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신부님의 복음서 여행 : [요한복음] 21.2. 전례 훈련: 성체성사

[요한복음] 21.2. 전례 훈련: 성체성사

 

저녁노을의 글

2022-10-31 06:25:26 조회(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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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전례 훈련: 성체성사(21,12-14) 

 

  “의인들의 육체가 음식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원해서 먹듯이, 예수님께서는 물가에서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드셨다(아우구스티누스). 예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권능을 더 이상 그들에게 가리지 않으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분을 두려워했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그들이 물가에서 먹은 음식처럼, 고난받고 돌아가신 그리스도는 구운 물고기다. 그분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아우구스티누스). 일곱 제자가 참여한 이 식사는 모든 것이 완성에 이를 미래의 종말론적 잔치를 나타낸다(大 그레고리우스).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 번째’ 나타나셨다고 하는데, 이는 예수님의 발현 횟수가 아니라 날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세 번 이상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이다(아우구스티누스). 이 모든 발현 사화는 우리 자신의 부활을 더욱 고대하게 만든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신 일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함께 빵을 떼어 나누어주시며 음식을 드셨는데, 이번에는 물고기를 구어 오도록 해서 함께 음식으로 드셨다. 그레고리우스 교부가 일깨워주듯이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참여한 이 식사는 종말론적 잔치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교회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거행하는 성찬례를 뜻한다. 성찬례에서 예수님께서는 제관이시며 동시에 제물이시다. 사제와 신자들은 미사 중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그분과 함께 그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이다. 

 

  오천 명도 넘는 많은 군중이 굶주리게 되자 일으키셨던 빵의 기적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과 제자들과 함께 빵과 물고기를 음식으로 드셨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그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던 그 기적이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되풀이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 때는 육신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것이었고, 지금은 영혼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육신의 허기만이 아니라 영혼의 허기, 즉 거룩한 가치에 대한 영적인 갈망을 예수님으로 채워주는 일이 성체성사이다. 

 

  그래서 성찬례를 주례하는 사제는 빵의 기적 사건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순서대로(요한 6,11), 먼저 감사 기도를 올리고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며 신자들에게 나누어준다. 축성 기도에서 사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최후의 만찬 때에 하셨던 그 말씀을 그대로 신자들에게 들려주는데, 강조해야 할 부분은 이것이다;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것이며, 이 계약으로 세상의 죄를 없애고자 하는 것이고, 그래서 신자들은 예수님을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것, 이 세 가지이다.  

 

  예수님께서 직접 남기신 이 말씀에 교회는 두 가지 지향을 덧붙였다. 하나는 재림이요 나머지는 평화이다. 성체성사가 주님의 재림인 이유는 그것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현존하시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체성사가 주님의 평화인 이유는 성변화에서처럼 영성체를 한 신자들도 거룩한 변화를 지향하여 세상에 나아가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룩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림과 평화라는 이 두 가지 영적인 가치가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예수님의 현존이 의미하는 것이다. 이 현존이 세상의 죄를 없앨 수 있다고 교회는 믿고 희망한다. 그래서 성체와 성혈을 나누기 전에 다시 한 번 이런 의미를 기도하는 순서가 바로, ‘하느님의 어린양’, 즉 ‘아뉴스 데이(Agnus Dei)’이라고 부르는 찬송이다. 여기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신원과 또 그분을 닮으려는 메시아 백성의 사명이 겹쳐서 들어있다, 하느님의 어린양으로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그분이 자비를 베푸실 때 신자들이 그분을 닮게 되고, 세상 사람들이 그분의 평화를 받게 될 것이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교부의 풀이대로, 이 모든 과정이 우리 신자들이 부활하는 현실이요 그 과정이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이렇듯 교회가 하느님께 예배드리며 당신을 닮으려 노력하는 종교적 생활과, 성찬에서 받은 기운으로 세상에 평화를 건설함으로써 새 역사를 창조하는 사회적 활동에 대해 공생활 중에 예견하신 바 있다. “너희는 내가 여러 가지 시련을 겪는 동안에 나와 함께 있어 준 사람들이다.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나라를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나라를 준다. 그리하여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실 것이며,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루카 22,28-3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생활과 그 뜻대로 평화를 지향하는 사회활동이, 하느님을 모르는 생활을 하며 평화를 해치는 활동을 하는 자들에게 심판적 기능을 하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 [요한복음] 21.2. 전례 훈련: 성체성사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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