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저는 삶은 늘 선(線)처럼 이어져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선은 소위 ‘점(點)들의 집합’이라 정의할 수 있지요. 곧 우리의 인생은 과거에 겪었던 사건과 경험의 지점들이 먼저 영혼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또 현재 점유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새로운 활동과 의미를 엮어가고, 또 미래에 이루어질 어떤 일들이 연결이 되겠지요. 그렇게 과거부터 미래까지, 이 땅에서 허락되는 시간 동안 채워지고 의미를 부여해가는 과정을 통틀어 우리 각 개인의 ‘역사(歷史)’요 ‘인생’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늘 불변의 직선이 아니라, 변수를 만나 기울어짐의 크기도 달라지고, 그 ‘변곡점(變曲點)’마다 새로운 곡선을 그릴 만큼 수많은 변화가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한결같은 지향과 목적을 향해 달려 가면서도, 우리 자신이 이미 지닌 나약함이나 불완정성 뿐 아니라, 주변적인 환경, 성장과정, 관계 형성의 형태, 극복해야 할 과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일어섬과 넘어짐을 거듭하게 되지요. 그래서 선을 희망하고 살아가길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죄와 잘못으로 기울어지는 실망의 경험들이 참으로 아프게 할 때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호세아서 8장 13절에서, “주님의 그들의 잘못을 기억하고, 그들의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야 하리라.”라는 말씀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사실, 희망의 빛조차 볼 수 없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 참된 해방과 자유를 허락해주신 주님께 대한 감사를 잊고서, 다시 그곳, 이집트로 돌아가야 한다면 얼마나 허망하고 절망에 가깝도록 고통스런 일입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말씀 그대로 우리를 단죄하고 처벌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 허덕이고 있는 연약한 우리의 고통을 주목하시고 아파하십니다. 마태오 복음 9장 35절, 3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전하듯이 말입니다.
죄와 벌에 이르는 고통은 그 누가 아닌, 바로 공동적(共同的)인 의미에서의 ‘우리’ 자신이 만든 결과이지요. 주님께서 맡겨주신 명령대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해서, 서로 섬기고 낮은 사람이 되기보다, 스스로 자존심과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며 서로를 밀어냄으로써 빚어진 상처의 결과 말입니다. 더욱 아름다울 수 있고, 더욱 행복할 수 있는 우리 삶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망가뜨린 어리석음 때문에 자책하며 기가 꺾인 것이지요. 자녀의 얼굴에 스치는 잠시의 그늘조차 놓치지 않고 아파하는 참 부모의 마음에는, 그저 행복을 주고 싶은 안쓰러움만큼이나 큰 고통이 번지겠지요. 그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가엾은 마음’은 단순히 멀리서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동정(Sympathy)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부서진 인생의 선(線) 위로 직접 걸어 들어오십니다. 우리가 죄와 나약함으로 인해 스스로 그어버린 절망의 변곡점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온유한 손길로 새로운 사랑의 곡선을 다시 그려 나가십니다.
우리가 이집트라는 과거의 노예살이로 돌아가 허덕일 때도, 주님께서는 채찍을 드시는 대신 당신의 심장을 내어주시지요. 복음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향해 쓰인 ‘가엾은 마음’이라는 표현은 창자가 끊어질 듯한 아픔, 즉 당신의 온 존재가 함께 무너져 내리는 절대적인 사랑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기가 꺾여 있는 우리를 보실 때, 주님의 마음은 이미 그렇게 미어져 계셨던 것입니다.
복음의 마지막 대목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여기서 주님이 원하시는 ‘일꾼’은 세상의 유능한 지도자나 완벽한 의인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의 그 ‘가엾은 마음’을 닮아, 서로의 부서진 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랑의 일꾼’입니다. 내가 먼저 주님의 자비로 채워짐을 경험한 사람만이, 곁에서 목자 없이 헤매는 이웃의 시린 손을 잡아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완벽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기에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비로소 주님의 선을 완성해 나갑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 나의 인생 곡선은 어디를 향해 기울어져 있습니까? 혹시 스스로 만든 잘못과 상처 때문에 기가 꺾인 채, 마음의 이집트로 돌아가 자신을 단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자책의 자리에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빛을 마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의 눈에는 분노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안쓰러움과 눈물이 고여 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어 당신의 전부로 채워주시는 그 사랑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겨드립시다. 그리고 그 따뜻한 온기를 품고, 오늘 내가 만나는 기가 꺾인 이웃들에게 먼저 나지막한 위로의 일꾼이 되어주기를 다짐해 봅시다. 우리가 서로를 가엾이 여기며 보듬을 때, 주님께서 시작하신 우리 인생의 역사는 가장 아름다운 구원의 선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