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길을 붙좇아 그 여정을 따라가는 복된 사순시기에, 어떤 바람과 간청을 지니며 기도드리고 계신지요? 이 기간 주님의 수난과 고통을 되새기면서, 과연 어떤 변화를 이루고, 또 어떤 모습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싶으신지요?!
사실 살면 살아갈수록, 우리는 홀로 이 세상을 꾸려갈 수 없는 법이지요. 출생 자체가 우리 의지가 아니었고, 또 태어난 이후로 이루어진 ‘최초의 관계’부터,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었지요. 우리가 스스로 일어서서 걷고 세상을 헤쳐나갈 힘도 없던 어린 시절부터, 반드시 누군가에게 기대어 이 세상에서의 삶을 시작해야 했고, 또 끝없이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성장과 성숙을 거듭하며 지금까지 이르렀겠지요. 그리고 물론 앞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도 필연적으로 그러할 거고요.
역시 그렇게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지도 못하였을 거고, 삶의 의미를 잃은 채 공허하게 ‘부유(浮游)’하면서, 세월의 무게만을 감당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하고 깊어지도록 시간과 공간 속에 허락된 만남을 소중한 축복으로 여기며 서로를 선한 영향력으로 물들이고, 더욱 나은 사람으로 함께 걸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도 제게 어린 시절 곁을 스쳐 간 친구들과 성장하며 만난 사람들, 삶의 가치관을 세우고 영향력을 발휘할 만큼의 힘과 능력을 지닐 수 있도록 도와준 값진 인연(因緣)들을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추억들을 돌아보면서, 저도 깊은 바람이 더해져갑니다.
곧,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맑고 좋은 사고와 눈빛으로 세상을 더 긍정적인 힘으로 바라볼 힘을 얻게 하고, 부끄러울 만큼 힘들었던 허물과 상처를 스스럼 없이 털어놓고도 낯 뜨겁지 않도록 감싸주는 경청과 배려가 느껴지는 푸근한 사람, 그의 삶의 길을 따르면서 오히려 깊이 스며드는 존경으로 인해 그 발자국 위에 저의 발자국을 얹어놓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고 말이지요. 그러나, 이젠 저도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싶습니다.
이사야서 1장 18절에서,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라고 하였지요. 우리의 허물과 상처, 죄로 물든 눈물을 몰라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오히려 당신의 안쓰러운 눈물로 씻어주시고, 시리도록 차갑게 얼어붙은 가슴을 당신의 품으로 녹여주실 하느님의 자비에 깃들도록 이끄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사람을 만나고 또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말이 행동보다 앞서 그 위선이 무거운 두려움이나 슬픔을 낳거나, 보이기 위한 위선과 허세(虛勢)로 다가설 수 없는 거리감을 만들어 위압적으로 느끼게 하거나, 지위나 명예를 자처(自處)하여 자랑하고 높이려는 거만으로 못내 아쉬움과 거부감을 남기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요. 그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을 외롭고 힘겨운 자리로 내모는 어리석음이 아닐까요?!
우리 먼저 하느님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지어내신 우리 서로를 하느님의 자비로운 눈으로 다시금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어느 하나 완벽하지 못하여 부족함을 안고 살면서, 잘 살려다 눈물짓고 때로는 몸부림치며 견뎌내는 애처로운 우리 서로를 연민(憐愍)과 애틋한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이런 우리가 아름다운 사랑을 엮고 선(善)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서로에게 초대받았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더욱 좋겠습니다. 이 모든 존재를 빚어주신 하느님 앞에, 겸허한 맘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말이에요.
주님께서 마태오복음 23장 11절, 12절에서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높아져서 멀어지고 서로의 사이를 벌이는 것보다, 함께 걷는 높이와 보폭을 맞추어 눈길이 맞닿고, 체온이 전해질 수 있는 거리에서 서로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만나는 순간을 통해, 마치 영으로 물든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처럼, 진홍빛처럼 힘겨웠던 삶의 고단함이나, 다홍같이 짙었던 상처의 흔적도 치유될 수 있는, 참된 기쁨이 샘솟도록 이요. 주님 짊어지신 십자가를 대신 졌던 키레네 시메온처럼, 서로의 삶을 지탱해주고 동행해 주는 위로나 넘치도록 이요.
당신을 오늘 다시 어떤 마음을 주님께 청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으로 더욱 나아가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이 주님의 사랑과 자비로운 연민으로 충만해지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