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신부님의 복음서 여행 : [요한복음] 26. 일곱 교회에 보내는 말씀

 

[요한복음] 26. 일곱 교회에 보내는 말씀

 

저녁노을의 글

2022-12-08 18:05:14 조회(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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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일곱 교회에 보내는 말씀(묵시 2,1-3,22)

26.1. 에페소 교회에게 보내는 말씀(묵시 2,1-7)

  요한은 천사를 수신인으로 하여 여러 교회에 편지를 보낸다(오리게네스). 요한은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를 씀으로써 교회에 직접 말을 전한다(오이쿠메니우스). 요한 복음사가는 각 교회가 칭찬과 나무람을 다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들 교회는 모두 온 교회를 대표하기 때문이다(베다). 어느 교회에나 거짓 교사들이 있게 마련이며, 어느 교회나 죄를 짓는 잘못을 범할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교사들은 진리로 시험받아야 함을 이들 교회에 상기시키는(오니쿠메니우스) 한편, 하느님께서 죄인들을 용서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사실을 상기시킨다(테르툴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 그러나 회개에는 선행이, 그중에도 특히 사랑의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빅토리누스, 아프링기우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더 이상 참지 않으시고 벌을 내리실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그리스도께서도, 선한 이들을 축복하시면서도, 오셔서 교회 안의 악한 이들을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신다(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지나친 욕망과 악의 구렁텅이는 사악한 이단 니콜라오스파에 빠져 든 결과다. 이런 이단이 교회를 약하게 만든다(아프링기우스). 순종하는 이들은 성령과 그리스도께 귀 기울여야 한다(오이쿠메니우스). 그리스도께서는 승리하는 이들, 곧 순교자들과(테르툴리아누스) 회개하는 이들에게 상을 약속하신다. 생명 나무의 열매는 복음을 통해 오는 지식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삶이다(메토디우스). 이 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는 것은 사악한 마귀들의 유혹을 이겨 낸 이들이 얻는 영원한 생명을 가리킨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생명 나무, 곧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상의 빵을 주시는 교회가 바로 영적인 낙원이다(티코니우스). 

 

26..2. 스미르나 교회에게 보내는 말씀(묵시 2,8-11)

  참하느님이요 참인간이신 예수께서 스미르나 교회에 말씀하신다(오이쿠메니우스). 예수께서는 영적으로 가난한 모든 교회에 말씀하시며 현세의 부를 경멸하신다(아프링기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프리마시우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부유하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신 그리스도라는 부유한 보호자가 계시기 때문이다(오이쿠메니우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영으로 부유하며(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믿음과 축복이라는 부를 지니고 있다. 

 

  한편 교회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데 실패한 이들에 의해(오이쿠메니우스), 그리고 그리스도의 적이 도구로 쓸 이들에 의해(빅토리누스) 고난을 겪는다. 또한 교회는 거짓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많은 괴로움을 겪는데, 이들은 겉으로만 경건한, 교회 안의 유대인들이다(티코니우스). 교회는 세상 종말까지 고난을 겪을 것이다. 악마는 불경한 자들과 이단자들을 이용해, 그리고 끝에 가서는 그리스도의 적을 이용하여 줄곧 교회를 박해할 것이기 때문이다(아프링기우스, 프리마시우스). 악마는 아담에게 그랬고 그리스도께 그랬듯이 교회를 유혹에 빠뜨림으로써 현세 내내 교회를 공격할 터인데, 아담은 그 유혹에 넘어갔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세 가지 유혹을 이겨 내셨다(프리마시우스). 그러나 현세의 고난은 앞으로 있을 영원한 축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아프링기우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왕관을 받은 순교자와 고백자들처럼(키프리아누스) 끝까지 믿음과 사랑과 성덕을 충실히 지켜 가야 할 것이다(프리마시우스). 용서와 회개로 의화되어 성실히 그것을 지키면 영원성이라는 영광을 얻고(루스페의 풀겐티우스), 죄의 결과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얻게 된다(오이쿠메니우스). 아담이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후손에게 물려준 죽음이라는 유산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나무를 통해 이기셨기 때문이다(프리마시우스). 

