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신부님의 복음서 여행 : [요한복음] 24. 요한의 증언 : 묵시문학의 배경과 특징

[요한복음] 24. 요한의 증언 : 묵시문학의 배경과 특징

 

저녁노을의 글

2022-11-30 14:25:51 조회(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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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장에서는 요한묵시록 본문에 대해 교부들이 주해하여 놓은 가르침을 간추려 소개한다. 먼저 전제할 것은 요한묵시록은 박해상황에서 나온 신앙의 증언으로서, 요한복음서를 기록하는 데 있어 기초적인 자료가 되었으며 요한복음 진술의 진리성을 강화시켜주는 체험적 증언이라는 것이다. 

 

  진리와 지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진리는 하늘에서 계시되는 것으로서, 계시될 당시에는 그것의 진리성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없으므로 미래에 대한 예견 내용이 후대에 실현되어 그 진리성이 참으로 입증되었을 때 비로소 기록되는 절차를 거친다. 그에 비해 지식은 세상살이를 통해 사람들이 터득한 것으로서, 일상적인 경험이 쌓이고 가설을 세워 교차 검증한 후 다른 이들로부터 공감과 이해를 얻을 때 기록된다. 가설에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기 마련인데, 후대에 이 조건이 오류인 것으로 판명나거나 교차 검증할 최신의 방법이 발견되면 지식은 낡은 이론이 되어 사라지고 새로운 이론이 지식으로 등장하는 절차를 거친다.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지식들의 일반적인 질서가 이러하다. 

 

  하지만 말씀은 진리인 까닭에, 요한복음서의 말씀이 실제 교회 현실에서 적용되는 것을 사도들과 신자들은 체험했으며 따라서 설득력과 통찰력으로 그 진리성을 입증할 수 있었으므로 성경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이사야 예언자가,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이사 55,10)는 예언한 그대로이다. 

 

  요한묵시록은 요한이 자신의 복음서를 쓰기 전에 기록한 증언이라고 하였다. 그가 지도하던 에페소를 비롯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박해를 겪게 되고 사도 요한도 파트모스섬에 유배되자, 이 교회 신자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섬의 동굴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계시를 받아서 써서 보낸 편지로서, 요한묵시록의 증언이 요한복음서에 녹아 있다고 할 만큼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24.1. 유다 묵시문학의 배경과 특징

  이러한 요한 묵시록의 증언을 이해하자면 그 배경에 대해서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박찬용). 신구약성경을 통틀어 창세기가 시작이라면 요한 묵시록은 마침이다. 시작이시며 마침이신 하느님을 신구약성경의 시작인 창세기와 마침인 요한 묵시록에서 만날 수 있다. 창세기 첫머리에서 원죄를 저지름으로써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이 닫혔다면(참조: 창세 3,24), 요한 묵시록 끝자락에서 죄의 사슬에서 풀려나는 속량(贖良)의 뜻으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권한을 받고, 성문을 지나 하느님의 도성으로 지나가는 문이 열렸다는(참조: 묵시 22,14),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된다. 

 

  요한 묵시록은 유다 묵시문학의 산물이다. 그 역사적 배경은 이러하다. 구약시대 말엽 유다인들의 종말론(終末論)은 ‘묵시(默示)’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그 사상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이와 더불어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묵시문학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유다 사회에 굉장한 반향(反響)을 일으켰다. 유다이즘(Judaism)에 있어 이토록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묵시문학의 출현과 발전 및 소멸 과정을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스라엘 민족사의 배경과 더불어 고찰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사 가운데서 가장 용감했고 처절했던 시기라 할 수 있는 기원전 200년에서 기원후 100년 사이에 묵시문학 문헌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시기가 유다인들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때였다. 

 

 ‘마카베오 형제들’과 ‘하스모네아 왕가’의 영도 하에 유다인들이 나라를 재건하는 무렵에 묵시문학이 출현했고, 또 로마제국에 정복당함으로써 망국의 비운을 맛보던 무렵에 묵시문학이 소멸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전개되는 묵시문학은 비단 유다인들과 그들을 정복한 이교인들 사이에 전개되었던 투쟁만을 소재로 삼은 것이 아니라, 그러한 역사적 혼란시기에 암적 존재(癌的 存在)로 유다사회에 스며들었던 종교적·정치적·문화적 부패에 맞선 투쟁에도 비중을 두었다. 

