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신부님의 복음서 여행 : [요한복음] 28. 두루마리와 어린양

 

[요한복음] 28. 두루마리와 어린양

 

저녁노을의 글

2022-12-19 19:27:22 조회(98)

  이 게시글이 좋아요 싫어요

 

28. 두루마리와 어린양(묵시 5,1-14)

 

28.1. 일곱 번 봉인된 두루마리(묵시 5,1-5)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의 전령(傳令)이며 휘장인 바, 그리스도의 인성이 그 봉인을 뜯고 여실 때까지 그 뜻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채 닫혀 있었다(아프링기우스, 프리마시우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부활로 신비들을 완전히 밝히셨으며(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성경 전체를 문자적 의미와 영적 의미에 따라 해석할 수 있게 하셨다(오리게네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또한 하느님께서는 마치 모든 인류가 책에 이름이 올라 있는 것처럼, 율법을 따랐던 이스라엘인이나 우상숭배자들이었던 다른 민족들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기억하신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난 인간의 행실을 아시듯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까지 다 아신다(아프링기우스). 

 

  그렇지만 오직 그리스도만이 당신 육신의 섭리를 통하여 이 책의 봉인을 뜯고 여실 수 있다. 죽어서 하느님의 상속자가 되어 인류를 자기 것으로 상속받으실 분이라고 율법서가 예언한 것은 오직 그분뿐이시다(빅토리누스)피조물은 비록 천사일지라도 그렇게 될 권능도 자격도 없다. 지상에 사는 누구도 이런 존재가 될 권능이나 탁월함이 없다. 지하에 사는 누구도, 세상 떠난 성도들 가운데 하나라 할지라도 이에 합당한 자격이 없다(프리마시우스, 大 그레고리우스).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모세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 없었던 것처럼, 이들 가운데 누구도 신약성경의 광휘를 응시할 수 없다(베다). 

 

  비록 천사도 의로운 인간도 세상을 떠난 성도도 이 책을 열 수는 없지만, 자신의 죄를 두고 우는 교회의 눈물과 구속(救贖)을 향한 갈망은 헛되지 않다(티코니우스, 프리마시우스). 모든 예언자가 ‘유다의 사자’에 대해 예고했고, 그들의 약속은 교회에 위안을 준다(티코니우스). 그리스도는 유다의 사자이며, 그분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당신이 사자일 뿐 아니라 양이기도 함을 증명하셨다. 그분은 죄가 없으면서도 죽음을 받아들이셨지만 당신 권능으로 죽음마저 죽이셨다(티코니우스, 아우구스티누스). 그분은 사자처럼 흉포한 악마를 이기셨다. 그러나 그분은 세상에 대해서는 어린양이시다. 그분은 온화하고 사랑스러우며 천진하시나 한편으로는 완강하고 무서우며 강력하시다(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의 적은 유다의 사자를 흉내 냄으로써 사람들을 속이려고 할 것이나(히폴리투스), 유다의 사자는 인간일 뿐 아니라 다윗의 뿌리, 참하느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만물의 원천이시다(오이쿠메니우스).

 

28.2. 양이 두루마리를 받아 들다(묵시 5,6-14)

  어린양에게서 교회는, 인성을 취하여 온 세상의 속죄물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을 본다(오리게네스)어린양은 당신 죽음의 전리품을 여전히 지니신 모습으로(오이쿠메니우스) 신성의 위대함과 권능 안에 서 계시다(아프링기우스). 그분께서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짓밟고 저승에 잡혀 있던 모든 영혼을 되찾아 오셨기 때문이다(아프링기우스, 오이쿠메니우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교회 안에서 온 세상을 함께 다스리시는 성령의 일곱 덕과 당신의 권능을 상징하는 모습이시다(티코니우스, 아프링기우스, 오이쿠메니우스). 어린양은 또 교회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순교자들의 죽음과 교회가 세속적 욕망을 버리는 것도 어린양이 살해당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티코니우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 

 

  하늘의 주권을 가지고 계신 하느님께서는 육화한 말씀의 경륜을 통하여 땅의 주권을 되찾으신다(이레네우스, 아프링기우스)만물에 대한 권한을 받으신 어린양께서는 아버지에게서 오는 빛을 인류에게 주시고 그들을 불멸로 데려가신다(이레네우스). 봉인되어 있던 모세의 유언이 그분의 죽음으로 마침내 봉인이 뜯겼고,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당신의 것으로 받으셨음이 그로 인해 드러났다(빅토리누스). 그리스도께서는 태곳적부터 감추어져 있던 삼위일체의 신비를 당신의 부활을 통해 알려 주셨으며(아프링기우스), 당신이 아버지께 받으신 것과 같은 권한을 당신 교회에 주셨다(프리마시우스). 

