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신부님의 복음서 여행 : [요한복음] 35. 심판과 재앙, 창조의 전망

 

[요한복음] 35. 심판과 재앙, 창조의 전망

 

저녁노을의 글

2023-01-10 19:34:31 조회(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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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은 제15-16장에서 하느님께서 죄인들과 로마제국의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자들을 일곱 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심을 서술한다. 제15장은 이 심판으로 창조하실 어린양의 찬미가이며, 제16장은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심판의 일곱 가지 재앙을 예언한다. 여기서 이 재앙을 실현하는 역할로 일곱 천사가 등장한다. 

 

35.1. 어린양의 노래(묵시 15,1-8)

  일곱 가지 은총을 가득 받은 교회는 마지막 박해를 견디고 살아남을 것이다(베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현세의 일곱 날 내내 줄곧 불의를 행한 반역의 무리들을 철저히 완전하게 치심으로써(베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당신 분노의 끝을 보실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불타는 세례수로 거룩해진 의인들은 믿음이 굳건하여 어떤 교의의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는다(프리마시우스). 그러나 구원받는 이들도 모든 더러움을 씻고 깨끗해져야 하는데, 의로운 이들에게도 정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세례를 받고 생명을 주는 성령에 의해 이처럼 정화된 의인들은 거룩한 지식을 지니게 될 것이며(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덕과 조화를 이룬 삶을 살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리스도의 육신이 수금의 현처럼 십자가 나무에 달렸듯이, 의인들은 자신의 지체들을 죽음에게 내주고(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두 성경의 조화로운 진리를 따라 살아간다(프리마시우스).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 거룩함 안에 사는 사람들이 하느님께 부르는 듣기 좋은 찬가(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는 모세가 파라오의 파멸을 보고 불렀던 노래와 같다. 이스라엘이 말과 그 말을 탄 자에게 승리했듯이, 그리스도께서도 사악한 자들을 심판하시고(오이쿠메니우스) 믿는 이들에게 승리를 주셨다(프리마시우스). 그래서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선물과 은혜에 대해 그분께 감사드린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한때 한 도성에서만 알려졌던 하느님의 신비들은 이제 그리스도의 육화와 함께 영적으로 온 세상에 열렸다. 교회의 교사들과 모든 신자는 육신은 금욕하고 정신에 거룩한 지혜의 띠를 맨다(프리마시우스). 그들은 선택되신 분이며 으뜸가는 머리돌이신 그리스도를 입었기 때문이다(베다). 이 돌을 입은 사람은 누구나 영혼을 파멸시키는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있다(오이쿠메니우스). 종말에, 역시 순수하고 밝은 ‘돌’이신 그리스도를 입은 일곱 천사가 하늘로부터 올 것인데, 밝고 환한 ‘돌’이신 분을 입은 그들은 그들이 지닌 덕으로 인하여 환히 빛난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이 일곱 천사는 의인들에게는 구원을 가져오고 사악한 자들에게는 응보를 내릴 하느님의 분노를 쏟아 부을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프리마시우스). 분노로 가득 찬 그날까지 믿음과 사랑과 진리로 타오르기 위하여 교회는 죄에 대한 진심어린 고백을 위로 올려 보낸다. 하느님의 분노가 쏟아져 내리면, 거룩한 심판의 감추어진 신비가 드러나고(프리마시우스, 베다), 하느님께서 노하시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겁나는지 드러날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것과 맞서거나 그것을 견디어 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35.2. 마지막 일곱 재앙(묵시 16,1-21)

35.2.1. 하느님의 진노가 담긴 첫째 대접(묵시 16,1-2)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것은 탈출하는 교회의 전형이요 본보기였다. 교회의 탈출은 다른 민족들의 교회가 생겨날 때 이루어진다. 그러나 완전한 탈출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이 세상으로부터 영원한 유산으로 인도하실 종말에 이루어질 것이다(이레네우스). 현세에서는 교회가 하느님의 분노를 내뿜는다. 저주받을 이들을 교회가 심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자비롭게 교회에 죄를 용서할 권한을 주시는 것처럼(티코니우스), 죄인들에게는 앞으로 닥칠 끝없는 고통을 줄이고 완화하시기 위하여 재앙과 전쟁을 통해 현세에 그들을 응징하신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하느님의 분노는 선포를 통해 발해지는데, 이는 선포가 불경한 자들을 분명히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베다).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선포를 통해 이미 낫지 않는 상처를 입었다. 상처가 온 몸을 감염시키듯 유대인들의 배반은 그리스도의 적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민족들이 유대인을 본받게 만들었다(프리마시우스). 현세에서 아무런 응징도 받지 않고 오히려 고통을 가한 죄인들은 종말에 영혼에 가혹한 영적 상처를 입을 것이다(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종말이 오면, 환난과 전쟁에 대한 소문이 사람들의 영혼을 어지럽힐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그러면 그들의 가슴속에서는 배교의 비탄이 상처에서 나오는 고름처럼 고동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신으로 모셨던 그리스도의 적은 그들을 치유해 주지 않을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35.2.2. 둘째 대접(묵시 16,3)