 

26.3. 페르가몬 교회에게 보내는 말씀(묵시 2,12-17)

  ‘페르가몬’은 신자와 불신자를 가르는 ‘쌍날칼’에 의한 하느님의 심판을 가리킨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베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교회에 말씀하고 계시다. 악마는 모든 곳에서 유혹과 불의를 일으키는 까닭이다(티코니우스). 그리스도께서는 안티파스의 순교를 비롯하여 이 교회가 보여준 굳건함을 칭찬하신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불신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에서 죽임을 당하고 계시다(티코니우스).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이 교회를 나무라시기도 하는데, 이 교회 안에 발라암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악마는 이 이단을 통해 사람들을 쾌락에 빠지게 하여 교회를 무너뜨리고 흩어지게 한다(아프링기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니콜라오스파는 발라암의 가르침을 통해 영적인 불륜과 이교적 사상을 퍼뜨린다(티코니우스, 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이 이단자들에게 하느님의 법에 의해 심판받지 않도록 회개하라고 훈계하신다(프리마시우스). 그러나 이들이 교회로 돌아오기 위해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히에로니무스). 악마에게 승리하는 이는 불멸을 얻을 텐데(프리마시우스), 그것은 천상에서 내려오신 육화하신 ‘빵’을 통해(티코니우스), 이제는 성찬 안에서 우리에게 당신을 주시는 분을 통해(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티코니우스) 주어진다. 또한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받고(빅토리누스), 사람의 아들에 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아를의 카이사리우스). 

 

26.4. 티아디라 교회에게 보내는 말씀(묵시 2,18-29)

  티아디라는 ‘희생으로’라는 뜻이다. 성도들의 삶은 희생을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베다). 그러나 고결한 신자들 가운데 지나치게 관대히 굴고 새로이 나타난 거짓 예언들을 허용함으로써 순진한 이들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이들이 섞여 있다(빅토리누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충실한 이들에게만이 아니라 굳건하지 못한 이들과 충실치 못한 이들에게도 말씀하신다.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분께서는 모든 것을 식별하시며, 죄인들에겐 위협이 되는 그분(아프링기우스, 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은 불변하는 신앙의 대상이며 구원받는 이들에게는 영적인 향기요 향유다(오이쿠네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이가 충실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그들이 당신의 계명들에 날로 더 순명하여 순교도 마다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신다(아프링기우스, 오이쿠메니우스). 

 

  그러나 순진한 이들을 죄와 우상 숭배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이단이 존재하도록 놓아두는 자들이 있다(오이쿠네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영적 매춘을 저지르는 이들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장차 심판하겠다고 경고하신다(아프링기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회개의 시간을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이 회개하고 생명을 얻기 바라시기 때문이다(오이쿠메니우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래도 회개하지 않는데, 하느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현세에 벌이 닥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게 만드셨기 때문이다(프리마시우스). 이런 사람들은 영적인 죽음이라는 감추어진 심판을 받으리라는 것을 교회는 신앙을 통해 안다(티코니우스). 하느님께서는 행실과 말뿐 아니라 생각과 의도와 속마음이 찾는 즐거움까지 보시기 때문이다(키프리아누스, 베다). 

 

  하느님의 인정을 받기 위하여 사도들의 가르침 안에서 인내하며 교회의 진리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서 격려하신다(티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분께서는 충실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하시는 권한을 받게 되리라고 약속하신다(티코니우스). 그러므로 장차 성도들은 변절한 전사들(아프링기우스)과 또한 속아 넘어가도록 자신을 내버려 둔 불신자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을 심판하게 될 것이다. 사탄은 하늘에서 떨어진 샛별처럼 성도들에게 짓밟힐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그러나 참된 ‘샛별’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신 빛이시며 늘 빛 안에 계시다(아프링기우스). 그래서 그분의 오심과 더불어 죄의 어둠과 현세 삶의 검은 그림자가 흩어져 버릴 첫 번째 부활의 새 날이 예고되고 있다(티코니우스, 아프링기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26.5. 사르디스 교회에게 보내는 말씀(묵시 3,1-6)

  참하느님으로서 성령을 주시는 그리스도(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께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지니고 있으나 훌륭한 일은 한 것이 없는 사르디스 교회에 말씀하신다(빅토리누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녀 살아 있는 듯 보일지라도,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이는 실상 죽은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특히 주교가 악행자들의 규율을 잡는 데 있는 힘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는 비록 죄가 없는 듯 보일지라도 자신이 보호하는 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고자 노력하지 않는 한 죽은 자로 여겨질 것이다(베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지만 그리스도를 신뢰하지 않고 옳은 신앙을 고수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이들 역시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그래서 그들은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기억하라는 훈계를 받는다(아프링기우스). 그런 회개가 속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도둑처럼 갑자기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심판은 준비된 이들에게는 현세의 고생이 끝남을 의미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에게 그것은 영적인 죽음이 될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 이름을 아시며(베다), 순수한 육신의 흰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이들이 있다(아프링기우스, 오이쿠메니우스). 육의 고결함을 지킴으로써 승리한 이들은 육신의 부활이라는 옷을 입을 것이며(테르툴리아누스), 영원한 생명의 흰옷을 입을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이런 은혜는 자신이 받은 세례를 흠 없이 지킨 이들에게 주어질 것이다(베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성도들을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충실한 종이라고 증언하실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26.6. 필라델피아 교회에게 보내는 말씀(묵시 3,7-13)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를 사랑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필라델피아는 ‘형제의 사랑’을 뜻하기 때문이다(베다). 이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유혹을 당할 때조차 성도다운 삶과 겸손과 굳건함을 더없이 훌륭하게 보여 주는 본보기다(빅토리누스). 이 교회에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참되시다. 그분은 죄 없으신 분이시며 참하느님이요 참인간이시기 때문이다(오이쿠메니우스).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다. 그분은 다윗의 아들이자 다윗이 예고한 분이기 때문이다(티코니우스). 그리스도는 다윗의 열쇠를 지니신 분으로서 혈통으로 이스라엘인 이들과 영적으로 이스라엘인 이들을 모두 다스리시며(오이쿠메니우스), 성령을 통해 율법서와 시편의 비밀을 드러내 주신다(티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리스도는 이 열쇠를 사용하여 열고 닫으신다. 그분은 율법의 비밀을 충실한 이들에게만 드러내 주시며(프리마시우스), 위선자들을 심판하시고(티코니우스) 말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성령을 통해 주시기 때문이다(기적가 그레고리우스). 

