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신부님의 복음서 여행 : [요한복음] 21.1. 선교 훈련: 풍어의 기적

[요한복음] 21.1. 선교 훈련: 풍어의 기적

 

저녁노을의 글

2022-10-26 17:49:47 조회(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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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선교 훈련: 풍어의 기적(21,1-11)

 

  “제자들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고기잡이에 나선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그 모든 일이 일어난 뒤에 제자들이 어째서 다시 고기잡이 생활로 돌아갔느냐고 물어볼 만하다(大 그레고리우스). 제자들이 회개 이후에도 생업을 계속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아우구스티누스, 大 그레고리우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과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당신이 누구인지 천천히 드러내신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비유적으로 풀이해서, 그들은 옛 계약의 그림자와 예형들 아래서는 물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했지만, 의로움의 태양께서 오시자 그물이 가득 찬다(암모니우스). 예수님께서는 자녀를 부르듯 제자들에게 ‘얘들아!’ 라고 하신다. 제자가 된 이는 자녀의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클레멘스). 그들은 주님께서 처음 부르셨을 때 곧바로 순종했듯이,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그물을 던졌고, 말씀이 선포됨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이 급속히 늘어나듯이 많은 물고기가 걸려 올라왔다(아우구스티누스). 주님을 먼저 알아본 것은 열정적인 베드로였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두 사람 다 그분께 당신이 누구시냐고 감히 묻지 못했다. 그분께서 하느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히에로니무스).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그분을 알아보자 값진 진주를 손에 넣으려 물에 뛰어드는 사람처럼 호수로 뛰어들었다(시리아인 에프렘). 제자들이 뭍에 내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육체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유령을 보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또다시 그들과 함께 물고기를 드심으로써 부활을 입증하신다(히에로니무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구워 주신 물고기는 그들이 잡아들인 것들의 맏물이다(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나 그레고리우스 교부의 문제의식을 이어가자면, 제자들이 티베리아스 호수로 가서 물고기를 잡은 일은 예수님의 제자이기를 포기하고 다시 예전의 생업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들은 두 번이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뵈었다.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인한 이상 이제 더 이상 말씀을 듣기만 하는 제자가 아니라 부활을 증언하는 사도가 될 자격을 얻은 것이다. 제자와 사도의 차이가 부활 신앙 여부에 있다. 그러니 그들은 이제 사도로서 행할 훈련을 받아야 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있는 상처까지 확인한 토마스가 여섯 명의 동료들과 함께 있었다는 언급(요한 21,2)이 이런 정황을 뒷받침해 준다. 동료 중 어느 누구보다도 강직했던 그가 이제는 더 이상 의심을 버리고 예수 부활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고,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뵈면서도 미심쩍어 하던(마태 28,17) 그런 부류의 동료 제자와는 달랐다. 그는 성품이 강직해서 처음엔 의심을 품었다가도 그 의심이 풀리고 확신을 하게 되면, 더 이상 미적거리지 않는 분명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므로 그런 그가 함께 있었다는 것은 부활 신앙을 망각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부활 신앙에 따라 사도로서 분명한 의식을 지닌 채로 동료들까지 데리고 그곳에 가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까 이 발현 기사는 앞선 발현 기사들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부활을 확인시켜 주시려고 또 다시 발현하신 것이 아니라 사도 훈련을 시키시려고 나타나신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은 발현 기사를 보도하면서 갈릴래아 관련 내용을 생략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미 빈 무덤을 지키고 있던 천사들을 통해 그들을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셨는데, 이를 마르코과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해준 바 있다(마르 16,7; 마태 28,7), 그 다음에 그들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풍어기적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풍어기적을 체험하기 전에 그들이 밤새 허탕을 치고 만 것도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개입하신 결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호수에서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어부 출신들이 겪을 수 있는 일반적인 경험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못 잡은 상황에서 잡을 수 있게 한 일이 필요했던 기적이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상황에서 못 잡게 만드는 일도 필요했던 기적이다. 