 

  믿는 이들은 이제 세상의 구원자를 바라보며 그분께 아름답고 듣기 좋은 찬가를 바친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그들의 기도와 공개적인 신앙고백, 남을 위한 기도와 덕과 선행이 그런 찬가다(오리게네스, 프리마시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이웃에게 순수한 삶의 빛을 보여 주고 순교자의 죽음을 맞을 준비가 된 몸을 그리스도께 바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무덤에 향료를 가져간 여인들처럼 향료를 지닌 것이고 향을 피워 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베다). 교회의 찬미는 ‘새로운 노래’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삶과 죽음과 부활로 새 계약을 통해 옛 계약을 완성하셨으며, 인류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신다(빅토리누스, 프리마시우스)그리하여 낡은 문자에서 해방된 모든 민족과 언어는 성령의 새 노래를 부른다. 그들이 자신의 욕망을 다스려 임금이 되고, 자신을 살아 있는 제물로 하느님께 바쳐 사제가 되었기 때문이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신자들의 이 찬가는 천사와 인간을 다 포함하는 온 교회가 교회의 순교자들과 함께 바치는 예배다(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리고 자신들의 본성에 적합한 말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현존하는 만물에 대한 찬미가 이 찬미에 더해진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28.3. Exodus, a Lasting Paradigm

  ‘Exodus, a Lasting Paradigm’이란 탈출기와 묵시록에서 영감을 받아서 기획된,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을 위한 교회의 선교활동을 말한다. 아시아의 복음화에 있어서도 핵심 관건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을 위한 기획으로서, 요한묵시록 제5장의 취지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비전으로써 실현되리라고 내다본 신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다(Concilium, 189호, 1987)앞에서 인용한 교부들의 주해에 바탕하여  두루마리에 담긴 메시지에 대해 더 상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천상 전례에 대해 기록한 묵시록 제4장에서는 이 전례의 봉헌 대상이신 ‘창조주 하느님’이 강조되었다. 이제 묵시록 제5장에서는 ‘구세주 하느님’이라는 주제가 등장한다. 천상 전례의 실상이 “박해 속에서 신자들이 겪는 희생”이기 때문에, 이 희생을 받으신 구세주 하느님께서 이 희생을 어떻게 천상으로 현양시키시는지가 관건이다. ‘Exodus Paradigm’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어린양 환시’는 어린양이 희생으로 통치하실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승리하신다는 선교 경륜이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이 오른손에 들고 계신 두루마리(=봉인된 책)는 미래에 일어날 일이 기록된 비밀 문서이지만, 어린양이 개봉함으로써 공개된 그 내용을 묵시 언어로 묵시록 제6장 이하에다 요한이 기록하였다. 일곱 번이나 봉인된 그 밀서(密書) 두루마리는 봉인을 열 때마다 점점 더 심해지는 파멸의 심판 내용을 펼치게 된다(박찬용). 

 

묵시 5,1: "나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안팎으로 글이 적힌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일곱 번 봉인된 것이었습니다."

이 장에서 초점이 되는 것은 ‘두루마리’이다. 이는 구세주 하느님이신 어린양께서 진리를 위해 신자들이 겪는 희생을 어떻게 현양시켜 심판과 구원의 비전으로 전개하실 지에 대한 비밀이 적혀 있는, ‘말씀’ 그 자체이다. 따라서 일곱 번이나 봉인된 이 두루마리를 펼칠 수 있는 분은 ‘어린양’ 한 분뿐이시다. 

예수 이전 시대에는 갈대를 말려 엮은 파피루스나 양의 가죽을 무두질해 만든 양피지에 글을 써서 둘둘 말아두어 보관하였다. 자연히 한쪽 면에만 썼고, 글을 다 쓴 다음 둘둘 말게 되면 안쪽에 적혀 있는 내용을 아무도 볼 수 없었다(박찬용)두루마리의 안팎에 글이 적혀 있었다는 것은 그 글에 담긴 말씀이 안에만 써서는 모자랄 만큼 많고 또 안팎으로 가득 채워서 써야 할 만큼 하느님께서 세상 종말에 실현하실 구원계획이 온전하다는 뜻이며, 아무나 열어 볼 수 없도록 완전히 밀봉되었다는 뜻으로 일곱 번이나 봉인되었다. 이렇듯 완전히 밀봉된 두루마리를 뜯을 수 있는 존재는 여기에 담긴 세상 종말의 구원계획을 권위 있게 집행하실 하느님뿐이시다(박영식). 