 

  당시 유다민족은 여러 파당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었다. 한편, 이스라엘의 정통신앙을 고수하려는 경건한 유다인들은 헬레니즘과 야합한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치욕으로 여겨졌으며, 그것은 곧 그들의 정통신앙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으므로 죽음을 각오하고 죽기까지 저항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 그 밖의 많은 사람들, 특히 고위층에서는 헬레니즘 문화를 대환영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네들 생활에로 끌어들이는 상황이었고, 그중 종교계를 대표하는 대사제들마저 헬레니즘과 손을 잡고 종교의 타락을 가속시켰다. 이러한 고위층의 부패상 속에서 매관매직이 일상생활의 다반사로 판을 쳤다. 국가의 통치기구에 있어서도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직무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으로 알고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직위를 악용하여 부정과 착복으로 백성의 고혈을 짜냈다. 

 

  이러한 와중에 로마인들이 유다의 통치권마저 강탈하는 사태에 이르자 그렇지 않아도 민족 내부의 부패로 시달리던 유다 백성들은 기원후 66년 마침내 로마제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이제까지의 대내외적 울분을 일시에 터뜨렸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하게도 국가로서 존속해 오던 이스라엘의 멸망을 가져왔다. 

 

  유다인들의 종교와 문헌들은 그들 역사의 결과로 볼 수 있을 만큼, 유다 역사의 각 단계마다 독특한 양상을 보여준다. 신구약 중간시기에 이러한 사실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묵시문학 문헌들 대부분이 바로 이 시기에 출현하였다. 따라서 묵시문학 문헌들은 그 시대의 종교적·정치적·문화적·경제적 여건을 떠나서 이해될 수 없다. 

 

  묵시문학 문헌들은 결국 정치적인 관점에서 혹은 인간 역사의 관점에서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처절한 민족의, 억압받는 한 민족의 소산물이다. 그들의 투쟁은 현세적 차원에서의 전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차원에서의 투쟁을 말한다. 따라서 그들은 역사의 차원을 뛰어넘어 하느님께서 기적적으로 극적인 개입을 해 주시기를 대망하면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원수들을 응징해 주실 것을 믿는 투쟁을 벌인다. 따라서 그들의 신앙은 과장되어 기록되었고, 책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들이 꼭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신에 차서 역설하였다. 이 약속이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어 모든 이민족들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세우신다는 것이다. 

 

  유다 묵시문학을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예언자들이 선포한 메시지들을 현실이라는 새로운 각도에서 재조명함으로써 그 메시지들이 지니고 있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려 했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묵시문학은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종교사상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묵시’(默示, αποκαλυψιζ, Apocalypsis)란 단어는 ‘숨겨져 있는 비밀을 드러내어 밝힘’(revelation)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하였다. 

 

  묵시문학이 중요한 내용으로 삼고 있는 주제가 역사인데, 역사는 이스라엘과 그 인접 민족들 간의 관계사만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종말(終末)을 향해 치닫고 있는 세계사를 그 대상으로 삼는다. 묵시문학이 보는 이 세계는 곧 멸망의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며, 그 멸망과 더불어 하느님의 세계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낙원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러한 심판이 머지않았다는 임박한 역사관도 투영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선포 메시지의 주제에도 이 세계관과 역사관이 반영되어 있는데,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메시지가 그것이다. 또한 복음서 본문의 여러 대목에서도 최후의 심판, 선민의 구원, 동트는 새 시대에 선민이 누리게 될 행복 등에 대한 언급도 그러하다. 

 

  묵시문학적 사고방식에 의하면 ‘악마’의 지배하에 있는 현세에 곧 가공할 마지막 순간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때에는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이 만연할 것이고, 지상에는 흉년이 들고, 여자들은 아이를 낳지 못할 것이며, 우주는 질서를 잃고, 천체에는 일대 혼란이 일어나리라는 것이다. ‘메시아적 재앙’이라 불리는 이런 징조들은 임박한 종말을 암시한다. 재앙이 극에 달하고 시간이 그 마지막에 이르면 하느님의 극적인 개입이 시작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예정하신 다음과 같은 사건들이 차례로 일어나게 되리라는 것이다. 