 

  복음 선포는 모든 이가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온 세상에 여는 것이다(티코니우스). 복음에 충실한 이들은 그 자신의 힘은 미약할지라도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신뢰로 인하여 강하다(오이쿠메니우스, 프리마시우스). 실로 지금 불신 중에 사는 많은 이, 특히 유대인은 결국에는 온 세상에서 교회로 모아들여질 것이다(티코니우스, 오이쿠메니우스).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온갖 종류의 시련과 박해에서 구해 주실 것이다(티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고백자들조차도, 타락하는 일이 없도록 악마의 덫을 조심해야 한다(키프리아누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선택된 자들의 수를 정해 놓으셨으므로, 누가 길을 벗어난다면 다른 이가 그의 화관을 차지할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그러나 주님께 대한 사랑을 지켜 생명의 화관을 받는 이들은 하느님을 뵈올 것이며(오이쿠메니우스), 이제와 항상 영원히 교회를 아름답게 장식할 것이다(베다). 교회를 떠나는 열교자들과 달리 끝까지 사랑 안에서 견뎌 내는 이들은 결코 교회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새 이름을 차지할 것인데, 사람의 아들께서 죽고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셨기 때문이다(티코니우스). 이들은 영원히 새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을 차지하고 죽지 않을 것이며(아프링기우스), 너무나 숭고하여 여태껏 아무도 말로 표현하지 못한 축복을 받을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26.7. 라오디케이아 교회에게 보내는 말씀(묵시 3,14-22)

  라오디케이아라는 이름이 시사하듯이, 그곳의 교회는 지위와 부와 지식은 지니고 있으나 그것을 신자들을 위하여 쓰지 않는 미지근한 그리스도인들로 가득했다(빅토리누스, 베다).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하느님으로서, 우리 신앙의 창조자이자 완성자(프리마시우스)로서, 그리고 만물의 창조주이자 조물주인 분(오이쿠메니우스)으로서 이 교회에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이들에게 영원한 파멸을 경고하신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들이 세례 때 받은 성령을 현세의 것들에 대한 관심과 게으름으로 흘려 버렸기 때문이다(오이쿠메니우스). 이것은 그들이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인색하고 성경 공부로 얻은 것으로 남을 돕지 않는 데서 분명히 드러난다(프리마시우스). 이런 행동은 위선이며 하느님을 부끄럽게 만든다. 더 훌륭히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이기에 잘못이 더 크기 때문이다(살비아누스). 이는 온화함과 순명과 인내에서 한층 뛰어나야 할 수도승들에게 각별히 해당하는 말이다(아를의 카이사리우스). 그럼에도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가르침의 말씀을 믿으며(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가난한 이들에게 적선하고 선행을 하여(아를의 카이사리우스), 불에 의해 죄가 모두 씻겨 나간 순금이 되라고(키프리아누스) 격려하신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사랑을 뜨겁게 전하고 성경을 이해하는 데서 참으로 부유하게 되며(베다), 그리스도의 세례와 또 거룩한 율법을 향한 마음으로 아름답게 장식될 것이다(프리마시우스). 