 

  이때에도 예수님은 겉모습을 바꾸어 낯선 사람으로 나타나셨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분을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에게 발현하실 때와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듣고서는 그들도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았고, 그래서 그분의 말씀에 곧바로 순명하였다. 그분께서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 말씀하시듯이,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요한 21,5) 하고 물어보신 것이고, 못 잡았다고 하니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요한 21,6)이라고 훈수를 두실 수 있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그 제자들이 정작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말씀대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고 나서 물고기가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힌 다음이었다. 요한이 먼저 이 풍어성과가 스승께서 일으키신 기적임을 알아차렸고, 이를 베드로에게 알리자, 베드로는 속옷이나 아래옷만 걸치고 있다가 뭍에 서 계신 예수님께 가려고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요한은 물고기가 153마리였다고 기록하는데, 이 수는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베드로가 다른 민족들 모두(100)와 이스라엘의 선택된 사람들(50)을 그리스도께 바쳐 삼위일체(3)를 영광스럽게 한다는(암모니우스) 점에서 이는 성령에 참여하는 모든 이가 받는 은총의 충만함을 상징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아우구스티누스). 그런가 하면 이 수는 소수(素數) 17을 활용한 기하학적 삼각형을 이용하여 세상의 종말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아우구스티누스). 그물이 터지지 않은 것은 세상의 압력에 부딪혀도 부서지거나 갈라지지 않는 교회를 상징한다(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께서는 요동치는 세상을 상징하는 호수에서 단단한 뭍으로 오셨다(大 그레고리우스). 그런 다음 베드로에게 교히를 맡기셨다. 베드로는 잡은 물고기를 안전하게 뭍으로 끌어 올리는 이기 때문이다(大 그레고리우스). 뭍은 참된 안식이 있는 곳이다(大 그레고리우스). 공생활 초기에 물고기를 잡을 때와는 달리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라고 하신다. 교회는 오른쪽에 있는 이들이 죽은 뒤 내세의 해안에 안전하게 닿을 때까지 평화의 잠을 자도록 지켜 준다(아우구스티누스).” 

 

  이 풍어 기적 기사는 루카도 전하고 있는데(루카 5,1-11), 차이가 있다면 루카는 공생활 초기에 예수님께서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느라고 일으키신 기적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비해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어부 출신 제자들을 사도로서 훈련시키시느라고 일으키신 기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복음사가가 모두 물고기가 많이 잡힌 정도를 묘사함에 있어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에 “배가 가라 앉을 정도”(루카 5,6-7)라거나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는 정도”(요한 21,6ㄷ)라고 하고 있으니 표현의 차이는 약간 있어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나, 요한만이 잡힌 물고기의 수효를 밝히고 있다. 

 

  그리스어로 쓰인 요한복음서 원문에서 ‘백쉰세 마리’의 153이라는 숫자는 수효를 나타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처럼 뜻도 가지고 있다. 즉, 각 알파벳이 숫자를 겸하는 그리스어로 따지면 153은 ΙΧΤ(‘익트’)가 되는데, 이는 물고기를 뜻하는 ΙΧΤΨΣ(‘익투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문의 각 단어 첫 글자를 모아 놓은 것을 다시 줄여 쓴 약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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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스어 ‘물고기’(ΙΧΤΨΣ)의 숨은 뜻

 

<출처: 이태형, The Science Times, 

 http://www.welcomehomeoc.com/thefish.htm>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153은 1에서 17까지를 모두 더한 숫자인데, 10은 십계명을 뜻하고 7은 성령칠은을 뜻한다고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물에 잡힌 백쉰세 마리의 물고기는 선교의 결과로 모인 하느님의 백성이 십계명을 지키고 성령칠은을 받게 될 사람들이라는 뜻이 된다. 또한 그리스어처럼 히브리어도 각 알파벳마다 숫자를 겸하는데, 153은 ‘베네이 하 엘로임’(בני האלהים)으로서 ‘하느님의 아들들’이라는 뜻인데, 뜻이 대동소이하다.  

 

  수학에서도 153은 특별한 수이다. 1과 5와 3의 세제곱을 합한 수인데, 세제곱수를 cube number라고 부른다. 세제곱수이기 때문에 이 수치대로 모형을 만들면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다 똑같은 정육각형이 되는데,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지성소는 정육각형으로 만들었다(2역대 3,8; 에제 41,4). 그래서 유다인들에게 153은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숫자였다. 

 

  또한 1부터 17까지 더한 수이기도 한 153이라는 숫자에서 17은 10과 7을 더한 숫자이고, 그 당시에 10은 이방인들이 사용하던 십진법에서 완전한 숫자로 썼고 7은 유다인들이 사용하던 칠진법에서 완전한 숫자로 썼으니, 153은 완전에 완전을 더한 충만한 숫자가 된다. 그래서 153이라는 숫자에는 신기함과 완전함을 갖춘 수라는 의미가 있다. 부활신앙으로 무장한 사도들이 전개할 사도직 활동으로 세워질 교회의 모습이다.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 [요한복음] 21.1. 선교 훈련: 풍어의 기적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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