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 영원한 생명을 품은 이로서, 영원을 갈망하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에 발걸음을 내디딜 곳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것처럼, 세상의 숱한 가치관의 혼란 속에 자기가 걸어야 할 관(觀)을 설정하는 데 있어 갈등을 겪어야 할 때가 있지요.
그러나 어떤 길을 선택하고 응답하며,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하는 것은, 그 선택과 과정이 과연 올바른 것(righteousness)이었다고 확인케 해 주는 증언(testimony)이 될 것입니다. 가려졌던 식별이 명확할 때, 한결같고 또 긍정적인 체험을 쌓게 할 때 그 자체가 증명해주는 것일 테니까요.
여기서 ‘명확함’은 진리, 곧 하느님 말씀을 복음적으로 탐색하면서 얻어집니다. ‘한결같음’은 우리 자신의 나약함을 기꺼이 성찰하고 의탁하는 믿음과 기도가 성숙해갈 때 가능하지요. 그리고 ‘긍정의 체험’은 하느님 앞에 나아오고자 하는 변화의 노력과 함께 더해질 것입니다.
이에 반해, 세상의 가치를 좇는 것은 결국 세상의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니, 실상 자기 존재가 소멸하는 순간 흩어지고 말겠지요. 그러나 영원한 가치는, 자기 안에 품은 ‘영원한 생명을 향한 축복’을 세상 안에 확산하고 심화하고 난 연후 주님께 돌아갈 순리(順理)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라짐으로써 종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동시대를 살고 기억하는 이들에게 씨앗으로 남아, 그들도 그런 삶에 초대하여 축복을 느끼게 하고, 또 세상의 방향을 환기(喚起)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요한 1서 5장 11절, 13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에 비추어, ‘삶의 의미’를 돌아본다면, 결국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지향하며 어떻게 걸어가는 존재인가?’를 확인하는 과정이라 하겠지요.
루카 복음 5장 12절, 13절에서,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라는 대화를 통해서 치유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실 수만 있으면’이라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청원이 아니라, 이미 주님께서 하실 수 있는 분임을 겸손하게 알아 뵙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곧 어떤 상황이나 환경적 조건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니”라고 하실 수 있는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맞갖은 당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이루시는 주님이시라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지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연민, 사랑, 치유, 권능을 몸소 증거로 보이시고 증언하시는 주님과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로서의 모범적인 삶의 향방을 결국 주님을 증언하는 몫으로 삼도록 부름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참으로 명확하시고, 한결같으시며, 죽음의 십자가에서도 희망과 자유라는 긍정의 선물을 허락하시는 살아계신 주님을,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영혼으로 전할 수 있는 여정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사랑이신 주님, 비록 저희가 세상의 것에 쉬 흔들릴 만큼 나약하오나, 늘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묵묵함으로 길을 비추어주시는 당신을 붙좇아 굳은 의지를 다잡아 봅니다. 잠시 명멸(明滅)하는 것에 ‘삶의 중심’을 앗기기보다, 당신을 닮은 고요한 침묵 가운데 서서 당신 뜻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당신의 마음과 얼굴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빛으로 물들어 이 세상 위를 걷는 이의 두 발 앞을 비춰줄 수 있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