 

  또한 세상에는 고통과 유혹이 있음을 교회는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인내로 이것들을 견뎌 내야 하며, 자신이 하느님께서 질책하실 만한 자격이 있는 존재로 인정받았음을 기뻐하기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테르툴리아누스). 하느님께서는 시련과 병을 통해 우리를 바로잡고 가르치며, 우리에게 당신의 호의를 보여 주시기 때문이다(루스페의 풀겐티우스). 그리스도의 사제는 환자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고통을 주기도 하는 훌륭한 의사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합당한 회개를 거치지 않은 죄인을 교회에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키프리아누스). 사악하고 오만한 이들은 죄를 짓고도 괴로워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그들이 받을 거룩한 심판의 표징이다(아를의 카이사리우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문을 그리스도께 열어 놓아 우리 육신을 바르게 다스리고(히에로니무스), 그리스도께서 단순함과 절제와 정결과 자애심을 통해 우리 마음 안에 사시도록 해야 한다(아를의 카이사리우스). 그리스도께서는 악마와 달리 겸손하고 평화스러운 본성을 지니고 계시며(오이쿠메니우스), 그래서 가르침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오시고, 당신 사랑의 은총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사신다(베다). 승리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올 시대에 나라를 주시며, 그들은 그분이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시듯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다(티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영원히 이 나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육을 취하심으로써, 그것을 우리와 나누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26.8. 제삼천년기의 아시아 복음화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묵시 1,4ㄱ) 하는 묵시록의 서두 인사말처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아시아 주교들은 21세기의 아시아 교회들에게 문헌 「아시아 교회」를 발표하였다(아시아 주교 시노드, 인도 뉴델리, 1999.11.6.). 이는 대희년을 앞두고 대륙별로 개최된 마지막 주교 시노드였으며, 일련의 대륙별 주교 시노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쇄신 여정을 촉구하기 위한 ‘새 복음화’의 실행 조치였다(아시아 교회, 2항). 2천 년 전 그리스도교 초대교회의 중심이었던 소아시아 교회에 불어닥치고 있는 로마제국의 박해를 이겨내고 신자들의 신앙을 활성화시켜 장차 로마의 복음화를 내다보고 있었던 사도 요한처럼, 임박한 21세기뿐만 아니라 복음화 제삼천년기를 앞두고 교황과 아시아 주교들이 아시아 대륙에서 신앙의 큰 수확을 기대하면서 이 문헌을 발표하였다(아시아 교회, 1항).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시아의 주교들에게, “만일 아시아의 교회가 자신의 숙명적인 섭리를 완수하여야 한다고 할 때, 복음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과 부활을 기쁨과 인내심을 갖고 점진적으로 선포하는 예언으로서 여러분께서 절대적으로 가장 먼저 하여야 할 일”(아시아 교회, 2항)이라고 강조하였다. 

 

  아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대륙이고, 세계 인구의 3분의 2 가량이 거주하고 있는 땅이며, 그 가운데 중국과 인도는 지구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아시아는 인류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며, 주요 종교들 곧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교 등의 요람이다. 이들은 주로 발상지를 중심으로 퍼졌으나 그리스도교만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로 퍼졌다. 현재 아시아의 그리스도교 신자 비율은 3% 미만이다. 

 

  하지만 교황과 아시아 주교들이 아시아에서 기대하는 ‘신앙의 커다란 수확’이란 교세 신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선교는 “보다 넓은 지역에서 신자들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복음적 가치에 의해 사회를 하느님 나라로 변혁시키는”(현대의 복음선교, 17-19항) 것으로 천명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시아의 복음화란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여 사랑의 문명을 이룩하는 데 있다. 즉, “아시아 교회도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돌려져야 할 사랑의 봉사를 특별한 방식으로 보여 주는 삶의 친교를 살도록 부름받았다”(아시아 교회, 32항). 이 문헌에서 아시아 선교를 위해 강조하는 사회교리의 실천 목표가 바로 사랑의 문명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75-583항). 

 

  아시아에서 사랑의 문명을 이룩함으로써 기대하는 신앙의 커다란 수확이란 신앙 본연의 소명을 회복하는 것으로서, “이웃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사랑”(요한 15,13)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하는 데 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적 가치들, 즉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 등의 최고선과 인간 존엄성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등의 공동선을 위해 희생하는 사랑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하고자 하는 것이 아시아 선교이다. 여기서 기대하는 하느님의 은총이야말로 신앙의 커다란 수확이다. 이를 통해 보편 교회와 전 세계 교회는 물론 아시아 이외의 대륙에 사는 인류가 다 함께 그 은총을 나누어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사도 요한은 소아시아의 교회들을 돌본 에페소 교회의 노고와 인내를 칭찬하면서도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데 대한 책임을 엄중하게 묻고 있다(묵시 2,2)아시아 주교 시노드를 소집한 요한 바오로 2세나 이 회의에 모여 아시아 복음화를 논의한 아시아 주교들은 아시아 복음화 과업에 순교정신으로 나서야 함을 결론으로 제시하면서, 일본, 필리핀, 베트남 그리고 한국의 순교자들을 그 사례로 제시하였다(아시아 교회, 49항). 이 아시아 순교자들의 피가 이제와 영원히 아시아 대륙 전체의 교회를 위한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 되기를 소망하였다.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 [요한복음] 26. 일곱 교회에 보내는 말씀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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