  율법을 육적으로 해석한 유대인들은 율법을 짜고 쓴 바다처럼 생각했고, 그래서 율법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은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적을 경배하는 더러움에 빠져 스스로 저주의 길을 걸을 것이다(프리마시우스). 박해의 물결로 교회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영적인 응징을 받아 피로 물들 것이다(베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파라오의 완고함을 드러내시고 당신의 권능을 보이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적의 무력함과 그에게 넘어간 이들의 불안정성을 드러내실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또한 최후의 시기에 바다는 해전으로 강과 샘은 땅의 전투로 온통 피로 물들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35.2.3. 셋째 대접(묵시 16,4-7)

  하느님은 선하시다. 그래서 그분은 거룩한 천사들도 섭리에 따른 구원과 온갖 것을 필요로 하는 땅의 사람들을 돕는 일에서 당신을 거들기 바라셨다. 그리하여 물을 주관하는 천사에게는, 가뭄과 기근과 병으로 물이 필요한 이들에게 물을 주는 임무를 맡기신다(오이쿠메니우스). 그러나 피로 변한 물과 같은 민족들의 가르침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죽음과 하느님께 대한 적의에 사로잡히게 하는 부도덕한 욕망과 본능적인 잘못이 들어 있다(프리마시우스). 순진하고 단순한 이들에게 더러운 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응징당할 것이다(베다). 그런 사람들은 예언자의 피를 흘리게 했고 영적 율법을 육적 방식으로만 이해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들은 살과 피가 썩는 운명에 넘겨진다(프리마시우스). 이는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과 같은데, 예언자들에게서 돌아서는 자들은 그들을 살해하는 일에 동참자가 되기 때문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하늘의 제단에서 시중드는 이들은 하느님께 그분의 의로운 심판에 대해 감사를 바친다(오이쿠메니우스). 하늘에서 천사들이 하느님께 감사를 바치는 동안, 실로 우리 모두에게도 나만을 보살피는 거룩한 천사가 있다. 이 천사는 우리의 생각과 대화하며,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던 이들이 회개하고 하느님을 고백하면 기뻐한다. 우리 삶의 태도가 천사들에게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되기를(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35.2.4. 넷째 대접(묵시 16,8-9)

악마와 그 추종자들은 성도들의 한결같음을 못 견뎌 하며, 하느님을 모독하려는 마음에 더욱 불탄다. 성도들과 선민들은 잘못하여 죄를 저지르면 마음 아파하지만, 사악하고 나약한 자들은 오히려 속된 욕망에 타오른다(프리마시우스, 베다). 악마는 자신의 추종자들과 그들이 하는 일을 자랑삼지만, 성령께서는 그런 영광은 재앙과 슬픔일 뿐이라고 하신다(베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인간들이 회개하도록 이끄셨지만, 많은 사람이 썩은 마음에 빠져 오히려 모독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유혹의 뜨거운 열기로 고통받음으로써 죄를 미워하게 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하느님을 거슬러 “칼처럼 혀를 벼린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교회를 박해한 자들과 이들은 종말에 지옥의 불에 타게 될 것이다(베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종말에 계속 전쟁 속에 살던 이들도 자신들을 그 불행에서 풀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었지만, 그들 역시 회개하지 않고 외려 하느님을 저주할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악행을 저지르고도 자신을 탓하는 대신 하느님을 탓하며 버둥거리는 것은 신성 모독자의 습관이다. 그들은 교회가 지치지 않고 한결같이 고투하는 것을 보면 질투에 불타 가슴에서 증오의 불을 내뿜는다(프리마시우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영혼에 재앙을 내리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성도들을 박해한다(아를의 카이사리우스). 

 

35.2.5. 다섯째 대접(묵시 16,10-11)

  주님께서 영광 안에 오시면, 그리스도의 적이 행하는 불경한 폭정은 끝이 날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의로움의 태양’의 빛을 잃은(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리스도의 적을 따르는 신하들은 마음에 어둠이 덮이고 혼란에 빠질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하느님께서 내리신 재앙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어떤 사람들은 혹 그렇게 하면 시련이 끝날까 혀를 깨물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리스도의 적이 맹위를 떨치는 나라는 지금도 어둠 속에 있다. 많은 이가 자기의 죄를 떠올리지 않고 속된 행복에 빠져 기뻐하고 즐거워하기 때문이다(프리마시우스, 베다). 지금 자기들이 번영하는 것을 보고 한껏 오만해진 그들은 하느님의 분노를 알아보지 못하고 죄를 즐김으로써 계속 하느님을 모독한다(프리마시우스, 베다). 

