 많은 이가 순교했으며 재산을 몰수당했다(오이쿠메니우스). 교회의 순교자들은 특별한 광휘에 둘러싸인 채 죽음 안에서 다스리며(아우구스티누스), 그들이 일으키는 기적과 치유는 마귀들에 대한 그들의 권한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러나 하느님의 약속은 순교자들과 박해받는 이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우상 숭배에 굴하지 않고 신앙 안에 굳건히 남아 있는 이들 또한 그리스도의 순교자들과 함께 영예롭게 될 것이다(키프리아누스). 마찬가지로, 남을 속이는 위선과 나쁜 윤리를 거부하고 자신의 신앙에 따라 사는 이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를 따른 이들이 분별 있는 삶을 살고 권능을 행함으로써 마귀들을 물리쳤듯이(오이쿠메니우스),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날 때 순교자들과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의 지극히 영광스러운 수난의 표를 지니고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아프링기우스). 

 

38.5. 첫 번째 부활(묵시 20,5-6)

  바오로 사도는 두 번의 부활을 나타내는 두 나팔에 대해 이야기한다. 첫 번째 부활은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릴 성도들과 믿은 유대인들의 부활이다. 두 번째 부활은 지옥에서의 파멸(두 번째 죽음)을 맞을 불경한 죄인들의 마지막 부활이다(빅토리누스). 첫 번째 부활을 믿음의 부활로 이해해도 좋을 것인데(오이쿠메니우스), 이 부활을 통해 사람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간다(아우구스티누스). 구약성경에서나 육화의 시기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으셨던 거룩한 성령께서 많은 이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하심으로써 드러나셨기에 우리가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오이쿠메니우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와 잘못 안에서 죽었으나(아를의 카이사리우스),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 거룩한 사람(오리게네스)은 세례를 통해 죄를 용서받음으로써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한다(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죄의 죽음에서 살아나 새 삶을 지켜 감으로써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아우구스티누스)은 죄에 대한 영원한 벌인 두 번째 죽음을 겪지 않을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오이쿠메니우스).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사람에게는 영으로, 죄인에게는 불로 세례를 주신다. 그러나 성령의 첫 번째 부활 이후에 죄를 짓는 사람은 정화하는 불 세례를 통해 또 다른 부활을 겪어야 한다(오리게네스). 끝없는 고통의 두 번째 죽음으로 부활하는 사람(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은 죽은 것과 같은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기쁨과 행복이 없는 곳에 진정한 삶이란 없기 때문이다(아우구스티누스, 아프링기우스). 두 번째 죽음에서도 고통을 계속 가해지지만 파괴에 이를 정도는 아니어서 죽음의 더러움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아우구스티누스).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있도록 부활한 사람들은 십자가의 힘과 그분의 강력한 주권 안에서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다(아프링기우스). 지금도 성도들이 스스로를 유혹에서 지킴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참된 ‘사제’이신 분 안에서 사제로서 다스리듯이(아우구스티누스), 영원한 것들이 도래하고 한시적 실재가 사라지는 날 성도들은 더 확실히 그리스도의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이처럼, 육체적이고 한시적인 첫 번째 죽음과 영적이며 영원한 두 번째 죽음이 있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리고 믿음의 부활인 첫 번째 부활과 원치 않는 이들까지 포함하여 만인에게 일어나는 두 번째 부활이 있다(오이쿠메니우스). 

 

38.6. 곡과 마곡(묵시 20,7-10)

  주님께서 육화하여 계신 동안, 육화의 신비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이로움을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악마의 권한이 억제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시자, 악마는 민족들을 속이는 그의 본업을 재개하도록 다시 풀려났다. 악마가 뜻한 바는 아니지만 그의 악행은 사도들과 순교자, 사목자, 수도승, 그리고 의로운 모든 사람이 믿음의 힘을 보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인류를 단련시키는 체육 교사 같은 역할을 한다(오이쿠메니우스). 이 시기 동안 복음 선포는 믿는 이들 안에서 완전하고 완벽한 수확을 할 것이다. 그 뒤에 그리스도의 적이 올 터인데, 그러면 불신자들은 단죄받고(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반면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성도들은 영원한 실재를 맞게 될 것이다. 이때 하계에서는 악마가 사라질 것이다. 그가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아프링기우스). 

 

  사악한 자들은 지금도 선행을 보면 참지 못하지만(아프링기우스), 종말이 오면 악마는 성도들과 싸우기 위해 그에게 충성을 바치는 민족들, 곧 곡(Gog)과 마곡(Magog)을 모아들일 것이다. 이 일이 구약성경 시대나 마카베오 시대에 이미 일어났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이 가장 치열한 전투는 종말 때 일어날 것이 확실하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이 민족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거나, 만약 이미 존재한다면 성경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오이쿠메니우스). 그러나 이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종족이나 민족을 가리킨다고 보지 않는 편이 낫다. 어쨌든, 이 마지막 박해는 세상 도처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도성을 거슬러 행해질 것이다. 악마의 도성 또한 세상 도처에 있다(아우구스티누스). 악마가 자기 사람들 안에 사는 곳이면 어디든 자만심으로 인하여 교회와 싸우려는 적대적인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아우구스티누스, 아프링기우스). 