 

⓵ 죽은 모든 사람들이 무덤에서 부활하여 하느님과 메시아가 좌정하고 있는 심판대 앞으로 나아가 대령해야 한다. 

⓶ 그때에 그들의 행위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는 책들이 낭독된다. 

⓷ 이 심판으로 영원한 구원 혹은 영원한 단죄가 선언되며 이것은 영원히 번복될 수 없는 선고이다. 

⓸ 이 심판이 끝나면 하느님께서는 ‘구세계’(舊世界) 대신 ‘신세계’(新世界)를 시작하시어 착한 이들을 그곳에 살게 하시며, 하느님 자신도 그들과 그곳에서 영원히 사실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결과를 유다교 묵시문학의 저자들은 비밀리에 주어진 계시에 의해서 알게 되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주로 말씀 속에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받고 또 그것을 말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선포했지만, 묵시문학 저자들은 표상과 비유를 통해서 글로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묵시문학 문헌의 저자들은 자신들의 이름 대신에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이나 예언자들의 이름을 내세움으로써 자신들의 이름을 감추어버리는 것이 상례였다. 그리하여 옛 예언자들이 살았던 시대에서부터 묵시문학 문헌들이 저술되던 시대까지의 역사를 과거의 위인들이 하나하나 낱낱이 예견하고 예언한 것처럼 서술한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이 위대한 인물들이 이미 예언한 대로 이루어졌듯이 종말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그들의 예언도 틀림없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케 하는 심리적 효과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묵시문학에 특유한 기법이다. 

 

  그런데 막상 종말에 일어날 사건들에 대해서는 과거 위인이나 예언자를 통하지 않고 단지 여러 가지 표상들을 통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이들의 세계관에 의하면 ‘이 세계’는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에 불과하므로 ‘이 세계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의 창조’에 대한 이원론적 서술로서 모든 묵시문학적 장면들은 끝을 맺는다. 여기서도 악에 대한 선의 우위라는 관점은 견지되고 있다. 

 

  역사상의 투쟁은 ‘하느님과 사탄’, ‘빛과 어두움’ 사이에 벌어지는 우주적 투쟁의 반영으로 간주되었다. 타락한 천사들에게 미혹되어 잘못된 길로 빠져들었고 죄악으로 더럽혀진 이 세상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모든 일을 다스리시어 세상을 심판하시고, 악마와 그에게 복종한 자들은 영벌을 받게 하시며, 당신 친히 선택하신 사람들을 구원하시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이 기대했던 것은 역사의 전환이 아니라 역사가 끝난 다음의 새로운 세계였다. 

 

  이와 같은 묵시를 받게 된 구약의 위인들이 그들의 기록을 봉인해 두었다가 기록된 재앙들이 실제로 일어날 때 비로소 그 봉인을 떼어 읽도록 보관해 두도록 했다는 것이다. 묵시문학의 저자들이 활약했던 시대는 곧 닥쳐올 종말을 기다렸던 시대였다. 그리하여 이 마지막 때에 악마의 세력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고난을 당하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메시지로 용기를 얻어 하느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고 충실히 지키게 하려는 것이었다. 

 

  바로 이 같은 구약의 역사관과 ‘때’와 ‘시간’에 대한 유다 묵시문학적 표현을 여과없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논리가 스콜라 신학의 전통교리에 들어와 공심판 교리가 되었으니, 이것이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종말론이다. 하지만 교회헌장이 가르치는 대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야말로 세상의 종말이다. 그리고 이 종말은 현세를 문 닫게 하고 내세의 문이 열리는 양상이 아니라 상선벌악의 가치판단을 전제로 하되 최후의 가치판단이 앞당겨져서 현재화되어 진행됨으로써 세속적 가치의 현실 속에 천상적 가치가 스며들어가는 양상으로 세상의 변혁이 진행된다. 이리하여 유다교 묵시문학이 그리스도교 묵시문학으로 넘어가는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묵시록은 유다교 묵시문학의 잣대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에도 진술되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 즉 영원한 생명의 도래라는 복음으로 해석해야 한다. 

