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신부님의 복음서 여행 : [요한복음] 21.5. 요한계 공동체의 증언인 요한의 복음

[요한복음] 21.5. 요한계 공동체의 증언인 요한의 복음

 

저녁노을의 글

2022-11-23 15:00:52 조회(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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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요한계 공동체의 증언인 요한복음(21,24-25)

 

  “요한은 복음서를 여러 권 쓸 수 있을 만큼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었지만 한 권만 썼다(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이 복음서에서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보여 주신 사랑과 그리스도께 대한 자신의 사랑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며, 그 사랑 때문에 복음서를 썼다고 밝힌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그러나 이 마지막 구절은 다른 사람이 덧붙였을 가능성이 있다(테오도루스). 아무튼 요한이 아첨하기 위해 복음서를 쓴 것이 아님은 분명한 사실이다. 많은 기적 사례를 뺀 반면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은 일들도 기록하기 때문이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기록할 수도 없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너무 대단하고 그분께서 일으키신 기적이 너무 많아 책 한 권에 다 담을 수 없었다(니사의 그레고리우스). 그래서 우리는 요한 복음사가와 함께, 모든 것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저 위 도성의 문에서 서로 만날 날을 기다린다(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그러나 기다리는 동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두신 모든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이 복음서를 세심하게 연구하고 여기서 배운 것을 실천하자(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령의 수금(竪琴)인 거룩한 신학자 요한 사도의 복음서 주해가 이제 그 끝에 이르렀다.” 

 

  이 맺음말(요한 21,24-25)은 요한 복음사가가 쓴 것이 아니라, 요한이 지도하던 공동체 즉 요한계 공동체가 그의 복음서를 엮었음을 표시하는 서지(書誌) 사항인데, 이를 끼어 넣고 복음서를 마감하였다. 그들은 이 복음서가 자신들이 엮었으되,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 즉 사도 요한이 쓴 증언이라고 확인해 주고 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시다”는 뜻인데, 그 자신은 복음서에서 이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늘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라는 표현을 썼다. 겸손함과 자부심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이름이다. 우리도 여기서 요한복음서의 역사와 신학을 간추려서  소개한다[출전: G. Segalla, 새로운 성경신학사전]. 

 

  요한복음서는 28~30년에서 1세기 말 사이에 팔레스티나를 시작으로 시리아를 거쳐 소아시아에서 쓰여졌다. 요한은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예루살렘 공동체를 맡고 있다가 순교한 큰 야고보의 동생이다. 열두 제자 중에 가장 어린 막내였고 90~100세까지 살면서, 자신이 목격하고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하되 자신이 깨달은 직관적 신비로 예수님의 생애를 해석하여 복음서를 저술하였다. 이것이 요한 전승이다. 해석의 초점은 두 가지인데, 신성을 반영한 예수님의 인격을 ‘말씀’으로, 신적 권능을 발휘하여 신성을 드러낸 예수님의 기적은 ‘표징’으로 해석하였다. 

 

  요한복음서의 역사: 요한 전승에 따라 이 복음서는 그리스어 생활권으로서 소아시아 최고의 수도였던 에페소에서 저술되었다. 사도 바오로가 개척하고 티모테오가 이어 받은 에페소 공동체를 물려받은 요한은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살면서 에페소 공동체를 커다란 공동체로 성장시키는 한편, 주변의 여섯 도시에 복음을 전하고 공동체를 세웠다. 그리고 이 일곱 공동체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은 유다인 출신이건 이방인 출신이건 그리스적 사유방식에 물들어 있었고, 디아스포라 유다인 회당과 로마 제국의 박해를 받고 있었던 데다가 영지주의적 이단들의 영향도 받고 있었으므로, 요한은 공관복음서들과 대동소이한 체계를 이어 받으면서도 독창적인 방식으로 복음서를 저술하였다. 예수님께서 살아가셨던 유다인들의 히브리적 사유방식을 바탕으로 하되 그리스적 사유방식을 구사한 것이 그것이다. 특기할 것은 강생의 신비를 부인하는 영지주의 이단에 대항하기 위하여 그들이 사용하는 이원론 개념을 복음화시켜 채택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표현을 주제로 삼았으니 그것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것이다. 교회의 역사에서 최초로 나타난 그리스식 토착화 시도였다고 하겠다.  

 

  요한복음서의 신학: 요한 전승에 대한 해석의 초점이 ‘말씀’과 ‘표징’이라면, 이를 해석하는 관점은 세 가지로서 첫째 선재성(先在性)둘째 초월성(超越性)이며 셋째 교회에 대한 창조적 전망이다. 첫째와 둘째 관점은 말씀에 대해서, 셋째 관점은 일곱 가지 표징에 대해서 적용되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계셨으며(선재성), 창조주 하느님에게서 세상으로 파견되신 분이시다(초월성). 세상에서 사시면서도,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께서 그분 안에 계시기 때문에”(요한 14,10-11) “한처음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요한 1,2) 예수님만이 아버지를 계시하실 수 있다(요한 1,18). 그래서 그분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요한 14,6-7) 하고 선언하실 수 있었다. 이러한 선재성과 초월성을 전제한 요한의 그리스도론은 공관복음서의 그리스도론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으로서 격이 훨씬 더 높다. 

 

  교회에 대한 창조적 전망은 선재적이요 초월적인 말씀이 일으키신 표징들이  보증하는 것이다. 즉, 말씀께서 사도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를 창조하시는 새 인류가 교회이다. 예수님의 표징들은 일회용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을 통해 선포될 복음이 성령의 사기지은을 통하여 역사적이고 공동체적인 영적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당신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되리라고 장담하셨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요한 14,12). 이 창조적 전망에 참여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부활하는 것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여기에 요한의 교회론과 성사론이 담겨 있는데, 교회의 성사는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성령의 사기지은에 따라 재현하고 계승하는 일이며, 이 성사들로써 교회가 새 역사를 창조하는 새 인류로 성장한다. 세례의 성사적 가치는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데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그리고 성찬례의 성사적 가치는 세례의 완성으로서, 서로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다. 공관복음서가 성찬례의 기본적인 순서를 보도한 데 비해 요한복음서에서 이 순서를 생략하고 세족례를 보도한 뜻이 바로 이 섬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이상으로 요한복음서 본문에 대한 주해를 마무리하는 하면서, 장을 바꾸어 요한복음을 엮은 요한계 공동체와 요한복음 전에 쓰여져서 기초 자료가 된 요한계 문헌인 요한 서간과 묵시록을 살펴보기로 한다.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 [요한복음] 21.5. 요한계 공동체의 증언인 요한의 복음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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