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1 주님 세례 축일 강론

작은눈물 2026/01/11 오후 02:18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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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분의 ‘세례(洗禮)’, 씻기움을 기념하는 오늘은, 거룩한 주님께서 유한한 인간의 삶, 곧 원죄(原罪)와 본죄(本罪)로 얼룩진 세상 한가운데로 순결한 모습으로 오신 성탄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새겨주는 날입니다.

 

지극한 자비와 겸손, 사랑을 일깨워주시는 하느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셨지요. 온전히 당신을 비우신 ‘하강’을 통해 죄와 상처로 본래의 아름다움을 상실한 땅을 원래대로 회복하고, 영혼이 설 자리를 마련해주시고자 하십니다. 곧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될 때의 빛나던 모습과 사랑으로 충만했던 시간으로 되돌려 주시려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주님께서 응답하시어 걸으실 길은, 십자가와 죽음의 여정마저 순명(順命)으로 끌어안으실 온전한 하느님의 아들, 주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완성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42장 1절에서, “그는 내가 붙들어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라고 주님의 종에 대해 밝혀줍니다.

 

주님께서는 미소한 한 존재에게마저 한결같이 성실한 삶을 보여주셨지요. 아버지의 뜻에 영혼을 열어두고 끊임없이 경청하며 지혜를 간구하고, 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가난한 이의 흔들리는 숨결을 붙들어주셨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부름에 어긋남 없이, ‘마음에 드는 이’로서 사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이 이 세상 한가운데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통로가 되셨지요.

 

그러므로 이어지는 6절에서, “주님인 내가 의로움을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빚어주시고 붙잡아 이끌어 주시는 뜻대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것이 우리가 지닌 소명입니다. 바로 그 소명에 충실하도록 ‘받아들임’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고, 또 그에 따라 일어날 ‘치유’는 하느님의 몫으로 감사로이 돌려드려야겠지요.

 

먼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가오는 이들을 어떤 편견도 없이, ‘소중한 존재’로 그 가치를 인식하고, 주님께서 불어넣어 주실 희망을 그 안에 간직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34절, 35절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주십니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주님께서는 받아들인 이들 모두에게 아낌없이 치유를 베푸셨지요. 이어지는 38절에서,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라고 증언하였듯이 말입니다.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이 치유의 근원이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라고 밝혀집니다. 참된 치유는 ’주님의 영‘으로 충만하고 흘러넘침으로써 내어줄 수 있는 일이지요. 이는 세상이 그려내는 청사진으로 결코 완성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맡기셨나요? 이 모든 소명의 목적이 어디에 있나요? 이는 ’빵‘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깨닫는 이가 체험하게 되는 사랑의 신비 안에 해답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공정을 펴기를‘ 바라셨지요. 이 세상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하느님의 치우침 없는 사랑을, 주님의 모범으로 보이라고 말이지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기꺼이 죄없는 당신의 몸을 강물에 맡기우는 참사랑을 통해 보여주라고 말입니다.

 

상처와 소외의 고통 가운데, 마르지 않는 눈물을 머금고 사는 이들에게 사도행전 3장 20절의 말씀처럼,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하고, 보이는 것보다 소중한 보이지 않는 것을 내어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해와 교감, 가슴 깊은 곳에 뭉친 응어리를 풀어주도록 경청하는 겸손된 몸짓으로 이루는 치유의 만남입니다. 그를 통해 살아계신 주님의 사랑과 영을 불어넣어, 현존하시는 주님을 뵙는 기쁨과 그분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어 스스로 존재 의의를 회복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이 몫을 다하도록 온전한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드러내는 은총이 곧 오늘 우리가 고백하는 주님 세례의 은총입니다. 이 몫을 이루도록 기꺼이 모든 것을 비우신 주님을 향해 마르코복음 1장 11절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의 드는 아들이다.”라는 복된 선포가 울려퍼집니다.

 

모든 이에게 하느님 사랑의 공정을 이루도록 자신을 비우신 주님의 가난하고 겸손한 몸짓을 가슴에 새기며, 오늘 여기 선 우리 또한,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로서 주님의 마음에 드는 몫을 살아갈 복된 날들을 엮어 가시도록 정성되이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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