 

35.2.6. 여섯째 대접(묵시 16,12-16)

  종말에 하느님의 섭리로 유프라테스 강이 줄어들 텐데(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아마도 그 지류들 가운데 일부가 말라 버릴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그 결과, 필경 스키티아나 페르시아 동부에서 나올 해 돋는 쪽의 임금들에게 편리한 길이 마련된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들은 서로를 거슬러 싸우고(오이쿠메니우스), 또 나머지 인류에게 영적·신체적 죽음을 가하기 위해 모일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말라 버린 강처럼 자기 안에 살아 있는 것을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도 해 돋는 쪽의 임금으로서 오실 것이다(프리마시우스). 

 

  악마와 짐승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개구리 같이 생긴 더러운 영들이 나온다. 이 영들이 개구리에 비유되는 것은 그들의 더러운 본성 때문이며(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들이 더러운 진창을 좋아하고 하수구에 살기 때문이며, 자기들처럼 쓰레기와 오물 속에 사는 이들의 삶을 기뻐하기 때문이다(오이쿠메니우스, 프리마시우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  

 

35.2.7. 일곱째 대접(묵시 16,17-21)

  하느님의 명령과 뜻이 완수되고(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마지막 원수인 죽음이 멸망하면(베다), 하늘에서 울려오는 천사의 목소리가 “다 이루어졌다”라고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그때 지상은 놀라움과 두려움과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선한 이들이 행한 것이든 악한 이들이 행한 것이든 모든 신기한 표징과 환난들 가운데서 가장 대단한 것(베다)은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 내려오심을 예고했던 것들과 비슷할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러나 이번에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습도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뿐 아니라, 그때 도성들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갈라질 것이다. 그곳에 세워진 건물들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곳에서 수난을 당하셨기에 위대한 예루살렘도 이때 무너지는 도성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때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인, 유대인, 사마리아인으로 나뉠 것이다. 지금은 유대인, 사마리아인들이 감히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갈라져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유혹을 정화하는 불이 내리면 그들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분리가 일어나 비슷한 습관을 지닌 죄인들끼리 모일 것이기 때문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이와 비슷하게, 신앙 안에 굳건히 남아 있던 이들도 이 분리를 통해, 자신의 세례를 부정한 행위로 더럽힌 이들과 복음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은 유대인들로부터 구별될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이때 로마도 무너질 것이며, 로마를 차지한 이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실로 종말엔 모든 도성이 무너질 터인데, 새로워진 땅에서는 죄인들이 살아 더러워진 도성은 하나도 남아 있을 수 없고(오이쿠메니우스), 하느님의 나라가 오면 이교인들의 삶의 방식 또한 남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큰 도성을 오만하고 거만한 모든 자, 곧 이민족과 이단자, 그리고 유대인과 거짓 형제들의 도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프리마시우스). 또는 큰 도성은 땅 위의 모든 인간을 나타내는 말일 수도 있는데, 종말에 이들이 이민족들, 이단자들과 거짓 형제들, 그리고 정통 교회로 나뉠 것이기 때문이다(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이 엄청난 환난 동안에 교회는 섬과 산처럼 굳건히 서 있을 것이며(프리마시우스, 베다), 특히 다른 민족들의 교회는 기쁨을 누릴 것인데, 그들이 혐오스러운 우상 숭배 저 위로 섬처럼 솟아올랐기 때문이다(오이쿠메니우스). 그러나 교회는 이 끔찍한 일들이 닥치면 피신할 것이다. 교회가 현명하게 그 박해자들로부터 숨을 것이며(베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리고 교회 안에 사악한 자들이 더 이상 섞이는 일이 없도록 사악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프리마시우스) 산과 동굴들 사이에서 피난처를 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고통을 당하는 중에도 계속 하느님을 모독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완고함을 어느 정도는 후회했던 파라오보다 더 마음이 굳어 있음이 드러날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계속되는 이런 모독은 죄이자 죄에 대한 벌이 될 것인데, 이런 불경한 자들은 바로잡힘을 당할 때면 더욱 악해지고 더 발광을 하기 때문이다(프리마시우스).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 [요한복음] 35. 심판과 재앙, 창조의 전망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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