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19세기 프랑스 시골 마을 아르스에서, 고행과 깊은 성덕으로 정성을 다한 영적 가르침과 고해성사를 드리며, 겸손하고 충실한 목자로서 ‘본당 사제들의 수호자’로 선포되었던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의 거룩한 생애를 기념합니다.
주님의 사랑에 매료되어, 어떤 인간적인 능력보다 연민과 경청의 낮은 모습으로 주님이 보여주신 삶의 모습 그대로 살았던 이의 생애는 짙은 메아리를 울려주고, 사라지지 않는 여운을 드리워줍니다. 그것은 그이가 추구했던 삶의 가치가 그가 만났던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지길 순수하게 갈망하는 데 있었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그 자리를 떠남 없이 충실하게 살아왔던 무게감이 있던 까닭일 것입니다.
예언자는 예레미야서 30장 19절, 20절, 22절에서,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자손들을 옛날처럼 되고, 그 공동체는 내 앞에서 굳건해지며,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은 모두 내가 벌하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라고 하느님의 자애로운 사랑과 선함에서 비롯될 이스라엘의 미래를 희망차게 전해줍니다.
실상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심어주신 거룩하고 아름다운 선성(善性)에 귀 기울일 때, 주님께서 하신 복되고 충만한 역사 안에 우리도 참여할 영적 위로와 힘을 분명히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동행하는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복잡다단한 관계의 숲 속에서 주님을 좇아 걸을 바르고 빛나는 길을 찾아 안내하는 겸손한 동반자가 되어야겠지요.
그러기에 마태오복음 15장 10절, 14절에서 “너희는 듣고 깨달아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라고 일러줍니다. 이 땅 위를 걸어가면서도, 우리의 영혼이 주님께 겸손하게 귀 기울이고 당신의 사랑으로 충만한 은총에 맛들이며 살아갈 때 우리가 남기는 발자취마다 그 향기가 묻어날 것입니다. 곧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의지와 행동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시선 앞에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뭇 사람들의 칭송으로 들여높여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가난한 시골의 작고 초라한 성당을, 그저 묵묵하고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위로하면서, 주님 기뻐하시는 거룩한 아버지의 집으로 만드신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와 같이, 한결같은 침묵과 가난으로 오히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지향하고 살아가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이 옛모습을 되찾고 더욱 굳건해지듯이, 우리와 함께 걸어가는 이들도 하느님께서 빚어주신 처음의 아름다움을 더욱 기쁘게 다져가도록 초대할 수 있는 값진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의탁하는 복된 날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