 

24.2. 그리스도교 묵시문학의 배경과 특징

  요한묵시록은 그리스도교 묵시문학으로서 유다 묵시문학을 배경으로 출현하였다. 유다 묵시문학 문헌들에 여러 종류의 표상들이 등장하는 것처럼 요한 묵시록에도 여러 모양의 묵시들이 등장한다. 유다 묵시문학가들이 꿈과 환시를 통해 세계의 역사가 종말까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체험했듯이, 묵시자 요한도 황홀경 속에 들어가(묵시 1,10; 4,1; 17,1; 21,9) 탈혼 상태에서 묵시를 받았다. 이 환시 속에는 우주에 일어날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 사탄의 세력, 천사의 존재, 암흑의 권세, 불가항력적 권세가 위세를 떨치며 종말을 향해 급속도로 치닫고 있는 드라마 속에 등장한다. 그리고 종말에 악한 역사를 끝낼 주체로서는 어김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등장하신다. 즉 묵시자 요한은 자신이 전승에서 전해 받은 자료와 소재를 이용하여 묵시를 전하되, 이를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며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과 연결시켰다. 

 

  묵시록의 저자 요한이 이렇게 묵시문학적 자료와 소재를 변형시켜 새로운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예언의 특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예언자적 전권을 갖고 교회 안에서 말씀의 봉사자로서 인정받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권위를 바탕으로 그는 자신이 받은 묵시를 글로 써서 보냄으로써 박해 받고 있는 교회의 신자들을 위로하고 또 경고를 보내고자 했던 것이다. 

 

  유다 묵시문학과 요한 묵시록을 비교해 볼 때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묵시자 요한은 유다 묵시문학 저자들처럼 구약의 위대한 인물들의 이름으로 자기 이름을 감추지 않고, 자기 이름을 당당히 밝히고 있다(묵시 1,1.4.9; 22,8). 또한 요한은 그 시대의 일곱 교회들에게 곧바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먼 후대를 위해 쓴 유다 묵시문학 문헌들과 다르다. 따라서 요한의 묵시 내용은 봉인될 필요 없이 예언적 말씀으로서 즉시 전해주어야 했다. 요한 묵시록은 유다 묵시문학에서처럼 잘 알아듣지 못하도록 신비스러운 표상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설명하지 않고, 오직 종말의 사건들을 알아듣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 사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심판’, 그리고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의 창조’까지를 포함한다(참조: 묵시 4-22장). 

 

  그러니까 묵시록의 ‘종말’이란 현재에 숨겨진 시간이다. 종말의 묵시도 현재의 영적인 뜻이다. 재림도, 심판도 창조도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영적인 일이다. 이미 요한은 묵시문학의 기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원론적인 개념들을 신앙적으로 변형시켜 요한복음서를 저술하였다. ‘한처음’과 ‘때’, ‘빛’과 ‘어둠’, ‘위’와 ‘아래’ 등의 개념들이 강생의 신비, 부활의 신비, 재림의 신비에 동원되었고 이 모든 개념들이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새로운 개념 속에 수렴되었다.

 

   언급한 배경에서 요한묵시록이 지닌 특징도 살펴보자. 요한묵시록은 교회의 책이다. 요한 묵시록에는 성인들과 천사들이 하느님의 어좌 앞에서 거행하는 화려한 종교 예식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 천상 예배는 당시 유다교 회당에서 거행하던 예절을 본딴 것이다. 인류 역사는 아무리 파란만장하더라도 결국 하느님 손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께 성실한 사람에게 반드시 보상이 이루어지리라는 신념을 다져주고자 이 묵시록을 썼기 때문에, 요한은 박해로 인한 고난이나 고난 속에서 행해지는 선행 등이 하늘에 바쳐지는 찬미의 예배라는 뜻으로 성인들도 천사들도 함께 통공을 이루고 있음을 일깨워주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요한 서간에서 강생의 신비를 부인하던 영지주의 이단 사상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생의 신비를 믿는 신앙이 강조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요한묵시록에서는 종말과 통공의 신비를 믿는 신앙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주제들, 즉 강생과 종말과 통공은 새로운 창조의 전망 하에서 통합된다. 