 

묵시 5,5: “울지 마라. 보라,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란 야곱이 자신의 열두 아들 앞에서 유언을 남기면서 뜻밖에도 첫째가 아니라 넷째인 유다에게 커다란 축복을 남긴 유언에서 유래한다(참조: 창세 49,9)그것도 그저 장자권 축복 정도가 아니라 그의 지파 후손 가운데에서 메시아가 태어나리라는 엄청한 예언을 야곱이 한 것이다. 구약성경 안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예언이었다. ‘다윗의 뿌리’란 야곱의 이 비상한 예언을 알아들은 이사야가 한 걸음을 더 나아가서, 메시아는 유다의 지파 후손 중에서도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리라는 더 구체적인 예언을 한 데에서 유래한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이사 11,1). 

 

  요한은 ‘유다의 사자’요 ‘다윗의 뿌리’가 예수님을 가리키는 호칭인 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환시에서 본 한 원로의 발언을 통해, 그는 예수님이야말로 죽음과 부활로써 하느님의 주권을 선포하셨으며 구원계획을 이미 펼쳐 보이셨다고 알렸다(박영식). 그런데 이 구원계획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실 파스카 과업, 즉, ‘Exodus, a Lasting Paradigm’이다. 부활하신 그분은 사기지은(四奇之恩)을 발휘하시어 성령으로 믿는 이들과 함께 이 과업을 이룩하실 것이다. 비중으로 따지자면 이미 하느님의 권능을 100% 발휘하실 그분의 역할이 99% 정도나 될 만큼 압도적이기는 하겠지만, 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믿는 이들의 희생과 노력이 1%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비중이 적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합쳐지지 않으면 결코 100%가 될 수 없다.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온전히 벌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이 박해를 당하고 희생을 봉헌하면서도 일치를 유지하고 신앙을 정화시키는 그 과정에 성령께서 이루시는 사기지은의 은총을 베푸시는 것이다. 이미 요한은 파트모스 섬 채석장에 유배되기 전에 로마로 끌려가서 온갖 형벌을 다 받아야 했으나, 신기하게도 로마 군인들의 박해가 요한 사도의 몸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였다. 기적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요한을 이 외딴 섬에 가두고 중노동을 시키게 된 것이었다. 

 

  믿는 이들과 전개할 이 합동 작전을 위해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는 일곱 개의 뿔과 일곱 개의 눈을 지니시고 나서신다고 요한은 증언하였다. 여기서 뿔은 ‘사자’의 능력을 드러내는 상징으로서, 첫째는 힘이요(예레 48,25; 시편 18,1-3)둘째는 왕권을 갖추신(시편 132,17; 다니 7,7-8.11-12) 메시아의 권능을 상징한다(박영식). 그리고 ‘일곱 눈’은  “온 세상을 두루 살피시는 주님의 눈”(즈카 4,10)을 뜻한다(박찬용). 

 

묵시 5,10: “주님께서는 그들이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들이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부활하시어 하느님의 권능을 온전히 행사하게 되실 예수님께서 그 권능을 발휘하실 첫 번째 과업은 믿는 이들을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사제단이 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역사를 다스리게 하시는 일이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계시 중에서 메시아 예언에 버금가는 계시였다.

우리는 이 점에서 초대교회 시절에 사도들과 신자들의 의식을 움직이던 교회적 정체성, 즉 일반 세상과는 날카롭게 대조적인 교회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식이 요한에게서도 표출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와 상통하는 맥락이 베드로의 권고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이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1베드 2,9ㄱ)

 

  그리고 이 선명한 교회 의식이 믿는 이들에 의해 공유되리라는 확신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의 신자들 무리로 나타난다: “그들의 수는 수백만 수억만이었습니다”(묵시 5,11). 그들의 기도는 ‘살해된 어린양’이신 예수님께 올리는 찬미로 나타날 것이었다(묵시 5,12ㄴ.13ㄴ). “신자들의 이 찬가는 천사와 인간을 다 포함하는 온 교회가 교회의 순교자들과 함께 바치는 예배”(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이며,  “자신들의 본성에 적합한 말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현존하는 만물에 대한 찬미가 이 찬미에 더해진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이로써 신자들이 바치는 기도 가운데 청원이나 속죄 그리고 감사의 지향으로 바치는 기도들보다 찬미의 지향으로 바치는 기도가 왜 그토록 귀한지가 이러한 교부들의 주해로 뒷받침된다. 

 

  또한 이 찬미 기도는 복음서의 상징으로 언급된 네 생물과 원로들의 화답인 “아멘!”으로 나타난다고 요한은 기록했는데, 이는 선택된 이들이 지닌 사제적 정체성과 이 정체성이 향하고 있는 그리스도 신앙이 지닌 복음적 가치에 대한 확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천상적 확인으로 말미암아 이들의 이름은 ‘생명의 책’(묵시 13,8)에 기록될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 [요한복음] 28. 두루마리와 어린양 - Daum 카페

  

카카오톡에서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구글+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PC버전 홈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마리아사랑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