 

  교회는 자만심으로 우쭐한 악마(아프링기우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둘러싸일 것인데, 그런 자들이 믿는 이들 사이에 섞여 있기 때문이다(아우구스티누스, 아프링기우스). 그러나 성도들의 불타는 열정은 불경한 자들이 자기들 죄의 불로 타는 동안에도 그들에게 고통을 줄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불경한 자들 가운데 일부는 성령의 불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로 돌아서서 거룩한 교회에 의해 영적으로 불타게 될지 모른다(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어쨌든, 악의 창시자인 사탄은 종말에 불 못에 던져질 것이며(오이쿠메니우스), 교회는 안전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단지 한 천사가 아니라 많은 천사가 둘러싸고 지켜 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그분께서는 악마와 그의 추종자들을 당신의 입김으로 멸하실 것이며(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영원하고 끝이 없다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 벌로 그들을 넘기실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38.7. 마지막 심판과 두 번째 죽음(묵시 20,11-15)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고, 하느님께서 성도들 가운데 세우실 나머지 사람들이 드러난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하느님께서는 그들 덕의 광휘가 그 빛을 반사하는, 그들 가운데 놓인 빛나는 어좌에 앉으실 것이다. 하늘과 땅을 묶어 놓고 있던 죽음의 나라는 그때 쫓겨날 것이며(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하늘과 땅은 파멸하여 무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어떤 것으로 변모할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세상의 이 마지막 변모는 세상이 본디 하느님에 의해 무(無)로부터 창조되었음을 드러내 준다(테르툴리아누스). 

 

  또한 그때는 모든 사람이 구약과 신약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계명에 따라 심판받을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베다). 나이가 많든 적든, 의인이든 죄인이든, 모든 사람은(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생명의 책이신 그리스도께서 각자의 행실에 따라 갚아 주실 그때 심판을 받을 것이다(아프링기우스). 그때 펼쳐질 그 책은 우리 눈에 보이는 책이 아니라 영적인 책이다(아우구스티누스, 아프링기우스). 이 책을 우리는 거룩한 비추임을 받아 자기 행실의 기록을 ‘읽는’ 각 사람의 양심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어쩌면 그 책은 응보를 내리심에 자비로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다(아프링기우스). 생명의 책인 그 한 권의 책에는 얼마 안 되는 사람의 이름만 적혀 있을 것이다. 생명에 이르는 좁은 길을 걷는 이는 적기 때문이다(오이쿠메니우스). 

 

  바다에 빠져 죽었거나 죽어 흙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심판을 받도록 육신으로 부활할 것이다(아프링기우스, 오이쿠메니우스). 이 일은 하느님께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분은 원하시는 일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며, 애초에 이 모든 육신을 무에서 만드신 분이 그분이기 때문이다(오이쿠메니우스). 그런즉 죽은 모든 이가 심판으로 넘겨질 것이다. 죽어서 육신과 영혼이 분리된 이들만 아니라(베다) 죽음을 품고 있는 죄를 지어 육신이 영원한 죽음으로 넘겨질 것이기에 ‘죽은’ 이들로 불리는 이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베다). 

 

  마지막 심판 때 악마와 죽음의 모든 친구들은 영원한 고통에 처해질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베다). 죽음과 지옥에 합당한 모든 이가 그들과 함께 두 번째 죽음으로 던져질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이런 사람들은 아예 부활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두 번째 죽음에는 비참과 바깥 어둠 속에서 신음하는 일밖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아프라하트). 그곳에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영혼의 생명은 사라지고 없고, 육신과 결합된 영혼만이 있어 몸으로 하여금 그것이 겪는 고통을 느끼게 한다. 영원한 고통으로 넘겨진, 하느님과 떨어져 있는 ‘생명’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아우구스티누스). 하느님께서는 한 치의 오류도 없는 예지로 누가 이 영원한 죽음이라는 삶에 처해질지 아신다(아우구스티누스, 베다). 하느님께서는 사악한 사람들을 버리시고 그들은 죄 안에 남겨 두심으로써 이미 현세의 시간 안에서 당신의 심판을 시작하시기 때문이다(루스페의 풀겐티우스). 생명을 믿지도 않고 자기 입으로 고백하지도 않는 그런 사람들은 지옥에서 파멸할 것이다(아프링기우스). 그들의 사악한 생각과 행실이 모든 이에게 알려져 있는(베다) 저주받은 자들은 천사들과 의인들이 보는 앞에서 영원한 벌을 받을 것이다(락탄티우스). 그러나 불 못에서 받는 벌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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