 

  당시 교회를 위협하던 요인은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황제 숭배를 강요하며 가한 박해와, 이 박해를 부추긴 유다이즘의 핍박, 그리고 영지주의 이단의 침투였다. 하지만 요한은 고난받는 지상 교회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천상 교회를 아울러 바라보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같은 시선을 기대하고 있다. 즉, 어린양의 피로 구속된 무수한 뽑힌 이들의 무리야말로 어린양과 혼인한 신부로서 구원받을 천상 교회의 일원이 되리라는 것이다(참조: 묵시 7,1-8 하느님 백성인 교회; 7,9-17 선택된 이들의 무리인 교회; 21,1-8 새 하늘과 새 땅; 21,9-22,5 새 예루살렘). 

 

  이를 위해 요한이 사용한 숫자들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이다. ‘일곱’(7)은 유다인들의 수철학에서 ‘완전함’, ‘충만함’을 뜻하며, ‘열둘’(12)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나 또는 열두 사도로 시작된 ‘교회’를 뜻한다. ‘천’(1,000)은 ‘전체’를 가리킨다. 그밖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권능을 상징하는 술어들(머리 수, 눈, 뿔, 그 밖의 형상들)과 등장하는 짐승들, 하느님의 어좌 등에 관한 묘사는 에제키엘, 이사야, 즈카르야 등의 예언자들이 기록해 놓은 내용에서 연원한다. 단지 당대에 끌어온 표현으로는, 바다와 땅에서 올라온 짐승을 상징하는 숫자 ‘육백육십육’(666)은 네로를 비롯한 로마 제국의 황제들을 뜻하고, ‘바빌론’은 로마제국, ‘이세벨’은 무신론 세력을 성적으로 타락한 음탕녀로 비유한 용어들이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요한 묵시록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세 말기인 94~96년경에 저술되었다. 요한 묵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및 승천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분의 재림과 동시에 만물의 주재자로서 전 우주를 통치하실 때까지의 중간 시기(παρουσια, parousia)에 일어날 마지막 사건들을 수록하고 있다. 지독한 박해 속에서 수난 받는 교회의 신자들에게 머지않아 다가올 신앙의 승리를 예감하면서 격려하고자 쓴 글이기 때문에, 이 시기로부터 2천 년이 흐른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훨씬 현재적 실감을 주는 글이다. 지금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해야 하는 때이며, ‘새 예루살렘’을 건설해야 하는 때인 것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로마 제국이 박해 후 불과 3백 년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데 반해서, 박해받던 교회는 2천 년에 걸쳐 온갖 박해 속에서도 굳건히 성장해 오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묵시록의 메시지가 현실성을 지닐 수 있는 까닭은 오늘날을 포함한 미래를 향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서도 관철되고 있는 종말의 메시지는 시공을 초월하여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통한 종말의 완성이라는 비전(Vision)만을 분명히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 비전 즉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안목이 중요한 이유는 현 시대의 성격에서 비롯된다. 제도적이고 법적인 차원에서 종교에 대한 박해는 종식되었다고 하지만, 문명 전반에서 반생명적인 풍조와 비인간적인 사상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실질적으로 신앙적 가치는 아직 온전히 현실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이 요한 묵시록을 통해 지닐 수 있는 비전으로는, 이미 부활하시어 여러 양식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미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새 예루살렘의 건설은 현재 진행 중이라는 데 있다. 또한 선과 악의 대결 양상은 지금도 극심하며, 따라서 선을 지키며 악에 맞서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는 여전히 절실하고 절박한 바가 있다. 

 

  신앙적 가치는 한민족의 현실에서 여전히 낯설다. 교회적으로 24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게 된 그리스도인들 안에서도 생활화되지 못하고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이 형성하는 우상숭배적 분위기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지닌 한류를 생산해 낸 전반적인 긍정적 분위기 속에서도 반생명적인 풍조와 비인간적인 사상에 더해 민족정기를 정화시키지 못한 역사적 과오가 짙게 남아있다. 민족적으로는 갈라진 겨레가 분단된 지 70여 년이 지나도록 통합되지 못하고 있고, 국제적으로는 아시아의 복음화를 담당해야 한다는 교황청 및 세계 교회 여론의 압력과 기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묵시록은 우리에게 매우 절박한 과제를 던져주는 성경이다. 

  

  요한 묵시록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 짜임새를 미리 보기로 한다. 

⓵ 1,1-20: 서문

⓶ 2,1-3,22: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일곱 교회 신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⓷ 4,1-22,5: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메시지

천상 예배에 대한 묵시로써 현재와 향후 교회 현실의 영적인 본질을 일깨움(4,1-5,14). 봉인된 일곱 두루마리를 개봉하여 그 내용을 알려줌(6,1-8,1). 여인과 짐승의 싸움(8,2-11,14). 하느님과 사탄의 종말 전투(12,1-14,5). 메시아적 재앙들(15,1-16,21). 바빌론의 패망(17,1-19,10). 세상의 뭇 임금과 두 짐승의 패망(19,11-21). 사탄의 절멸과 종말의 심판(20,1-22,5). 그리스도의 재림,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21,1-22,5). 

⓸ 22,6-21: 맺음말

 

  그리고 요한이 본 환시들이 묵시록에 나타나는 무대들은, 1장에서는 파트모스 섬, 2-3장에서는 일곱 교회가 속해 있는 소아시아, 4-5장에서는 하늘나라, 6-10장에서는 포괄적인 우주, 11장에서는 성전이 서 있는 예루살렘, 12장 이후에서는 하늘 등으로 나타난다. 

 

  짜임새에 이어 주제어들도 소개한다(박영식). 요한묵시록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주제어들은 하느님, 예수님, 성령 그리고 교회이다. 

하느님은 ‘어좌에 앉아 계신 분’(묵시 4,2-3.9; 5,7),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묵시 1,4.8; 4,8; 11,17; 16,5)이시다. 그리고 하느님을 보좌하는 이들은 ‘스물네 명의 원로’(묵시 4,4)로 나오는데, 구약의 열두 지파 대표와 신약의 열두 사도를 합친 듯하다. 이들과 함께 ‘사자와 황소와 사람과 독수리’의 ‘네 생물’(묵시 4,6-7)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들은 네 복음서를 상징한다. 이로써 하느님과는 물론 신구약의 주요 인물들과 통공하기를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특히 네 복음서의 증언에 충실하기를 촉구하는 암시라고 하겠다. 

 

  예수님은 ‘살아 계신 분’(묵시 1,18)으로서 죽음이라는 인간의 운명을 함께 나눈 후 부활하신 분을 뜻한다. 또한 인간과의 관계에서 항상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성실한 증인’(묵시 1,5; 3,14)이시다. ‘시작이며 마침’(묵시 21,6; 22,13)이시며, ‘알파요 오메가’(묵시 1,8; 21,6; 22,13)이시다. 특히, 부활하셔서도 신자들의 믿음 안에 현존하시는 가운데 공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희생하시는 ‘(하느님의) 어린양’(묵시 5,6)이시라는 호칭은 무려 28번 이상 사용되었다.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면서 교회를 이끄시는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일곱 영’(묵시 1,4; 3,1; 4,5)으로서 교회에 지속적으로 말씀하시며(묵시 2,7.11,17.29; 3,6.13.22), 당신을 드러내시고(묵시 14,13), 교회를 사랑으로 북돋아주며 희망을 간직하도록 격려하시는(묵시 22,6) 분이시다.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파견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시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성령을 보내시고, 그 성령을 받아들인 교회는 그 성령의 이끄심에 따른다. 그래서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게서 이어진 존재로서 천상적이면서도 지상적인 피조물이다. 교회는 박해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하는 ‘지상의 예루살렘’(묵시 11장)이며, 인 동시에 로마를 상징하는 ‘바빌론’(묵시 12-18장)에 맞서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8)을 창조해야 하는 ‘새로운 예루살렘’(묵시 21,9-22,5)이다.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 [요한복음] 24. 요한의 증언 : 묵시문학의 배경과 특징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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